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화-4] 관광객은 아닙니다만. >
전투가 다시 시작됐다. 이름하여 ‘울트라몬 공방전’!
하지만 이전처럼 지루한 전투는 아니었다.
『정예』
슈퍼월드에서도 최고로만 몰려왔기 때문이다. 멍청한 괴수들만 상대하다가 ‘지능범’을 만났다고 해서 단번에 무너질 만큼 녹록지 않다.
게다가 실력이나 보유한 초능력도 하나같이 뛰어났다. 과연, 슈퍼월드를 주도하는 ‘1군’이라 칭할 만한 강자들.
하지만 아무리 강해졌더라도….
‘호오…. 기다리는 동안 심심하진 않겠네.’
울트라몬을 조종하는 한유일은 느긋했다.
물론, 자기 몸 다치는 게 아니란 이유도 한몫했지만, 극적으로 밀릴 만큼 강하다고 칭하기에도 무리수가 따랐다.
더구나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다!
다수의 졸병을 이끌고 왔기에 슈퍼월드에서도 꽤 당황한 눈치였다.
“놈의 패턴이 바뀌었다!”
“부하들이 끊임없이 소환되고 있어!”
“탱커들! 정신 똑바로 차려!”
게다가 이 ‘졸병’들은 위협적이었다.
한유일이야 한무일의 뜻에 따라서 ‘탱커만’ 공격하고 있지만, 졸병을 조종하는 자들까지 완벽하게 통제하는 건 무리였다. 할 이유도 없고.
육체적인 능력이 약한 그들은 초능력에 쓸려버리기 일쑤! 하지만 악착같이 ‘약한’ 힐러와 딜러를 노리며 혼선을 유도했다.
적당히 공방의 균형이 맞았다고 할까.
그 사이에….
스르륵-.
벽을 부드럽게 삼키며 일직선으로 이동하는 괴수.
공극의 마녀가 빌려준 사역마 ‘어비스트’는 8종이란 말에 어울리는 신위를 보여줬다.
사람이고 사물이고 할 것 없이 통째로 사차원 갈퀴에 집어삼킨 어비스트는, 너무나 손쉽게 슈퍼월드의 차원이동문 앞까지 당도했다.
밖에서 벌어지는 전투는 모두 이 순간을 위해서!
“침입자다!”
“라이온 몬스터(lion monster)가 왜 여기에?!”
“경고등이 작동하지 않습니다!”
어비스트 단독으로 침입한 게 아니다.
함께 온 엘퍼러는 마법으로 전파와 통신을 차단하고, 신속하게 경비원들을 제거했다. 당연히 사정 봐주지 않았다.
남녀노소(男女老少) 그리고 미추(美醜)를 가리지 않고, 앞을 가로막고 적대하는 모든 초능력자와 군인을 제거했다.
“아…?”
“말도 안-!”
차원이동문을 지키는 초능력자들을 허투루 배치하진 않았다. 하지만 지금, 그들이 아무것도 못 해보고 허망하게 죽어가고 있었다.
엘퍼러의 움직임은 군더더기가 없었다.
힐러, 딜러 순으로 빠르게 목을 쳐서 죽인 후에 튼튼한 탱커를 쓰러트리는 것이다.
표적으로 삼기 쉬운 ‘몬스터’하고는 달랐다.
같은 인간인 그는 영민하고 작았으며 민첩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초능력이 통하지 않았다.
“내 슬로우(slow)가 먹히질 않아!”
“바인드(bind)도 안 돼!”
그런 절망적인 상황은 힐러가 더했다.
부상자를 치료하는 게 그들의 역할.
하지만,
“죽었어….”
“살릴 틈을 안 줘!”
“탱커마저 한 방이라니?!”
엘퍼러가 휘두르는 에쏘드 앞에 그 무엇도 남아나질 않았다.
그 자체만으로도 ‘절삭력 보정’을 받고 있는 에쏘드를 강력한 마법으로 강화했으니…. 안 잘릴 수 없었다.
어디 마법뿐이랴?
힘은 운동에 비례하는 법.
