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수처럼-229화 (229/287)

< [55화-2] 사냥의 정석 >

무일은 좀 어처구니없었다.

눈앞에 여자에게 경각심이 부족하다는 건 부수적인 이유다.

‘겨우 1종 괴수에게 헤매다니….’

슈퍼월드 인간들이 가진 힘을 떠올리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그 증거로 바로 눈앞에 ‘장미래’라는 ‘힐러’였다.

이걸로 확실해졌다.

초능력자들은 싸울 줄 모른다!

사냥꾼이 ‘군인’이라면 이들은 ‘민간인’의 범주에 있었다.

“당신은 저와 가주셔야겠습니다. 여기서 살겠다면 말리지 않겠지만.”

“인질…. 인가요…?”

“아닙니다. 그냥 포로입니다. 몸값을 협상하는 등의 얘기는 일절 오가지 않을 겁니다.”

엘퍼러는 분명히 확인했다.

괴수에게 상처 입은 초능력자가 ‘초능력’을 전혀 못 쓰는 것을.

하지만 여기에도 ‘규칙’이나 ‘조건’이 있는 게 분명하다.

‘그게 아니면 탱커의 여전한 방어력이 설명 안 돼.’

슈퍼월드의 외계인들은 최대한 은밀하게 활동한다고 한 모양이지만, 괴수와 술래잡기에 이골이 난 지구인에게는 ‘나를 봐주세요!’처럼 보였다.

이들의 위치선정은 나쁘지 않았다.

『오스트레일리아 대륙, 뉴질랜드』

대륙 본토였다면 금방 들켰겠지만, 녀석들은 남동쪽에 자리한 무인도(無人島)에 차원이동기지를 건설 중이었다.

살짝 우회한 덕분에 30분 늦게 발견될 수 있었다.

판타이탄에게 정보통신망을 전부 해킹당하지 않았다면 좀 더 시간을 벌 수 있었겠지만, 유감스럽게도 녀석들의 보안망은 구멍투성이.

비밀이란 없었다.

“어째서 공격하지 않는 거죠?”

엘퍼러 품에 순순히 안겨서 따라오는 장미래가 물었다.

그녀의 몸에 추적장치나 도청장치가 없다는 것쯤은 진즉 확인했지만, 굳이 답해줄 이유가 없었다.

선전포고, 본격적인 침략전쟁 이전에 붙잡았기 때문에 최대한 인간적으로 대해줄 생각이지만, 글쎄 어떨까…?

불친절한 그의 태도에 살짝 불안감을 느끼던 장미래.

그녀는 뭐라 한마디 하려다가 하늘에 떠 있는 거대한 비행체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거대한 바위가 하늘 위에 떠 있어!!’

염동력(念動力)인 걸까.

정말이라면 진짜 엄청난 힘이다.

SS급 초능력자 중에 염동력을 다루는 자가 있긴 하지만, 기껏해야 고층빌딩을 들어 올리는 정도다.

...그것도 별거 아니란 소리를 들을 수준은 아니지만.

눈앞에 비행체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고층빌딩 수백 개를 붙여놔도 저것보다는 작으리라.

“빠끔, 또 암컷을 주워온 건가.”

아쿠버스 ‘산드라미아 레미’가 엘퍼러를 물끄러미 보며 말했다.

당연하게도 장미래는 무슨 대화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는 여성형 괴수의 아름다운 나신에 압도되고, 독특한 신체적 특징에 놀랐으며, 끝으로 그 숫자에 까무러쳤다.

『별천지(別天地)』

그렇게밖에 보이지 않았다.

상의가 찢어지는 바람에 반라 차림이긴 했지만, 그래도 중요한 부위는 가리고 있는 장미래의 가치관에 혼란이 생겼다.

어째선지 옷을 입고 있는 자신이 잘못된 것처럼 보였으니까!

내가 정상이고 저들이 비정상이라고 단언하지 못할 만큼 그 숫자가 많았다. 그리고 헐벗은 자태가 너무나 자연스럽고 매력적이었다.

“라미아. 좀 살펴봐 줘. 젖이 나와.”

“빠끔. 암컷에게 젖이 나오는 건 당연하노라.”

“그게 아니라…. 애도 낳지 않았는데 젖이 나온다고.”

전쟁의 판도를 바꿀 만큼 중요한 사안은 아니다.

하지만 모르고 넘어가기에는 지나치게 찜찜한 것도 사실이었다.

“빠끔, 이 암컷에게서 동족의 악취가 나노라.”

“동족(同族)…?”

“빠끔, 그대가 말했던 초능력은 여기서 기인한 것 같노라. 슈퍼월드라고 불리는 차원으로 넘어간 녀석들의 힘 일부가 인간에게 스며든 걸지도.”

“호오~, 그게 가능해?”

“빠끔, 차원마다 다르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노라.”

차원마다 괴수의 성질이 급변하기도 한다는 건 이미 파악해뒀다.

