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수처럼-246화 (246/287)

< [59화-2] 관광객은 아닙니다만. >

찜찜한 마음으로 귀환했다.

지구의 수많은 국가와 도시 상태로 말할 것 같으면….

많이 활기차졌다!

가상현실세계에 온종일 처박혀 있던 과거와 달리 현실에 충실해진 덕분이다. 그게 자의가 아닌 타의, 강제라서 문제지만.

슈퍼월드와 몬스터월드의 추측과 달리, 지구는 약해지지 않았다. 생활과 복지가 불편해지긴 했어도 전력(戰力) 면에서는 상승했다고 할까!

“늦었네~.”

“흠. 일이 좀 있어서.”

역시나!

돌아오자마자 선지혜의 추궁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녀는 대표로 말한 것뿐이고, 사방에서 힐끔힐끔 쳐다보는 여자들의 시선이 다 공통된 마음 같았다.

여기에 결정타가 날아들었다.

“킁킁. 몸에서 여자 냄새가 나는걸.”

“...마녀를 만났으니까.”

“예뻤어?”

지구나 이계나 여자들의 마음은 다 똑같은 걸까?

덤으로, 중요한 얘기를 이상한 방향으로 끌고 가는 놀라운 재주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엘퍼러도 만만치 않았다.

“마녀는 마녀더군.”

매부리코 할망구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그냥 못생긴 마녀(魔女)라니?

그 어느 전래동화에도 없는 ‘설정’이다.

이처럼….

몬스터월드의 마녀들은 ‘마녀답게 생겼다.’는 걸로, 무일은 너무나 당연한 걸 설명하듯 막힘없이 대답했다.

거기서 사심을 느끼긴 힘들었다.

이렇다 보니, 추궁을 떠나 몰아붙이는 재미가 없다고 할까!

“늦지 않게 왔어, 선배.”

흥미가 사라진 선지혜가 지구의 상황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했다.

모두의 예상대로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 전진기지를 세운 슈퍼월드 공격대. 하지만 그들의 대응도 꽤 영리했다.

아니, 초능력이 그만큼 무시무시했다.

『정신지배!』

세상에 뭐 이런 사기적인 능력이 다 있단 말인가?

뱀페스트를 끼고 있는 엘퍼러가 할 생각은 아니지만, 이 초능력은 조건도 간단했다. 그냥 마주치면 끝!

초능력자와 괴수 등은 여기에 저항할 수 있는 모양이지만, 초능력이나 마법 같은 특수한 능력이 일절 없는 지구인에게는 절대적이었다.

그리고 이 하나에 오스트레일리아 수도(首都) 시드니가 점령됐다!

이 또한 최근에 밝혀진 사실.

유키나 미나미의 판타이탄 ‘엑시리얼 온드미온’과 소식이 끊기면서 정보가 어두워진 영향이었다.

“다 넘어온 건가.”

확신할 순 없지만, 딱 봐도 사기적인 ‘정신지배’ 같은 초능력을 구사하는 자들이 넘어왔다면 상당수, 혹은 전부라고 봐도 무방하리라.

그 고급인력이 혼자 왔겠는가?

수행원은 물론이고 호위도 많이 붙었을 것이다.

“응. 아마도.”

“그렇다면 망설일 이유가 없지.”

“선배! 이제 정말 싸우는 거야?”

“...그래.”

회귀본능이 대단히 껄끄러운 건 사실이지만, 튼튼한 ‘탱커’만 아니면 상대 못 할 정도로 어려운 강적인 것도 아니다.

그 ‘탱커’도, 뱀페스트 이상의 죽지 않는 바퀴벌레 같은 생명력 빼면 별거 없다. 대신 얻어맞는 ‘고기 방패’일 뿐.

타협의 여지도 없다.

슈퍼월드의 역사를 훑어보면 알 수 있다.

침략과 정복!

초능력이 생긴 100년 사이에 정말 온갖 만행을 다 저지르고 다녔다.

‘다른 차원을 위해서라도 막아야지.’

힘에는 책임이 따른다…. 같은 입바른 소리는 안 한다.

하지만 힘이 있다고 해서 타인을 괴롭히고 불행하게 해도 되는 건 아니다. 약육강식은 강자의 변명과 명분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도 짐승이다?

이 말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다.

인간도 그 여느 동물과 마찬가지로 먹고 싸고 자는 등의 일련의 생식활동을 다 한다.

하지만….

『인간은 인간다워야 한다.』

생판 남을 위해 희생하는 건 인간만이 할 수 있다.

이 밖에도 짐승과 다른 인간만의 가치와 철학이 있다. 똑똑한 생명체라는 건 부수적인 특징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슈퍼월드는 도를 넘어섰다.

초능력 개발이란 명목으로 저지른 인체실험도 적지 않으며, 식민지에서 착취한 자원으로 온갖 만행을 저지르고 다녔다!

그 또한 인간다운 행동이라고 한다면 할 말 없지만….

