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수처럼-235화 (235/287)

< [56화-4] 레이드이긴 한데…. >

‘슬슬 저쪽도 끝날 때가 됐는데….’

무일의 예상대로였다.

두 ‘에쏘드 정령’의 성실함과 꼼꼼함이 지나치게 돋보였던 맷집을 자랑한 울트라몬이 마침내 쓰러졌다!

한유일은 ‘정말 재미없었다.’라는 신랄한 악평을 날렸지만, 그 당사자들은 주위 동료들을 얼싸안으며 환호성을 질렀다.

과정은 살짝-, 아니, 많이 예상 밖이어서 황당했지만….

엘퍼러의 의도대로 된 것 같았다.

“이 여자들은 흠….”

풀어주기로 했다.

너무나 많은 수의 여성이 실종됐다. 그리고 이대로 못 돌아가면 이 또한 슈퍼월드가 원정을 망설일 요인이 될 수 있는 까닭이다.

처지가 딱해서 그런 건 아니다.

침략자에게까지 온정을 베풀어서 뭐하겠는가?

하지만 이대로 보내면 여러 비밀이 탄로 날 수 있으니...

“가서 전해. 납치범은 동료 중에 있는 것 같다고.”

“네. 마스터.”

“그리고 초능력을 지우는 초능력자가 있다고.”

“네. 마스터.”

카멜레혼에게 납치되었던 여인들이 공손히 대답했다.

대마법사의 마법으로 팔다리를 치료하고, 자궁도…. 괴수가 아닌 인간에게 강간당했었다는 정도로 보일만큼은 됐다.

다만, 초능력은 사라졌다.

뱀페스트 각인이 몸에 박히면서 없어진 것이다. 원인은 아직 불명!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앞으로 그녀들은 엘퍼러의 ‘눈’과 ‘귀’ 역할이 되어줄 테니까.

무력은 역으로 방해만 된다.

‘사무직을 자처해라.’

이대로라면 초능력이 사라진 그녀들은 자연스럽게 은퇴!

초능력은 유전이 아닌 까닭에 계약자처럼 출산 강요나 의무도 없다. 현재까지 모은 돈으로 유유자적 살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은퇴를 선택하는 건 아니다.

『일 중독』

평화보다 폭력과 파괴를 사랑한다고 할 수 있다. 입으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마음만은, 영혼만은 늘 사냥터에 머무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들의 ‘사무직’ 신청은 수월하게 이루어졌다.

납치되어 무슨 수모를 당했는지에 대해서 직접, 노골적으로 물어보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들은 ‘힐러’였으니까!

귀족이었던 그녀들을 위한 정책의 보호는 막강했다.

그래도 차츰 조사가 이루어졌지만, 의심 없이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다. 모두가 따로 논다면 상관없지만, 전부 한통속이기 때문이다.

‘금방이겠군.’

그녀들. 뱀페스트 왕의 백성이 아닌 ‘노예’로 분류된 그녀들은 수시로 정보를 물어왔다.

슈퍼월드의 문화부터 경제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인 지식을!

당연히 그 안에는 ‘원정’도 포함되어 있었다.

“저기 있었네.”

된통 당한 ‘반사 초능력자’ 서세진은 자신의 고향으로 귀환해있었다.

그는, 좀 더 시일을 갖고 차근차근 준비해가자는 ‘신중론’을 주장하고 있었다. 최고의 탱커인 발언권은 상상 이상으로 셌다.

게다가 그가 ‘최강의 초능력자’인 아내와 함께 쌓아온 금력도 무시 못 할 수준!

하지만 꺾였다.

피해가 있었지만, 의미 있는 승리를 거둔 슈퍼월드 내의 분위기는 들떠있었다. 이대로 밀고 들어가자는 여론이 힘을 받는 중이다.

(열흘 뒤에 출정식을 하고 넘어올 것 같아, 예요.)