뱀페스트와 가더발트로 2번 강화된 엘퍼러의 괴력은 이 ‘마법검’에 더한 상승효과를 부르며 답도 없게 변했다.
그것이 지금의 엘퍼러.
전설의 마신(魔神)쯤 되지 않고서는 방어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순조롭군.’
어비스트가 차원이동문을 삼키는 것까지 확인한 엘퍼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로 지구와 슈퍼월드를 잇는 통로는 막혔다.
더는 올 지원도 없었지만, 초능력자들의 퇴로를 막았다는 게 중요하다. 그 포석으로 밖에서는 말도 안 되는 연기를 하고 있지 않았던가?
이젠 그럴 필요가 없다.
엘퍼러는 곧바로 공간이동마법을 사용했다.
“자! 가서 얌전히 먹은 걸 뱉어내.”
“그르르르….”
“...내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들면 빨리 끝내고 네 주인에게 돌아가면 돼.”
어비스트는 순순히 엘퍼러의 공간이동마법에 몸을 실었다.
그 목적지는 부산.
한유일의 수족(手足) 겸 혈족(血族)이라고 할 수 있는 ‘신생 뱀페스트’로 이루어진 친위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어디 그뿐이랴?
용신 아쿠버스와 그 ‘여신의 추종자(?)’로 활약 중인 정비반 엘리트들이, 8종 괴수 어비스트가 꺼낸 차원이동문을 빠르게 교정했다.
“빠끔. 하등생물들이라도 이 정도는 할 수 있겠지?”
“물론입니다. 저희에게 맡겨주십시오! 여신님!”
차원이동문은 빠르게 재정비됐다.
파괴되더라도 폭발하지 않도록 억제하면서 귀환석과 계속 연동되도록 말이다. 그리하여 멋모르고 귀환석을 쓴 자들을 하나씩 낚기 위해.
물론, 계속 써먹을 순 없다.
차원이동문이 어딘가로 납치(?)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귀환석을 쓸 바보는 없을 것이다. 아니, 탈환하기 위해 사용할지도 모른다.
그걸 노리고 대기 중인 친위대이지만.
여기까지 확인을 마친 무일은 한유일에게 말했다.
‘준비가 끝났다.’
‘오오! 이제 제대로 한 판 붙어도 되는 거지?’
‘그래.’
‘이 순간을 기다렸다!’
울트라몬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그 이변이 너무나 순식간에 찾아오는 바람에 대응이 늦었다. 그 희생자는 당연하게도 ‘근접 딜러’라고 불리는 비운의 존재들.
꼬리치기에 무더기로 쓸려버렸다!
잽싸게 피한 자들도 더러 있었지만, 울트라몬이 한 번 몸을 흔들자마자 그 미미한 희망도 끝나버렸다.
온몸에 달린 뿔들이 가차 없이 후려치고 찔러대며 연약한 인간의 육신을 분쇄했다. 힐러들이 어떻게 해볼 새도 없이 전원 사망!
“안 돼!”
“놈이 이상행동을 보인다!”
“패턴이 바뀐 건가?!”
단순히 그런 문제가 아님을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계속 탱커만 공격하던 울트라몬이 갑자기 돌진, 이어서 힐러와 원거리 딜러가 모여있는 곳을 팔로 후려쳤다.
그걸로 모든 진영이 무너지고 말았다.
심지어 울트라몬은 평범한 몬스터하고 목적마저 달랐다. 단순한 살육이 아니라,
“꺄아!!!”“놔! 이거 놔! 살려줘!”
한유일은 계속 눈여겨봤던 ‘미소녀’들을 하나하나 납치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붙잡힌 초능력자 여인들은 미리 손발을 맞춘 것처럼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는 졸병들이 꽁꽁 묶어서 어딘가로 운반했다.
그 일련의 행동은 아무리 봐도 ‘몬스터’가 아니었다.
잘 훈련된 납치범 같다고 할까?
번식을 위해 ‘인간 여성’을 납치하는 작업에 도가 튼 울프남들의 행동은 기민했다. 아리따운 초능력자 여인들이 ‘어?’하는 사이에 이미 상황 종결.
