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화-4] 사냥의 정석 >
‘뭐지…?’
홍길동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자신이 어째서 베였고, 어째서 쓰러졌으며, 어째서 죽어가는지를.
오른손의 에쏘드로 상단 찌르기를 시도하면서 왼손의 폴리검은 밑에서부터 위로 올려 베기를 했었다.
쌍검(雙劍)의 진가!
하지만 그 모든 공격은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우선, 육체적인 능력에서 극심한 차이가 있었다.
홍길동은 스스로 ‘눈에 안 보일 정도로’ 빠르게 움직였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으나, 엘퍼러의 ‘흡혈귀 눈’에는 느리고도 느렸다!
“대화는 나중으로 미루지.”
“잠…!”
잠깐이라고 말할 틈도 없이 목이 떨어졌다.
그 순간, 홍길동의 영혼은 엘퍼러의 이마에 박혀있는 ‘영겁의 감옥’에 빨려 들어갔다. 생포해서 대화를 들어보는 건...
나중으로 미뤘다.
영혼석 안에서 얼마든지 청취 가능하니까.
굳이 살려둬서 후환을 남겨두는 우를 범할 생각은 없었다. 탈출 확률이 1% 내외일지라도.
‘실수는 한 번이면 족하지.’
다윙 밀리언. 그자가 ‘자살’할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
물론, 본인도 죽을 의도는 눈곱만큼도 없었을 것이다. 그저 ‘슈퍼월드 차원이동’이 괴수에게 대단히 위험하다는 걸 몰랐을 뿐.
그렇다고 후회할 정도인 건 아니다. 사소한 아쉬움?
<이히히! 새 영혼이…. 수컷이네. 쳇.>
곧바로 찬밥신세가 된 홍길동의 앞날은 썩 밝진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거기까지 신경 써줄 의리는 없으리라.
유럽에서 문제를 일으키던 ‘외계인’을 순식간에 토벌한 엘퍼러는, 곧바로 오스트레일리아로 돌아가서 잠복근무에 들어갔다.
하는 일이라고 해봐야 정황을 훑어보는 정도.
“일망타진하고 싶은데….”
아직, 슈퍼월드의 본진이라고 할 수 있는 인원이 안 넘어오고 있었다.
다 넘어오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 절반.
공격대가 최적화되기 이전에 낚아챌 생각이다.
예를 들어, 딜러나 힐러만 있는 타이밍에 자른다든가, 하는 식으로.
(선배. 눈치채고 포기하지 않을까?)
선지혜가 안타까움을 듬뿍 담아서 말했다.
한바탕 싸우길 바라는 그녀는, 원정대 초기부터 삐꺽 대는 초능력자 진영이 불안했다. 그 불안의 이유가 좀 유별났지만.
엘퍼러는 놈들이 어떤 선택을 하든 상관없었다.
‘안 오면 쳐들어간다.’
차원이동 후에도 몸 성할 방법을 알아내는 즉시, 원정 갈 것이다.
시간은 지구의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는 오합지졸이지만, 지구의 ‘똑똑한 괴수’를 연구하기 시작하면 대단히 껄끄러운 상대가 될 게 자명하다.
그 시기는 그리 길지 않으리라.
충분한 정보만 주어지면 짧게는 1주일. 맨땅에 처박듯 정보가 현격히 부족한 현 상황대로 흘러가더라도 한 달을 넘지 않으리라고 본다.
이유는?
인간이니까!
같은 인간이기에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아니. 녀석들도 바보가 아니니 곧장 몰려올 거다.)
차원이동기술을 개발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 녀석들은 오래전부터 ‘침략’을 준비해왔다. 그리고 그 절정기에 선발대를 보냈다.
역사를 보면, 순수한 이득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침략전도 있다.
그럼?
『폭발!』
쌓인 화력(火力)을 해소할 탈출구로 이용된다.
적을 박멸한 후에 불필요해진 ‘무력집단’인 초능력자가 계속 인류에 보탬이 된다는 것을 세계에 알릴 필요와 의무가 있었다.
당장 지구도 그렇다.
갑자기 괴수가 몽땅 사라진다면?
엘퍼러라는 ‘용사’는 잠정적인 위험인물, 언제 터질지 모르는 재앙일 뿐이다.
‘제발 은퇴하고 싶군.’
괴수가 없는 세상에서 배척받는 존재가 되더라도 상관없다.
그런 마음 혹 다짐은….
끔찍하게 살해된 아이를 본 경험이 있다면 누구나 한 번쯤 떠올릴 것이다.
『나는 어찌 돼도 좋으니, 이 미친 세상을 구원해줘!』
...라고 말이다.
예상대로, 슈퍼월드는 차원이동을 다시 개시했다.
다윙 밀리언 때문에 소모된 마정석을 보충하고, 쌍방향 통로가 원활하게 열릴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했다.
