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수처럼-247화 (247/287)

< [59화-3] 관광객은 아닙니다만. >

이건 말이 안 된다.

아무리 뛰어난 마녀라 할지라도 사역마로 이만한 야수(野獸)를 둘 수 없다. 그건 전설적인 마녀라 할지라도 예외가 아니다.

물론, 선지혜의 경우는 ‘사역’이 아닌 ‘계약’이란 점은 보아서 알고 있다. 하지만 그 계약이란 섭리는 마녀도 한다.

상대적으로 강력한 야수는 주종관계 대신 대등한 ‘계약’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사역은커녕 계약조차 안 되는 야수도 있는 법이다.

“글쎄…? 아빠는 외계인? 그런 건 아닐 텐데.”

부친의 생전 얼굴을 모르고 자란 선지혜는 고개를 갸웃했다.

모친과 와이츠, 뱀페스트 왕의 암투에 휘말린 희생자. 선지혜가 아는 부친은 그 정도의 남자였고, 그 이상의 감정은 없다.

족보에 외계인이 섞였으면 또 어떠하리? 아니면 또 어떻고?

선지혜는 문팽이와 배틀씹의 계약자란 사실은 변함없다.

‘해신(海神)에 신수(神獸)까지….’

하지만 그녀를 본 쏠비얀의 심사는 복잡했다!

지구인이 저래도 되는 걸까?

차원이동문을 열고 저 두 야수만 움직여도 아르테르 행성이 쑥대밭으로 변하는 건 그야말로 시간문제다.

해상도시와 해안도시는 ‘해신’의 앞길을 막지 못한다. 쓸어버리고자 마음먹으면 피난 가던가 중력장에 휩쓸려 죽는 수밖에.

내륙이라고 안전한 건 아니다. 오르페온 마도제국의 건국신화에 등장하는 전설적인 ‘신수’는 대륙의 그 어떤 곳도 정밀폭격할 수 있다.

“멍청한 원로들을 설득한 건수를 얻었네요.”

전쟁이라니?

바보 같은 생각이다.

괜찮은 기사를 골라 먹는 재미가 있던 지구는 다 옛말이었다. 선지혜가 마음만 먹으면 아르테르 행성은 끝장이다.

견원지간(犬猿之間)이나 앙숙까지는 아니지만, 절대로 친하거나 협력할 사이는 아닌 해신과 신수가 손을 잡은 시점에 이건 끝난 얘기다.

‘근접 최강’과 ‘원거리 최강’의 조합!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수가 생기지 않는다.

‘여기에 저 남자….’

콩닥콩닥! 두근두근!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지 알 수 없는 소리가 계속 심장에서 요동쳤다.

몸이 고장 난 것 같아서 걱정이지만, 싫지 않은 게 또 묘하다.

“과연…. 어마어마한 숫자로군요.”

쏠비얀은 수많은 시선이 자신에게 꽂힌 걸 느꼈다.

다름 아닌 마녀니까!

복종시키는 ‘사역마법’으로 자신들을 속박할 수 있는 존재를 강력히 경계하는 것이다. 거기에 다른 이유도 있는 것 같지만.

‘저를 불편하게 생각하네요.’

엘퍼러에게 접근하려는 자신을 좋지 않게 보고 있다. 좀 더 노골적으로 ‘너는 딴 수컷 알아봐!’라는 시선을 보내는 암컷들도 있었다.

지구에서 인간의 형태를 한 야수들.

그것도 아름다운 여인의 형태를 하고 있다.

“차원이동문을 옮긴다는 부분에 대해 좀 더 듣고 싶습니다.”

한무일이 두 절세가인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묘한 기류가 흐르는 이 분위기를 단번에 깨버린다. 여기서 사무적인 얘기를 담담히 꺼낼 수 있는 것도 어떤 의미에서 참 대단하다고 할 수 있으리라.

쏠비얀은 여기에 잽싸게 호응했다.

포위망을 빠져나갈 구명줄이나 다름없었으니까.

“말 그대로예요. 100년 전부터 갑작스레 출현한 초능력자들. 저희가 ‘세컨드’라고 부르는 인류행성에서 터진 이변이었지요.”

몬스터월드가 주시하고 있던 차원은 지구만이 아니다.

쏠비얀이 ‘세컨드’라고 칭한 ‘슈퍼월드’도 여기에 해당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마녀와 사역마에 대항할 수 있는 초능력자들이 등장하면서 더는 ‘뛰어난 기사’를 공수하기 힘들어졌다는 정도.

최근에 그 세를 키우면서 논란이 되고 있단다.

“용케도 여태까지 가만 놔뒀군요.”

수많은 식민지를 건설한 슈퍼월드의 세는 무시 못 할 수준이다.

모행성(母行星)은 작지만, 식민지 행성까지 포함하면 몬스터월드의 아르테르 행성 절반 크기는 할 것이다.

더구나 무분별한 착취!

지구만큼은 아니지만, 미개발지역이 많은 몬스터월드도 소모전으로 가면 슈퍼월드에 밀릴 가능성이 있다.

“남자들의 반항이 거센 바람에….”