손발이 묶이고 입에 재갈이 물린다.
심지어 끔찍한 괴수의 손으로 여인들의 엉덩이와 젖가슴을 만진다. 성추행 같기도 했지만, 아이를 얼마나 잘 낳고 기를지 품평하는 것 같았다.
이 밖에도 기타 등등….
몬스터의 행동들은 무언가 달랐다.
‘마치, 마치 인간 같잖아!’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생김새와 행동이 따로 논다. 하지만 그런 거에 일일이 경악하기에는 상황이 너무나 혼잡하고 끔찍했다.
심지어 임시본부마저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통신이 마비됐다.
이미 통제는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혼비백산한 딜러들이 초능력을 사방으로 난발하며 아군이고 적군이고 할 것 없이 휩쓸리고 있었다.
여성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힐러는 눈앞에 부상자를 놔두고 도망치기 바빴다. 곱게 죽는다면 모르겠지만 납치?
‘싫어! 안 돼!’
‘그럴 순 없어!’
말은 안 했지만, 바로 며칠 전에 불미스러운 납치사건이 있었다.
범인은 끝까지 붙잡히지 않았지만, 감이 좋은 여자들은 은연중에 느끼고 있었다.
몬스터의 소행임을!
탈출했다는 여인들의 말만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었다. 특히, 낙태한 흔적들은 도저히 인간의 아이를 낳던 중이 아니었다.
그런 일이 자신들에게 벌어진다면?
몬스터의 흉측한 생식기가 자신의 몸속에 들어온다는 걸 상상한 순간, 그녀들의 이성은 마비되고 오직 도주만이 남는다.
“...끝나가는군.”
상황실에 이어 사령탑까지 홀로 점령한 엘퍼러가 중얼거렸다.
슈퍼월드의 전력이 오합지졸인 건 아니지만, 일사불란하게 통제해주는 사람이 없으니 이 모양, 이 꼴이다.
이 상황은 공격대 간부들도 예외 없이 혼란에 빠져 헤어나오질 못하고 있었다.
처음 겪는 상황이었으니까!
연륜을 따질 수 없었다. 초짜인 건 모두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튼튼한 탱커를 무시하고 연약한 딜러와 힐러만 집중공격 하는 파상공세에 어떻게 대응해야 좋을지 몰라서 허둥댔다.
“이놈들! 나를 보란 말이다!”
“미친! 도발이 안 먹혀!”
먹히긴 한다. 다만, 무시할 뿐이다.
괴수들이 멍청하다면 탱커들의 도발도 끌렸을 테지만, 지구의 괴수들은 인내심이 대단히 높은 편이다. 먹잇감을 몇 달씩 기다릴 정도니까.
그런 괴수들이 초능력으로 만든 도발에 걸려들 리 없었다.
깡그리 무시하고 ‘딜러 사냥’에 열을 올렸다. 그런 후에 후식처럼 느긋하게 ‘힐러’를 정리하는 식으로 흘러갔다.
끝까지 버티고 남은 탱커는?
힐끔 한 번 본 후에 미련없이 포기했다!
공격해봐야 통할 상대가 아니란 걸 아는 까닭이다. 안 그래도 튼튼한 탱커는 ‘회귀본능’ 덕분에 힐러 없이 자생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공격력이 낮은 탱커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얻어맞는 게 특기인 그들은 그저 멀뚱멀뚱 지켜보며 속을 태울 뿐.
그렇게 상황이 끝나가는가 싶었다.
“아군을 구해라! 공격해라!”
“역시! 대장님의 말씀이 옳았습니다!”
“놈들의 숨겨진 한 수가 저거였군요.”
슈퍼월드 초능력자 무리에 섞여 함께 쓸려버린 게 아니었단 말인가?
바로 ‘서세진’이었다.
슈퍼월드 ‘최고의 탱커’로 불리는 남자. 반사(反射)라는 사기적인 초능력으로 방어뿐 아니라 공격도 뛰어난 무결점 탱커!
심지어 혼자가 아니었다.
