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수처럼-233화 (233/287)

< [56화-2] 레이드이긴 한데…. >

‘아직은 깨어난 녀석이 없다, 무일.’

‘상관없어. 우리에게는 마법이 있으니까.’

예상이 맞는다면, 슬슬 후퇴해서 나중을 기약하자는 말이 나올 때가 됐다.

안 그렇겠는가?

초능력자의 상당수가 무용지물이 됐다. 그들이 믿는 최대의 무기가 사라질 위기상황인데, 원정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까딱 잘못하면….

식민지에서 반란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지금은 조잡한 총칼로 어쩌지 못하는 초능력자가 두려워서 잠자코 있지만, 그들이 무력화되면 들고 일어설 것이다.

“원정을 포기하도록 놔둘 순 없지.”

그렇기 위해서는 저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는 게 중요하다.

지금이 딱 그 타이밍!

슈퍼월드에서 갈팡질팡하는 이때에 ‘선물’을 안겨줄 생각이다.

『승리(勝利)!』

달콤한 승리가 이성을 마비시키고 감성을 흥분시키리라!

하지만 저들이 만족할 만큼의 ‘감동적인 대승(大勝)’을 만들어주기란 쉬운 게 아니다.

괴수 몰이?

한 녀석만 패는데 익숙한 저들에게는 무리다.

특히나, 전방에 선 탱커를 무시하고 후방을 공격하는 괴수의 ‘당연한 전략’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게 뻔하다.

다른 방법은….

‘괴수에게 의뢰하는 건데, 이게 말처럼 쉽나.’

일단 말귀를 알아듣게 하는 건 쉽다. 하지만 ‘가서 죽어라!’라는 요구를 순순히 따를 괴수는 이 지구 상에 없다.

설사 가더라도, 막대한 피해를 안겨준 후에 쓰러질 것이다.

그래서는 소용없다.

슈퍼월드의 진짜 전력(全力)은 아직 차원을 넘지 않고 간 보는 중이다. 그런 그들을 끌어들여야 한다. 그것도 당장!

나중으로 미뤄지면 ‘준비’를 단단히 해서 오리라.

그때는 정말 치열한 전쟁이 될 것이다. 지금처럼 엘퍼러 혼자서 어찌해볼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다는 뜻이다.

“세리, 유나. 만들 수 있겠어?”

그래서 다른 방법을 고안해냈다.

두 에쏘드 정령이 오랜만에 실력발휘 할 때다.

나가서 싸워라?

그래도 일단은, 가녀린(?) 여성에 속하는 이 둘에게 그런 잔인한 명령을 내린다면 용사로서 실격이다.

종종 잊곤 하지만….

에쏘드 본체에도 능력이 있다.

『창조』

그보다는 ‘제작’이라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릴까.

다른 ‘괴수의 피’로 이것저것 만들 수 있다. 일반적인 에쏘드는 ‘용사의 갑주’를 제작하는데 이 능력을 쓰지만, 한무일은 그럴 기회가 없었다.

각설하고,

에쏘드가 만들 수 없는 건 생명뿐.

하지만 이런 불가능조차 ‘마법’이 끼어들면 얘기가 달라진다.

“네! 용사님! 재료는 충분한 것 같아요!”

“너무 오랫동안 안 쓴 능력이라서 제대로 될지….”

엘퍼러 주위에는 괴수의 시체가 널려있었다.

황제고 나발이고….

남성형 괴수들의 끊임없는 도발과 견제는 끝날 기미가 안 보인다!

하지만 그 덕분에 충분한 양의 ‘괴수의 피’를 협찬(?)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건 하루이틀사이에 모은 게 아니다.

꾸준히, 조금씩, 야금야금!

그렇게 해서 차츰차츰 형태를 갖춰가는 모조(模造) 괴수.

“녀석들이 상상하는 몬스터란 이런 녀석이려나….”

해안에는 거대한 생명체가 숨어있다.

당장에라도 눈앞에서 얼쩡거리는 두 미소녀를 낚아채서 씹어먹을 것처럼 생겼지만, 녀석은 미동조차 없었다.

왜냐?

아직은 생명이 깃들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두 ‘용사의 정령’이 합심해서 제작한 이 ‘괴수’의 덩치는, 눈 감고 초능력을 갈겨도 전부 맞출 수 있을 만큼 비대했다.

사람 크기였던 초창기에 비한다면, 정말 엄청난 크기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점점 더 키우고 있다.

『쇼(Show)』

뭐든 커야 사람들은 영광하지 않던가?

적이 강하든 약하든 일단은 몸집이 좀 돼야 수긍하기 쉽다.

우리의 승리에 의미가 있었다고.

“그르르르….”

한세리와 한유나는 자신들의 창조물에 로봇처럼 이것저것 덕지덕지 추가 중이었다.