쏠비얀은 한숨을 내쉬었다.

마법을 못 쓰는 게 천추의 한이 된 몬스터월드 남자들에게, 이계에 등장한 초능력은 낭보라고 할 수 있었다.

마녀를 주축으로 한 여자들의 견제는 필연!

하지만 ‘남자에게 질 걸 두려워하는 여자들의 발버둥’이란 식의 비난이 쏟아지면서 ‘위협적인 초능력자 응징!’은 수십 년째 미루어졌다.

그리고 현재.

더는 무턱대고 공격할 수 없을 만큼 ‘세컨드’는 강해졌다.

“의견이 일치할 것처럼 보이는데, 제 생각이 틀렸습니까?”

슈퍼월드를 타도하길 원한다는 점에서.

하지만 쏠비얀은 고개를 저었다.

“...힘들 거예요.”

아르테르 행성은 그 어느 차원의 인류하고도 타협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우월함을 잘 아니까!

남자의 괴력, 여자의 마법.

이런 선천적인 능력을 보유한 자신들이 변변찮은 인간과 똑같은 취급이란 건 있을 수 없다. 원숭이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없는 것처럼.

그건, 좀 ‘특출난 원숭이’가 등장했더라도 마찬가지다.

개인이 종족 전체를 대변할 순 없는 것이다.

당장, 쏠비얀도 다른 지구인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있지 않은가?

“그럼…. 당신, 개인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이곳에 제가 있다는 것만으로 대답은 충분하다고 보는데요. 참 짓궂으시네요.”

“흠….”

얘기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슈퍼월드의 차원이동문을 어떻게 옮기느냐는 것으로.

그 부분에 대해선 ‘공극의 마녀’ 쏠비얀이 명쾌한 해답을 내놓았다.

“저는 이제 가야 해요. 마신이 언제 준동할지 모르기에. 하지만 그 대신, 이 아이를 두고 갈게요.”

공간이 비틀리며 열리더니 거대한 사자 한 마리가 느릿느릿 걸어 나왔다.

머리 주변으로는 시커먼 갈퀴가 물결처럼 흔들거렸다.

하지만 저건 평범한 사자 갈퀴가 아니다. 싸움이 시작되면 저 ‘털 뭉치’처럼 보이는 ‘시커먼 구멍’이 확장되며 거대한 흡입구로 변한다.

그리고 달린다.

전면에 존재하는 무엇이든 그물망처럼 훑으며 지나가고, 그 뒤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그래서 ‘지우개’라고도 불리는 괴수.

【어비스트 / 8종 보통】

공간을 지배하는 마녀에게 너무나 잘 어울리는 사역마.

지구인들에게 악몽을 선사해줬던 8종 괴수다.

그 ‘어비스트’는 이집트 파라오의 수호자 ‘이즈헬’에게 걸려 토벌됐지만, 아프리카의 무수히 많은 사람과 사물을 지우개처럼 지워버린 흔적과 상처는 여전히 남아있다.

지금은 거의 남아있지 않는 사자 괴수.

여전히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같은 남반구에서 종종 목격되는 모양이지만, 건들지만 않으면 재앙을 일으키진 않는다.

아무튼, 그 어비스트가 이 자리에 등장했다.

“온순한 아이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르르….”

엘퍼러를 노려보는 어비스트.

인간형도 아닌 주제에 수컷이랍시고 눈에 힘을 팍 준다.

주인(主人) 옆에 들러붙은 인간 수컷이 마음에 안 드는 게 분명했다. 괴수가 아닌 야수로 해석하면 애완동물의 질투쯤?

뭐가 됐든 그리 협조적으로 나올 것 같진 않아 보였다.

“그럼 이만 실례할게요. 무운을 빌어요, 엘퍼러 씨.”

위험한 8종 괴수를 애완동물 맡기듯 놓고 사라진 마녀.

작별인사를 하기도 전에 순식간에 사라진 쏠비얀의 빈자리를 살짝 어이없다는 얼굴로 본 엘퍼러는 시선을 살짝 옆으로 틀었다.

“크어엉!”

주인이 사라지자마자 본색을 드러내듯 포효하는 어비스트.

하지만 이 자리에는 만만치 않은 괴수가 많았다.

너만 8종인 건 아니거든?

엘퍼러가 나서기도 전에 도끼토끼와 쉬임프, 오니오프가 한 방씩 날렸다! 여기에 아쿠버스가 결정타처럼 뇌전으로 지져버리니 그걸로 반항은 끝.

꿈틀!

다행히 죽지 않은 어비스트는 회귀본능으로 빠르게 회복됐다. 그리고 주인 ‘쏠비얀’의 설명처럼 정말 온순해졌다.

하지만 다 잘 풀린 건 아니다.

통짜 강철로 지은 시청사의 30%가 흔적도 없이 날아갔으니까!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엘퍼러가 서둘러 중재하지 않았다면 시청사만으로 끝나지 않았으리라.

“충성해주는 건 고마운데….”

집을 날려 먹은 주제에 칭찬해달라는 표정으로 쳐다보지 말라고!

