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화-3] 사냥의 정석 >
빠르게 처리하기로 했다.
물론, 부자를 괴롭히는 일을 한다는 점에서 민중의 지지를 얻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예외적인, 일방적인 심판을 허용해선 안 된다.
『독주』
그 시점에 이미 ‘절대적인 선’은 아니다. 타인의 인생을 멋대로 재단하고 망가트리는 행위를 어찌 ‘정의’라고 할 수 있겠는가!
다만, 일시적인 자극은 될 수 있다.
멋대로 행동하는 ‘갑’의 만행에 제동을 거는 것이다.
‘이번에는 놓칠 이유가 없지.’
다윙 밀리언이 해외도 아니고, 차원을 넘는다는 선택을 한 점은 살짝 의외이긴 했다.
그래도 한 단체의 수장이고 정의로운 에쏘드 계약자인데, 자기 살고자 무책임하게 떠나버릴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런 자가 ‘궁극의 에쏘스트’라고 불린다니….
세계의 수준이나 기준점이 얼마나 낮은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홍길동이 마지막으로 목격된 곳은?”
“이탈리아는 이탈리아인데…. 로마? 아무튼, 그렇게 불렸던 곳입니다.”
늘 입는 드레스 대신 깔끔한 연미복 차림의 ‘실바니아 하이로드’가 대답했다.
그녀는 영국 왕녀에서 ‘엘퍼러 비서’로 완전히 자리매김했다.
선지혜는 역할이 겹친다며 대단히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최근에는 누가 바람을 넣었는지 ‘신부 수업’이란 걸로 바빴다.
그 교육내용은….
모르는 게 낫다.
“실비. 몸은?”
“이제 정말 괜찮아요.”
수척해졌던 몸이 차차 나아지면서 이전 모습을 되찾은 실바니아 하이로드. 고생한 흔적이 미미하게 남아있긴 했지만, 어딜 가도 절세미녀 소리 듣기에는 충분했다.
슬슬 계약을 주선해줘야 하지 않을까?
이왕이면 ‘여성형 괴수’ 외의 다른 고위괴수와 엮어주고 싶다. 여성형 괴수의 종류는 제법 되지만, 근본적인 약점이 있다.
『방어』
괴수치고는 연약한 편이다.
세계에서 가장 튼튼한 8종 괴수 ‘쉬임프’만 논외로 치면, 여성형 괴수는 정말 ‘종이 몸’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으리라.
괴수 특유의 강인함은 찾아볼 수 없다.
특히나,
‘앞으로 상대할 자들이 공격대라면.’
진영과 전략이 딱 오합지졸이지만, 그들의 초능력만은 진짜다.
아쿠버스는 그들이 ‘괴수의 힘’을 흡수했다고 했지만, 에쏘드의 면역과 폴리검의 흡수가 먹히지 않는 걸로 봐서는….
그 과정에서 변질한 게 아닐까?
그래서 성가시다.
정말 무시 못 할 만큼 강력하다. 슈퍼월드의 괴수들이 지리멸렬했다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멍청하다는 전제조건이 깔렸지만.
여성형 괴수는 그들의 초능력에 스치기만 해도 사망 확정이다.
“어디…. 초능력에도 끄떡없는 괴수 없나?”
당연히 있긴 하다.
선지혜가 보유 중이다. 그것도 둘씩이나!
【문팽이 / 9종 대형】
【배틀씹 / 8종 대형】
초능력자들이 무더기로 덤벼도 어떻게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덩치와 파괴력을 겸비한 궁극의 괴수!
지구에서도 바로 며칠 전까지 ‘3대 재앙’으로 불렸던 초고위 괴수다.
선지혜의 제어를 받기 시작하면서 이 목록에서는 제외됐지만, 그 덩치와 능력이 어디로 사라지는 건 아니다.
확실한 건….
슈퍼월드에도 문팽이와 배틀씹은 있다.
다만, 너무 멍청해서 온종일 얻어맞다가 죽을 뿐!
‘진짜 게임도 아니고….’
호랑이가 벼룩(탱커) 한 마리만 쳐다보는 꼴이다.
아무튼, 초능력자의 전략과 전술은 하찮지만, 초능력만은 웃고 넘길 수준이 아니란 점만은 확실하다.
여기에 대한 대책으로는 ‘튼튼한 괴수’가 필수.
덤으로 슈퍼월드로 넘어가도 멀쩡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깔렸다.
“다윙 밀리언이 살아있으려나….”
녀석을 괴수로 본다면 ‘소형’에 해당한다.
