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수처럼-266화 (266/287)

< [64화-1] 멸망 교향곡 >

[64화] 멸망 교향곡

학명: 바다사슴(바다에 사는 사슴)

서식지: 해양

특징: 뿔 빼면 사슴인지 의문

위험도: 4종 보통

비고: 녹용이 피부에 좋아요!

***

모두가 상상했었다. 초대형 달팽이에게 밟히며 멸망하는 세계를.

그 하루를 앞두고 이변이 발생했다.

괴수대응연맹에서 지정한 ‘3대 재앙’의 나머지 둘이 움직인 것! 여태까지 상대해온 ‘마녀의 사역마’하고는 급이 달랐다.

그야말로 재앙.

하나만 움직였다면 괴수대응연맹을 중심으로 한 연합군을 파견해서 막아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시에 둘이?

그것도 ‘엘퍼러’에 극도로 의존하며 약체화된 틈에?

“와우! 여기가 정말로 유럽이란 게 실감이 가는군! 연구소 안에만 틀어박혀서 몰랐는데 정말로 해외긴 해외야!”

“...제멋대로 행동하는 건 자제해라, 여왕님이 전언이시다.”

“헹! 탈출시켜준 걸로 생색내지 마시지? 말벌 양?”

황진천은 고민했다.

이대로 ‘엘퍼러’를 적대해도 괜찮은지에 대해서.

모두가 죽었다고 단정 중이지만, 황진천은 조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엘퍼러는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카르 4세’는 죽지 않는다.

그가 아는 한무일은 옛날부터 쭉 그랬다. 진즉 죽었어야 마땅한 사지(死地)에서 태연하게 귀환하곤 했다.

본인의 ‘합동 장례식’인 줄도 모르고 참석했던 적도 있었다!

그때에 비하면 이번에는 양호했다.

‘몸뚱이가 멀쩡하니….’

행방불명됐을 때에 비하면 이건 무사한 거나 다름없다!

들려오는 얘기로는 흡혈귀에게 먹혔다나? 그래서 더는 가망이 없다는 모양이지만, 황진천은 그렇게 생각 안 한다.

어떤 식으로든 생환(生還)할 것이다.

절벽에서 떨어져도 나뭇가지에 걸려서 살 놈이니까!

“아니지, 아니야. 더 강해져서 돌아올 테지.”

“무슨 말이냐?”

“남의 혼잣말을 엿듣지 마라. 별거 아니니.”

황진천은 생각을 굳혔다. 구해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자신을 연구소에서 꺼내주고 잔뜩 생색내는 이 녀석들을 배신하자고.

이미 마음속에 응어리진 스트레스는 대부분 푼 상태였다. 자신을 실험실 쥐로 알던 하룻강아지들을 쓸어버린 걸로 만족했달까!

그래도 이왕 나온 거, 한무일의 편을 들어 ‘감면(減免)’받을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당장은 아니다.

피가 부족해도 너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 말벌 년들. 보기보다 강하단 말이지.’

어린이 애니메이션의 폐단이 하나 있는데, 일꾼개미와 벌 중에 ‘수컷’이 있다는 점이다. 원래는 전부 ‘암컷’이다. 그것도 생식기가 퇴화한 암컷.

개미와 벌은 수컷이 희귀하다.

오직 생식을 위해서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게 수컷이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은 괴수도 다르지 않았다.

【워페레스 / 4종 소형】

백과사전에는 ‘9종’으로 명시되어 있지만, 그건 군집생활을 하는 단일집단이기 때문이다. 개개인의 능력은 4종쯤 한다.

외모로 보자면 여성형 괴수.

유방이 전혀 발달하지 않았고 생식기도 바늘구멍처럼 작은 ‘일벌’을 여자라고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단일객체로는 약하다. 하지만 뭉치면 뭉칠수록 강해진다는 점이 무섭다.

등의 반투명한 곤충 날개로 ‘진동’을 발생시킨다.

