< [65화-1] 되돌아갈 시간이다. >
파르나르 장편소설
괴수처럼 33
[65화] 되돌아갈 시간이다.
학명: 갤럭쉽(은하계의 양 떼)
서식지: 우주, 열권
특징: 솜털 주의!
위험도: 7종 특수
비고: 구름 안에 소녀가…?
***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지구의 인류가 상식처럼 잘못 알고 있는 사실들이 대단히 많다.
예를 들자면?
누군가 세상을 창조했다던가!
외모보다 내면이 중요하다던가!
그중에서도 가장 큰 착각은 ‘죽은 자는 부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아득히 고대에서부터 전해져온 전설과 신화에서는 무수히 많은 ‘완벽한 부활’이 나오는데.
『이스라엘 그리스도』
『대한민국 심청』
『이집트 오시리스』
이건 어디까지나 예에 지나지 않는다. 나라마다 방식과 방법은 달라도, 고대인들은 부활을 ‘당연히’ 된다고 믿었다.
그러한 믿음은 근현대에 들어와서 사라졌는데, 이러한 경향은 과학에 의존하기 시작하면서 ‘과학 외의 가능성’을 포기했기 때문이리라.
아니면 누군가 ‘한 번 죽으면 끝’이라고 믿도록 꼬드겼던가.
뭐가 됐든….
부활은 실존한다.
과학적으로 어쩌고저쩌고 아무리 반박하더라도 있는 건 있는 거다.
물론, 쉽다고는 안 했지만.
“하아…. 난장판이군.”
고치에서 나온 존재가 한숨을 내뱉으며 긴 침묵을 깼다.
저 안에서 튀어나오는 것이 인간이었든 괴물이었든 벌거숭이일 거란 모두의 예상을 깨고, 그 존재는 칠흑색 망토를 두르고 고깔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있었다.
전형적인 마법사 차림.
여기에 굳이 수식어를 붙이자면 ‘사악한’쯤 들어가지 않을까?
“주인님!”
“낯뜨거운 호칭인걸.”
“아아! 주인님!”
“...뭐, 그런 사소한 문제는 나중에 따지기로 하고….”
마법사 같은 옷차림과 별개로 왼팔 소매에서 뻗어나온 흉흉한 촉수는 뭐라 형용할 수는 이질감을 선사했다.
수십 갈래로 뻗어 나간 잿빛 촉수는 라그나뢰크 클론들을 꿰뚫은 후에 신속히 소매로 사라졌다. 아무런 일 없었다는 듯이.
하지만 클론들도 언제까지고 멍하니 구경만 하고 있진 않았다. 아니, 못 피했다는 게 더 정확할까?
아무튼,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라그나뢰크 클론들이 복창하며 돌격했다.
그들의 오른손에는 똑같은 형태의 창이 들려 있었는데, 왼팔에는 방금까지 없었던 방패가 꽉 쥐어져 있었다.
그 기세는 그야말로 해일!
목포의 모든 건물을 가루로 분쇄하며 쇄도했다.
한 존재를 향해서.
그 존재가 중얼거렸다.
“...사령탑은 저쪽에 있는 것 같은데…….”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혼자의 힘은 아니다.
‘네. 그쪽이에요. 이젠 정말 마법사가 다 되셨군요!’
‘이 여자의 말에 동의하고 싶진 않지만…. 뚜렷하게 느껴지네요.’
영혼석 안에서 쏠비얀과 슬라리스가 조언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도움도 곧 필요 없어지리라! 그녀들이 쌓아온 지식을 차근차근 흡수해가는 중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기까지 앞으로 5초, 4초, 3초….
흡수한 지식을 전부 정리하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당장은 아니다.
지금은 싸워야 할 때!
“일단은 숫자를 맞춰볼까.”
엘퍼러가 근래에 슈퍼월드 초능력자들을 상대로 아주 잘 활용했던 마법.
그 마법의 개정판!
싱크로율 100%를 달성하며, 에쏘드가 없어도 영혼으로 이어진 ‘한세리’의 창조 능력을 곁들이며 말도 안 되는 기적을 일으켰다.
주위에 널린 ‘피’를 재료로.
색은 상관없다.
어떤 종족이 됐든 ‘피’이기만 하다면.
스르르….
피의 웅덩이에서 사람이 솟아났다. 그것도 한둘이 하니라 수천!
이곳에서 죽은 자들뿐만 아니라 ‘영혼석’ 내에 살고 있던 영혼 중에서 엄선된 자들이 차례차례 형태를 갖추고 현실로 회귀했다.
당연히 그 선두는 과거의 추종자들, 여성형 괴수들.
여자는 옷이 얇고 짧아질수록 강해진다는 어딘가의 법칙을 준수한 걸까? 아슬아슬한 차림새였지만, 생전에 완전히 벗고 살았을 때보다는 건전한 편이었다.
미녀 군단이라고 해도 좋을 광경.
공통점이라면 그녀들 모두가 지팡이를 하나씩 쥐고 있다는 것이다.
“대규모 부활 다음에는 완전무장이로군요.”