저 많은 인원이 다 어디에 숨어있었던 걸까?
공에 욕심을 낸 다른 공격대에 선심 쓰듯 양보하고 뒤로 물러나 있던 ‘최강의 공격대’가 마침내 전장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아임 이레귤러(I'm Irregular)』
그 이름처럼 정말 특수한 초능력자들로만 구성된 공격대.
하지만 그 특별함은 절대 흉이 아니다. 그 특별함만큼 독보적인 전투력은 1위와 2위를 단순한 숫자로 평가할 수 없는 격차를 불러왔다.
그들이 ‘무언가’ 했다.
그 ‘무언가’에 파죽지세로 몰아붙이던 울트라몬과 졸개들이 서서히 밀려나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기습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강했다.
“끔찍하네요.”
공격대장 ‘서세진’ 옆에 선 미녀의 입술에서 고운 미성이 노랫말처럼 잔잔하게, 수많은 주검이 널린 전장에 울려 퍼졌다.
최고의 탱커에게 이보다 어울리는 여인이 또 있을까?
한때는 ‘아군도 위협하는 결점투성이’라는 최악의 평가를 받았던 때도 있었지만, 남편을 잘 만나면서 ‘최강의 딜러’로 재조명된 딜러.
『사냥의 여신, 성예린』
별명도 그래서 아르테미스(그리스 신화의 여신).
그녀의 초능력인 ‘공간붕괴’는 파괴력이 막강한 걸로 모자라서 광역이었다. 하지만 그 광역이 아군에게도 미치는 까닭에 평소에는 쓸 수 없다.
하지만 여기에 ‘공격반사’ 초능력을 가진 서세진이 가세하면?
아군에게 향한 ‘공간붕괴’을 적군에게 돌려 2배의 파괴력으로 승화된다!
...이건 하나의 예일 뿐.
슈퍼월드의 최고전력이자 실세라고 할 수 있는 ‘아임 이레귤러’에는 이런 사기적인 조합이 많았다.
그 힘은 무시 못 할 수준이었다.
비틀!
절대로 쓰러지지 않을 것 같았던 울트라몬이 휘청거렸다.
그 많던 졸개들은 단숨에 소멸하고 없었다.
사냥과 싸움의 정석이긴 하지만, 어떻게 보면 치사하다고 할 수 있는 ‘딜러와 힐러 먼저 공격’하는 수법도 이들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멀리서 관찰하며 대비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저 여자의 초능력은 완전히 사기다!’
부대장 ‘윤미라’의 초능력은 플라스마 생성.
그 플라스마가 자칫 아군을 몰살시킬 수도 있지만, 여기서도 서세진의 ‘공격반사’가 빛을 발하며 훌륭한 보호막으로 진화시켰다.
저걸 ‘절대 영역’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접근하는 모든 걸 파괴하는 보호막…. 이쯤 되면 단순 딜러라고 말하기도 힘들었다. 그리고 여기에 성예린의 ‘공간붕괴’가 가세하며 더욱 탄탄해졌다.
‘...내가 상대하고 싶지만, 아직 할 일이 남았으니.’
엘퍼러는 슬슬 때가 됐음을 느꼈다.
예상보다 슈퍼월드의 반격이 거세긴 했지만, 목포에서 이 모든 전황을 지켜보고 있는 ‘최강의 계약자’가 원하던 그림이기도 했다.
그 계약자와 찰떡궁합인 수호자가 움직일 기회가 도래했다!
저쪽이 ‘최강’이라면 이쪽도 ‘최강’.
울트라몬이라는 족보도 없는 급조된 괴수로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지만, 이 ‘둘’이라면 다를 수밖에 없다.
몬스터월드, 본토에서도 악명을 떨쳤던 두 생명체.
“일식(日蝕)인가…?”
승기를 잡았다고 확신하던 서세진은 맥없는 자문을 했다.
갑자기 어두워진 하늘.
하지만 태양을 가린 건 ‘진짜 달(月)’이 아니었다.
< [59화-4] 관광객은 아닙니다만. > 끝
ⓒ 파르나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