즉,

『음파(音波) 공격』

그까짓 소리쯤이야!

...한둘이라면 그렇게 배짱을 부릴 수 있으리라.

하지만 수백도 아니고, 수천도 아니며, 수만에 달하는 4종 괴수가 한꺼번에 일으키는 초음파(超音波) 앞에는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무작정 날개를 파닥거리는 게 아니다.

동료들과 함께 진동수를 맞추거나 어떤 규칙성으로 증폭시켜서 시너지효과를 낸다.

그 증거로, 도시의 건물들이 폭삭 무너지고 있었다.

퍽!

사람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전자레인지에 넣은 개구리처럼 터져버렸다. 그것도 무더기로. 대량학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만약, 괴수대응연맹에서 70년 전에 배포한 ‘워페레스 대응책’이라 불리는 ‘중화 음파’를 작동시키지 않았다면, 도시는 10초 내로 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기계는 괴수가 아니다.

워페레스가 시설을 파괴할 때마다 ‘중화 음파’도 약해지며 피해가 가속화됐다.

“젠장! 무슨 저딴 괴물이 다 있어!”

“용사님! 도시를 버린다니요!”

“...음?”

아비규환이 된 도시에서 예쁜 아가씨를 선별 중이던 황진천은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그가 알기로, 요즘 세상에 ‘용사’라는 낯뜨거운 호칭을 태연하게 말할 수 있는 존재는 ‘용사의 정령’ 에쏘드뿐.

그 소리의 근원지로 시선을 돌린 백혈구울은 보았다.

‘아하! 이래서 예쁜 것들이 안 보였군!’

도시의 미녀란 미녀는 싹 다 긁어모은 게 아닐까?

호화찬란한 호버크라프트에 여자들을 태우고 도시를 빠져나가려는 ‘용사’가 보였다.

『에쏘스트』

한무일을 모방해서 만들었다는 짝퉁 최강자들.

연구소에서 그런 에쏘스트의 ‘상위버전’을 연구 중이었기 때문에 황진천은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 없었다.

에쏘스트는 뱀페스트와 에쏘드의 결합품.

하지만 거기서 만족하지 못한 강대국들은 황진천의 백혈구울 능력을 탐냈다. 거기에 한술 더 떠서 에쏘드까지 다룰 수 있기를.

황진천에게 가해진 모진 생체실험 대부분은 이 때문이었다.

당연히 감정적으로 좋을 수 없는 게 사실.

“좋군. 일석이조(一石二鳥)라면 더욱.”

눈엣가시처럼 마음에 안 드는 에쏘스트도 죽이고, 녀석이 데리고 있는 미녀들을 차지하기로 했다.

황진천은 허겁지겁 도망치는 여자를 낚아챘다. 제법 반반하다. 괴수에게서 도망치는 건지, 아니면 발정 난 사내들에게서 멀어지려는 건지는 모른다.

그저 자연스럽게 피를 좀 빤 후에 놓아줬다.

서울에서 난동을 부렸을 때처럼 죽을 정도로 흡혈하면 힘을 회복하고 강해지는 시간이 단축되겠지만, 그건 미래적으로 봤을 때 악수다.

『각인』

인식하지 않으려 해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미 자신은 왕족은커녕 귀족의 지위마저 잃은 ‘왕의 하인’ 정도란 사실을. 그 때문에 권능도 대단히 한정적이다.

이전처럼 다수의 미녀를 복종시키는 것도 불가능하기에 선별이 필수! 거기다 각인 때문에 한무일의 감시에서 도망칠 수도 없다.

복종을 강요하는 ‘각인’의 힘에는 그나마 저항할 수 있다는 게 불행 중 다행일까?

뭐가 됐든 당장은 최대한 문제를 안 일으키는 게 상책이다.

콰광!

...그래도 흡혈할 미녀들은 생존이 걸린 문제이니 조금 사고 치는 걸로.

