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화-1] 레이드이긴 한데... >
[56화] 레이드이긴 한데….
학명: 옥황사제(사후세계의 제왕)
서식지: 영혼석
특징: 영혼을 수집할수록 마법이 강해진다.
위험도: 8종 특수
비고: 전천후 대마법사의 힘
***
슈퍼월드, 그 원주민들이 ‘진짜 지구’라고 부르는 세계에서 ‘가짜 지구’로 넘어오려는 숫자는 무려 3만 명에 달한다.
그중 대부분은 비전투원인 보조역할이지만, 여기에 포함된 약 900명의 인원이 전부 초능력자라는 걸 생각하면 절대로 무시 못 할 전력이다.
어디 그뿐이랴?
물자에는 핵미사일 같은 전략무기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이런 ‘힘’으로 침공은, 누워서 떡 먹기지!
“서세진은 생각이 있는 건가?”
이 옥토에 핵미사일 같은 걸 떨어트릴 생각마저 하고 말이다.
녀석 때문에 ‘만년 이인자’라는 불명예스러운 호칭을 10년째 달고 있는 ‘최상급 초능력자’ 사내가 중얼거렸다.
비슷한 시기에 똑같이 괴수의 침공을 받았지만, 무능해서 막지 못한 ‘또 다른 지구’ 행성.
우수한 자신들이 지배해주는 편이 이곳 원주민들에게도 행복이리라.
복종의 대가는 보호.
오랜만에 괜찮은 식민지가 ‘또’ 추가되는 것이다.
탱커 2위, ‘페이트’는 그날이 멀지 않았다고 확신했다.
“그보다 실종된 애인을 생각하는 게 어때?”
“...벌써 보름이 지났다. 장미래를 찾기 위해 이번 원정의 선발부대에 뒤늦게 지원하긴 했지만, 슬슬 마음의 정리를 해야지.”
“실컷 따먹고 버리기냐.”
“또 그 소리냐, 엘빈. 뭐, 네가 장미래를 짝사랑했다는 건 안다만.”
“빌어먹을! 내가 탱커였다면!”
비단, 이 두 남자만의 불우한 사정이 아니다.
전반적으로….
전투능력이 빈약한 ‘여성 힐러’들의 실종이 잦았다.
자기 침실에만 있던 초능력자들이 사라졌다. 심지어, 남자친구와 뜨거운 열락(悅樂)을 보낸 후에 샤워장에 들어갔다가 없어진 경우도 있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일까?
만약, 이곳에 프로사냥꾼이 있다면 간단히 답해줬을 것이다.
『카멜레혼에게 찍혔네~.』
...라고 말이다.
우습게도, 이 괴수는 ‘슈퍼월드’에도 있었다.
그저 행동패턴이 너무 달라서 눈치채지 못하고 있을 뿐.
【카멜레혼 / 7종 보통】
영체(靈體)로 활동하는 괴수다.
즉, 유령 도마뱀!
보호색으로 몸을 감추는 능력은 괴수 중에서도 으뜸이다. 여기에 물질을 투과하는 능력은 도시방어를 어렵게 한다.
어디 그뿐이랴? 첨단무기로 무장한 군대든 사냥꾼이든 그냥 넋 놓고 손가락만 빨아야 하는 최악의 침략자!
그런 카멜레혼이 주로 하는 짓은 ‘아리따운 처녀 납치’다.
혀로 날름 당겨서 단숨에 삼킨 후에, 함께 벽을 투과해버린다!
“이곳, 가짜 지구에도 초능력자가 있는 걸까?”
“흠. 순간이동을 쓰는 변태이려나…?”
슈퍼월드는 ‘몬스터’의 소행으로 보지 않았다.
그런 지능범은 ‘인간’뿐이란 게 그들의 공통된 판단이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다는 걸 누구나 알 수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들은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왜냐?
무려 100년 동안 ‘멍청한 괴수’만 봐왔으니까!
흔하디흔한 RPG 게임에 등장하는 ‘경험치’들처럼, 내가 강해지고 준비될 때까지 얌전히 기다려주는 녀석들만 봐왔다. 그런 세계에서 살아왔다.
그 편견과 상식은 말처럼 쉽게 깨지지 않는다.
생각해보라!
전봇대에 오줌 싸지르는 저 똥개가, 사실은 나보다 똑똑한 현자(賢者)라고 한다면 당신은 쉬이 믿겠는가?
슈퍼월드 주민이 생각하는 괴수가 딱 그랬다.
“쯧쯧! 동료를 의심하는 건 좋지 않거늘!”
“하지만 어쩔 수 없지. 현실인데.”
7종 괴수 카멜레혼의 취미활동으로 인하여, 침략자인 슈퍼월드 진영은 시작부터 내부분열의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가짜 지구에는 ‘초능력자’가 없기 때문이다.