그 이유나 원인은 모르겠지만, 슈퍼월드에서는 ‘소형 괴수’가 살 수 없다. 엄밀히 말하면 넘어가질 못한다.
그래서 예상하지 못했다.
다윙 밀리언이 차원이동문을 탄 것은 ‘자살행위’였으니까.
‘살아있다면 곧 밝혀지겠지.’
슈퍼월드에서 얌전히 있을 것 같지 않다.
어쩌면….
이성을 잃고 완전히 다른 생명체가 되어있을지도 모른다.
기적적으로 곱게 넘어갈지도 모르지만, 그게 생각처럼 간단했으면 엘퍼러가 먼저 시도해봤을 것이다.
이미 차원이동마법은 완성됐으니….
남은 관건은 안전성이다.
만약, 다윙 밀리언도 ‘세계의 이면’에 좀 더 다가간 고급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다면 차원이동은 재고했을 것이다.
그만큼 가망이 낮다.
이왕이면 살아서 좀 날뛰어줬으면 하지만.
죽기 전에 지구인으로서 지구에 보탬이 되는 짓을 하고 작별하면 좋잖은가?
“저기에 뤼팽 2세가 있대요, 오빠.”
“흠. 그래.”
하는 일은 비서고, 호칭은 오빠!
이 때문에 ‘목포의 절세가인’들 사이에서 논란이 됐다는 모양이지만, 정작 당사자는 모르고 있었다.
추종자들은 그러려니 했다.
호칭이야 뭐가 됐든 통하기만 하면 된다는 태도.
사소하다면 사소하지만…. 세계의 위기냐고 묻는다면 또 위기일 수 있는 ‘오빠’ 문제는 어영부영 일단락됐다.
그리고 현재.
아리따운 백발의 아가씨는 비서로서 꽤 충실히 임하고 있었다.
“잡긴 잡아야 하는데….”
홍길동의 공간이동마법은 대단히 독특하고 파격적이었다.
고대의 전설이 거짓말이 아니었다.
『동해 번쩍! 서해 번쩍!』
녀석은 ‘해안’을 끼고 있는 장소라면 어디든지 빠르게 이동할 수 있었다.
풍수지리설(風水地理說)을 응용한 마법!
남자가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이란 시점에, 이건 마법보다 ‘마술’일 확률이 높았다. 고도의 계산과 숙련을 요구하는 기술.
전설에도 마법이라고 하지 않았다.
그 대신,
『도술(道術)』
신묘한 기교라고 명시되어 있다.
여기에 뛰어난 무예(武藝)와 지혜(知慧)를 겸비하면서, 단시간에 유럽 전체를 농락하는 좀도둑으로 유명세를 탔다.
생포는커녕 처치하는 것조차 난해한 적!
바다를 낀 홍길동은 ‘동해 번쩍! 서해 번쩍!’하는 까닭에, 고위수호자조차 따돌리고 완전 생뚱맞은 장소에 재등장할 수 있다.
녀석에게 약점이 있다면?
바다가 근처에 없으면 그 사기적인 공간이동능력을 쓸 수 없다!
‘문제는 그런 도시가 없다는 거지.’
괴수의 침공으로 모든 도시가 해안을 끼게 됐다.
4면이 뻥 뚫린 위치보다는 배수진(背水陣)이 방어하기 쉽다는 이유 외에도, 항공수단이 막히면서 자연히 해로(海路)를 애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이건 필연.
홍길동이 날뛰기 좋도록 최적화됐다고 할 수 있다.
“오빠. 그를 막을 방법이 있을까요?”
“...있지. 있고말고.”
성가신 능력이긴 하지만, 완전무결한 건 아니다.
바다가 있어야 한다는 점.
다시 말해, 바다만 없으면 독 안에 든 생쥐나 다름없다.
“아직 확실하지 않아요. 어쩌면 이 또한 연막일 수도 있어요. 정보의 출처가 어디인지도 의심스럽습니다.”
바다가 있어야만 공간이동을 할 수 있다?
그런 구체적인 조건을 단시간에 알아냈다는 게 이상하지 않은가!
“괜찮아.”
“네?”
“괜찮다고. 한 번 보면 따라 할 수 있어. 녀석이 마술로 도망치면, 난 비슷한 마법으로 추적하면 그만.”
“...흉내요?”
“차원이동마법보다 쉽다면.”
3차원과 4차원의 차이다. 뭐가 더 난해할지는 생각해볼 것도 없다.
이탈리아의 ‘로마’라는 폐허에서 마지막으로 보았다고 한다. 거긴 해안도시도 아닌데 무슨 연유로?
홍길동 스스로 약점을 부인했다.
그렇게 해석해도 될까?