엘퍼러는 그런 ‘인류’를 위해 헌신하는 게 아니다.

“차원이동부터 막는 게 우선이겠지.”

퇴로를 막아버리면 더욱 치열하게 덤벼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후퇴해서 대비할 시간과 기회를 주는 것보다는 낫다.

하지만 이 부분은 ‘엘퍼러’라고 해도 쉽지 않았다.

일명, 차원이동문이라고 불리는 장치는 슈퍼월드에서 심혈을 기울여 관리하는 까닭이다. 경비도 삼엄하고 검문도 철저한 편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난해한 점은 ‘무작정 파괴’하면 안 되다는 점이다.

“차원과 공간이 일그러집니다, 주인님.”

이걸 가르쳐준 건, 한유일이 공식지정한 ‘인간 노예 1호’ 장미래.

과부가 된 엘프를 제외하면 첫 노예가 맞을 것이다.

거기다 외계인. 슈퍼월드에서 힐러 서열 7위였던 입지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디지털 정보만으로 알 수 없는 내용을 많이 알고 있었다.

게다가 그녀만이 아니다.

이미, 7종 괴수 카멜레혼에게 납치되었던 여인들이 무사히 슈퍼월드 사무직으로 들어가서 다양한 고급정보를 보내주고 있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초능력을 상실한 그녀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곤란한걸.”

지구에서 차원이동문이 파괴되면 심각한 재앙이 초래한다.

장치 주변만 끝장나는 게 아니다. 한유일과 한창 싸우던 서세진이 사용한 ‘공간이동’은 이 기계와 연동된 도구를 사용한 것이다.

당시에 이상하긴 했었다.

대단히 사기적인 ‘반사’라는 초능력을 가진 서세진이 공간이동도 했다는 점이. 초능력자들은 한 가지만 특화된다는 점을 정면으로 깬 일이었다.

그런데 역시나!

도구를 사용한 것이었다.

일명,

『귀환석(歸還石)』

중급 이상의 마정석을 가공해서 만든 탈출 혹은 빠른 원조를 목적으로 제작된 보석이다.

단점은 일회성 소모품이라는 것!

하지만 그 어떤 위급한 상황에 빠졌든 사용자를 지정한 장소로 단번에 공간이동 시켜준다는 장점은 그 모든 걸 상쇄하고도 남는다.

뛰어난 초능력자의 가치를 어찌 돌멩이와 비교할 수 있겠는가?

아무튼, 이 귀환석은 차원이동문과 연동되어 있다.

‘차원이동문이 파괴되면 여기와 연결된 귀환석들도 연쇄폭발을 일으킨다는 건데….’

당연히 소지자들도 위험할 수 있다.

민간인이라면….

초능력자들은 그 최악의 사태에 대비한 장비를 항시 착용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귀환석이 불발로 끝나는 건 아니다.

소지자들은 무사하더라도 그 일대의 공간은 일그러진다.

이게 위험하다.

한둘이면 모르겠지만, 이렇게 대규모로 침공으로 와서 대규모로 보급된 귀환석이 차원이동문과 함께 폭발하면?

“30년 전쯤에 선례가 있었습니다, 주인님.”

현재는 식민지지만, 당시에는 나름대로 강력한 인류가 지배하던 행성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인류의 맹공으로 차원이동문이 파괴된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그 결과는?

대륙 하나가 지각변동으로 소실됐다.

면적으로 따지면 아프리카나 아메리카 대륙쯤 할 것이다. 여기에 부수적으로 기상이변이 끊이지 않고 현재까지 골머리를 썩히고 있단다.

그런 일이 지구에 터져선 안 된다.

전혀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고.

“차원이동문의 전원을 내린단 말이지….”

파괴하는 게 아니라 정지시키는 거라면 아무런 문제 없이 차원이동과 더불어 공간이동마저 차단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게 최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공격할 수 있다.

쓰러트리는 거야 쉽지만….

크게 당한 초능력자들이 죽지 않고 귀환석으로 탈출해서 슈퍼월드로 돌아가 버리면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다.

그 뒤에 남은 방법은?

『원정(遠征)』

몬스터월드로 출장 가듯이 슈퍼월드도 가야 한다.

하지만 몬스터월드처럼 별 피해 없이 돌아다니는 건 100번 양보하더라도 무리. 우선, 엘퍼러가 차원을 넘을 수 없다.

괜히 갔다가 ‘다윙 밀리언’처럼 바보가 돼버릴 수 있으니까!

이 부분을 해결할 방법을 찾기 전까지는 슈퍼월드로, 단독으로 쳐들어가는 건 무리다.

그러면 자연히 지구인에게 맡겨야 하는데….

‘된통 깨지겠지.’

순수한 사냥꾼과 군대만으로 초능력자들과 싸우라고?

이건 자살하러 가는 거나 다름없다. 회귀본능과 [예감]이 있더라도 활활 타오르는 불덩이와 닿기만 해도 꽁꽁 어는 냉기로부터 도망칠 방법은 없다.

