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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수처럼-249화 (249/287)

< [60화-1] 해를 품은 달팽이 >

[60화] 해를 품은 달팽이

학명: 울트라몬(어마어마하게 강력한 괴수)

서식지: 불명

특징: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다.

위험도: 8종 대형

비고: 상처가 누적될수록 강해진다.

***

누구나 한 번쯤 어림짐작이란 걸 해봤을 것이다.

이게 얼마나 크다고.

하지만 계속 틀릴 때도 있는 법이다.

크구나. 생각보다 크네? 진짜 크다! 어라? 더 크네? 엄청나게 크다! 훨씬 크잖아! 뭐야 저거?! 말도 안 돼! 이건 꿈인가…?

...이런 식으로.

갑자기 어두워진 세상에서, 서세진은 악몽을 보고 있었다.

사기적인 ‘반사’라는 초능력을 각성한 이후로 늘 승승장구해온 남자. 최강의 공격대와 최고의 여성을 차지한 그에게 후퇴란 없었다.

하지만 본능이 외치고 있었다.

『도망쳐!』

...라고.

수많은 몬스터를 보아왔지만, 이렇게 큰 녀석은 처음이었다.

만약에 멀리서 보지 않았다면 어떻게 생긴 몬스터인지 윤곽조차 파악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은 그냥 벽 같았다. 구름 너머 하늘까지 닿는 벽!

물론, 이보다 작긴 해도 제법 한 덩치 하는 몬스터가 본토(슈퍼월드)에도 있긴 했다. 하지만 풍기는 분위기가….

만만치 않았다. 아니, 버거웠다.

“대장!”

“...당황하지 마! 거품만 잔뜩 낀 몬스터를 우리는 수없이 봐왔잖아.”

“저기! 이번에도 부하들과 함께입니다!”

정말이었다.

본토에서는 이런 경우가 없었다. 직접 낳은 새끼나 신체 일부를 분리해서 함께 싸우도록 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이렇게 완전히 독립적인 경우는 처음이었다.

동료는 아니다.

저것들은 마치 ‘왕’을 호위하는 ‘기사’들처럼 싸운다.

울트라몬을 상대할 때도 번거로웠던 졸개들. 그래서 미리 싹 정리해야만 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하지만 그 규모는 상상 이상이었다.

게다가 비실비실한 것 같지도 않았다.

‘하나하나가 레이드 수준….’

최강의 공격대답게 숫자는 상관없다. 공격대원 중에는 막강한 광역 계열 초능력을 보유한 자들이 무척이나 많았으니까.

부대장 ‘윤미라’와 연인 ‘성예린’을 주축으로 한 딜러들은 사뭇 진지했다. 저것들이 공격대 앞에 당도하기 전에 쓸어버려야 한다.

곧, 자신들의 사정권에….

“하늘! 하늘을 봐주십시오!”

“우박…?”

“유성우…?”

“...폭격이다! 막아!”

하얗고 둥근 공이 소나기처럼 떨어지기 시작했다.

원래는 탱커가 전방에서 막아야 했지만, 이건 공격대 진영 전체를 겨냥하고 있어서 무리였다. 게다가 막는다고 끝이 아니었다.

쩌억-!

바닥에 떨어진 ‘공’이 갈라졌다.

그리고 거기서 튀어나온 건,

“저것들은 ‘알’이다!”

“쳐내지 말고 부숴! 안에서 몬스터가 튀어나온다!”

“새끼들을 죽여! 머리를 노려라!”

거북이의 몸통에 팔다리 대신 ‘용(龍)의 머리’만 여섯 개 달린 몬스터였다.

그 정체는 8종 괴수, 배틀씹.

비록, 새끼는 이렇게나 작고 귀엽(?)지만, 성체로 자라면 웬만한 섬에 버금간다. 그렇게 전설로까지 나온 신수.

하지만 그런 걸 알 턱이 없었다.

정보를 제공해줘야 할 사령부가 엘퍼러의 기습으로 괴멸했으니까. 하지만 이것 또한 당연하게도 알려지지 않았다.

그저 울트라몬의 습격으로 통신장비에 이상이 생겼다고 여길 뿐.

“미라! 플라스마 보호막을!”

“네! 대장님!”

“예린! 공간붕괴로 요격!”

“응. 지원해줘.”

선공을 취하려던 공격대는 방어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 긴박한 상황!

다행히도 ‘알’이 무한하지는 않았기에 곧 폭격은 멈췄다. 그때까지 희생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은 건 기적이라고 할 만했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목표물이 섬멸되지 않고 막아냈다는 사실에 대단히 유감 많은 ‘배틀씹’이 직접 해안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거대함만큼이나 자리이동도 빨랐다.