극적인 예로, 몬스터월드에서 슈퍼월드로 이동한 괴수들은 ‘6종 날치 괴수, 볼트윙’보다도 멍청해지는 것 같다.

볼링공처럼 빌딩에 냅다 박아버리는 그 돌대가리보다도 훨씬!

“그러면 그 초능력이 봉인된 이유는?”

“빠끔, 지금부터 알아보겠노라.”

해부해도 되느냐는 질문에 안 된다고 단호하게 답해준 엘퍼러는, 포로 장미래를 아쿠버스 라미아에게 맡겼다.

하지만 그 과정이 마냥 수월했던 건 아니었다.

여자의 육감인 걸까?

안 끌려가려고 발버둥 치던 ‘외계인 초능력자’는 아쿠버스의 뿔에서 쏘아진 미약한 뇌전에 전기쇼크를 받고 기절했다.

미약하다고 했지만….

지구인이었으면 100% 사망이었을 고압 전류였다.

『회귀본능』

장미래는 이 덕을 톡톡히 본 것이다.

남의 차원을 무단침입한 불청객에게 ‘페널티’를 주지 않는 걸로 모자라 ‘버프’를 해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지구의 창조주가 눈앞에 있다면….

멱살 잡고 ‘너는 뭔 생각이냐!’라며 따졌을 것이다.

“이쪽도 좀 시간이 필요하겠군.”

일망타진을 위해.

지금이라면 아직 완성되지 않은 전진기지를 기습해서 손쉬운 승리를 따낼 수 있지만, 진정한 승리라고 할 수 없다.

게다가 현재는 엘퍼러 단독이다.

즉, 슈퍼월드가 준비 안 된 것처럼 지구도 ‘영 아니올시다,’였다.

그건 바람직하지 않다.

언제나 ‘엘퍼러’에게 의존하는 지구는.

그 엘퍼러가 잘못되거나 은퇴했을 경우를 대비하지 않으면 곤란하다.

‘무일! 다윙 녀석은?’

‘정리해야지. 하지만 귀찮게 됐어. 자기가 찍혔다는 걸 눈치채는 바람에…. 하기야 녀석도 프로사냥꾼이니 당연한 거겠지만.’

‘그게 문제가 돼?’

‘영리한 사냥감은 사냥꾼을 따돌리려 하지.’

하지만 ‘상상하는 무엇이든 가능한’ 대마법사에게서 도망칠 수 없다.

다윙 밀리언도 그 사실을 깨달았다.

그럴 경우, 보통의 사냥감은 동료를 끌어들인다. 따돌릴 수 없다면 힘을 모아서 사냥꾼을 역으로 치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수의 프로사냥꾼이 이 패턴에서 죽는다.

위기를 감지하는 [예감]이 극도로 발달한 프로사냥꾼이 덧없이 살해되는 것이다.

하지만 ‘다윙 밀리언’은 달랐다.

『홀몸』

그린포스라는 테러집단의 수장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는 혼자 움직인다. 자신의 부하들이 무슨 생각인지 아니까.

손이 부족해서 하나둘 동료를 늘려나가긴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신뢰하지 않고 도움을 바라지도 않는다.

다윙 밀리언의 사상.

그건 공감을 얻기 힘든 극단적인 결론이다.

세상에서 인류를 멸종시킨다니?

약한 타인을 지배하고 싶어하는 일반적인 악당과 다르다. 목적을 달성해도 물리적으로 얻는 게 없는 공허한 결말뿐.

“어째서 인류의 멸족을 바라지?”

결판을 내기에 앞서, 엘퍼러는 그에게 질문했다.

제주도에서부터 시작된 추격전은, 제주도에서 조금(?) 떨어진 인도네시아를 거쳐 오스트리아 본토와 뉴질랜드를 밟으며 끝났다.

이 무인도에 뭐가 있길래?

한창, 테러리스트 추격 중이던 엘퍼러가 하던 일을 멈추고 슈퍼월드의 동향을 살펴본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우연히 겹쳐져서!

...정말 우연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혼자서 모든 걸 처리해온 남자가 무슨 생각으로 슈퍼월드에 동조한 걸까?

‘그들은 인류가 아니라고 보는 건가.’

흔적이 끊겼다.

그린포스 본거지로 갈 줄 알았던 다윙 밀리언은 ‘이계’로 도망쳤다.

초능력자가 대세인 슈퍼월드로!

당연히 혼자 힘이 아니라 그들이 만든 차원이동문을 통해서 넘어갔다.

하지만 녀석이 이들과 한패인 건 아니다.

‘확실히 반칙이야.’

다윙 밀리언은 차원이동문을 관리하는 여인의 목덜미에 송곳니를 박았다!

공간이동은 그리 힘들지 않지만, 한 번 차원이동문을 열 때마다 마정석이 소모되기에 아낄 필요가 있다.

그런데 그 관리인을 말 잘 듣는 노예로 바꿨으니 어떻겠는가?

십수 명을 이동시킬 준비 중이던 차원이동문과 마정석은 겨우 ‘한 명’을 전송하는 데 쓰이고 말았다.