“...아니. 그랬다면 그이 말이 나왔을 리 없지.“
동해 번쩍! 서해 번쩍!
그냥 사방팔방에서 깜짝깜짝 등장한다고 해도 됐다. 그런데도 굳이 바다를 들먹였다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뜻이리라.
지형적 제약은 확실하다.
조상들이 남긴 격언이나 민담치고 완전한 거짓은 없다는 걸, 우리는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홍길동이라고 해서 다를까?
엘퍼러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단언할 수 있다.
하지만 ‘해안도시’가 발달하는 바람에 녀석은 ‘죽일 수 없는 바람’이나 다름없는, 신출귀몰한 상태가 됐다.
그래서 놈도 방심했다.
‘복원수술이라니….’
홍길동이 부자들은 괴롭힌 이유다.
녀석의 행동에 감화한 의사들이 그를 도와주기로 되어있다. 당연히 이 고급정보는 괴수대응연맹에서 나온 게 아니다.
『가상세계 하느님, 판타이탄』
엄청난 처리능력으로 ‘홍길동’을 찾아냈다.
녀석의 목적지는 프랑스의 수도 파리. 그곳의 어느 한적한 병원.
몬스터월드의 마녀에 음모 의해 고자 된 마법사가, 다시 한 번 기회를 얻고 세상에 포효하길 갈망했다.
그 과정이 썩 유쾌하진 않았다.
언어를 배제하고 모든 걸 폭력으로 해결하려는 것도.
(엘퍼러! 녀석이 포착됐습니다!)
(이미 녀석 앞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신출귀몰한 홍길동이 ‘예정된 장소’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보고를 받은 직후였다.
대마법사의 기적이 이탈리아 로마에 떨어졌다!
바다가 ‘도주로’ 역할을 한다면?
아예 없애버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이탈리아 로마는 처음부터 바다는 코빼기도 안 보이는 내륙이었다.
그렇다면 홍길동은 어디서 나타난 걸까?
그 해답은 지하(地下)에 있다.
『영맥(靈脈)』
혹은 ‘용맥(龍脈)’이라고도 불리는 지하수로. 풍수지리설이나 기타 도술에서 절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요소다.
엘퍼러는 그걸 통째로 날려버린 것이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오직 마법으로.
예상이 틀렸다면 이번에도 홍길동은 도망칠 수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적중이었다.
다시, 여자와 잠자리를 가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로 부풀어 있던 ‘까마득한 고대인’은 빠져나갈 탈출로를 잃고 말았다.
“이건….”
“당신이 홍길동이란 자입니까?”
“...그러는 넌, 지구의 황제란 후레자식이겠군.”
홍길동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상황의 불리함이나 자신을 궁지에 몰아넣은 자가 엘퍼러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는 ‘기득권층’을 무조건 싫어하는 것 같았다.
고대의 소설에 나오는 ‘홍길동’이란 인물의 행동을 보면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그리고 생김새도 그럭저럭 준수한 편.
엄청난 미남이라고 서술한 것치고는 평범….
시대가 달라지면서 미남 기준도 달라졌으니 당연할지도 모른다.
“피차 바쁜 것 같으니 짧게 가지.”
마법으로 모든 걸 해결해온 것치고 드물게 에쏘드를 뽑아든 엘퍼러가 말했다.
딱히 멋이나 분위기를 잡으려는 의도는 아니다.
홍길동의 오른손과 왼손에 각각 들린 ‘에쏘드’와 ‘폴리검’ 때문이다. 그리고 방패는 놀랍게도 제트스키 보드처럼 밟고 있었다.
두둥실.
방패는 소형 호버크라프트 역할을 했다.
그 새로운 활용법에 한유일이 ‘해보고 싶다!’며 난리법석을 떨었다.
...그건 자유 시간에 알아서 해.
지금은 ‘잘난 인간’을 무조건 싫어하는 삐뚤어진 조상을 훈계할 시간이다.
“당신은 나를 기득권층의 앞잡이라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
“처지 바꿔 생각해봐. 흠. 이렇게 말해줘도 모르려나.”
개구리가 올챙이 적 생각 못 한다고 했다.
그건 홍길동도 다를 게 없었다.
나쁜 놈들을 타도한답시고 본인도 나쁜 놈이 된 최악의 선택. 악(惡)을 벌하기 위해 악(惡)이 된다는 황당한 논리.
대단히 언짢게 들렸던 홍길동은 말없이 돌진했다.
그리고 엘퍼러는 딱 한 걸음. 아니, 반걸음.
[반격]이 발동됐다.
< [55화-3] 사냥의 정석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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