(확인해줘서 고마워, 유키 짱. 엑시온에게도 고맙다고 전해주고.)

(알았어, 예요.)

유키나 미나미는 일본 구호활동 중이었다.

세계의 모든 부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목포’로 모여드는 추세고, 거기에 편승한 그녀는 엑시온의 도움을 받아서 돈을 긁어모으고 있었다.

물론, 그 목포의 시장이자 땅 주인 ‘선지혜’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유키나 미나미 혼자서 엉망진창인 수도 ‘도쿄’를 재건할 만큼의 사업수완을 보이고 있었다.

슈퍼월드 첩보활동은 덤.

수고는 그녀의 7종 수호자 ‘판타이탄’이 하고 있지만, 둘을 나눠서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어리석으니 논하지 말자.

계약자가 할 일은 첫째도 외모관리, 둘째도 외모관리니까!

“이젠 우리가 환영해줄 차례인데….”

준비라고 해도 환영해줄 사람이 ‘엘퍼러’와 그의 추종자가 대부분이었다. 여기에 문팽이 군단이 추가되는 정도.

다른 나라들은 자국 사수에 몰두하는 중이었다.

캥거루 괴수의 증발 이후, 괴수의 출몰이 정말 노골적으로 잦아졌다. 그리고 목적도 확연하게 달라졌다.

암살에서 전쟁으로.

제국을 탈출한 황녀를 추적하는 게 아니라, 그녀가 넘어간 세계 전체를 적으로 돌리고 공격하는 것이다.

즉,

『협공!』

몬스터월드와 슈퍼월드가 손을 잡은 ‘양동작전’은 분명 아니다.

하지만 시기가 공교롭다고 할까.

이 둘이 맞물리는 바람에 전력의 분산이 불가피해졌다.

“황비의 분노가…. 아니면 공포가 그만큼 크다는 뜻입니다,”

에르티나 페르시 인펠리아.

슈퍼-메두사라고 불렸던 마녀가 공손히 대답했다.

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수줍은 얼굴은, 주위에서 가증스럽다는 힐난을 샀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본인은 도움이 되고 싶다는 눈치지만, 상대적인 전력차이가 너무 크다.

엘퍼러가 ‘바다’라면 그녀는 저수지(貯水池).

보탬보다는 번거롭다는 게 맞을 것이다.

“괴수를 얼마나 더 보낼 수 있는 거지?”

“저희는 사역마라고 부르옵니다. 그 말인즉슨, 제국 내의 최대파벌인 황비의 세력에 가담한 마녀들의 사역마가 절반쯤 희생되면 주춤할 것이옵니다.”

“그래서 얼마 동안 더 막아야 하는데?”

“...길면 1년. 그리고 사역마가 성장하기까지 걸리는 5년 뒤에 다시 공격해올 것이옵니다. 사역마는 굉장히 빨리 성장하니까요.”

“그래…?”

방어전, 소모전으로 가면 진다는 뜻이다.

남은 길은 역공뿐.

엘퍼러의 장기인 [반격]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에르티나 페르시 인펠리아의 말은 끝난 게 아니었다. 살짝 망설이던 그녀는 덧붙이듯 말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꼭 그렇지도 않을 것 같사옵니다. 최근에 보이기 시작한 사역마 몇몇은 다른 제국의 소속으로 보였기에.”

“적이 늘었다?”

“네. 그렇사옵니다. 제국의 수호자 인펠리아의 죽음이 그만큼 충격적이었단 뜻이겠지요. 만만하게 봤던 차원을 위협으로 간주한 것이옵니다.”

“흠….”

이대로는 안 된다.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 분명하다.

‘차원을 넘어서 공격하는 방향도 생각해봐야겠는걸.’

슈퍼월드로 차원이동은 위험하지만, 몬스터월드라면 괜찮다.

그 증거가 ‘홍길동’과 ‘랜슬럿’.