탑승 중인 미녀들이 안 다칠 정도로만 호버크라프트를 외부에서 때려 부순 황진천은 손가락을 까딱이며 상대를 도발했다.

안 그래도 궁금하던 참이다.

세상 무서운 줄 모르던 자신을 너무나 간단히 쓰러트렸던 ‘한무일’을 모방한 ‘에쏘스트’란 녀석들의 성능을.

그자가 말했다.

“내가 누군지 알고서 한 짓이냐! 소속을 대라! 초짜 노블레스!”

호버크라프트의 안면을 맨손으로 뭉갠 괴력을 보고 노블레스로 착각한 모양이다.

어쩔 수 없는 거려나?

자신이 연구소에 처박힌 이후부터 활동하기 시작한 애송이라면 모르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진짜 애송이’에게 애송이 취급을 받으니 조금 기가 막힌 황진천이었다.

백혈구울은 송곳니를 씩 내밀며 말했다.

노블레스는 감히 흉내조차 못 낼 만큼 길고 뾰족한 송곳니가 섬뜩했다.

“남의 여자를 뺏으려는 건달이라고 생각해라.”

“겁도 없는 놈이군! 감히! 나, ‘루이스 보나파르트’를 도발하다니!”

“아! 네가 그 나폴레옹의 환생이란 놈이냐?”

그렇다면 여긴 프랑스의 수도 ‘파리’인 모양이다.

무의식적으로 에펠탑을 찾았지만….

옛날옛적에 ‘붉은 용왕’ 레드군의 브레스를 맞고 소프트아이스크림처럼 녹아버린 쇳덩어리에서 ‘건축의 미(美)’를 찾기란 힘들었다.

“놈? 나를 놈이라고? 그 버릇 나쁜 주둥이를 찢어주마!”

프랑스의 에쏘스트, 루이스 보나파르트는 속이 타들어 가는 심정이었다.

문팽이가 세상을 밀어버릴 것을 대비하여 지하벙커를 준비했다.

추종자가 침입할 수 있는 출입구는 무너트려 없애고, 문팽이가 누르는 하중에도 버틸 수 있는지 구조학적으로 확인도 마친 상태!

그 안에서 미녀들의 재롱을 감상하며 밖이 조용해질 때까지 버틸 예정이었다.

그런데 웬걸?

하루 앞당겨서 엉뚱한 ‘3대 재앙’이 침공해왔다.

『1일』

그건 대단히 긴 시간이다.

게다가 내일부터 문팽이가 세계를 짓밟고 다닌다고 해도, 세상이 당장 내일 끝장나는 건 아니다.

지형상으로 아시아 전체를 평평한 갯벌로 만든 후에 유럽으로 오려면 아무리 짧아도 닷새. 오스트레일리아와 아메리카를 먼저 방문한다면 보름쯤 걸릴 터였다.

그러니 아직 여유가 있었다.

맛 좋은 식량이나 미녀를 더 확보하며 문화생활을 영위할….

당연히 이런 기습공격은 미처 생각지도 못했다. 게다가 지하벙커는 ‘문팽이’에 특화된 대책이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워페레스’라니?

음파에 지하벙커가 무너져서 생매장당할 수도 있다.

“큭큭! 나는 한무일과 달리 적에게 관대한 편이지.”

“한무일…?”

“이것저것 다 가르쳐주고 싸우거든. 예를 들어…. 미리 힘을 과시하기도 하지.”

프랑스 수도 파리는 이미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평소 행실이 추잡해도 능력이 있어서 시민들도 눈감아주고 있었던 노블레스가 무더기로 죽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들은 게을렀거나 방심한 건 아니다.

애국심보다는 생존을 위해 악착같이 싸운 노블레스 군단은 제법 선전했다. 그래서 워페레스는 정말 셀 수 없이 많이 죽었다.

다만….

아무리 죽여도 여전히 많다는 게 문제였다.

“네, 네놈은 정체가 뭐냐?! 어떻게 그리 강할 수 있지?!”