“왠지…. 사용법을 알 것 같노라.”
“역시 폐하. 터무니없는 능력….”
“생전의 능력을 지팡이에 담은 것 같은데요?”
전부 똑같을 것 같지만, 영혼의 크기에 따라 차등이 있었다. 가상현실게임에서 레벨과 장비가 비례하는 것처럼.
과거에 8종이었던 여인들의 지팡이 끝에 달린 구슬이 유독 크고 영롱한 빛을 뿜는 것이 그 증거! 예사롭지 않다.
하지만 감탄하면 구경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전투는 이미 시작됐으니까.
우우우웅!
생전의 능력과 차이가 있다면?
바로바로 발현됐던 생전과 달리, 지팡이에 힘을 모아야 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정확히는, 영혼석에서 힘을 전송받는다는데 걸리는 시간이었다.
그 대신이랄까?
슬쩍 훔쳐만 봐도 위력이 엄청날 것 같은 분위기!
당연히 클론들이 힘을 축적하도록 두고 보지 않았다. 그녀들에게 향하는 진로를 가로막은 사내들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그 사내들은 대단히 소란스러웠다.
“현실이다! 현실로 돌아왔다!”
“닥쳐! 정신 사납잖아.”
“촌놈처럼 떠들지 말고 앞을 봐라.”
여자만 살아난 게 아니다.
연약한(?) 여인들이 원거리지원 마법사라면, 이쪽은 그녀들을 보호하고 근거리에서 싸우는 중장보병에 가까웠다.
딱 봐도 추울 것처럼 헐벗은 복장인 여자들과 달리, 남자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철판을 두르고 있어서 누가 누구인지 전혀 분간이 안 됐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차등은 있었다.
“고자가 아닌 것만으로도 충성할 가치가 있지!”
“쩝! 죽었다가 되살아나서도 탱커인가.”
“......”
“힘이 온몸에서 솟구쳐서 간질거리는군!”
홍길동, 서세진, 유지수를 비롯하여 소위 ‘네임드(Named)’라고 불리는 사내들이 차별화된 갑주를 걸치고 있었다.
생전이었다면 단번에 쓸려버렸을 자들. 하지만 그들이 마신 라그나뢰크 클론을 막아내고 있었다. 문팽이와 배틀씹마저 고전케 하는 놈들을!
그 때문에 보고도 믿기지 않는데 하물며, 당사자들의 심정은 어떨까?
“말도 안 되는…!”
“건방진! 죽어라!”
“하등생물 따위가!”
악다구니를 써도 뚫리지 않았다.
보는 각도에 따라서는 슈퍼월드 초능력자들의 ‘탱커 & 딜러 & 힐러’ 진형과 흡사했지만, 그보다는 ‘보병 & 궁수’로 이루어진 군대에 훨씬 가까웠다.
그렇다고 오합지졸인 건 절대 아니다.
보병이라고 하기에는 기동력과 방어력이 대단히 높고, 찔끔찔끔 쏘는 궁수가 아닌 대량학살의 명장인 마법사들!
하지만 클론들의 저항도 거세지며 점점 혼전 양상을 띠었다.
사방에서 피해와 사망자가 속출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하지만 한 번 시작된 기적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벌떡!
클론의 칼에 목이 베여 죽은 여인이 다시 일어섰다!
애초에 한 번 죽었던 몸.
현재 사용 중인 몸뚱이도 ‘임시’에 지나지 않는다. 죽더라도 가상현실게임에서 자신의 캐릭터가 사망하는 수준 이하의 감상뿐.
사요나락, 엔츄 베르테의 말 그대로였다.
그는,
죽음을 지배하고 있었다.
『불사의 군대』
게임과 소설에 나오는 사악한 흑마법사처럼.
제삼자 입장에서 들으면 하품이 나올 정도로 흔해 빠진 설정의 군대다. 하지만 그게 실존한다면?
당하는 ‘적’에게는 악몽이나 다름없다.
마신 위그드라실이 준비한 ‘마신 라그나뢰크 클론’은 소모전과 백병전에서 대단한 강점을 보이며 문팽이와 배틀씹, 올란드를 밀어붙이고 있었다.
그러나 ‘죽지 않는 군대’를 상대로는 무의미!
아쉬운 점이라면?
이 군대에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는 것이다.
“피를 태워라!”
“꽁꽁 얼려!”
육체의 매개체인 ‘피’의 공급이 부족하면 부활할 수 없다.
상대할 대책법이 단시간에 나오면서 전황은 한 치 앞을 장담하기 힘들어졌다. 하지만 이 아비규환에서 살짝 떨어진 곳에서 이미 종장(終章)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양측이 각각 ‘부활’과 ‘복제’로 장기전에 강한 군대.
그렇기에 중추역할을 하는 머리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
콰광!
거대한 충돌이 있었다.
서로가 대화는 필요 없다는 걸 알기에 군말 없이 처음부터 전심전력으로 부딪혔다. 그리고 ‘전력(全力)’을 다한 결과.
한쪽이 일방적, 압도적인 우세였다.
“콜록! 콜록!”