비록, 랜슬럿은 놓쳤지만, 홍길동은 포획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현재는 영혼석 안에서 아는 걸 토해내고 있었다.

순순히.

물론, 처음에는 자존심으로 버텨보려 애썼다. 하지만 오랫동안 고자였던 그는 미녀의 청에 약했다. 게다가 아랫도리의 부활까지….

남자의 숙명, 신사적인 면모도 되살아났다.

아니, 더 심해졌다고 할까!

<넘어가도 강해졌다는 걸 실감하기 힘듭니다. 원체 강한 세계라서. 찬밥신세인 남자들조차도 무지막지한 신력을 갖고 있습니다.>

성실하게 대답하는 홍길동의 표정을 썩 좋지 못했다.

이곳은 지옥이 아닐까.

한 여자가 미녀들을 독점한 세계.

교도소장이라고 불리는 최고 실세 ‘에필로드 프롤로드’가 수많은 여죄수의 젖가슴을 쭈물거리며 온종일 희롱한다.

하나쯤 나눠줘도 좋잖아!

영혼석에 갇혀있는 모든 수컷의 바람일 것이다.

<그래? 더 꺼낼 말은? 없어? 없으면 꺼져.>

<아닙니다! 제가 그곳에서 보낸 세월이 무려 500년입니다. 풀 얘기가 아직 많지요. 저에게도 만질 기회를 주시면 더 잘 생각날-, 아닙니다! 말하겠습니다!>

...이런 상황.

덕분에 슈퍼월드뿐 아니라 몬스터월드도 대략 파악할 수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해볼 만한데?』

무시무시한 마녀의 마법보다는, 에쏘드로 무효로 할 수 없는 초능력 쪽이 더 성가셨다.

거기에 비하면 마녀는 그냥 호구!

마법에 면역인 상대에게 마법사가 얼마나 취약한지는 설명할 필요도 없다. 게다가 몬스터월드는, 유일한 ‘엘퍼러 대항책’일지도 모를 남자들을 천대해왔다.

무시만이 아니다.

일찌감치 포기하고 여자의 하수인, 하인이 된 사내들은, 아무런 능력 없이 태어난 지구의 사냥꾼보다도 약했다.

엘퍼러 기준에서는.

싸운다면 사냥꾼 쪽이 더 성가실 거란 의미다.

“에르티나.”

“하문(下問)하소서.”

“우리에게 호의적인 나라가 있을까?”

몬스터월드 내의 모두가 적이라고 단정할 순 없다.

전쟁과 침략을 싫어하는 ‘온건파’가 분명 있으리라. 그게 마음에서 우러나온 본심이 아닌 당파싸움의 한 정책 일환으로 내린 판단일지라도.

도움이 된다면 손을 빌리거나 잡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음…. 아! 있사옵니다. 그곳은….”

엘퍼러는 외계의 황녀가 들려주는 설명을 쭉 들었다.

하지만 상세한 정보는 얻지 못했다.

마녀라는 족속들은 세상 돌아가는 일보다 ‘마법’에만 몰두하는 경향이 있던 탓이다. 아니면 여자답게 유행을 좇는다던가?

머리 아프고 피곤한 얘기를 꺼렸다.

그럴 시간에 차라리 ‘마법’에 대해 한 번이라도 생각하는 편이 미래에 더 도움이 되니까.

괜히 ‘여황’이 아니라 ‘황비’겠는가?

다 이런 속사정으로 귀찮고 싫은 일은 남편이, 힘없는 황제가 도맡아서 처리하는 것이다. 백성들이 보내는 욕도 다 먹고.

사치는 황비가 부리고, 비난은 황제가 당하는 식이다.

<거긴 제국을 적대해온 군사 강국이옵니다. 하지만 철저하게 내실과 보안에만 힘쓰는 탓에 나라 전체가 대단히 폐쇄적이지요.>

부족한 정보는 홍길동이 보충했다.

