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수처럼-234화 (234/287)

< [56화-3] 레이드이긴 한데…. >

까놓고 말해서, 무일도 뭘 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처음에는 다르게도 생각했었다.

저 ‘탱커’라는 역할을 가진 자들은 상대를 ‘도발’하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말이다. 일종에 정신조작계통 초능력이라고 할까!

한유일의 말을 들어보면 그런 부분도 없잖아 있다는 모양이다.

녀석들을 보면 왠지 때려주고 싶다나?

그러나 조금만 냉정하게 생각하면 주위에 ‘종이 몸’부터 처리하는 게 ‘사냥의 정석’임을 쉽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도 저 꼬락서니들은….

“꼬리 주위를 조심해!”

“이 몬스터는 패턴이 3개 이상은 되는 것 같다! 신중을 기하라!”

“여섯 개의 팔에 탱커 하나씩 붙어!”

“힐이 부족합니다!”

“정신력이 고갈 났어요! 더는 무리에요!”

울트라몬(한유일)이 하는 일은 지극히 단순했다.

아예 안 쓰면 뭔가 이상하니, 여섯 개의 팔로 튼튼한 녀석들만 골라서 때려주는 것이다. 하지만 그 여섯 팔로 한 명을 집중공격 하면 비명횡사해버린다!

그러니 분산해서 살살.

골고루 때려주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힘들다는 엄살이 대단히 심했다.

‘...무일. 슈퍼월드 본대로 이렇게 형편없는 거 아니야?’

‘그럴 확률이 높으니 지금 끌어들여야지.’

나중은 늦다.

초능력자들이 경각심을 갖고 제정비 후에 진격해오면 승패가 불투명해진다.

하물며 녀석들은 수많은 식민지를 보유하고 있다. 소모전으로 가면 몬스터월드만큼이나 껄끄러운 강적이리라.

물론, 거기에 대한 대비도 맞췄다.

그 시험이 ‘뱀페스트 감염’ 아니었던가?

지금은 성인병처럼 성행위를 통한 감염이었지만, 본격적으로 ‘섬멸전’에 들어가면 뱀페스트의 모든 번식법을 다 동원할 것이다.

그러면 ‘서포터’가 아무리 용써도 무리.

아니, 그 성가신 초능력을 보유한 자들부터 암살하고 실행하리라.

“용사님! 잘 만들었죠?”

“소녀는 저런 것보다 검 만드는 게 더 좋은데…. 아! 아니에요. 혼잣말이었어요. 신경 쓰지 마세요.”

한세리와 한유나가 칭찬을 바라는 아이처럼 쫄래쫄래 다가왔다.

일단은 잘 해다고 해둘까.

하지만 화염, 냉기, 번개, 염력 등등 온갖 초능력을 다 얻어맞고도 잘 버티는 맷집은 좀 너무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이대로 장기전 양상으로 간다면 뭔가 지루할 것 같다.

물론, 싸우는 저들 입장에서는 지금도 죽을 맛이겠지만, 제삼자 관점에서는 전투가 너무 단순하게 흘러가는 걸로 보이리라.

이래서는 ‘감동’이 없다.

영화나 드라마처럼 뭔가 극적인 승리가 필요하다.

“저대로 간다면 앞으로 얼마나 버틸 것 같아?”

“으음…. 2시간 40분쯤…?”

“저도 세리와 같은 생각이에요.”

울트라몬을 제대로 움직였다면 진즉 끝났을 것이다.

이렇게 장기화로 이끈 것 자체가 기적이랄까.

한유일이 지루해서 괴로워하고 있다. 슬슬 울트라몬도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예를 들자면…?

저 날개가 장식품이 아님을 말해줘야 한다.

“날아올랐다?!”

“비겁해!”

“내려와! 이 자식아!”

공격대도 놀고만 있던 건 아니었다.

그 안에서도 비싼 돈을 받고 일하는 ‘분석반’이란 조직이 운영되고 있으니까.

전투가 계속되는 동안, 울트라몬의 정보를 수집했다.

본인들은 이 ‘가짜 지구’의 ‘괴수대응연맹’이란 최고기구를 간신히 해킹해서 알아냈다고 굳게 믿겠지만, 고의로 흘린 것이다.

인간의 머리꼭대기에 있는 ‘용신’의 방화벽을 뚫는다는 게 가당키나 한 얘기겠는가?

하지만 슈퍼월드는 그 사실을 몰랐다.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생명체는 자신들이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제 목소리가 들리십니까?)

(들린다!)

(공격대장님들, 당황하지 마시고 침착하게 들어주십시오. 저 몬스터의 이름은 울트라몬. 이 행성에서 가장 강한 몬스터 중 하나입니다.)

(역시…!)

