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수처럼-224화 (224/287)

< [54화-2] 방어를 시작한다. >

마법과 과학.

분명, 서로에게 피해를 주거나 상승작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원리와 근간은 서로 다르다.

예를 들자면?

사람이 날개 없이 하늘을 자유롭게 날게 하려면 과학은 정말 높은 기술력을 요구한다. 그러나 마법은 ‘기초’에 해당하는 초보적인 마법.

반대로, 죽은 사람을 되살려내는 마법은 불가능하다고까지 일컬어지지만, 과학기술은 시설과 자금만 있으면 뚝딱 해결한다.

이번 일도 마찬가지.

콰광-!

한국을 통째로 날려버릴 위력의 중성자 폭탄이었지만, 마법의 보호막을 뚫지 못하고 허망하게 종식됐다.

지구의 인류가 사용하는 과학기술을 아득히 초월한 무기들. 기관총 따위로 에쏘드를 귀찮게 했다는 사실이 대단히 놀랍다.

하지만 ‘대마법사’ 앞에서는 그냥 수많은 마법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 것도 사실.

어마어마한 폭발은 그렇게 끝났다.

‘역시, 자기 무기에는 죽지 않는다는 건가.’

그 ‘캥거루 괴수’의 중성자 폭탄의 위력은 분명 대단했지만, 그걸 사용한 그녀도 전혀 대책 없진 않았던 모양이다.

근거리에서 중성자 폭탄의 폭발에 휩쓸려도 자신은 살 수 있다는 확신! 그게 있었기에 이런 짓을 저지른 것이리라.

물론, 완전히 무사하진 않았다.

『회귀본능』

차원을 넘으며 생긴 성질이 아니었다면 분명 죽었으리라.

7종 이상이 과학무기로부터 절대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고.

“아우….”

“작아졌네.”

쉬임프에게 쫓기던 발키지어가 그랬던 것처럼 어려진 캥거루 괴수.

저렇게라도 산 게 기적이다.

보통이나 대형, 그리고 일부 소형은 과학무기를 무시한다. 하지만 연약한 살로 된 ‘여성형 괴수’는 [예감]에 극도로 의존한다.

미래를 보고 100% 회피!

이 방법으로 과학을 농락해온 것이다.

하지만 회피는커녕 바로 코 닿는 거리에서 폭발했고 휩쓸렸다.

‘죽을 뻔했다!’

마법은 아니지만, 정말 순간적인 판단으로 ‘중화 필드’를 형성하는 장비를 작용시킨 덕분에 이렇게나마 살 수 있었던 캥거루 괴수.

시간과 거리가 좀 더 주어졌다면 아무런 피해 없이 깔끔한 마무리를….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완벽하게 졌다.”

“처음부터 정해진 결말이었는데 새삼스럽게 무슨.”

“...넌 누구냐?”

“그게 중요한가. 네가 오늘부터 콩밥 신세라는 게 중요하지.”

대형화제로 번질 뻔한 불장난 도중에 걸린 개구쟁이처럼, 가차 없이 머리채를 붙잡힌 소녀는 울상을 지으며 질질 끌려갔다.

엘퍼러는 힐끔 확인했다.

캥거루 괴수의 가장 위협적인 능력은 손발을 활용한 ‘장풍’이 아닌, 무엇이든 튀어나오는 ‘주머니’에 있었다.

그리고 그 주머니는 현재 안 보였다.

육체가 농염한 숙녀에서 아직 여물지 않은 소녀로 변한 영향이리라.

자궁과 유방 등이 여성의 2차 성장기에 많이 발달하는 것처럼, 그 위협적인 ‘사차원 주머니’도 같은 맥락인 것 같았다.

하기야….

캥거루나 코알라의 주머니는 여성의 자궁과 유방처럼 ‘아기 전용’이니까.

괴수는 전혀 엉뚱하게 악용했지만, 그 근간은 분명 그렇다.

“내가 사라지면 제국은….”

