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수처럼-236화 (236/287)

< [57화-1] 반격에는 반격으로. >

파르나르 장편소설

괴수처럼 29

[57화] 반격에는 반격으로.

학명: 수전놀(남기지 않는 개)

서식지: 들판

특징: 욕심이 극에 달했지니….

위험도: 5종 보통

비고: 무엇이든 훔친다.

***

과거에 이런 일이 있었다.

그리 먼 과거는 아니다. 겨우 100년 남짓이니까.

인류에 보탬이 되도록 제작된 ‘인간형 로봇’인 ‘휴머노이드’가 갑자기 사람을, 모시던 주인은 죽이기 시작했다!

그 원흉은 지독한 컴퓨터 바이러스.

하지만 ‘적’을 알면서도 전문가들은 대처할 수 없었다.

『괴수』

우리가 그동안 생각해온 ‘괴수’는 들짐승 정도다. 제까짓 것들이 영리해도 결국은 인간의 손아귀에 놀아난다는 식이다.

그런 이야기.

실제로도 무식(無識)한 괴수가 참 많다. 하지만 반대인 사례도 분명 있다. 모든 인간이 공평하게 똑똑한 건 아니듯이.

인간보다 지능이 뛰어나고, 심지어 월등히 앞서는 놈들이 있다.

가까운 예로 ‘용신(龍神)’이라 불리는 존재들.

하지만 그 외에도 인간의 머리꼭대기에 있는 괴수들이 상당히 많다.

그중 하나가,

【판타이탄 / 7종 특수】

이 경우는 더 똑똑하다기보다는 그렇게 프로그래밍이 잘 갖추어져 있다고 해석하는 편이 더 정답에 가까울 것이다.

과정이야 어떻든 인간을 앞선다는 건 변함없지만.

강대국들이 보유한 ‘기계 병사’들이 일제히 아군을 공격하며 순식간에 전력이 와해 된 건 약과다.

수많은 미사일이 멋대로 발사됐고, 도시가 초토화됐다.

그런 끔찍한 과거를 통해 인류가 배운 건?

“달라진 건 딱히 못 느끼겠는데…?”

엘퍼러는 목포 시청사에서 도시 전경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판타이탄의 습격!

그 탓에 전자계통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인류는 거기에 대한 대비책을 갖춰놓은 상태다. 그중 가장 큰 대비로는 휴머노이드.

과거에는 소위 ‘업그레이드’라고 해서 인터넷망, 네트워크가 이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 결과가 바이러스 침투였다.

그래서 독립시켰다.

한 번 만들어진 휴머노이드는 그걸로 끝. 외부 간섭을 차단했다.

덕분에 이번에도 크나큰 피해는 없었다.

다만,

“게임을 못한다니!”

불행에 찌든 사람도 더러 있었다. 아니, 많았다.

가상현실세계의 방대한 땅에서 비좁은 현실로 끌려 나온 시민들은 ‘절망’했다. 과장 하나 없이 정말로 절망감에 휩싸였다.

당연히 그 불만과 스트레스는 정부에 쏟아졌다.

이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지 않으면 절대로 세금을 안 내겠다고 버티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못할 수도 있지.”

“주인님! 이건 정말 심각한 문제예요!”

노예 1호, ‘페이 링’이 자신의 뺨을 양손으로 누르며 비탄에 잠겼다.

집안일을 에쏘드와 다미호가 경쟁적으로 하는 바람에, 노예임에도 딱히 하는 것 없는 그녀는 게임을 접할 기회가 많았다.

계약자 대다수가 자유시간에 게임을 하니 딱히 흠은 아니다.

당연하달까?

최은비와 놀아주는 게 전부인 페이 링은 쓸모없어진 ‘가상현실 접속기기’를 힐끔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나마 그녀는 적당한 반응이다.

밖은 당장 폭동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심각했으니까!

“인류의 존망이 게임 하나로 휘청거릴 줄이야….”

과거와 달리, 인류의 전자계통 방어는 견고한 편이다.

싹 다 해킹당하는 바람에 세계의 모든 전산망과 통신망이 못 쓰게 된 건 어쩔 수 없지만, 그게 생존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다.

당장 오늘도 지구는 돌고, 도시는 평화롭다.

휴머노이드는 주부의 가사를 돕고, 미사일 발사나 발전소가 폭발했다는 이야기는…. 중동(中東) 국가 몇몇을 제외하고는 그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았다.

물론, 힘든 부분도 있다.

교통신호등을 비롯한 각종 편의시설이 마비됐기 때문이다.