이어서,

퍼엉-! 크앙-! 슈웅-!

다두룡(多頭龍) 배틀씹의 브레스가 ‘아임 이레귤러’ 공격대에 떨어졌다.

서세진이 망설이지 않고 그 화염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반사’ 초능력으로 쳐냈다.

이어서 큰소리로 외쳤다.

“돌려주마!”

“꺄악!”

“컥!?”

“아악!”

하지만 몬스터가 아닌 바로 뒤편에서 비명이 터졌다.

배틀씹의 브레스는 ‘한 방’이 아니었던 탓! 여섯 개의 머리에서 여섯 속성의 브레스를 한꺼번에 토해냈다.

서세진을 뺀 나머지 탱커들이 몸으로 막고, 힐러와 딜러들이 중화 내지는 보호막으로 어찌어찌 막긴 했지만, 끝내 사망자가 나오고 말았다.

‘심하다….’

서세진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용의 브레스로 짐작되는 공격은 ‘단발’로 끝나지 않았다. 각기 다른 방향에서 동시에 ‘여섯 발’씩, 대략 10초 간격으로 ‘연사’가 가능하다.

이래서는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그리고 방어만 해서는 이길 수 없다.

유일한 방법은 브레스가 쏘아지는 방향으로 돌격해서 원흉을 쓰러트리는 것! 결단을 내려야 할 순간이 왔다.

“미라. 공격대를 통솔해줘.”

“대장님…?”

“멀리서 이 브레스를 쏘는 용들을 쓰러트리고 올 때까지만 버텨줘. 처음에는 몰라서 사망자도 나왔지만 이젠 내가 빠져도 괜찮을 거야.”

“대장님! 너무 무모해요!”

사방에 몬스터가 우글거린다.

물론, 최고의 탱커로 이름 높은 서세진의 죽음은 상상조차 가지 않지만.

부대장 ‘윤미라’는 어떻게든 말리려고 애썼다.

정작 그의 아내인 ‘성예린’은 침착하게, 사방에서 쏟아지는 브레스를 공간째 날려버리며 막아내는 일에만 집중했다.

그러다가 한마디 했다.

“나도 함께 갈게. 어차피 내 초능력은 네가 없으면 쓸 수 없으니.”

성예린의 초능력은 서세진의 ‘반사’가 없으면 아군까지 몰살시킨다.

그녀는 선택이고 뭐고 할 게 없었다.

하지만 그건 윤미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녀의 플라스마 초능력도 서세진의 지원이 없으면 보호막으로는 쓸 수 없기는 매한가지.

서세진은 난감했다.

이렇게 단독임무를 수행할 일이 없었기도 했지만, 자신이 빠지면 본진의 전력이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짐을 드디어 실감할 수 있었다.

“...대장님.”

“미라. 너마저 함께 간다는 소리는 안 했으면-.”

“사랑해요.”

“가,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예린 씨보다 훨씬! 아니,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당신을 사랑해요.”

“왜…, 그런 얘기를….”

“지금이 아니면 고백할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요. 기우라면 좋겠지만….”

분위기가 묘해졌다.

당연히 오래가진 못했다.

동료이자 친구인 윤미라에게 도전적인, 혹은 그 이상의 도발적인 발언을 들은 아내 ‘성예린’ 때문이 아니라,

“거기, 세 사람. 사랑 타령은 나중으로 미루고 일단은 앞을, 현실에 집중해줬으면 좋겠는데.”

“브레스 공격이 멈추긴 멈췄는데…. 그걸 기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네.”

“상대가 몬스터만 아니라면 항복하고 싶어요. 흑흑….”

태양을 가렸던 존재. 그 몬스터가 마침내 코앞에 당도했다.

하지만 놈은 멈출 기미가 안 보였다!

전방에 적대적인 무언가가 있으면 예의상 멈춰서 탐색전이라도 해줄 법도 한데….

자신들이 앞에 있거나 말거나 계속 진격한다!

이건 명백한,

『무시』

하지만 거기에 발끈할 여유와 정신이 없었다.

멀리 떨어져 있을 때는 설마 했었는데, 속도도 대단히 빨랐다. 바다 위에 있을 때는 해양생물이라고 여겼는데 육지로도 올라왔다.

하기야 달팽이인데….

“공격! 모든 공격을 퍼부어!”

“조준 생각하지 말고 그냥 쏴! 무조건 쏴!”

후퇴는 불가능했다.

옆으로 슬쩍 피해서 몬스터의 이동 경로를 이탈하는 것도 무리였다. 도대체 ‘옆’이 어디란 말인가?

좌우를 둘러봐도 온통 ‘벽’이었다.