나뭇잎과 나무껍질로 만든 옷을 입은 20대 초반의 여인이 꼴사납게 바닥을 굴렀다. 그리고 수액(樹液) 같은 ‘녹색 피’를 토했다.
그런 여인을 보며, 촉수를 회수한 존재가 멈칫하더니 공격을 멈췄다.
구면이었던 탓이다.
“라그나뢰크 클론…. 여자 버전이군.”
기억났다. 어찌 있을 수 있을까!
아마...
지난번에 추격하던 클론들로부터 구해냈던 여자는 ‘실패작’이고 이쪽은 ‘성공작’이리라. 성공 여부는 조종이 가능 여부일까?
아무튼, 그 성공작이 입술에 묻은 피를 손등으로 거칠게 닦으며 외쳤다.
“너는 뭐냐!”
질문이 아주 흔해 빠진 패턴이구먼?
속으로 비웃으면서도 상대해주는 자신도 웃기지만.
“지구인 한무일. 올해로 서른 살.”
“헛소리! 그런 몸으로 하등생물을 자칭하더니, 참으로 어이가 없구나! 거울을 보라. 너는 초월종(超越種)! 새로운 상위생물이란 말이다!”
“...말이 많았군.”
한무일은 자신의 왼팔을 힐끔 보았다.
흉측한 괴수의 팔을.
망토가 찢어지며 드러난 왼팔은 ‘라그나뢰크의 왼팔’과 매우 흡사했다. 아니, 흡사한 정도가 아니라 능력도 아예 똑같으리라.
덤으로 추가된 촉수까지... 어딜 보나 괴물이다.
그런 왼팔 손목에 돋아난 뿔이 순식간에 길어지더니, 여자와 한무일 사이를 가로막는 모든 걸 꿰뚫었다. 그리고 촉수에서 촉수가 돋아났다.
줄기 많은 나뭇가지처럼.
한 번 흔들자, 걸리는 모든 게 분쇄되며 갈기갈기 찢어졌다.
『마법?』
아니다! 마법 따위가 아니다!
이것은 백혈구울 고유능력의 최종형태.
생물의 모든 가능성을 내포한 이 육체만으로도 이미 흉기 그 이상이었다.
심지어 촉수들은 ‘에쏘드’의 ‘파괴불가’ 속성마저 미약하게나마 내포하고 있어서 겉보기와 달리 대단히 튼튼하다.
하지만 옷마저 그런 건 아니다.
한무일의 망토와 고깔모자를 벗겨내는 데 성공한 마신 ‘위그드라실’은 소리쳤다. 분신이나 다름없는 ‘라그나뢰크 여성형’을 통해서.
“네 모습을 보라! 어찌하려 감추려 하는가!”
“괜한 참견.”
“이대로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나도 이대로 끝낼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많이 늦긴 했지만….
지금부터는 ‘반격’의 시간이다.
한유일이 만들어준 기적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한무일은 멈출 수 없다. 녀석이 간절히 꿈꿔왔던 ‘하렘 제국’을 세우기 전까지.
하지만 그 꿈을 지구에서 이루긴 요원하리라.
이 작은 행성에서 안주하기에는 지나치게 비대해졌기 때문이다.
“그 몸을 반드시 나의 것으로-.”
마신 위그드라실은 하고 싶은 말을 끝까지 마칠 수 없었다.
한무일의 왼팔에서 일직선으로 뻗어나온 촉수가 그녀의 호위병을 전부 관통하고 심장을 단번에 날려버렸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영혼 없는 빈껍데기.
영혼석으로 흡수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별 소득 없었지만, 사령탑을 잃고 통제를 벗어난 클론들을 수월하게 처리할 수 있었으니 완전한 허탕은 아니리라.
“지금부터 도시복구를 시작한다.”
마법의 힘은 위대했다.
폐허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했던 목포는 시간을 되감는 것처럼 모든 게 며칠 전으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영문도 모른 채 죽은 무고한 시민까지도!
하지만 모든 게 원상복구 됐다고 해서 지은 죄마저 용서될까?
‘도망가도록 놔둘 순 없지!’
정리해야 할 적은 위그드라실의 패잔병만이 아니다.
하늘.
문팽이와 배틀씹의 공격으로 큰 타격을 받은 갤럭쉽.
구름처럼 생긴 솜털로 몸을 보호하며 우주로, 시야 밖으로 벗어나려는 천녀(天女)들을 정리할 차례다.
촉수가 닿지 않으니,
스르륵….
등과 등허리에 총 12쌍의 반투명한 날개가 돋아났다.
하지만 날벌레처럼 펄럭이진 않았다. 어차피 우주는 공기저항이 없어서 일반적인 날갯짓으로는 나아갈 수 없다.
이 날개들은 어디까지나 방향타.
한무일은 마법을 우주선 추진제처럼 사용하여 수직으로 비상했다.
우주로 내빼는 갤럭쉽을 향해 외쳤다.
“거기, 비행천소녀(飛行天少女)들! 날뛴 대가는 치러야지!”
< [65화-1] 되돌아갈 시간이다. > 끝
ⓒ 파르나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