좀 더 사납게, 무섭게, 강하게!

등껍질도 붙이고, 날개도 달고, 팔도 여섯 개나 늘렸으며, 뿔도 아무 데나 툭툭 붙였다. 그녀들의 예술감각이 얼마나 떨어지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정말 ‘몬스터’처럼 보이긴 했다.

이건 누가 봐도 괴물이다.

“용사님. 이름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흠…. 그건 우리의 소관이 아니지.”

지금부터는 괴수대응연맹의 협조가 필요하다.

어딘가에서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처음 보는 괴수’가 슈퍼월드를 공격했다고 하면, 여러모로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없는 진실을 날조해야지!

(엘퍼러. 최종형태가 나온 겁니까?)

(아마도…. 저 애들은 아직 부족하다고 합니다만.)

더는 추가할 여유공간도 없다.

저 이상 이상하게 생길 수 없으리라.

(10분 뒤에 다시 연락드려도 되겠습니까, 엘퍼러. 연맹 내의 학자들 의견이 막 엇갈리는 바람에……. 하아….)

별자리, 행성, 은하계 이름 붙이듯 아주 난리였다.

내 뜻대로 못 지으면 사생결단을 내겠다는 듯이, 잡아먹을 기세로 달려든다!

엘퍼러는 알겠다고 답해줬다. 10분쯤이야….

그 10분이 1시간으로 늘어난 후에야 이름이 도착(?)했다.

【울트라몬 / 8종 대형】

최대한 ‘강해 보이게’ 지어달라는 엘퍼러의 요구를 수용한 결과였다.

일부 역사기록을 수정해서 ‘울트라몬’이 100년 전에 잠깐 등장했던 ‘무시무시한 괴수’였던 걸로 해놨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실존하지 않는 괴수!

심지어 자의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모형’인 탓에 마법으로 원격조종 해야 한다. 피와 살로 이루어진 로봇이라고 할까.

조종사는 당연하게도….

‘훌륭하다! 딱 봐도 셀 것 같다!’

대마법사 한무일이 조종할 것 같지만, 한유일이었다.

원래는 한무일이 해야 맞지만, 안타깝게도 ‘인간’인 그는 다른 육체를 조종하는 능력이 대단히 서툴렀다.

예를 들어, 꼬리와 날개.

이걸 움직인다는 건 인간의 뇌 구조로는 무리수가 따랐다.

하지만 기생생물인 뱀페스트는 이런 쪽으로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 그리고 한유일의 본질은 그 뱀페스트였다.

일회용이란 게 아쉬운 눈치!

“어디…. 지기 위한 싸움을 시작해볼까.”

들키지 않도록 바닷속에 반쯤 몸이 잠기게 해서 숨어있던 울트라몬이 육지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니, 수면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그대로 슈퍼월드 진영을 향해 천천히 이동했다.

이 괴수를 어느 카테고리에 넣어야 할까?

한세리와 한유나의 창의력이 100% 발휘된 외형은 족보를 짐작할 수 없게 했다. 인간형 같으면서도 해양형 같기도 하고, 비행형처럼 보이기도 했다.

“크아아앙!”

훌륭한 목청은 덤.

그 비대한 몸집과 어우러진 위풍당당함은 100점 만점에서 120점을 줘도 아깝지 않았다.

당연히 모두가 그 소리를 들었다.

슈퍼월드 진영에서 난리가 난 것도 당연했다.

뭘 놀래기씩이나….

만약, 진짜 괴수였다면 이런 식으로 소리를 꽥꽥 지르면서 ‘내가 왔노라!’라고 광고하지 않는다. 위협은 무슨.

조용히, 은밀하게~.

말없이 와서 사뿐히 밟아줄 뿐이다.

“당황하지 마라!”

“진형을 갖춰!”

“다 틀렸어! 우린 다 죽을 거야! 힐러가 너무 부족해!”

그들도 바보가 아니다. 학습이란 걸 한다.

이곳 몬스터가 자신들의 차원보다 영리하다는 걸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 그 탓에 ‘신성력’이란 사기적인 능력의 보조를 받고도 불안에 떨었다.

“침착해라! 우리는 불멸 공격대다!”

“싸우자! 무적 공격대에 후퇴란 없다!”

정체불명에다가 치명적이기까지 한 전염병 탓에 싸워보기도 전에 패색이 짙은 상황이었다.

어디 전염병뿐이랴?

정체를 알 수 없는 납치범 때문에 ‘여성 힐러’가 유독 없었다. 그리고 성향인지는 모르지만, 힐러의 여성 비율은 대단히 높은 편이었다.

그것도 아리따운 아가씨들로.

초능력은 외모순이란 얘기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저런 괴물을 무슨 수로 막아….”

“내 여자친구가 실종됐는데….”

“사랑하는 자기가 초능력을 잃었어….”