그 덕분에 알 수 있었다. 입수했다는 게 맞을까?
차원을 넘은 에쏘스트의 최후를.
“흐음…. 예상대로인가.”
숙주의 정신을 유지한 뱀페스트를 노블레스라고 부른다. 그리고 여기서 한술 더 떠서, 에쏘드를 겸비하면 에쏘스트.
에쏘드의 면역력과 뱀페스트의 불사성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괴수조차 질려버리게 할 능력이 완성되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엘퍼러 생각. 그리고 기준.
면역력도 좋고 불사성도 좋지만, 한 방이며 온몸이 난자될 ‘소형’은 역시 무리다.
『닷새』
슈퍼월드에 불시착한 ‘다윙 밀리언’이었던 ‘괴수’가 생존해있던 기간.
차원을 넘는 과정에서 소멸도 예상했었다.
그랬는데 일단은 성공!
하지만 그 뒤부터가 문제였다.
뇌에 종양처럼 생성되기 시작한 마정석의 존재! 그 탓에 완전히 바보가 돼버린 ‘신종 괴수’는 슈퍼월드를 상대로 대판 싸웠다.
(에쏘드와 뱀페스트. 그것들이 '다윙 밀리언'이란 인간과 합쳐진 것 같다.)
이 정보와 영상을 물어온 판타이탄의 판단이었다.
다윙 밀리언이었던 존재.
슈퍼월드에서는 ‘블레이드 킹’이라고 불렸던 최상급 몬스터.
오른손이 긴 칼날로 변하고, 얼굴에는 아가미, 등에는 날개, 팔뚝에는 지느러미, 어깨와 무릎 관절 등에는 송곳니처럼 휜 뿔이 달렸다.
포악하게 묘사한 악마 같다고 할까.
덩치는 5층 규모의 저층 아파트에 버금갈 정도로 컸었다.
(저렇게 변하는군….)
나도 차원을 넘으면 저런 흉측한 모습이 되는 걸까?
실험해보고 싶진 않았다.
아무튼, 멍청한 ‘블레이드 킹’은 날개가 장식이란 듯이 쭉 지상에서 싸웠다. 그리고 정말로 한 놈(탱커)만 팼다!
그럼에도 넷이나 지옥의 길동무로 삼은 건 확실히 ‘능력 상승’이 있었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거기에 호응하고 싶진 않았다.
『초능력자 500명.』
블레이드 킹을 토벌하는데 들어간 자원이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녀석들의 초능력자 숫자와 수준도 무시 못 했다.
엘퍼러가 무턱대고 넘어가면 어떻게 될까?
다윙 밀리언과 마찬가지로 ‘바보’가 돼서 ‘블레이드 킹 2세’가 된다면?
몇 시간 더 버티겠지만 결국은 토벌될 것이다.
인간도 아닌 괴수의 이름으로.
“해결책은 영혼석뿐이려나…?”
머리에 마정석이 생기지 못하도록 영혼석의 비중을 높이는 것이다!
방법은 역시 많은 영혼을 수집할 것!
하지만 그전에 슈퍼월드가 먼저 들어와 줬으면 한다. 회귀본능이란 사기적인 효과를 받겠지만, 수천 명의 초능력자를 상대하는 것보다는 낫다.
그 개개인은 정말 보잘것없다.
그러나!
다양한 초능력이 결합하여 정말 기상천외한 효과와 성능을 불러들일 수 있다.
『조합』
『콤보』
게임으로 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물 마법 후에 전기 마법을 쓰면 ‘더 큰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식으로. 아니면 공간이동마법으로 근접 딜러를 신속하게 붙인다거나?
이처럼….
한 가지 능력에 특화된 초능력자는 개개인은 결함이 있지만, 서로 그 부족한 부분을 메꿔주며 엄청난 상승효과를 부른다.
그래서 엘퍼러도 방심하지 않고 준비 중이다.
그의 사전에 ‘방심’이란 단어가 없긴 했지만, 최근에 이래저래 망설이다가 실수한 게 많으므로 신중을 기했다.
『어떻게? 뭘 준비해?』
간단하다.
추종자들로 ‘공격대’를 짜는 것이다.
이미 그 효과는 울프남 토벌로 입증됐다. 아니, 그 이전부터 ‘9종 괴수’의 위협이란 형태로 검증된 사실이다.
되도록 안 쓰고 싶지만.
엘퍼러는, 전 세계적으로 날뛰었던 울프남 대란(大亂)을 단시간에 토벌했다는 업적을 새우긴 했다. 하지만 비난 여론도 꽤 됐다.
남의 평가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편이나….
‘양심적으로 너무하긴 했지.’
예로, 도끼토끼가 남아메리카 대륙에 추가로 ‘초대형 당근’을 다섯 개쯤 그려 넣었다. 상대적으로 작은 것까지 합치면 훨씬 더 된다!
어디 그 당근애호가만의 잘못일까?
