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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수처럼-228화 (228/287)

< [55화-1] 사냥의 정석 >

파르나르 장편소설

괴수처럼 28

[55화] 사냥의 정석

학명: 삼족호(다리 3개 호랑이)

서식지: 나무

특징: 나무에 매달린 맹수

위험도: 1종 소형

비고: 자주 떨어집니다.

***

“으아아악!”

외계 행성 ‘지구’에 본거지를 건설 중이던 인부가 시커먼 그림자에 끌려갔다.

아무리 대비하고 조심해도 번번이 발생하는 살인 사건.

그 비명을 들은 SS급 초능력자 ‘엘빈’은 짜증 섞인 얼굴로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이번엔 또 뭐야…?”

임시막사 밖으로 뛰쳐나온 엘빈의 손에는 ‘활’이 들려있었다.

대단히 시대착오적인 무기지만, 최상급 마정석을 박아서 만들었기에 그 성능은 일반 활하고는 그 궤를 달리한다.

여기에 SS급 초능력자가 힘을 보태면?

엘빈은 이 활로 3년 동안 무수히 많은 공적을 쌓았다. 그리고 공격대에서, 세계에서 최상위권 ‘딜러’로 인정받았다.

딜러 순위로 따지면 15위쯤 했다.

세계에서 15번째로 ‘같은 시간에 더 큰 피해’를 준다는 뜻이다.

“혼자 앞으로 나가지 마!”

“...그러지.”

현장으로 달려가려던 엘빈은 묵직한 경고성에 발걸음을 멈췄다.

그는 딜러다.

공격에만 특화된 초능력자.

이계 행성에서 갑자기 ‘재생력’ 같은 능력이 생기긴 했지만, 그렇다고 괴수의 공격을 받고도 사지 멀쩡할 수준은 아니다.

까딱했다가는 영문도 모른 채 비명횡사할 수 있다.

“탱커인 내가 앞장선다!”

방패와 망치를 든 남자가 씩씩하게 말했다.

이계에서 생긴 ‘재생력’으로 가장 큰 힘을 발휘하게 된 역할이 바로 ‘탱커’였다. 애초부터 방어에 특화된 그들은 더욱더 단단해졌다!

탱커 서열 1위 ‘서세진’이, 그래도 조심하라고 진지하게 경고하긴 했지만, 이젠 정말 무서울 게 없는 탱커였다.

몬스터야! 올 테면 와라! 전부 막아주마!

...이런 마인드.

마찬가지로 최상급 마정석이 박힌 방패를 앞세우며 전진했다.

“신철호 씨. 너무 멀리 가지 마세요. 힐(heal) 거리가 안 닿아요.”

지팡이를 든 아리따운 여인이, 딜러 ‘엘빈’ 옆에서 저 멀리 앞서가는 탱커 '신철호‘를 향해 외쳤다.

만약, 사냥꾼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죽고 싶으면 혼자 죽어! 소리 지르면 어떡해!’라고 했겠지만, 이들에게 그런 친절한 충고를 해줄 지구인은 유감스럽게도 없었다.

이들은 침략자니까.

물론, 지구를 배신하고 빌붙은 동조자가 있긴 했다.

하지만 괴수를 극도로 두려워하는 ‘겁쟁이’인 그들은 이런 현장까지 나오지 않았다.

“하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장미래 양. 제가 누굽니까? 탱커 랭킹 3위! 철벽의 호랑이, 신철호입니다! 힐러와 적정거리쯤은 눈대중으로 늘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건 알지만요…. 여긴 저희 세계도 아니고….”

힐러 ‘장미래’가 우물쭈물 대꾸했다.

죽지만 않으면 누구든 말끔히 되살려낼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한 SS급 초능력자. 당연히 그녀가 든 지팡이도 범상치 않은 물건이었다.

하지만 이계에 온 이후로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했다.

‘재생력이라니…. 이건 도대체 뭘까요?’

팔다리가 잘려도 며칠이면 원상복구 되고, 한 방에 죽지만 않으면 무조건 산다.

마치, 자신들이 몬스터가 된 것처럼.

영문은 몰라도 좋은 현상이란 건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 탓에 힐러는 그 역할이나 중요성이 축소되고 말았다.

노예 딜러, 서민 탱커, 귀족 힐러.

정말로 계급이나 신분이 나뉜 건 아니지만, 이런 분위기가 늘 깔렸던 공격대의 ‘역할 피라미드 구조’가 흔들렸다.

얼마든지 공수가 가능한 딜러는 여전히 노예지만….

탱커와 힐러는 뒤집혔다.

공격대의 생존을 담당했던 힐러가 별 필요 없어진 탓!

늘 존중받던 장미래는 은근히 무시 받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언짢았다. 그래서 하루라도 빨리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또 도망친 건가.”