‘생존이 전부는 아니란 건가.’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걸까.

하지만 가상현실세계에 처박혀서 사는 걸 ‘인간답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사람들이 좀 더 현실을 지각해줬으면 한다.

그런 면에서 목포는 대단히 안정된 편이다.

부자와 권력자들은 ‘현실’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목포는 그런 부류의 인간들이 비정상적으로 많이 산다.

외곽은 서민, 중심은 부자.

모든 도시가 갖는 일반적인 공식이 안 통한다.

『성역(聖域)』

9종 괴수 ‘문팽이’가 다스리는 영토란 특수성 덕분이다.

야생괴수들이 목포를 공격하려면 그전에 수많은 장애물을 극복해야 한다. 북쪽은 서울, 남쪽은 수많은 추종자가 버티고 있다.

아니, 그전에 문팽이가 영토로 지정한 면적이 대단히 넓다!

욕심쟁이 왕 같으니라고.

싸우잔드를 비롯하여 이웃해있던 ‘왕’들이 전멸하는 바람에 그렇게 된 것이다. 서쪽으로는 중국 해안까지, 동쪽은 일본의 절반을 차지했다.

목포는?

폭풍의 핵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가 혼란스러워도 이곳만은 어제와 다를 것 없이 똑같은 일상!

조용했다.

“페이 링.”

“네. 주인님.”

“답답하면 제주도 여행 어때?”

“제주도요…?”

엘프의 섬이라고 불린다.

물론, 섬의 주인은 ‘엘프’가 아니라 ‘선지혜’였지만, 문팽이가 싹 밀어버리는 바람에 갯벌이나 다름없던 제주도를 살기 좋게 바꾸는 건 분명 ‘엘프’들이었다.

농부 혹은 정원사가 딱 적성에 맞을 것 같은 종족.

고고한 계약자처럼 아리따운 여인(엘프)들이 흙바닥에 쭈그리고 앉아서 묘목을 심는 광경은 무척 낯설었지만….

덕분에 ‘관광특구’로 지정됐다.

고대에도 그랬다고 하니 이것도 섬의 운명이려나?

“남자들의 출입은 엄격히 제한됐지만, 여자는 괜찮아.”

혈통을 중요시할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엘프’라는 종족의 원형을 남겨둘 필요는 있었다. 언제 어떻게 쓰일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인간 남자들은 위험하다.

엘프 여성을 강간한다고 처벌받지 않는 까닭이다. 엘프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기 했어도 인권(人權)이란 게 없다.

식민지 노예 출신에 가까운 신분이라고 할까.

그렇기에 아예 접촉을 차단했다.

여자는 뭐….

“엘프가 불쌍해요.”

“그들을 동정하는 거야?”

“네. 주인님은요?”

“글쎄…. 텃세도 안 부렸고, 생존을 책임져준 것만으로도 할 도리는 다했다고 보는데.”

남은 사안은 엘프 종족의 존속뿐.

물론, 당장은 문제가 없다.

인간처럼 엘프에게도 보조식품을 복용토록 하면서, 안 그래도 길었던 엘프의 수명은 끝이 안 보이게 된 까닭이다.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하다.

새 생명이 탄생하지 않고 정체된 생명체를 진정으로 살아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순종 엘프’에 한해서 무정자수정(無精子受精)을 진행 중이다. 어떻게 보면 그 소수의 엘프가 새로운 시조(始祖)라고 할 수 있다.

『하이엘프(High-Elf)』

순혈(純血)이 별건가?

처음이라고 정하면 그게 ‘처음’인 거지.

앞으로 지구에서 태어나는 엘프는 전부 그녀들의 유전자 조합으로 이루어질 테니까.

‘인류에 과연 도움이 될지…. 독이 될지….’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는 ‘엘프의 유전자’로 난리법석이다.

이걸 설상가상(雪上加霜)이라고 하던가.

안 그래도 신종 성인병 ‘엘이즈’의 확산을 막기 힘들었는데, 전자계통의 마비로 인하여 완전히 무방비상태에 놓이고 말았다.

어디서 얼마나 확산할 것인가.

세계는 점점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어둠으로 치닫고 있었다.

“주인님. 이대로 괜찮을까요?”

“...제주도 여행?”

“아뇨! 저희 지구요! 흐응~. 이렇게 부르니 뭔가 SF 같네요.”

“가만히 있으면 당하겠지. 이번처럼.”

대책을 마련해뒀다고 해도 판타이탄의 역습은 인류에 큰 타격을 줬다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다.