거기에 탱커와 힐러는?

괴수의 공격도 맨몸으로 버티는 탱커. 그리고 죽지만 않으면 원상복구 시키는 힐러의 조합은 악몽이라고 해도 좋다.

그러니 유리한 고지나 다름없는 지구에서 ‘한 번’의 싸움으로 끝을 봐야 한다.

상대가 방심하고 있는 이때에.

“조용히 기계만 정지시킬 방법이라….”

달리 생각나는 방법이 없을 때였다.

바로 옆에서 파랑새 같은 미성이 들렸다.

“꼭 정지시킬 필요는 없지 않나요? 정말 황당무계한 장소로 옮겨놔도 상관없을 것 같은데…. 가령…. 심해(深海)나 우주 같은.”

“흐음…. 나쁘지 않군요. 쏠비얀 양…. 음? 쏠비얀 양이라고?!”

몬스터월드에 있어야 할 마녀가 어째서 이곳에?!

놀란 건 한무일뿐만이 아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녹아든 흑발의 절세가인 등장에 여인들이 경계의 눈초리를 보냈다. 이것도 나름 일촉즉발의 상황!

그 어떤 미녀도 여유롭게 상대하던 ‘하렘의 왕’이 눈을 못 뗀 미모.

『마녀답게 생겼다고?』

이건 그런 차원이 아니었다!

고고한 9종, 재앙의 왕, 폭군(暴君) 문팽이가 계약하고 싶어서 안달하던 ‘선지혜’에 버금가는 아름다움이다.

하지만 둘이 품은 분위기는 정반대.

선지혜가 화려한 극채색이라면, 쏠비얀은 흑백 명암의 대조를 이뤘다. 그건 외모와 옷차림뿐만 아니라 성격과 표정, 사소한 몸짓에서도 드러났다.

두 여인의 시선이 교차했다.

최강의 계약자와 최강의 마녀가!

‘슈퍼월드와 붙어보기도 전에 자멸하는 건 아니겠지…?’

‘불안한 소리 하지 마라! 무일!’

다행히도 엘퍼러의 추측은 기우로 그쳤다.

하지만 평화적인 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평범함을 가장한 신경전의 연장선일 뿐. 먼저 말을 꺼낸 건 통역마법을 사용 중인 쏠비얀이었다.

그녀의 ‘색적 마법’이 선지혜의 [업보]를 훑으며 살짝 감탄했다.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로군요.”

“네가 그 마녀지?”

“무슨 마녀인지는 모르지만, 싸우고자 온 건 아닙니다. 제가 지구에 온 건 어디까지나 비밀. 본국에서도 모르는 일이지요. 알려지면 이래저래 시끄러워질 문제라.”

쏠비얀의 표현처럼 잠시 시끄럽고 말 촌극으로 끝날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마녀의 피가 다른 차원으로 흘러든다면?

그것도 ‘최강’이라고 불리는 마녀의 혈통이?

대놓고 ‘공극의 마녀’를 비난할 만큼 대담한 인간이 몬스터월드에도 없지만, 황비 혹은 왕비급의 강력한 마녀들이 합심해서 목소리를 내면 많이 곤란해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지구로 몰래 넘어온 쏠비얀.

스스로 예고하고 하루는커녕 한 시간도 안 지나서 찾아왔다.

“그런데 왜 왔어? 집에서 남자들을 쌓아놓고 희희낙락할 것이지!”

“흐응~, 상당히 적대적인데요.”

“눈치는 빠르네.”

“과연…. 해신(海神) ‘까루나 막찌몬쓰’가 선택한 마녀답군요.”

“문팽이?”

“여기서는 그렇게 부르나요? 통역마법으로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지만, 신(神)을 공경하는 의미는 아닌 것 같군요.”

문팽이의 존재감은 지구나 아르테르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저 거대한 덩치에 ‘마법’을 찔끔찔끔 쏴서 어떻게 할 수 있을 리 있겠는가?

그건 ‘공극의 마녀’도 마찬가지.

그녀가 최대한도로 공간을 벌려도 문팽이는 안 들어가 진다!

맨홀에 불도저가 빠질 리 없잖은가?

“루나가 바다의 신? 헤에~.”

선지혜의 다시 봤다는 말투.

하지만 쏠비얀은 거기에 대꾸하지 않았다. 아니, 못 했다.

아직 남은 [업보]의 정보 탓이었다.

“당신…? 해신만 엮인 게 아니군요! 저희, 오르페온 마도제국의 건국신화에 나오는 신수(神獸)는 또 어떻게 꾀었나요?!”

“내 귀염북이?”

“제국명칭으로까지 쓰인 ‘오르페온’을 이상하게 부르지 말아 주세요…. 아니, 그보다 당신의 진짜 정체가 뭔가요? 정말로 지구인이 맞나요?”

< [59화-2] 관광객은 아닙니다만. > 끝

ⓒ 파르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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