“이 행성의 괴수들은 겁이 많은 것 같군.”

“그러게. 한 자리에 머물지를 않아.”

신철호는 엘빈의 말에 맞장구치면서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한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고…?

위화감이 온몸을 쓸고 지나갔을 때였다.

“꺄악!!”

찢어지는 비명이 뒤편에서 들렸다.

그건 탱커 입장에서 그렇다는 뜻이었고, 딜러는 바로 옆에서 벌어진 일에 혼비백산할 수밖에 없었다.

“뭐, 뭐야?! 어느 틈에?!”

나무 위에 숨어있던 몬스터가 기습한 것이었다.

눈으로 찾기 힘들 만큼 빠르게, 힐러만 낚아챈 놈은 다시 나무로 숨어들었다.

툭.

방금까지 이곳에 ‘미녀 힐러’가 있었다는 증거물인 지팡이가 수풀에 떨어졌다.

최상급 마정석 5개가 들어간 유니크 아이템!

귀족인 힐러답게 쓰는 장비도 딜러나 탱커와는 격이 달랐다. 당연히 지금처럼 흙바닥에 버려둘 물건이 절대 아니었지만….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비싸고 희귀한 지팡이보다 더 중요한, 그 주인이 납치됐기 때문이다.

“망할 몬스터야! 장미래 양을 내놔라!”

“조심해! 무턱대고 쏘면 힐러가 맞을 수도 있어!”

“젠장!”

그들은 일이 참 공교롭다고, 운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게 전부 ‘괴수의 계획된 행동’이란 걸 언제쯤 깨달을까?

적어도 단시간은 아니리라.

고향 행성의 멍청한 몬스터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는, 단순하게 길들어졌다고 할까?

아무튼, 몬스터에게 납치된 힐러 ‘장미래’는 찾지 못했다.

그녀는 현재….

“엄마…. 훌쩍!”

팬티를 흠뻑 적시고만 장미래는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여기가 어딘지는 모른다.

우악스러운 손길에 붙잡힌 채 나무를 휙휙 넘나들며 세상이 몇 번씩 뒤집히는 경험 끝에,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커다란 옹이구멍에 던져졌다.

얼마나 높은지 힐끔 내려다보고는….

일찌감치 탈출은 포기했다.

아마도 10층 건물 높이쯤 돼 보이는 여기서 수직으로 떨어지면 골절상 정도로 곱게 끝나지 않으리라.

“그르르….”

옹이구멍 너머로 자신을 납치한 몬스터가 보였다.

특이하다면 특이한 외모였다.

다리가 3개뿐인 호랑이였으니까.

아니, 어쩌면 다리는 앞다리 둘뿐이고, 저 하나뿐인 뒷다리는 꼬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뭐가 됐든 썩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사냥꾼이 봤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사격연습용 괴수, 삼족호잖아?』

...라고 말이다.

다리가 셋뿐이라서 뜀박질은 무리다. 대신에 몸이 가볍고 민첩해서, 매우 빠른 속도로 나무를 타고 다닐 수 있다.

신출내기 사냥꾼의 훌륭한 연습 상대.

만약, [예감]을 이론으로만 익혔다면 죽음을 면치 못할 테지만, 이 녀석조차 못 잡는다면 일찌감치 사냥꾼을 포기하는 편이 낫다.

왜냐?

【삼족호 / 1종 소형】

이것뿐이 안 되는 녀석이니까.

에쏘드 본체는 정말 ‘특수’한 경우니 논외로 치면, 이 삼족호보다 약한 괴수를 찾기가 더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만큼 약해빠진 괴수.

물론, 평범한 호랑이보다는 훨씬 강하다!

하지만 ‘은색 피’가 흐르는 괴수치고 한심하게 보일 만큼 약한 축에 속했다. 심지어 장기인 나무타기 중에 간혹 나무에서 떨어지기까지 한다.

“아야…. 발톱에 긁혔나?”

일단은 잡아먹히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한 장미래.

자신을 돌아볼 여유를 간신히 붙잡은 그녀는 몸을 훑어봤다. 그리고 납치될 당시에 강하게 붙들린 어깨에 난 발톱 자국을 보았다.

당시에 얼마나 심하게 잡힌 걸까?

꽤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여전히 재생 중이었다.

‘우선 치료부터 할까요?’

몸이 건강해야, 마음도 건강해질 수 있지 않을까.

장미래는 곧바로 초능력을 끌어올렸다.

초능력을 각성하고 공격대에 들어가서 활약한 경력도 어느새 3년. 그 회복술이 워낙에 출중해서 단 1년 만에 SS급까지 격상됐다.

당연히 초능력은 몸을 움직이는 것처럼 익숙하다.

“...어라?”

초능력이 발현되지 않는다!