마음만은 그랬으나 그녀들이 해달라는 대로 해줬다.

그럴 리는 없다고 믿고 싶지만, 추종자 중에서 ‘사춘기 소녀’처럼 반항기가 와버리면 도시 한두 개는 순식간에 날아가니까.

그때는 직접 ‘토벌’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제법 오랫동안 정든 그녀들을 죽이고 싶지 않다는 게 엘퍼러의 솔직한 심정이다. 그러니 웬만하면 삐뚤어지지 않도록 잘 달래는 수밖에.

『사랑에 빠지면 바보가 된다.』

그건 괴수에게도 통용되는 것 같았다.

아무튼, 시청사가 파괴되는 예기치 못한 불상사로 인해 조금 미뤄지긴 했지만, 어비스트를 이끌고 작전에 돌입할 수 있었다.

목적은 두말할 것 없이 ‘차원이동문 운반’이다.

파괴가 아닌 운반!

어비스트가 지정한 장소로 ‘지워진 공간’이 이동한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그 지정된 장소는 다름 아닌 부산.

무턱대고 ‘귀환석’을 사용한 자들은 그곳에서 ‘뱀페스트 군단’을 만나게 되리라!

‘친위대는 정신지배도 안 통하지.’

현재, 엘퍼러가 가장 경계하는 초능력은 정신지배다.

나머지는 힘으로 밀어버릴 수 있지만, 이런 특수한 능력들은 대단히 성가시고 위협적이다. 물론, 엘퍼러에게는 일절 통하지 않는 잡기에 지나지 않지만….

『계약자』

특히, 선지혜나 선유나, 박선영 같은 9종, 8종 계약자가 볼모처럼 지배당하면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해진다.

엘퍼러가 정신지배를 풀어주면 그만이란 식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 사달 난다. 그 짧은 사이에 ‘폭주’할 고위수호자가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부산이다.

계약자 대신 뱀페스트가 보호하는 도시.

처음에는 ‘바다 깊은 곳’으로 보내 수장시킨다는 계획을 세워봤었지만, 차원이동문이 섬세한 기계라서 힘들다는 결론을 내렸다.

수압을 무슨 수로 견뎌?

그 밖에 ‘무인도’나 ‘고산지대’ 혹은 ‘남극’ 등의 열악한 환경도 비슷한 이유로 배제됐다.

‘어쩔 수 없지.’

이번 계획과 목적은, 차원이동문을 안전하게 보호하면서 슈퍼월드의 초능력자들을 섬멸 내지는 제압하는 거니까.

까다롭고 번거롭긴 하지만, 지구를 홀라당 날려 먹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다.

준비는?

매우 순조롭게 진행됐다.

초능력자들의 정신지배 때문에 괴수대응연맹도 완전히 신뢰할 수 없는 상황. 그래서 엘퍼러는 독단적으로, 즉흥적으로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울트라몬을 보내.”

“네! 용사님!”

“준비가 아직 미흡…. 아니에요, 용사님. 이걸로도 충분할 거예요…….”

어비스트가 별 어려움 없이 침투할 수 있도록 시선을 끌 미끼.

몬스터월드에서 내내 집에만 틀어박혀 있던 한세리와 한유나도 놀고만 있던 건 아니었다.

그녀들이 창조한 ‘울트라몬’이 재탄생했다.

이름하여,

『울트라몬 Z』

지난 전투의 경험을 토대로 더욱 강력하고 튼튼하게 보완됐다!

기회와 시간만 주어진다면 ‘울트라몬 X'도 선보이겠다는데….

‘웬만하면 피하고 싶군!’

아무튼, 그녀들이 보완한 울트라몬의 특징은 별거 아니다. 외피가 단단해지고 이번보다 훨씬 기괴한 외형으로 변모한 건 부차적이다.

이번에 가장 큰 특징은,

<내가 이런 몰골이라니….>

<그야 자진해서 지원하긴 했지만 영….>

<석방을 위해 그 무엇을 못하리!>

졸개가 추가됐다.

그것도 한둘이 아니라 많이!

영혼석에서 하루하루 백수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영혼들의 협찬을 받았다. 싫다는 놈들도 분명 있었지만, 세상을 그리워한 자들도 있었다.

비록, 완전한 자유가 아닌 간접체험, 원격조종이었지만, 이것도 감지덕지하다. 다시 ‘부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기도 했고.

그래서 성황리에 ‘울트라몬 졸개’ 군단이 완성됐다.

‘무일. 또 바보처럼 싸워야 하는 거냐?’

‘계속은 아니야.’

‘시간을 끌라는 거지? 그 차원이동문인지 뭔지를 옮길 때까지.’

‘맞아.’

‘그게 끝나면?’

한유일이 울트라몬을 조종하며 잔뜩 기대를 섞어 물었다.

그도 역시나 괴수!

지고는 못 사는 성미였다.

‘그 뒤는 네 마음대로 해.’

‘탱커만 때려야 한다는 규칙 같은 거 없지? 강력한 공격을 미리 예고할 필요도 없고?’

‘물론!’

< [59화-3] 관광객은 아닙니다만. > 끝

ⓒ 파르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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