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수처럼-239화 (239/287)

< [57화-4] 반격에는 반격으로. >

‘조금 꼬이긴 했지만….’

‘미안하다.’

‘아니. 나도 안 들키리라 예상했었는데, 그건 예상 밖이었어.’

민간인 피해를 줄여볼 의도였다.

황비를 제압하며 간단히 끝났으면 좋았지만, 그게 아니라고 해서 나쁠 건 없다. 약간 번거로워졌다는 정도?

이 ‘황궁’에는 무고한 민간인이 없으니까.

의도했던 ‘최소한의 피해’는 달성할 수 있는 셈이다.

“오라-!”

엘퍼러가 ‘포효’했다.

회귀본능 없이도 이미 최상의 재생력을 갖고 있던 그다. 거기에 온갖 능력이 추가되니 그 어떤 공격도 소용없었다.

만약, 엘퍼러가 게임 캐릭터였다면….

『마법 면역』

『상태 이상 면역』

『물리 저항 98%』

『회피율 98%』

『회복속도 500,000%』

『피해 반사 500%』

...이쯤 되지 않았을까!

불과 얼음처럼 상극인 두 종류의 검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것도 놀라운데, 심지어 ‘용사의 검’은 두 자루, 쌍수여서 기사들을 경악시켰다.

나는 그동안 뭘 한 걸까?

그런 자괴감이 들 정도로 상대의 능력은 압도적이었다.

‘어디서 저런 자가!’

‘말도 안 돼!’

‘이건 악몽이야…!’

‘저것이 참말로 내가 아는 그 검이라고?’

온갖 특수하고 비겁한 마법을 전공한 마녀들이 자신들의 기량을 최대한 발휘해서 가진 수를 다 동원했다.

하지만 이 침입자에게는 소용없었다.

보통, 마법에 대한 내성이 강한 ‘용사’나, 마법을 흡수하는 ‘기사’에게는 한도가 있다. 가진 기량을 넘어선 마법은 어쩌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눈앞에 대상은….

그 마법저항력의 한계가 보이지 않았다!

“뭐야? 정말 남자야?”

“무, 묻지 마. 나는 아까부터 몸에서 열이 나는 것 같아.”

“너도? 나는 기분도 이상해. 뭐지 이건….”

설상가상으로 ‘요정의 황제’가 가진 또 하나의 능력이 발휘됐다.

처음에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상대가 ‘하찮은 남자’에서 ‘괜찮은 남자’를 넘어 ‘뛰어난 남자’로 보이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사내라고 있는 것들이 워낙 변변찮아서 잊고 있었던 여인의 마음!

그게 마침내 편견을 뒤집어엎고 튀어나왔다.

“공격해라! 상대는 이계의 황제다!”

지구에서 탈출했던 랜슬럿의 목소리가 들린 것도 이때였다.

그야 당연하다.

인펠리아 제국의 기사인 랜슬럿이 갈 곳이라고는 제2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여기뿐이다. 게다가 홍길동이랑 달리, 그는 어엿한 가정을 꾸린 유부남이었다.

슬하에 자식은 없긴 해도, 고자인 자신을 사랑해주는 아름다운 여인들을 배신할 수 있을 턱이 없다.

영혼석 내에서 질시의 목소리가 들린 것도 그 직후였다.

<큭! 랜슬럿! 역시, 돌아갔나…!>

<남자가 책임감이 있군. 누구와 달리.>

<왕이시여! 그건 오해이십니다! 저는 책임지고 싶은 여인을 못 만났을 뿐입니다!>

<헹~! 잘도 책임지겠다.>

영혼석 안에서 어떻게 흘러가던, 밖에서는 두 가지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황비의 명령에 따라 적대감을 잔뜩 끌어올리는 기사들.

황비의 명령에 소극적으로 응하며 발을 빼려는 마녀들.

자연스럽게, 엘퍼러가 상대해야 할 적의 숫자는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애초부터 마녀들은 ‘마법 면역’인 그의 상대가 안 됐으니 별 차이는 없다.

없다고 해도….

처음부터 전력 차이는 압도적이었지만 말이다.

“나, 여포가 결투를 신청한다!”

“내가 바로 헤라클레스다!”

“산왕(山王), 임꺽정이 여기에 있다!”

물론, 인펠리아 제국에서 모은 전력도 만만치 않았다.

지구를 ‘열성인자 전염병 도는 식민지’ 혹은 ‘돌아올 수 없는 유배지’쯤으로 취급해온 강대국이 만만할 리 없었다.