언제?

삼족호가 기습했을 때였다.

다윙 밀리언이 겁을 줘서 쫓아낸 ‘1종 괴수 호랑이’가 시선을 끌어준 틈에 차원이동문으로 접근한 것이다.

“괜히 시간을 준 건가.”

대마법사도 아닌 일개(?) 사냥꾼이 차원이동 할 줄은 예상치 못했다.

소설처럼, 갑자기 공간이 열리며 시커먼 구멍에 빨려 들어갔다는 설정은 아니었지만….

그렇기에 더욱 분했다.

슈퍼월드의 차원이동문을 탈취해서 도망칠 가능성도 상정해뒀어야 했다.

즉, 지구 내라면 언제 어디서든 사냥감을 추적할 수 있다는 안일함에 일을 그르친 것이다. 지구 내라면….

‘무일. 쫓아갈 거야?’

‘...예정이 어긋났어. 차원이동 하는 걸 막았어야 했는데.’

설마하니 슈퍼월드 초능력자가 이 정도로 전략전술을 모를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

그들의 강함은 둘째다.

친절하게 돌격하오는 적이 아니면 제대로 상대하지 못하는 오합지졸.

몰이 사냥으로 밀어 넣은 삼족호가 시선을 끈 그 짧은 사이에 다윙 밀리언은 이계로 도망치는 데 성공했다.

넘어가서 무사할 수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슈퍼월드로 넘어간 괴수는 바보가 되는 모양인데….”

엘퍼러가 슈퍼월드로 넘어가서 공격한다는 계획을 포기한 이유다.

호기롭게 넘어가서 ‘생각 없는 원숭이’가 돼버린다면 정말 최악의 결말이니까!

신중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다윙 밀리언은 그 사실을 몰랐다.

그저, 엘퍼러의 추적을 따돌릴 수 있는 유일한 최선책이라고 판단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건 일견 타당하다.

다른 수단이나 방법이 없다!

(엑시온. 기회가 되면, 다윙 밀리언이 어떻게 됐는지 정보를 수집해주십시오.)

(녀석을 걱정하는 건 아닐 테고. 확인인가, 소년?)

(그렇습니다. 에쏘스트가 슈퍼월드로 넘어가도 무사한지 확인하고 싶습니다.)

위안이긴 하지만, 일이 이렇게 꼬인 게 꼭 나쁜 건 아니다.

어차피 죽여야 할 흉악범을 활용할 수 있었으니까!

원흉을 뿌리째 뽑진 못했지만, 다윙 밀리언이 지구로 다시 귀환할 가능성은 매우 낮았다. 슈퍼월드에 엘퍼러보다 더 강한 존재가 없는 한은.

그리고 없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서세진』

본인 입으로 자신의 세계에서 ‘최고’라고 소개했다.

그 최고의 능력은 자신 아래.

즉, 슈퍼월드에는 엘퍼러보다 뛰어난 자가 없다. 단체로 움직인다는 변수가 있지만, 사냥꾼의 [예감]은 그럴 때 빛을 발한다.

하물며 그 공격대란 조직의 정신무장이나 전략전술이 민간인 동호회 수준이라면….

완전히 애들 장난이다.

다윙 밀리언이 바보만 안된다면 엄청난 파란을 불러올 것이다.

“...녀석은 잠시 젖혀둘까? 홍길동이란 괴도가 또 말썽이고.”

영국의 테러리스트 ‘셜록 2세’를 제거했더니 이번에는 ‘뤼팽 2세’가 등장했다.

물론, 그 뤼팽 2세는 단 한 번도 스스로 그리 칭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하는 행동들이 주위에서, 유럽에서 ‘홍길동’을 그렇게 불리도록 했다.

‘부자들의 돈을 훔쳐서 가난한 자들에게 뿌린다…?’

들리기에는 참으로 좋은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홍길동이란 인물은 전성기, 과거에도 이랬다는 고대의 기록이 있었다.

(도와주십시오! 엘퍼러! 뤼팽 2세를 도저히 막을 수 없습니다! 그자가 유럽에서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놈은 어둠의 지배자입니다!)

프랑스와 독일 국경 사이에서 발견되는 바람에 온갖 분쟁을 일으켰던 에쏘드.

그리고 추방자의 손에 들린 채 유럽 전역을 휘젓고 다니던 폴리검.

이 둘이 ‘홍길동’의 손에 떨어졌다!

당연히 이걸 저지한답시고 호기롭게 달려들었다가 참패를 맛봤다.

『나폴레옹 환생 - 루이스 보나파르트』

『베를린 성검 - 그람』

각각 프랑스와 독일을 대표하는 에쏘스트, 그리고 실세!

하지만 처참하게 발렸다.

에쏘스트에게는 마법이 일절 통하지 않지만, 홍길동이 본인에게 거는 마법까지는 아니다. 그리고 그 차이에서 오는 신출귀몰함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뤼팽 2세, 홍길동이라….’

< [55화-2] 사냥의 정석 > 끝

ⓒ 파르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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