“사람들이, 아니. 권력자들이 착각하는 게 있는데. 네가 사라져도 세상은 잘 굴러가. 그간 맡아온 역할이 아무리 크더라도.”

엘퍼러는 그렇게 생각한다.

만약, 자신이 죽더라도….

어딘가에서 새롭게 탄생한 용사가 대신하리라고.

괜히 난세가 영웅을 부른다고 하는 게 아니다. 난세가 도래했다는 것부터가 기존에는 영웅이 없거나 죽었다는 뜻이니까.

사람의 운명은 혈통도 무시할 수 없지만, 환경도 크게 적용한다.

한무일이 사냥꾼이 되기로 마음먹게 된 것처럼.

(수고하셨습니다, 엘퍼러.)

(...아직도 비서가 옆에 있습니까, 대통령 각하.)

(한국에서 그만한 고위괴수가 출현했는데, 퇴근은 말도 안 되지요. 하하!)

대단히 유감스럽다는 얼굴로 답하는 대한민국 대통령, 강민우.

이 남자는 청와대보다는 젖을 짜던 모습이 더 멋졌다고 무일은 문뜩 생각했다.

‘답답하겠지.’

꿈이나 목표를 이뤘다고 해서 늘 좋은 것만은 아니다.

강민우 경우는 ‘대통령’이 된다는 바람을 이룬 것에 대해 나름 만족하는 눈치였지만, 그간 해온 노력과 반추해보면 달라진 건 없었다.

더 보람되거나 행복해지진 않았다.

(이만 퇴근해서 쉬시지요?)

(...엘퍼러.)

(네.)

(저는 이 대한민국을 바꾸고자 대통령이 됐습니다. 공명정대한 와이츠 ‘미카헬로 싸이어’의 통치도 나쁘진 않지만, 삭막합니다.)

이크! 함께 염소 젖 짜던 시절의 연장선인가!

엘퍼러는 통화를 이만 끊을까, 했다가 멈칫했다.

과거라면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그랬을 테지만, 이젠 서로가 직분이란 게 있었다. 한국우유 사장님은 한국의 대통령이 됐고, 일개 사냥꾼은 최강의 남자로 성장했다.

과거부터 이어진 대인관계는 여전히 똑같다고 생각하지만….

그 주위를 둘러싼 환경 여건이 그렇지 못했다.

(저는 불완전한 사회보다는 지금이 낫다고 봅니다만.)

무일은 ‘용신 와이츠’가 없던 고대를 살아보진 못했다.

하지만 간접체험이라면 했다.

용신 와이츠가 서울을 비운 5년이란 시간. 대한민국은 정말 난장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바람의 여왕, 박선영이 강력한 무력으로 버티고 있지 않았다면 중국이나 일본에 합병됐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물론…. 체제를 그렇게 만든 원흉이 와이츠지만.’

자유민주주의라고, 여전히 좋은 단어를 붙여놓긴 했지만, 누가 봐도 대한민국은 용신 와이츠와 계약자 선유나의 1당, 아니, 1인 독재체제다.

그리고 그 체제에 익숙해졌다.

부정적인 운영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평탄하게 50년씩이나 흘렀으니….

(저는 한국인들이 저 들판의 젖소와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 고삐로 자유를 억압하진 않았다.

하지만 수시로 우유를 제공한다.

뛰어난 추적장치로 소 무리를 찾아내기도 하지만, 인간에게 가면 맛좋은 사료를 먹을 수 있다는 기억을 새겨놓은 영향이 더욱 크다.

스스로 자유를 포기한 것이다.

동물은 그럴 수 있다고 치지만, 인간은 그래선 안 된다고 강민우는 생각한다.

다만, 이번에도 생각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대한민국 용신, 미카헬로 싸이어』

그 그림자와 영향력은, 로테이션처럼 돌아가며 해먹는 대통령이 상대하기에는 너무나 거대한 존재였다.

자신은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그 사실이 강민우의 고민이었고 힘들게 했다.