최근에 합류한 ‘엘프’라는 마법종족이 있긴 했지만, 순간이동 같은 마법을 엘프가 간단히 쓸 수 있었다면 현재처럼 비좁은 섬에 갇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이번 실종사건은 ‘동료’의 소행.
여성편력이 극에 달한 변태 초능력자가 벌인 짓이란 점증적 결론이 나왔다.
그런고로….
『카멜레혼은?』
여전히 들키지 않고 ‘아리따운 인간 암컷’을 수집 중이었다.
울프남처럼 인간 여성을 납치해서 번식의 수단으로 쓰는 괴수도 더러 있지만, 카멜레혼은 그녀들을 모아다가 애완동물처럼 기른다, 그냥.
먹이를 주고, 안 예뻐지면 치운다.
인간이 애완동물을 대하는 태도와 비슷하다.
길거리에서 예쁜 고양이와 강아지를 주워서 기르듯이 ‘미녀’를 납치한다.
“순간이동과 투명 초능력자들의 알리바이는 대체로 청렴결백해.”
“수행원 중에서 초능력을 쓸 수 있는데 감춘 게 아닐까?”
“현재로써는 그게 가장 신빙성 높긴 한데….”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으니 뭐든 게 어긋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된 것도 어쩔 수 없다.
『교감』
꼭 계약이 아니더라도, 괴수는 미녀의 머릿속을 훑으며 나날이 똑똑해진다.
주로 남성이 사냥꾼을 하는 이유.
괴수가 거들떠보지 않을 만큼 ‘매력 없는 여자’가 아니라면 괴수와 미녀의 접촉을 최대한 차단하는 게 좋다.
안 그러면?
괴수가 인간의 머리 꼭대기에 선다.
그 뒤로는 1종이고 8종이고 할 것 없이 상대하기 대단히 힘들어진다.
하물며 이번 공격은….
이 미녀납치분야의 ‘대가’였다.
【카멜레혼 / 7종 보통】
갖춘 능력도 납치에 특화되어 있는데, 여기에 인간보다 똑똑해졌고, 슈퍼월드 진영의 고급정보를 전부 꿰차게 됐다.
이런 녀석을 무슨 수로 막는단 말인가?
명탐정을 모셔 와서 이번 실종사건의 수사를 맡기더라도 ‘이건 인간의 소행이 아니야!’라는 지극히 상투적인 대답뿐이 못할 것이다.
이것이 편견.
슈퍼월드의 카멜레온은 ‘하급 몬스터’로 분류되어 있다.
자신의 장기를 전혀 활용하지 못하고, 초능력은 카멜레혼의 영체(靈體)에 너무나 쉽게 치명상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짐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약해빠진 ‘카멜레온 몬스터’가 이런 성과(?)를 낼 거라고는.
(공격대장님! 경치 구경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무슨 일이 또 터졌나.)
(역병입니다! 외계 역병이 번지고 있습니다!)
(역병? 우리는 신성력으로 보호받고 있어서 괜찮다고 호언장담한 게 바로 얼마 전으로 아는데, 무슨 얘기지?)
차원을 넘으면서 생긴 불가사의한 힘.
죽지만 않으면 ‘원래대로 회복되는 능력’이 생긴다. 초능력자와 일반인과 관계없이 말이다.
물론, 환자였던 사람이 차원을 넘는다고 아픈 몸이 회복되진 않는다. 그저 현 상태를 유지할 뿐. 호전되지도 않고 악화하지도 않는...
그런 맹점이 있긴 했지만, 슈퍼월드에서는 이렇게 불렀다.
우리에게 승리를 가져다줄 힘.
모든 차원을 지배하라고 ‘신에게 선택받은 인류’에게 내려진 능력이라고 해서,
『신성력(神聖力)』
회귀본능은 딱히 한 차원만 편애하는 능력은 아니었지만.
슈퍼월드에서는 편하게, 듣기 좋은 방향으로 해석했다. 자신들의 침략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란 정치적인 이유도 끼어있다.
아무튼, 그 가호는 분명하다.
해외로 갈 때도 전염병과 풍토를 걱정하는 게 정상인데, 무려 차원을 넘고도 그런 걱정이 없다는 것은 대단한 강점이다.
한데, 역병이 번지고 있단다.
(대단히 위협적인 병입니다! 그 병에 걸리면 초능력을 잃습니다!)
(뭐…?)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초능력을 잃습니다!)
몸이 아프거나 한 건 아니다. 하지만 영문도 모른 채 초능력을 못 쓰게 된다는 건 죽음보다 더한 가혹한 처사다.
그들의 공통점은 ‘환자’와 접촉했거나 친분 관계였다는 연결고리뿐.
이 ‘환자’라는 호칭도 갑작스럽게 붙인 것이다. 여태까지는 ‘여행 스트레스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으로 취급해왔다.
하지만 이젠 명백해졌다.
이건 초능력자에게 치명적인 ‘전염병’이 확실하다!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거늘!)