녀석에게 발이라도 있었다면 몸 밑으로 빠져나가는 묘기라도 부릴 터인데, 빨판처럼 바닥에 착 달라붙은 몸뚱이는 틈이 전혀 없었다.

저기에 깔리면?

납작하게 찌부러져 형체도 안 남으리라!

“대, 대장님. 죄송하지만, 저는 이탈할게요.”

“비겁한 년! 이 걸레만도 못한 년!”

“순간이동! 나도 데려가 줘! 이대로 죽기 싫어!”

하지만 그것도 부질없었다.

멀리 뒤편으로 순간이동 하려던 초능력자는 엉뚱한 곳으로 이동됐다. 그리고 그 황당한 광경을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그녀는 입으로 말했다.

‘왜…?’

순간이동이 원하는 장소로 안 됐다는 걸 토로하고 싶었던 그녀였지만, 의문을 외쳐보기도 전에 몬스터의 거대한 벽으로 빨려 들어갔다.

벽에 붙은 몬스터 무리가 그녀에게 달려든다. 깜짝 놀라며 다시 한 번 순간이동! 하지만 이번에도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더욱 벽에 바짝 이동됐다.

그 뒤는?

“꺄악!”

미미한 비명이 공격대 앞까지 들렸다. 아니, 환청이리라. 그렇게 믿고 싶다.

공격대 내에서 절망적인 목소리가 쏟아진 것도 이때쯤.

초능력이 이상해진 건 ‘순간이동’만이 아니었다.

“내 공격이 휘었어…?”

“아예 닿질 않아!”

“이상해! 뭔가 이상해!”

그들의 초능력은 문팽이의 껍질에 닿지 않았다.

그야 당연했다.

『또 다른 세계』

문팽이 껍질은 독립된 중력법칙과 물리법칙을 따른다.

그게 어쨌냐?

지구에서 ‘평행운동’하던 공격은 문팽이의 껍질 위에서도 ‘평행운동’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니 타격이 가해질 리 없었다.

문팽이 껍질 근처에 가는 즉시 투사형 초능력은 수직으로 꺾이며 껍질 표면을 배회하다가 힘을 잃고 자연소멸 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문팽이가 공격대를 밀어버리기 직전까지 당도했다.

“모, 몸이 떠오른다?!”

“끌려간다!”

“초능력으로도 안 돼!”

밑에 깔려 납작해질 줄 알았던 공격대원들의 몸이 자석에 이끌리듯 떠올랐다. 그리고 문팽이의 껍질로 끌려갔다.

기껏 짜둔 진영은 완전히 무너졌고, 전원이 뿔뿔이 흩어지며 생사조차 확인할 길이 없어졌다.

물론, 모두가 문팽이의 능력에 휩쓸린 건 아니었다.

“크아악?!”

서세진은 문팽이와 대지 사이에 끼어서 정신을 놓고 말았다.

만약, 지구의 중력을 ‘반사’했다면 우주로 날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렇지 않았다. 중력만은 반사하지 않은 것이다.

그 규칙은 여기서도 적용됐는데, 문팽이의 중력으로부터 유일하게 자유로운 서세진만 차별대우(?)를 받았다.

그리고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을까?

무게를 가늠할 수 없는 몬스터 밑에 깔려, 완벽하게 ‘반사’하는 데 실패한 온몸의 뼈와 살이 뭉개지고 바스러졌던 서세진은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과연! 탱커의 생존력이란!

저 멀리, 거대한 달팽이의 떠나가는 뒷모습이 보인다.

“콜록콜록! 여긴…. 어디지…?”

처음에는 외계행성으로 순간이동 한 줄 알았다.

정말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이었으니까!

하지만 어렴풋이 보이는 환경들이 ‘같은 장소’임을 알려줬다. 그저 모든 게 휩쓸렸을 뿐이다. 자신의 동료도, 여자도, 세계도….

홀로 남겨진 서세진 앞에 ‘낯익은 외계인’이 나타났다.

“다시 만났군. 좋은 의미의 만남은 아니지만.”

이 외계행성의 황제.

진짜 황제인 건 아니지만, 그보다 더한 권세를 가진 남자.

그의 주변에는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여인들이 하늘과 바다, 땅을 자유롭게 노닐며 그만을 바라보며 축복해주고 있었다.

물론, 평범한 여인들은 아니었다.

날개나 지느러미, 뿔, 꼬리 등이 달렸으니까.

‘저자가 바로….’

서세진은 그 이름을 중얼거렸다.

자신들의 침략에 협조하던 원주민들이 끊임없이 경고했던,

“엘퍼러…!”

< [60화-1] 해를 품은 달팽이 > 끝

ⓒ 파르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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