늑대를 한꺼번에 쓸어버린답시고 숲과 초원, 호수를 쑥대밭으로 만든 8종 추종자들!
도시만 아니면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냥꾼들의 수렵활동에 차질이 생기면서 곧바로 시민의 불편함, 더 나아가 출산과 식량 수급이 삐꺽거렸다.
너무 강력해도 문제!
하물며, 여기서 초능력자와 붙는다면?
토지가 아니라 대륙이 가라앉을지도 모른다.
『사냥 vs 전쟁』
이 둘은 명백히 다르다.
울프남 토벌 때는 ‘사냥’이었다. 그것도 여유롭고 즐거운, 일방적으로 농락하는 사냥이었다.
하지만 초능력자 공격대와 맞붙는다면 이 여유를 부릴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왕의 명령이 있더라도 통제되지 않는다.
그건 엘퍼러도 마찬가지다.
괴수의 최우선으로 하는 목적은 ‘생존’이기 때문이다.
그걸 위협받는 순간,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자신의 모든 힘을 토해내리라!
“나의 태양이시여, 소녀는 이해가 안 돼요.”
오니오프 ‘사유리’가 고개를 갸웃했다.
모든 추종자를 대표로, 그녀가 자신들의 왕에게 질문한 것이다.
어째서 이런 합동훈련이 필요한 걸까, 하고.
“효율적으로 싸우기 위해서.”
함께 싸운다는 게 그리 못마땅할까?
추종자는 아무리 모아도 ‘용사파티’ 같은 건 무리일 것 같았다.
두셋을 묶어서 한 팀으로 짜는 게 한계.
그 이상이 된다면 정말 엄청난 상승효과를 불러올 테지만, 이 괴수들은 동족끼리도 협력을 잘 안 했다.
예외가 있다면 다미호.
구미호는 통솔력 있는 여군주임이 분명하다. 그녀의 명령이면 모든 다미호가 일사불란하게 정확한 공격을 한다.
문팽이도 그런 점에서는 꽤….
권태롭게 살아가는 저 어느 면모에 충성 받을 구석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성질』
이런 배부른 투정은 엘퍼러가 잘 몰라서 그렇다.
왕마다 ‘특징’이 있다
역사적으로, 전제군주제의 나라들은 ‘어떤 왕’인가에 따라서 통치방식이나 전체적인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지지 않던가?
그건 ‘괴수의 왕’도 마찬가지다.
다른 왕이 보기에는….
『인간형 암컷 괴수』
이 조건만 충족하면, 능력과 종족을 불문하고 복종하게 하는 ‘엘퍼러’가 진짜 사기였다. 심지어 왕족인 ‘오니오프 공주’와 ‘다미호 여왕’마저 따르지 않는가!
존재해선 안 되는 왕.
그런 왕께서 한숨을 내쉬었다.
추종자들이 말을 안 듣는 건 아니다. 역으로 순종하는 편이다. 하지만 ‘순종적인 요조숙녀’를 떠올리면 곤란하다.
그녀들은 괴수.
아무리 아리따운 외모를 하고 있어도 이건 변치 않는 진실이다.
되는 부탁이 있고, 안 되는 명령이 있다.
<이히히! 나의 숙주, 나의 황제, 나의 사랑! 차원이동을 한 파동이 감지됐어!>
<...드디어 이빨을 드러낸 건가.>
<몽땅 보내줘! 특히 여자로. 가슴 크기는 따지지 않아!>
가더발트라고 불렸던 정령, 세계에 단 하나뿐인 8종 괴수, 옥황사제 ‘에필로드 프롤로드’가 흥분하며 말했다.
확실히….
조금 전부터 미약하게나마 [예감]이 잔잔하게 울리고 있었다.
이게 얼마 만이야?
정말 오랜만에 찾아온 ‘위기’였다. 쥐꼬리만큼의….
그래도 완전히 먹통만 아니면 [예감]의 ‘효과’는 충분히 발휘된다.
마침내 사냥꾼의 진가가 발동된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괴수의 [예지]가 곁들어지며 완전무결해졌다.
“슬슬 가보실까.”
모든 초능력자가 넘어오고 정비가 끝난 후에는 늦다. 선지혜가 돕겠답시고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을 가라앉히기 전에!
지금처럼 절반쯤 있을 때가 적기다.
비겁하다고 하지 말길!
엘퍼러는 전자오락에 나오는 ‘중간 보스’나 ‘최종 보스’가 아니다. 한 자리에서 가만히 기다려줄 의리 따위는 없다.
그리고….
나는 혼자.
너희는 다수.
비겁을 논할 거면 그 반대라고 할 수 있다.
‘무일. 네가 왜 혼자냐! 나도 있다!’
잠자코 있던 한유일이 핀잔줬다.
...그렇군.
서로 대등하다고 해두자.
< [55화-4] 사냥의 정석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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