아무리 용써도 초능력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억지로 쓰려 하니 무언가, 그녀의 초능력이 나가는 통로를 꽉 막고 있는 것 같은 답답함이 느껴졌다.

바로….

‘어깨의 상처!’

불치병에 감염되듯, 어깨에서부터 초능력이 잠식되고 있었다.

미지의 몬스터에게 납치된 이후로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너무 늦게 깨달았다. 아니, 일찍 알았더라도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으리라.

이변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브래지어로 보호 중인 젖가슴이 간질간질해졌다.

“이, 이건…?!”

기분이 이상해서 손을 넣어 만져본 장미래는 까무러치게 놀랐다.

처녀는 아니지만, 임신하지 않은 여인의 젖꼭지에서 절대 나올 수 없는 ‘모유(母乳)’가 찔끔찔끔 흘러나오고 있었다.

다시 보니, 가슴도 이전보다 빵빵하게 부풀어 있었다.

『공황!』

여자라면 누구나 이 상황에서 맨정신을 유지하기 힘들 것이다.

초능력은 봉인되고 어째서 이런…. 이런….

뭐라 설명할 단어조차 선별하지 못한 그녀는 뒤늦게 볼 수 있었다. 어둠 속에서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눈동자를.

시선이 마주치자 울음소리가 들렸다.

“야~옹.”

“야~~옹.”

한 마리가 아니었다.

약한 괴수답게 ‘새끼’도 많이 치는 편.

아니, 삼족호의 경우에는 과일이나 동물의 자궁 등에서 자연적으로 태어났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하지만 양육을 한다.

동족 새끼를 주워다가 이렇게 기르는 것이다.

모든 괴수가 그런 건 아니지만, 울프남과 수전놀 등의 육식성 포유류가 주로 이런 습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울프남은 동족을 부를 때,

『형제』

모두가 가족이란 의미.

이건 상징적인 호칭이 아닌 진짜다. 녀석들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

인간처럼 화기애애한 호형호제(呼兄呼弟)는 아니지만.

“뭐, 뭐야?! 가까이 오지 마! 꺄악!”

장미래는 두 번째 비명을 질렀다.

새끼 삼족호가 그녀에게 달려든 탓이다.

처음에는 자신을 잡아먹으려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죽는 것보다 더 최악, 수치라고 할 만했다.

“쪽쪽.”

옷을 갈기갈기 찢고 드러난 젖가슴에 얼굴을 파묻은 삼족호 새끼들.

엄마 연습은커녕 마음의 준비조차 안 된 장미래는 식겁하며 발버둥 쳐보지만 소용없었다. 호랑이, 그것도 괴수의 힘을 연약한 여인이 어찌 당해내겠는가!

곧 제풀에 지쳐 체념하기에 이르렀다.

젖이 빨릴수록 점점 몸에서 힘이 빠진다고 느낀 건, 절대 기분 탓만이 아니리라.

“깨갱!”

그때였다.

체력이 고갈되며 수마가 덮쳐오는 순간이었다.

장미래는 보았다.

너무 빨아대서 이젠 아프기까지 한 젖꼭지에서 떨어질 기미가 안 보이는 삼족호 새끼를, 뒤에서 단칼에 목을 치는 미청년을.

등에는 칠흑의 날개가….

슈퍼월드에서 온 여인은 어렴풋이 중얼거렸다.

“악…. 마…?”

곧바로 대답이 있었다.

언어는 분명 달랐지만, 영혼이 그녀에게 말뜻을 알려줬다.

그건 대단히 신기한 감각이고 경험이었다.

“악마라…. 당신들에게는 그럴지도 모릅니다. 원래는 죽든 말든 두고 볼 예정이었지만, 아기 엄마를 죽도록 놔둘 만큼 냉혈한은….”

“아니에요! 남자친구는 있지만, 아기는 계획조차 안 세웠다고요!”

다 죽어가던 그녀에게 어디서 그런 힘이 용솟음친 걸까?

장미래는 은색 피를 뒤집어쓴 상체를 가리며 완강히 부인했다. 게걸스럽게 빨린 젖꼭지가 아직도 쓰라렸다. 아기는 평생 갖고 싶지 않았다.

악마가 고개를 갸웃한다.

그 사소한 몸짓조차 너무나 멋져 보였다.

‘아기는 싫지만, 또 이런 경험은 싫지만….’

저 남자의 아기라면 그리 싫지 않을지도…?

고향에 ‘탱커 2위’인 남자친구가 있는 ‘힐러 7위’ 장미래였지만, 무의식적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말았다.

다음 한마디만 없었다면 정말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젖은?”

“나도 몰라요! 그건 내가 하고 싶은 질문이에요!”

< [55화-1] 사냥의 정석 > 끝

ⓒ 파르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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