번거롭게 유럽까지 출장 가서 잡아온 보람이 있었다. 본전은 뽑았다고 할까.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다.

홍길동은 황비의 수족으로 일한 기사였다. 그것도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라 ‘제국을 대표하는 로열기사’였다.

실질적인 무력도 갖추고 있지만, 마녀의 발끝에도 못 미치는 탓에, 박학다식으로 그 격차를 메꾸고자 노력했다.

물론, 중국에서 열심히 활동 중인 ‘아담’은 좀 특별한 경우지만.

그 거대한 행성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강자였다고 하니까.

...남자 중에서.

정말로 잘 지내는지 모르겠다.

모시던 황녀 ‘유라 솔리넬 인펠리아’도 잊은 채, 사냥꾼으로서 가장으로서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었다.

자식도 키우고, 제자도 키우고, 사랑(!)도 키우고….

(소년이여.)

(음?)

(중대한 일이다. 좋지 않은 소식이 있다.)

(경청하겠습니다, 엑시온.)

뭔가 체계가 잡힌 이후부터는 ‘유키나 미나미’라는 중간다리를 걸쳐서 알려왔다. 그런데 무슨 바람이 아니라, 그 ‘판타이탄’이 직접 연락을 취했다.

안 좋은 소식이란 게 뭘까?

마녀와 초능력자가 샌드위치처럼 지구를 누르려 하는 현재도 이미 나쁜데….

그런데 ‘또’ 있는 게 아닌가!

이건 정말, 생각지도 못한 공격이었다.

(가상현실세계 서버가 해킹당했다.)

(허어…?)

(용신들이 신속하게 대처하며 애써봤지만, 그럼에도 현격하게 밀리는 중이다. 침투해온 적의 숫자가 많으니 그럴 수밖에.)

몬스터월드는 현실로 만족하지 않았다.

지구인들이 숨 쉬듯 자연스럽게 즐기고, 하나의 삶으로 자리 잡은 가상세계를 노린 것이다. 아니, 현실이 튼튼하기에 이쪽을 공략한 것이리라!

가상현실세계 서버를 닫는다?

그렇게 되면 수많은 사회적 문제가 발생한다.

당장, 어린 학생들의 수업부터 차질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사무실을 아예 가상현실세계에 뒀던 회사들은 마비될 게 자명했다.

...만만한 곳이 없군.

아! 가보진 않았지만, 하나 있긴 했다.

『판타지월드』

엘프의 고향이며, 괴수들이 지배하는 세계가 된 차원.

하지만 나머지 둘은 정말로 강했다.

카멜레혼과 울트라몬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긴 했지만, 그게 인간이다. 준비되면 강하고 그렇지 못하면 너무나 약해빠진 생명체.

(녀석들이 누굽니까?)

(판타이탄.)

(아….)

어째서 생각하지 못했을까?

몬스터월드에 ‘가상세계 하느님’이 있을 가능성과 당연한 사실을!

그 안에서만큼은 7종 괴수 판타이탄도 8종. 아니, 9종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초월적인 존재로 자신을 ‘설정’하면 그만이니까.

엘퍼러의 손에서 벗어난 싸움이었다.

엑시리얼 온드미온이 차분히 말을 이었다.

(복제되며 함께 만들어졌으니, 형제라고도 할 수 있겠군. 친하진 않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습니까.)

(...소년에게 설명하는 사이에 마지막 방화벽이 막 뚫렸다. 그러니 지금부터 조심해라! 영상과 통화로는 그 누구의 말도 믿지 마라.)

(그럼….)

(유키를 부탁한다.)

(엑시온?!)

인류에, 전자계통에 ‘암흑’이 찾아왔다.

모든 교류가 단절된 것이다.

나라와 나라 사이만이 아니라 이어져 있던 모든 것들이 멀어지기 시작했다.

< [56화-4] 레이드이긴 한데…. > 끝

ⓒ 파르나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