슈퍼월드는 수많은 차원을 침공했고 점령해왔다.
자신들 차원의 몬스터를 10년 만에 밀어낸 후에, 그 강력한 초능력으로 다른 차원을 넘봤다. 그리고 정복했으며 식민지로 삼았다.
하지만 그 어느 때도 이런 적은 없었다.
초능력은 막강했으며, 그 어떤 인류나 행성도 그들을 막지 못했다.
(그래서 문제입니다. 원인을 전혀 알 수 없습니다, 공격대장님.)
(알아내! 여기서 막힐 순 없다!)
슈퍼월드는 ‘가짜 지구’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몬스터월드의 존재를 파악하고 있었다. 초능력 덕분에 그만큼 연구할 여유와 기술이 있었다.
당연히 그들의 최종목적은 ‘몬스터의 고향행성’이다.
목성 크기의 어마어마한 옥토!
여태까지는 힘이 부족하다고 판단되어 미루어왔지만, 서세진을 비롯한 우수한 초능력자들이 대거 가세한 현재는 승산이 충분했다.
하지만 그전에….
시험 삼아 그보다 약한 ‘가짜 지구’를 선택했다.
그랬는데 역병이라고?
여성 초능력자들의 실종도 그렇고, 이건 발목이 잡히는 수준을 한참 넘어섰다.
(공격대장님도 조심하십시오.)
(나는 탱커다.)
그것도 세계 2위의 탱커.
서세진만 없었으면 최고로 불렸을 인류의 영웅!
페이트는 해서 좋을 것 없는 뒷말을 삼켰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부하는 생략된 내용까지 똑똑히 알아들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전염성이 여자보다 남자에게 빠릅니다. 그리고 탱커를 가리지 않습니다.)
(그런….)
탱커의 방어력은 절대적이다.
어떤 초능력을 가졌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통은 초고속비행기와 전면충돌해도 멀쩡한 자들을 ‘탱커’로 칭한다.
그 외에는 ‘딜러’와 ‘힐러’ 그리고 ‘서포터’로 나뉜다.
『서포터』
몬스터 레이드에 전혀 도움이 안 되거나 미미한 초능력을 가진 자들.
잔심부름꾼으로 통한다.
그런데 그런 서포터 중 하나가 이 ‘역병’의 존재를 밝혀냈다. 몰랐다면 그 피해는 더욱 빠르게 확산하여 전멸했을지도 모른다.
그 서포터의 초능력은 ‘생명체의 몸을 훑어보는 힘’이었다.
(심장에 종양 비슷한 시커먼 무언가가 생긴답니다.)
(...공기감염인가?)
(아직은 모릅니다. 다행히, 서포터 중에는 이 종양을 제거할 수 있는 가진 자가 있습니다. 심장과 완전히 결합한 후라면 늦지만, 초기라면 때어낼 수 있습니다.)
(서포터 주제에 제법이군.)
말은 그렇게 했지만, 발걸음은 무척 빨랐다.
초능력을 잃은 삶?
상상하기도 싫다.
그래서 페이트는 실종자 수색을 겸한 지역탐사를 중단하고, 최정예 5인으로 구성된 ‘임시파티’에 철군을 명령했다.
당연히 그런 그는 볼 수 없었다.
멀찍이서 이들 5인을 감시하는 눈길을.
“서포터라…. 생각지도 못한 복병이군.”
엘퍼러는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뱀페스트 감염으로 간단히 끝낼 수 있으리라 여겼는데, 초능력자는 탱커와 딜러, 힐러로만 구성된 게 아니었다.
주류가 있으면 비주류도 있는 법.
괴수의 ‘공격’을 받으면 초능력을 잃는다는 점에서 착안한 기습이었다. 뱀페스트 감염도 넓게 해석하면 공격에 해당하니까.
일찍 발각된 게 조금 아쉬웠다.
나흘만 더 버텼으면 ‘최초의 보균자’가 모든 남성 초능력자를 전멸시켰을 텐데.
‘그래도 충분히 많은 숫자를 심었다.’
이 전략은 한유일의 협찬이 주효했다.
전쟁터에서 더욱 성 욕구가 활발해진다고 하지 않던가?
그 점을 콕 찌르고 들어갔다.
엉덩이가 무척 가벼운 외계인 미녀를 선별해서 ‘흡혈’했다.
송곳니 박기 싫지만…. 대의(大義)를 위해서, 라고 비장감 있는 대사를 읊었던 ‘뱀페스트 왕’의 희생과 노고는 생략하기로 하자.
뱀페스트 ‘알’은 해일처럼 빠르게 확산했다.
“사랑은 역시 위대하군.”
육체적인 사랑!
경국지색(傾國之色)이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리라.
...여기에 써도 되는 사자성어가 맞나?
아무튼, 2단계로 넘어갈 차례다.
< [56화-1] 레이드이긴 한데... > 끝
ⓒ 파르나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