이런 꼴로 살 수 없다는 것도 포함해서.

언제까지고 전화 한 통화도 자유롭게 못 하는 세상에서 살 수 없다. 문화와 경제가 마비되는 건 문제가 아니다.

정말 심각 한 건, 나라가 고립되면 ‘우리는 다 지구인!’이란 동맹이 분열된다는 것이다.

그것만은 어떻게든 막아야 했다.

‘시계도 못 쓰게 됐고.’

잘 써먹었던 ‘아메리카 드림워치’는 장식품이 됐다.

아니, 이 투박한 디자인의 손목시계를 멋으로 차는 건 무리가 따랐기에, 계속 손목에 매달 이유가 없었다.

엘퍼러는….

몬스터월드에서 넘어온 판타이탄의 훼방 덕에 삶이 전반적으로 편해진 극소수에 해당했다.

모든 사라졌다!

끈질기게 따라다니던 벌레 카메라 ‘모짜리나 바글버글’도 박멸했다.

물론, 이런 일이 있기 전부터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싹 치울 수 있었지만, 이번처럼 자연히 해결되면 아무래도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감시도 사라졌으니….”

마음대로 ‘차원이동’을 강행해도 된다.

똥오줌도 못 가리는 주제에 계속 ‘타 차원 원정’을 꿈꾸는 강대국들의 야망을 늦추고자 감춰왔던 비밀 아닌 비밀.

엘퍼러의 차원이동마법은 이미 완성됐다!

다만, 보는 눈일 많아서 쭉 미뤄왔을 뿐이다.

강대국의 눈치 봐야 할 위치는 아니었지만,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이 또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다.

되지도 않는 차원이동마법을 시도한다든가?

완전히 허무맹랑한 얘기도 아니다.

『하프엘프(Half-Elf)』

이들의 존재 때문이다.

조잡하고 미약하지만, 이들은 분명 마법을 쓸 수 있다.

강대국들이 최근에 하는 짓거리들을 생각하면….

뱀페스트와 엘프를 합치는 실험도 할 것 같다. 어쩌면 이 난리 중에도 어디선가 몰래 진행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막을 수 없다는 게 애석할 뿐.

신(神)이 아닌 엘퍼러가 볼 수 있는 시야라곤 이곳 ‘목포’가 전부였다. 이 이전에는 좀 더 넓은 시야를 확보하고 있었지만, 통신이 막히면서 대폭 축소됐다.

이건 불편한 점이 맞다.

다만, 그 이상의 장점이 있는 것도 사실.

‘차원이동을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됐지.’

감시가 싹 사라진 덕이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몬스터월드에서 엘퍼러에게 오라고 도발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 가줘야지! 별수 있나!

“선배. 지금 가려고?”

“흠.”

눈치가 100단, 스토커 경력 14년의 선지혜가 잽싸게 참견해왔다.

어디에 있다가 깜짝 등장한 거람?

아무튼, 선지혜가 ‘몬스터월드 출장’을 허락하게 된 이유는 ‘숭고한 희생정신’이나 ‘인류애(人類愛)’ 같은 게 아니다.

아주 간단명료하다.

『섹스(sex)!』

가상현실세계에서 한무일과 보냈던 그 달콤한 시간이 제지당했다!

선지혜가 분노할 이유로는 충분했다.

물론, 노출이 심한 네트워크를 피하여 둘만의 가상현실에서 거사를 치를 수도 있다. 하지만 흥이 안 난다.

남자의 데이트가 육체적 쾌락이라면….

여자의 데이트는 분위기. 심장을 콩닥콩닥 뛰게 하는 언행과 주변 환경이 절반을 먹고 들어간다.

그런데 도둑고양이처럼 만난다고?

있을 수 없는 얘기다.

“잘 다녀와. 매일 확인도장 찍고.”

“그래.”

그렇다고 해도 ‘한무일의 출장’에는 조건은 달렸다.

바다도 아니고 차원을 넘는 일이잖은가?

무슨 일을 당할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날마다 선지혜의 이마에 입술로 확인도장을 찍겠다고 약속했다.

대단히 번거롭지만, 지구에 매일 잠깐씩이라도 돌아온다는 건 나름대로 의미가 크다.

적은 몬스터월드 하나가 아니니까.

슈퍼월드의 침공이 시작되면 무조건 돌아와서 진두지휘해야 한다.

“선물 잊지 마.”

“기회가 되면…. 자! 가보실까, 몬스터월드로.”

< [57화-1] 반격에는 반격으로. > 끝

ⓒ 파르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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