그리고 그 지구에서 납치됐다가 제국의 힘에 감화된 ‘지구의 인물’들이 같은 지구인에게 칼을 들이밀었다.

그런 거창한 이유보다는 질투가 강한 것 같지만.

엘퍼러는 같은 남자라서 알 수 있었다.

미지근한 여자(마녀)들의 반응에서 자신을 향한 호감을 저들은 읽어낸 것이다. 정작 그 여인들은 자각하지 못하고 있지만.

“괴수나 인간이나 어째 똑같…. 뭐, 양성생식하는 생명이니 당연한 반응일지도.”

엘퍼러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운 건 황비뿐이었다.

상대적인 강함 때문일까.

아마, 황녀 ‘에르티나 페르시 인펠리아’ 때처럼 쓰러트려야 인식이 변할 것 같았다. 그리고 엘퍼러는 그렇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영혼석을 통해 마법을 끌어올리자,

<아프다! 아파도 너무 아파!>

<어, 엄살은! 크으…!>

<시끄럽다! 더 아픈 것 같잖아!>

영혼석 내의 그 누구도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

...라고 말하면 그나마 위안이 되겠지만, 안타깝게도 각각 관리자와 손님으로 있는 ‘에필로드 프롤로드’와 ‘한유일’만은 제외였다.

그래도 여성들은 나은 편이었다.

젖가슴을 사랑하는 교도소장이 이것저것 편의를 봐준 까닭이다. 고통은 똑같지만, 마음이 안정됐다고 할까.

게다가 늘 고통스러운 것도 아니다.

엘퍼러가 항상 마법을 난발하고 다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우우웅-!

에쏘드에 빛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것만으로도 주위에서는 식겁할 수밖에 없었다.

“저건…. 설마…?”

“마기나로크?!”

쓸 수 있는 자는 극히 드물고 현재는 아예 없는 기술이지만, 고대부터 살아온 노기사(老騎士)들의 눈은 썩지 않았다.

아주 오래전에 보았던 가공할 광경을, 전설이 된 힘을 주마등처럼 떠올렸다.

그들이 할 말은 하나였다.

“피하는 건 그만두고 도망쳐!”

“막을 생각 말고 숨어!”

“마녀의 보호막을 믿지 마라!”

저건 인력(人力)으로 어찌할 힘이 아니다.

빛의 속도로 피한다고?

공간이동으로 아예 시공간을 뛰어넘는 방법 외에는 없다. 그조차도 보고 피하는 게 아니라 미리, 미리 사각지대로 몸을 빼는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빠르게 엘퍼러가 움직였다.

파앙-!

빛이 인펠리아 제국의 황성을 삼켰다.

하지만 ‘마기나로크’처럼 저항감 없이 지우는 게 아니라 충돌음이 터졌다. 게다가 ‘빛의 속도’에도 한참 못 미쳤다.

빠른 건 맞지만, 능력 뛰어난 그들이 못 피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상한데…?’

‘전설에 따르면….’

이유는 간단하다.

마기나로크가 아니었으니까!

즉, 비슷한 짝퉁.

엘퍼러가 상상한 마법이 현실화된 것이다. 그래서 생김새는 아주 비슷했지만, 위력은 극심하게 차이 났다.

필살기 ‘마기나로크’ 자체가 지나치게 강한 것이리라.

무일이 쓴 마법의 위력도 나쁘진 않았다. 아니, 이것만으로도 충분해서 제국의 기사들을 쓸어버리는 축에 속했다.

“감히! 우리를 속였겠다!”

누군가 봤더니, 자신을 ‘아무개’라고 소개했던 자였다.

...이름이 기억 안 난다는 뜻이다.

용케도 피한 그 사내는 폴리검을 쥐고 있었다.

‘흡수한 건가?’

엘퍼러는 단번에 상대의 상태를 파악했다.

자신의 ‘가짜 마기나로크’의 힘을 일부 흡수해서 더욱 강해졌다! 하지만 그렇게 해준 소중한 방패는 없었다.

힘을 흡수하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내구성이 다하여 그만 파괴되고 만 것이다.

강력한 마녀에게 ‘기사’가 패배하는 이유.

바로 마법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줄 방패가 견뎌주지 못한 탓이다. 그뿐만 아니라 ‘기사’라는 속성 자체가 ‘여성을 위한 남성’이기에 싸움 자체가 성립되지 않고.

“기습할 때는 조용히 해라.”

만용 혹은 객기로 달려든 상대를 [반격]으로 가차 없이 베었다.

