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수처럼-223화 (223/287)

< [54화-1] 방어를 시작한다. >

[54화] 방어를 시작한다.

학명: 수전놀(남기지 않는 개)

서식지: 들판

특징: 욕심이 극에 달했지니….

위험도: 5종 보통

비고: 무엇이든 훔친다.

***

인간의 대도시를 습격하는 괴수는 다양하고도 많다. 그러는 이유도 제각각이라서 뭐라고 단정하기 힘들고.

하지만 성가시고 위협적인 순위로 따지자면 6종보다 더한 5종 괴수가 있다.

【수전놀 / 5종 보통】

반짝이는 걸 수집하는 취미가 있는 직립(直立) 멍멍이.

필요하다면 동족살해도 서슴지 않을 만큼, 수전놀은 ‘반짝이는 물건’을 좋아한다. 아니, 환장하는 수준이다.

덩치와 외모는 ‘울프남’이 변신했을 때하고 비슷하지만, 몸집이 더 크고 팔을 비정상적으로 길며, 역으로 다리는 짧고 꾸부정한 등을 한 꼽추.

기동성에 특화된 늑대인간과 달리, 녀석들은 이동이 5종치고 굼뜬 대신 접근전에서 매우 강력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깨갱!”

그 수전놀이 상대의 발차기에 얻어맞고 그대로 비명횡사했다.

황금은 아니지만, 온통 반짝이는 금속으로 된 ‘강철 도시’ 목포로 향하던 도중에 마주친 괴수의 짓이었다.

체구는 수전놀의 반도 안 됐다.

긴 생머리와 우람한 가슴을 공통분모처럼 보유한 일반적인 ‘여성형 괴수’와 다를 게 없는 몸매의 소유자.

오장육부가 과연 다 들어있을지 의문스러운 개미허리만 빼고 보자면 평범한 인간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으리라.

물론, 얼마나 대단한 미녀였든….

성형수술이 발달한 현대에서는 ‘인간 여성’과 ‘여성형 괴수’를 분간하기 어렵다. 그건 ‘남성형 괴수’도 마찬가지고.

특징만 없다면 말이다.

통! 통! 통!

이런 환청이 들릴 것 같은 생기발랄한 도약.

그녀의 두 다리는, 사족보행 하는 짐승의 뒷다리처럼 휘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만큼 또 길어서 전체적으로는 8등신 미녀의 범주에 들어갔다.

무게중심은?

늘 돌진하기 좋게 앞으로 쏠려있지만, 멈춰 설 때만은 상체를 권태롭게 뒤로 젖히고 있다. 그리고 무게추처럼 달리 두 젖가슴이 꼬리를 대신해서 균형을 잡아줬다.

...라는 것이 과학자들의 분석.

진지한 얼굴로 ‘저 젖가슴 질량은 얼마나 되는가?’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는 자들이, 지구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사실에 놀라며,

“내 말을 알아들을 수 있나?”

엘퍼러는 이 ‘캥거루 괴수’ 앞을 막아섰다.

그 뒤편으로는 추종자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었지만, 전투를 돕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관람객 같은 분위기가 노골적이었다.

물론, 협공을 지시하면 함께 싸울 것이다.

하지만 그전까지는 나서지 않으리란 게 자명해 보였다.

“인간. 나를 미개한 생물 취급하다니, 참 무례하구나.”

“아, 실례.”

첫마디부터 한 방 먹었네?

하지만 전혀 소득 없진 않았다고 무일은 생각했다.

일단, 대화가 통한다는 점에서 설득의 여지가 있고, 여성형 괴수의 절대적인 호감을 사는 엘퍼러의 권능이 씹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물론, 아주 효과가 없진 않았다.

고위괴수와 이렇게 대화한다는 것 자체가 ‘호감’이 어느 정도 있다는 뜻이니까.

‘매서운 다리뿐인 괴수 같은데….’

앙증맞은 저 손으로 주먹질도 한다는 보고를 받았지만, 에쏘드의 칼날을 막을 만큼 대단할 것 같진 않다.

더구나 그녀의 ‘장풍’도 자신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긴장감’의 원인은 뭘까.

차라리 절대 방어를 자랑하는 쉬임프가 100배는 더 힘겨운 상대 같은데도, 저 괴수와 마주한 이후부터 끊임없이 [예감]이 속삭인다.

『정면승부는 피해!』

어째서일까? 에쏘드로 한 번 그어주면 끝날 것 같은데.

그런 의문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으나, 프로사냥꾼 한무일은 12년 동안 자신의 목숨을 지켜준 ‘태양신’을 신뢰했다.

그래서 좀 더 유심히 눈앞에 상대를 관찰했다.

“이름은?”

“인펠리아. 내 존재가 곧 제국일지니.”