그런데 운 나쁘게도 그 시기를 꼭 찌르며 등장한 거대한 몬스터!

딱 봐도 엄청나게 강할 것 같은 비주얼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공격대를 날로 해먹은 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어찌어찌 추슬러서 싸울 채비를 갖췄다.

물론, 그들의 노련한 경험 덕분이 아니다.

이건 전부….

‘멀뚱멀뚱 쳐다보며 기다려줘야 한다니! 무일! 이게 무슨 광대놀음이냐!’

‘...그 마음은 알겠는데 참아.’

‘아우! 진짜! 그리고 저것들은 뭔데 선두에서 고함을 지르며 얼쩡거려?’

‘탱커라는 녀석들이다.’

한유일은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그의 영혼은 여전히 한무일과 함께하고 있다. 이건 일종에 원격조종, 아바타를 움직이는 RPG 게임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어찌 보면 제삼자 입장에서,

저 탱커라는 연놈들이 어떻게든 자신에게 관심받고 싶어서 안달 났다는 것 정도는, 언어가 안 통해도 알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말이지~.

하렘의 왕의 심정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그래서 어쩌라고?』

탱커는 방패를 앞세웠으며 갑주도 튼튼한 재질이었다. 게다가 초능력이란 미지의 힘으로 보호까지 받아서 무척이나 견고했다.

하지만 전투력은 하품이 나올 정도로 보잘것없네?

울트라몬(한유일)은 딱 한 번 부딪쳐보고 그걸 깨달았다.

그렇다면 굳이 상대해줄 필요가 없지.

뒤편에 천 쪼가리 한 장만 걸친 녀석들이 손쉬워 보였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울트라몬의 거대한 팔로 한 번만 쓱 훑으면 전멸할 것 같다.

‘안 돼! 눈앞의 놈들만 상대해줘.’

‘...가까이 붙어있는 녀석들만 말이지?’

한유일은 숙주의 요구에 고분고분 따랐다.

다음에도 이런 ‘장난감’을 가지고 놀려면 최대한 협조하는 편이 여러모로 좋다는 것을, 경험으로 잘 아는 까닭이다.

눈앞이라…?

울트라몬의 눈은 사방에 달려있다.

그게 뭐 어쨌냐면….

아까부터 발등을 콕콕 찌르는 녀석들도 ‘눈앞의 놈들’에 해당한다.

“으악!”

“꺅!”

거대한 발을 들었다가 내리니 ‘콰직!’이란 끔찍한 효과음이 퍼졌다.

포유동물의 뼈와 살이 납작해지는 소리였다.

천 쪼가리보다는 낫겠지만, 딱 봐도 내구성 약해 보이는 가죽옷을 입고 접근하다니…. 그냥 죽고 싶었던 게 분명하다.

덤으로 꼬리 근처에서 기웃거리며 망치와 도끼 등으로 내려찍는 녀석들도 냅다 후려쳐줬다.

녀석들이 당황한다.

왜?

거대한 꼬리와 발을 한 번씩 움직인 것뿐인데.

죽이기 좋게 딱 달라붙어 놓고 당황하는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때였다.

‘안 돼!’

‘이번에는 또 왜?’

‘네가 방금 심심풀이로 죽인 녀석들은 탱커가 아니라 딜러야.’

‘이번에는 네가 틀렸다, 무일! 딜러는 저 멀리서 찔끔찔끔 쏘는 녀석들이다!’

한유일은 착각하지 말라는 어조로 가르치듯 말했다.

하지만 한무일의 반격에 말문이 막혔다.

‘그건 원거리 딜러. 네가 죽인 녀석들은 근거리 딜러.’

‘근거리라고? 아! 자살부대?’

‘아니. 말 그대로 가까이에서 피해를 주는 역할이야.’

울트라몬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걸 쳐다보고 있는 공격대에선 괴수가 무척 화났다고 여기며 바짝 긴장했지만.

자신들을 한 방에 끝장낼 ‘전멸기(全滅奇)’라도 준비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런 거 없다.

그런 대단한 기술은 한세리와 한유나의 능력 밖일뿐더러, 녀석들이 전멸해버리면 대단히 곤란하다.

이겨줘야 하는데 역으로 전멸이라니?

엘퍼러의 목적은 ‘유혹’이다.

『해치지 않을 테니, 어서 와!』

지구의 괴수는 만만하니 걱정하지 말라고.

한유일은 억지로 수긍하며 다시 울트라몬 조종에 집중했다.

조종이라고 해도….

튼튼한 탱커를 손으로 툭툭 건드려주는 게 전부라서 무척이나 지루했지만.

심심해서 딴 것 좀 해보려 해도,

‘안 돼!’

‘...해도 되는 게 도대체 뭔데?’

‘그, 글쎄…?’

< [56화-2] 레이드이긴 한데…. > 끝

ⓒ 파르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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