정말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특히, 예측할 수 없는 돌발행동 때마다 희생자가 꾸준히 나오고 있었다. 사냥 중에 이렇게 많은 수의 딜러와 힐러가 죽은 마지막이 언제였더라?

반백 년도 더 된 것 같다.

(울트라몬은 총 8가지 기술과 3가지 패턴을 갖고 있습니다.)

(뭐가 그리 많아?!)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 분석반에서는 이곳 원주민들이 모아놓은 울트라몬 정보를 입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오오!)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힘을 합치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아니, 꼭 그렇게 되도록 저희가 최상의 전략을 짜겠습니다! 반드시!)

...도청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르리라.

저들이 전략을 다 짜고 전달할 때까지 하늘을 배회하며 기다려주고 있다는 점도 포함해서.

그 탓에 한유일은 짜증이 왕창 난 상태였다.

‘잡다한 대사는 생략하고 빨리 본론으로 넘어가라!’

하지만 슈퍼월드 분석반은 그럴 마음이 없는 것 같았다.

자신들의 성과를 한껏 자랑한 후에 천천히 말했다.

(울트라몬은 체력이 10%쯤 깎일 때마다 패턴이 추가됩니다.)

(추가된다니! 정말 터무니없는 몬스터로군!)

(그렇습니다…. 저희가 여태까지 상대해온 그 어떤 몬스터보다도 까다롭습니다…. 하지만 공략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닙니다!)

저들의 대화는 울트라몬도 경청 중이었다.

처음 듣는 얘기였으니까!

분명, 괴수대응연맹 학자들이 그럴싸하게 마구잡이로 집어넣은 게 분명하다.

과정이야 어떻든, 이번 작전이 성공하려면 그 거짓말이 ‘진실’처럼 보이도록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저들에게 승리를 안겨줘야 하니까.

예상 밖의 행동을 보이면 가만 놔둬도 알아서 전멸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무일.’

‘말하지 마. 네 마음 다 알아.’

복잡했다.

가상현실게임 같은 것을 좀 해본 사람이라면 ‘그렇군.’하고 넘어갔겠지만, 그쪽하고는 완전히 담쌓고 살아온 한무일. 그리고 여기에 편승한 한유일에게는 너무 어려웠다.

도대체 말이야….

예를 들어, 정확히 3분마다 강력한 공격을 한 명의 탱커에게만 집중해야 하는 이유를 전혀 모르겠다.

왜 그래야 하는데?

계속 한유일에게 충고하던 한무일도 슬슬 한계에 봉착했다.

“제군들! 우리가 누구지?”

“지존 공격대입니다!”

“그렇다! 우리는 늘 최고였다! 그러니 오늘도 이길 수밖에 없다! 최강의 몬스터도 우리의 앞길을 막을 순 없다!”

울트라몬 토벌전(가칭)에 참가한 공격대마다 일장연설이 속사포로 터졌다.

공략법이 나오면서 나름 여유가 생겼다는 뜻이다.

저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기 위해,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서 누군가(한유일) 얼마나 고생하는지 따위를 알 리 없었다. 알려져서도 안 되고.

심지어 한무일도 직접 움직였다.

“쿠엑?!”

“...미안하게 됐다.”

본의는 아니었겠지만, 엘퍼러를 대신해서 슈퍼월드 진영을 괴롭혀줬던 고마운 괴수 ‘7종 카멜레혼’은 미녀를 찾던 중에 봉변을 당했다.

물리법칙을 무시하며 벽을 투과하고, 맨눈으로 파악하기 힘든 투명한 몸체를 가졌어도 ‘에쏘드’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푹!

찌르자마자 나 죽는다고 비명을 내질렀다.

울트라몬의 등장으로 모든 시선이 그쪽에 집중됐을 때, 조용히 미녀를 납치하려던 카멜레온 괴수.

유령처럼 소리소문없이 죽었다.

시체는커녕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유일. 계속 수고해라.’

‘도마뱀이 모은 미소녀는 전부 내 백성으로 삼겠다!’

‘...그래.’

웬만하면 안 된다고 하려 했지만, 정말 고생 중이라서 차마 막을 수 없었다.

무일은 [예감]에 의존해서 카멜레혼의 둥지를 찾아갔다.

그 위치는 놀랍게도….

『울룰루』

세계에서 가장 큰 바위.

고래 괴수, 7종 웨일풍도 바위라고 한다면 두 번째가 되겠지만. 어쨌든, 오스트레일리아 사막 한복판에 위치한 거대한 바위가 놈의 둥지였다.

하지만 프로사냥꾼이나 고위괴수가 아니면 절대 찾지 못할 것이다.

카멜레혼의 능력 중 하나가 투과.

그 능력을 십분 활용한 장소에 둥지가 있었다.

“바위 속에 여자들을 감금해뒀군….”