무서운 비서님은 덤!

(대통령 각하.)

(예.)

(완벽하게만 보이는 와이츠가 실패한 정책을 아십니까?)(...인구분산계획이지요.)

서울에 지나치게 밀집된 인구를 해소하고자 했다.

하지만 서울 시민들은 집에 황금두꺼비라도 묻어놨는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파주나 개성으로 이주하면 온갖 혜택을 다 준다고 꼬드겨도 무리.

사람의 마음이란 강제로 되는 게 아니었다.

(용신 와이츠를 탓할 필요는 없습니다.)

(국민인식이란 겁니까.)

(무슨 정책이든 행하는 사람이 따르지 않으면 무용지물입니다. 그러니 용신을 어떻게 해볼 생각에 앞서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으십시오.)

그게 강민우의 강점이다.

엘퍼러의 후원자란 간판으로 대통령이 된 건 아니었다.

그는 본인이 내놓은 공약대로 유제품 가격을 동결시켰고, 그 밖에도 다양한 정책을 시행해서 국민들에게 신뢰를 얻었다.

무소속으로 출마해서 대통령 되기가 어디 쉬웠겠는가?

하물며, 가상현실게임 찌들어서 현실에는 무관심한 서울 시민들이 ‘한국우유 사장, 강민우’라는 이름을 기억하고 뽑아줬다.

그건 대단한 업적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세계적인 프로사냥꾼이 됐어도 정작 자국에서는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특공대장 한무일’로써는.

강민우가 무척 크게 보였다.

(국민의 마음이라….)

(어렵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지금처럼만 하시면 됩니다.)

엘퍼러가 대통령 목소리조차 모르고 있었다는 게 그 증거다.

만약, 대통령이 이상한 작자였으면?

정치와 무관한 사냥꾼으로만 활동하는 한무일도 어떤 식으로든 접하게 되어있다. 부산에서 서울로 상경하기 전부터 느꼈던 것처럼.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어?

....라는 식으로.

하지만 최근에는 ‘대통령이 교체됐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살았다. 그건 대단히 좋은 일이다.

대통령이 누군지 알아서 뭐하게?

생업에 지장을 안 주는 대통령이 훌륭한 거다. 너무 훌륭해서 욕할 필요도 없고, 누군지도 몰라도 되는 인물.

(...그건 엘퍼러 본인의 변명 아닙니까?)

(흠흠!)

한국우유 사장이 대통령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무튼, 대화는 그럭저럭 잘 마무리됐다.

마무리는 역시나 사모님….

바쁜 사람을 붙잡아두고 무슨 신세타령이냐며, 강 대통령에게 쓴소리해준 덕분에 통화는 예상외로 빨리 끝났다.

아내에게 쩔쩔매는 대통령이라….

국민을 모시는 정치의 첫걸음으로는 바람직한 자세라고 생각한다.

“잠깐 얘기가 샜는데….”

엘퍼러는 어린 소녀가 된 ‘캥거루 괴수’를 내려다봤다.

한세리와 한유나가 합작해서 만든 밧줄에 손발이 꽁꽁 묶인 그녀는 포기를 모르는 걸까, 계속 애벌레처럼 바동거리고 있었다.

불리해지면 도망치는 그 ‘편리한 차원이동마법’부터 봉인시켰다.

주머니에 더 뭐가 들었는지 손을 넣어보고 싶었지만….

‘주머니를 열게 놔둘 순 없지.’

발키지어가 ‘우유’를 먹고, 도끼토끼가 ‘당근’을 먹으면 급속도로 회복하는 것처럼.

이 캥거루 괴수도 ‘주식’이라고 부를 무언가 있을 거다.

문제라면 역시나 정보가 부족….

아니군.

엘퍼러에게는 현재, 훌륭한 정보통이 있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둘이며, 외계의 절세미녀 겸 마녀이기도 했다.

“인펠리아는 땅의 기운을 먹습니다.”

“한곳에 묶어두면 회복되지 않을 거예요.”