매우 오만한 발언이다.

저 가녀린 몸에 그만한 능력이 있을 것 같진 않지만, 애초에 여성의 몸으로 육체파라는 것부터가 난센스였다.

그러니 그만한 ‘힘’을 어딘가에 숨겨뒀다고 해석하면 될까.

마녀가 마법으로 무시무시한 신위를 발휘하는 것처럼.

‘...음?’

계속 괴수의 가슴 쪽에 시선을 빼앗기던 무일은 뒤늦게 새로운 특징을 발견했다.

위치는 그녀의 배꼽 바로 아래.

인간의 신체 구조상 절대로 있을 수 없는 게 있었다.

『주머니』

그렇다! 저건 물건을 담는 주머니였다!

홀쭉해서 전혀 눈치채지 못했지만, 미세한 실선이 배꼽 아래에 가로로 그어져 있었다.

다만, 그 용도는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목적이 뭐지?”

“네가 엘퍼러라는 자가 맞는 것 같군.”

“음?”“제국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되는바, 이 자리에서 죽어줬으면 한다.”

“내가 목적이었군.”

그렇다면 기다려줄 이유가 없다.

지난번처럼 시작부터 필살기를 쓰고 뻗어버리는 추태를 보이지 않았다. 이번에도 쓰면 이길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예상치 못한 변수로 또 실패하면 두고두고 후회하리라.

그래서 앞으로 쏘아져 나아갔다.

‘여성에게는 웬만하면 손을 안 대고 싶지만.’

명백한 적이라면 사정 봐줄 이유가 없다.

도약해서 한 번에 베어버리리라!

하지만 그 긴 다리로 훌쩍 뒤로 물러난 캥거루 괴수.

발차기할 줄 알았던 그녀의 예상치 못한 판단에, 엘퍼러의 공격에 미세한 시간적 공백이 생겼다.

그리고 그 틈에 상황이 180도 돌변했다.

괴수가 본인의 아랫배에 달린 앙증맞은 주머니에서 꺼낸 물건은 총. 그것도 묵직한 기관총 계열이었다.

“어떻게?!”

자기 몸통만 한 무기가 단번에 쏙 튀어나왔다.

물리법칙을 깡그리 무시한 처사!

그녀가 ‘사차원 주머니’에서 꺼낸 물건은 기관총으로 끝이 아니었다. 왼손이 계속 들락날락하면서 이것저것 속사포로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지뢰, 수류탄, 연막탄 등등….

이것들의 공격이 무효화 되지 않는 걸로 봐서는 ‘특수능력’은 절대 아니었다. 그래서 슈퍼월드 서세진의 마법총처럼 무시하기 힘들었다.

“잊었느냐, 내가 곧 제국이다.”

캥거루 괴수의 행동범위는 지상으로 국한되어 있지 않았다.

원반처럼 생긴 미확인비행물체(UFO)를 밟은 채 하늘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그에게 기관총을 난사했다.

그 기관총의 성능은…?

지구에서 개발한 그 어떤 MID 총도 흉내 낼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이었다. 저 크기에서 저만한 위력이 나온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하기야, 용신의 본고장에서 오랫동안 개발해왔으니 당연하리라.

‘...아니. 그렇지 않아.’

무일은 고개를 내저었다.

몬스터월드는 물론이고 판타지월드도 그렇지만, 편리한 마법이 존재한 세계에서는 인류의 과학문명이 일정 수준에서 정체되어 있다.

모든 문제는 마법으로!

그 천시된 과학이 극도로 발전하면 마법도 뛰어넘겠지만, 그런 먼 미래까지 내다보며 과학기술에 투자한 나라는 없다.

더구나, 계급제도의 몰락이 총기류의 등장 때문이란 말이 있듯이.

권력자 입장에서는 훈련도 받지 않은 사람도 강하게 만들어주는 ‘편리한 도구’는 아예 없는 편이 좋다.

“이계의 황제여. 무슨 생각 중이지?”

“...네가 주머니에서 얼마나 더 쏟아낼 수 있나.”

“아~. 고갈되길 기대하지 않는 편이 정신건강에 좋을지니.”

기관총을 난사했다.

저것 위력도 정말 답도 없었다.

하지만 그건 ‘엘퍼러의 마법’도 마찬가지다. 도시로 튀기는 탄환까지 전부 막아내는 보호막을 펼쳤다는 것부터가 상상 밖이다.

원래, 파괴보다 보호가 더 어려운 법.

하지만 엘퍼러는 자신뿐 아니라 목포까지 지키며 상대하고 있었다.

‘장소가 좋지 않아!’

설마하니 괴수가 총기류를 소지하고, 더구나 저렇게 능수능란하게 다룰 줄은 전혀 예상 못 한 탓이다.