자신만만했던 루이스 보나파르트의 얼굴이 푸르딩딩하게 변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늑대인간의 변신처럼 몸집이 커진 ‘괴물’은 강했다.

하지만 못 이길 상대는 아니라고 느꼈다. 녀석은 어째선지 ‘에쏘드’를 극도로 경계하며 회피와 기습에 초점을 두고 싸웠으니까.

그러나 그건 오판이었다.

한 대도 맞질 않는다! 에쏘드로 이 괴물의 머리카락조차 베질 못했다.

“그러는 너는 왜 이리 약하지?”

“이 자식이!”

“나폴레옹의 환생이라고 불리는 프랑스 에쏘스트는 불패의 사냥꾼이라고 들었는데.”

그래 불패(不敗)였을 수밖에!

짜고서 매번 ‘동점’만 기록했으니까.

이런 사기꾼 같은 행태와 문란한 성생활에도 불구하고 ‘루이스 보나파르트’가 에쏘드 계약자일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다.

『보나파르트』

정말로 영웅의 혈통이기 때문이다. 족보를 따지면 ‘통수’일 결과가 나올지도 모르지만, 그가 태어났을 때부터 쭉 성이 ‘보나파르트’였다는 게 중요하다.

영웅의 자손.

이보다 더 ‘용사의 시작점’에 어울리려면 ‘신의 사생아’쯤 되어야 하지 않을까?

아무튼, 혈통 덕분에 그는 무난하게 에쏘드 계약자가 되었다.

하지만 이 이상의 노력을 하지 않았다. 곧잘 우리는 ‘노력하는 천재’는 무섭다고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는 ‘게으른 토끼’였다.

그래서 느끼지조차 못했다.

땅속에 잠복해있던 촉수가 튀어나와 자신의 등을 꿰뚫는 것을.

푸욱-!

뱀페스트의 재생력을 무지막지하다. 머리가 사라져도 재생될 정도니까.

하지만 ‘심장’만은 그렇지 않다.

뱀페스트가 기생 중인 심장을 잃으면 그걸로 끝이다. 심장을 잃고도 살아남으려면 귀족 이상, 완전히 갈기갈기 찢기고도 부활하려면 왕족이어야 한다.

하지만 루이스 보나파르트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흡혈을 많이 한 덕분에 능력은 몰락귀족쯤 됐지만 말이다.

게다가….

강제로 지배받고 있던 뱀페스트가 살기를 거부했다.

“아, 안 돼…. 죽기 싫어. 싫다-,”

“다 큰 어른이 질질 짜지 말고 곱게 죽어라.”

“엄마…! 누나…!”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울부짖던 프랑스 에쏘스트가 마침내 쓰러졌다.

별 감흥 없다는 듯이 그의 시체를 지나친 황진천은 전리품을 거둬들였다. 그리고 불타오르는 프랑스 파리를 배경 삼아 미녀를 하나씩 노예로 만들었다.

계약자를 제외하고 가장 뛰어난 프랑스 미녀들은 이곳에 다 모아둔 게 분명했다.

“호오…. 독일과 영국에도 있다고?”

“네. 주인님.”

“그렇다면 가야지.”

황진천은 여자들은 감춰둔 후에 다시 날아올랐다.

유럽은….

반나절 만에 에쏘스트 넷을 잃었다. 그중에는 영웅시됐던 ‘나폴레옹 환생’과 ‘베를린 장벽’이 있어서 그 충격은 더욱 컸다.

워페레스의 폭거나 다름없는 음파로부터 면역인 그들이 유일한 희망이었는데….

그 참극의 마지막은?

훗날, 영국의 마지막 남왕(男王)으로 기록되는 ‘카이서스 하이로드’의 죽음.

유럽이 여왕벌의 손아귀에 떨어진 순간이었다.

< [64화-1] 멸망 교향곡 > 끝

ⓒ 파르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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