초능력으로 구멍을 뚫어서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지만, 카멜레혼은 그렇게 우매한 괴수가 아니었다.

힐러 미녀를 고집한 이유가 뭐겠는가?

그녀들은 자력으로 바위 안에서 탈출할 능력이 없다. 회복능력에 특화된 그녀들은 부상자가 없으면 일반인과 다를 게 없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카멜레혼은 시간이 지날수록 과감해졌다.

힐러로 만족하지 못하고 딜러도 노린 것이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쉽겠는가?

납치까지는 간단했지만, 가둬두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 딜러는 바위에 구멍을 뚫고 탈출할 능력이 있으니까.

그래서,

‘팔다리를 뜯어놨어…!’

이건, 미녀를 납치한 카멜레혼의 일반적인 행동이 아니었다.

카멜레혼을 토벌하고 구출작전을 성공적으로 마치면, 실종된 여성 대부분이 멀쩡하다. 마음고생으로 다소 여위긴 하지만.

그게 보통이다.

그런데 한곳에 쌓여있는 저 많은 팔다리가 다 뭐란 말인가!

역시, 초능력 때문일까?

그녀들이 쉽게 죽지 않는 몸이란 것도 알고 있는 눈치였다.

“저기 있군…. 음…?”

카멜레혼에게 납치된 ‘미녀 외계인’들은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하지만 무일의 예상을 살짝 벗어난 몰골이었다.

『임신』

그녀들의 배는 불룩 솟아있었다!

삼족호 때도 그랬지만, 괴수들이 ‘슈퍼월드 여성’을 대하는 태도는 무언가 달랐다. 동족 암컷을 대하는 것 같다고 할까.

무일은 ‘카멜레혼’의 생식법에 대해 떠올려봤다.

‘무성생식(無性生殖)이지.’

단세포, 하등생물이 하는 그것을 떠올리면 곤란하다.

괴수 대부분이 쓰는 번식법.

다른 생명체에 자신의 씨를 투입하는 것이다. 그 생명체의 기준은 포유류, 조류, 양서류…. 심지어 꽃과 나무도 가리지 않는다.

과일 안에서 조그만 새끼 괴수가 튀어나오기도 한다.

물론, 꽃씨처럼 작은 경우는 정말 극소수 괴수만 가능하지만.

『인간?』

당연히 된다. 멀쩡한 여인(女人)의 자궁에서 괴수가 태어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무척 드물다.

왜냐?

예쁘면 계약하고, 안 예쁘면 ‘털 없는 원숭이’라서 죽인다.

괴수는, 싫다고 발버둥 치는 못생긴 암컷을 제압해서 자신의 씨를 삽입할 만큼 섬세하지 않은 까닭이다.

그러니 이번 경우는 정말 특수하다고 할 수 있다.

한둘도 아니고 단체로?

소나 양 떼에서 괴수가 우르르 태어나는 건 봤지만, 인간은….

“죽여줘! 나를 죽여줘!”

“저, 저는 살고 싶어요!”

“내가…. 내가…. 흑흑….”

품고 있는 생각이나 상태들은 제각각이었다.

그녀들이 겪은 충격이 얼마나 컸을지는 남자인 무일도 알 수 있을 만큼 참담했다.

무릎과 팔꿈치 아래로 없다. 몸통과 머리뿐.

탈출은커녕 대소변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몰골이었다.

‘대단히…. 차별적인걸.’

이걸로 확실해졌다.

엘퍼러는 단언할 수 있었다.

『괴수는 초능력자를 인간으로 안 본다!』

순결한 미녀를 제외하고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털 없는 원숭이’ 취급이었지만, 초능력자들처럼 극단적인 대우는 아니었다.

제압한 상대가 사냥꾼이든 여자든 금방 죽였다. 간혹, 미끼로 쓰기 위해 숨통을 끊어놓지 않기도 하지만.

이처럼 번식이란 뚜렷한 목적의식을 갖고 오랫동안 살려두는 경우는 없었다.

『괴수는 동물을 죽이지 않는다.』

육식성 괴수들이야 당연히 동물을 사냥해서 잡아먹기도 하지만, 그 덩치를 생각하면 대단히 소식(小食)하는 편이다.

정말 최소한의 숫자만 죽인다. 특별한 이유 없이 인간을 살해하는 거와 다르다.

동식물이 자신들의 번식수단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여성형 괴수, 양성생식하는 괴수들은 논외지만.

“구출이 목적은 아니었지만, 일단은 그런 걸로 해둡시다.”

생각할 게 많아졌다.

엘퍼러의 소관은 아니지만.

미덥지 않은 연맹 인간들이 그럴싸한 답을 도출해줄 것이다.

< [56화-3] 레이드이긴 한데…. > 끝

ⓒ 파르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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