그대로 ‘아무개’의 혼은 영혼석으로!

하나가 당하는 동안 나머지 기사와 마녀들은 뭘 하고 있었을까?

“무너진다…!”

“불을 꺼!”

“얼굴에서 열이….”

정신없었다.

가짜 마기나로크에 무너진 황궁은 엉망진창, 아비규환이란 표현도 많이 부족할 지경이었다.

기사들은 ‘자신의 레이디’를 찾아서 지키기 바빴고, 마녀들은 ‘쿵쾅쿵쾅!’ 천둥 치는 심장 때문에 싸울 상황이 아니었다.

황비 ‘리트멜 데모 인펠리아’는 손톱을 깨물었다.

아주 오랫동안 잊고 있던 ‘우아하지 못한 습관’이었지만, 상황이 극도로 안 좋아지면서 다시 기어 올라온 것이다.

제국에서 가장 강한 전력인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니!

『마법이 일절 안 통하는 존재』

마녀에게는 이보다 더 안 좋은 상대도 없다.

이건, 마신보다 더 까다로운 정도가 아니라 아예 대적불가!

‘뭔가 수를 떠올려야…. 어머…!’

이 위기를 극복할 방법을 떠올리려 해도 막막하기만 했던 황비. 그리고 그때, 그녀의 앞에 등장한 야수와 사내가 있었다.

야수는 ‘제국의 수호신’이라고 불리는 캥거루,

『인펠리아』

배꼽 아래에 달린 주머니에 온갖 무기와 장비가 들어있는 만능해결사!

하지만 그런 존재가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왔다. 그리고 은신처에서 요양 중이었다. 적어도 몇 년은 걸릴 부상이라고 했었는데….

이렇게 모습을 드러냈다.

안 된다는 걸 알지만 어쩔 수 없었다.

왜냐하면….

“조상님들이 물려준 제국. 내 대(代)에서 멸망하게 놔둘까 보냐!”

그 ‘인펠리아’의 어깨 위에 선 남자가 외쳤다.

서른 초반쯤 될까?

갈색 턱수염을 정리했다면 더 젊게 보였을 것 같은 준수한 미남이었다.

기사들의 푸른 정복(正服)하고 확연하게 다른 백금(白金) 갑주. 방패 없이 양손으로 꼭 쥔 검에서는 미지의 패기마저 느껴졌다.

누군지는 홍길동을 가르쳐줬다.

<황제입니다. 코란 돌 인펠리아…. 인펠리아 제국에서 가장 강한 남자이기도 합니다. 최강의 기사가 황녀와 함께 사라진 이후로.>

그 ‘최강의 기사’는 다름 아닌 ‘아담’이다.

현재는 중국에서 일부다처(一夫多妻)를 실현하고 오순도순 잘 지내고 있다.

아무튼, 황제는 두 번째쯤 했던 남자란 거군?

엘퍼러는 아무래도 좋았다.

정말로 제국이 멸망해서 인펠리아 국민이 고통받는 건 원치 않지만, 정 방법이 없다면 거기까지 갈 생각이다.

망해버리면?

대신 통치해주면 그만이다.

‘무일. 정치는 안 한다며?’

‘내가 꼭 정치할 필요는 없어. 남에게 시키면 되는 거야.’

엘퍼러는 ‘아무개’의 뒤를 이어서 무모하게 덤벼드는 기사들을 [반격]으로 쓸어버리며 쭉 나아갔다.

때로는 땅 위를 달리고, 때로는 하늘을 날며, 때로는 벽에 붙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속절없이 기사들이 쓰러졌으며, 아귀 같은 ‘영겁의 감옥’ 듀크마에 영혼이 빨려 들어갔다.

여기에 대항하는 ‘캥거루 & 황제’ 콤비도 만만치 않았다.

홍길동이나 제국의 기사들처럼 [반격]에 속수무책으로 쓰러지지 않았다.

‘...추종자 애들도 여기에 오면 저렇게 변하려나?’

지구에서는 ‘인간형’이었던 캥거루 괴수.

하지만 이곳, 괴수들의 본고장에서는 어엿한 야수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소형’이 아닌 ‘대형’으로 불려야 할 덩치.

쉬임프가 진짜 초대형 새우로 변한다고?

...별로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자기 젖가슴이 작다며 늘 아쉬워하는 미녀가 그런….

전투에 집중했다.

“황제끼리 결판을 내보자!”

< [57화-4] 반격에는 반격으로. > 끝

ⓒ 파르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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