도시 밖에서 싸우면 아무런 문제 없을 줄 알았다.

저 캥거루 괴수가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 등장해서 서울로 오기까지 벌인 모든 전투는 몸으로 벌인 근접전이었으니까.

주변 피해는 거의 없을 거로 판단해다.

완전 오판이었지만!

“한 방 먹었군.”

“...나는 그대가 정녕 인간인지 의심스러우니.”

황비가 어째서 ‘제국에 위협적인 존재’라고 했는지 수긍이 됐다.

자신에게 끊임없이 날아오는 페로몬이 주는 ‘달콤한 자극’도 무시 못 할 요소. 한눈파는 순간,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발정기에 돌입할 것 같았다.

그녀가 수컷에게 관심이 사라진 건 초대황제 이후로 끝.

하지만 다시 아랫배부터 꿈틀거렸다.

‘...좋지 않아.’

엘퍼러의 뒤편에서 관람 중인 여자들이 그 증거. 저들 모두가 ‘왕의 페로몬’에 찌들어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세상에 저런 ‘왕’이 있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상식 밖.

수천 년을 살아온 그녀지만, 한 몸에 여러 가지 능력을 두루 갖춘 ‘수컷’은 처음 봤다.

굳이 페로몬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강하고 건강한 수컷의 씨를 받고 싶은 건, 모든 암컷의 바람이자 본능일지니.

엘퍼러는 그 모든 조건에 대단히 부합되어있었다.

“인간이라고 하면 믿을 건가?”

“아니.”

“딱 잘라 말할 건 또 뭐람.”

한유일의 보조를 받은 날개가 물리법칙을 무시하며 엘퍼러를 상대에게 접근시키고자 끊임없이 움직였다.

어디 날개뿐일까?

숙주의 피부를 ‘용의 비늘’처럼 단단한 갑질로 감쌌다! 그리고 그렇게 형성된 비늘은 에쏘드로 전부 쳐내지 못한 탄피를 막아줬다.

물론, 정말로 뱀페스트 능력만으로 가능한 건 아니었다.

『마법』

영혼석의 관리자 ‘에필로드 프롤로드’가 ‘한유일’을 보조하고 있었다.

한유일이 현실에 나가 있을 때하고는 달랐다.

그때는 ‘통역마법’처럼 간단한 도움밖에 줄 수 없지만, 영혼석의 대주주(大株主)라고 할 수 있는 한무일이 활동하면 그 권한도 커진다.

숙주에게 도움만 된다면,

얼마든지 ‘마법’을 끌어다가 쓸 수 있다.

“엘퍼러. 강하고, 또 강하구나!”

“너도.”

“그렇기에 여기서 죽어줘야만 한다.”

“내가 없으면 폭주할 군식구가 많아서 들어줄 수 없겠네.”

인간인 선지혜만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어느새 천 마리에 근접한 ‘여성형 괴수’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한꺼번에 날뛸 것이다.

숫자도 숫자지만, 그 수준도 떨어지지 않는다.

아마, 영토전쟁이 벌어지면서 한국뿐 아니라 동아시아가 초토화될 것이다.

“피할 테면 피해라!”

캥거루 괴수도 더는 물러설 수 없었다.

주머니에는 여전히 많은 무기가 있지만, 그 어떤 것도 엘퍼러에게는 닿지 않았다. 만약, 도시방어까지 겸하지 않았다면 진즉 결판이 났으리라.

하지만,

이 한 방만은 마법으로 대처할 수 없을 것이다.

『중성자 폭탄』

근거리에서 터지면 8종 괴수조차 무사할 수 없는 대량살상무기가 그녀의 주머니에서 기습적으로 튀어나왔다.

크기는 끽해야 어린이 팔뚝 수준.

하지만 그 파괴력은 대한민국을 지도에서 지워버리고도 남는다.

그걸 엘퍼러가 알 리 없겠지만.

다만, 프로사냥꾼의 [예감]이 그 위험성을 경고할 뿐이다.

“잊었나 본데…. 이 자리에는 우리 둘만 있는 게 아니야.”

엘퍼러가 핀잔 준 직후였다.

발키지어의 순백 깃털이 ‘캥거루 괴수’의 얼마 안 되는 수분을 빼앗고, 오니오프의 푸른 화염이 건조해진 그 일대를 활활 태웠다.

결정적으로 도끼토끼의 붉은 광선이 ‘중성자 폭탄’을 저격했다.

당연히 폭발했다.

그 직전에 둘의 시선이 교차했다.

‘아…?’

‘백성은 역린(逆鱗)이다. 기억해둬라.’

< [54화-1] 방어를 시작한다. > 끝

ⓒ 파르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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