이복자매라고 할 수 있는 ‘유라 솔리넬’과 ‘에르티나 페르시’가 각각 한마디씩 했다.

땅속에 묻혀있는 광맥에서 자원을 채취하듯이.

끊임없이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인펠리아’는 회복되고 강해진다는 것이다. 조건이라면 두 발이 땅에 닿아있을 것!

즉,

“내려다오! 이 무슨 만행이란 말이냐!”

대롱대롱 매달아 놓았다.

처음에는 영혼석에 곧바로 쳐넣는 것도 고려했었다.

하지만 ‘소녀’의 모습을 한 ‘캥거루 괴수’를 죽이는 건 꺼림칙했다. 그 이유를 접한 선지혜와 유키 짱에게 야유를 듣고 말았지만.

아무튼, 이래저래 순조로운 나날이 흘러갔다.

괴수대응연맹 맹주의 연락을 받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직도 엘이즈입니까?)

(유감스럽게도 그렇습니다.)

어째서 몬스터월드가 지구를 쭉 가만 놔뒀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겨우 100년 만에 이집트는 ‘오염’됐다.

엘프의 피가 국민 전체에 퍼진 건 아니지만, 어디서 어디까지 퍼졌는지 알 수 없다는 게 위협이다.

그뿐만 아니라 엘프의 아름다운 외모보정은, 성형수술할 돈이 없거나 아까운 이집트인들에게는 대단히 매력적인 ‘설정’이었다.

낳기만 하면 애들이 예쁘고 멋지다고? 심지어 마법까지?!

...더 말해서 뭐하리.

(얼마나 심각하기에 저에게까지 알려주시는 겁니까?)

(암시장에서 매매되고 있습니다.)

(엘프가요?)

(그렇습니다. 전부 반쪽짜리들이긴 하지만, 계약자가 될 수 없다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허어…!)

소설에서는, 어리고 예쁜 엘프 소녀가 노예시장에서 비싸게 거래됐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 반대.

성형수술을 눈감아주면 예쁜 여자들이야 주위에 널리고 널렸다. 여자에게 가장 치명적인 수명과 노화의 한계마저 초월한 지 오래.

자연히 여전히 미개척영역으로 남아있는 ‘마법’에 쏠렸다.

즉, 전투력.

계약자만 아니면 남성이 여성보다 압도적인 분야. 그리고 ‘엘프의 피’를 퍼트리는 속도도 남성이 여성보다 365배 빠르다.

이게 포인트다.

박는 족족 ‘반쪽짜리 엘프’를 낳는 능력이!

(테러리스트들이 탐내고 있습니다.)

(미쳤군요.)

국가에서 이탈한 노블레스가 테러리스트로 전향한다.

하지만 모든 테러리스트가 그런 건 아니다. 아니, 평범한 인간이 더 많다.

국가의 힘에 비하자면 너무나 빈약한 총칼로 싸우는 자들. 3종 수호자만 출동해도 가볍게 쓸려버린 하루살이들이다.

그들이 ‘엘프의 마법’에 눈독 들였다.

맨몸뚱이로 싸워야 하는 그들에게는 최고의 아이템!

(엘프 남성들이 세계의 여러 암시장에서 판매되고 있습니다. 어떻게든 잡아내려고 애쓰지만, 쉽지 않습니다. 도와주십시오.)

(하아…. 정말….)

가지가지 한다.

수명의 한계도 흐릿해졌는데, 어째서 여전히 미래를 생각 안 할까?

...내가 싸놓은 똥을 누군가 대신 처리해주리라고 믿는 걸지도 모른다. 테러리스트란 자들이 대부분 그런 민폐뿐인 생각을 하니까.

정말 그렇다면?

‘소원대로 처리해주지.’

이 세계에서 영구히 추방해주겠다.

그리고 제2의 인생은….

영혼석 안에서 인류에 보탬이 되어라.

< [54화-2] 방어를 시작한다. > 끝

ⓒ 파르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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