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수처럼-222화 (222/287)

< [53화-4] 환영인사는 없다. >

몬스터월드의 ‘마녀’는 개인마다 장기가 있다.

물론, 이 장기를 살리지 못해서 ‘마녀’라고 불리지 못한 ‘평범한 여성’이 대부분이지만, 장기를 살렸다는 것 자체가 마법적으로 재능이 충만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사령마녀’는 어떨까?

지구인 ‘아이나미 산토’의 죽은 육신을 차지한 그녀의 마법 실력은 당연히 한 나라를 뒤흔들 만큼은 된다.

그러니 ‘공주’ 아니겠는가?

하지만 그 상대가 대단히 좋지 못했다.

『용사의 검, 마기노투』

『기사의 검, 바스테유』

지구에서 ‘에쏘드’와 ‘폴리검’으로 불리는 괴수.

그 위력은 몬스터월드에서도 입증됐다. 그리고 충분히 위협적이다. 마법에 대한 절대적인 내성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 자격요건이 까다로운 ‘용사의 검’은….

그 원래 성능을 100%…. 아니, 50%만 발휘해도 마녀가 상대하기 대단히 까다로운 적수로 탈바꿈한다.

‘이거…. 후퇴가 최선이겠군.’

랜슬럿은 이 싸움이 대단히 불리하다고, 너무나 쉽게 단정했다.

이 싸움은 이길 방법이 없다.

항마력이 충만한 ‘용사의 검’을 다루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마법마저 사용한다니? 게다가 그 마법 실력도 예사롭지 않다.

일단, 시간은 충분히 벌어준 것 같으니….

“...하하! 우리의 싸움은 다음으로 미루지!”

“누구 마음대로?”

“큭! 성급한 친구군.”

엘퍼러는 도망칠 틈을 주지 않았다.

이 자리에서 하나라도 줄여놓으면 그만큼 여력이 생긴다는 뜻이니까.

목성 크기의 땅덩이와 인구를 생각하면….

‘산 넘어 산이군.’

그래도 하나씩, 정말 하나씩 풀면 언젠가 끝이 보이리라!

엘퍼러가 차분히 앞으로 할 일을 생각할 때,

랜슬럿은 거대한 ‘돌 거인’의 주먹을 방패로 대수롭지 않게 막다가 경악했다.

몸이 뒤로 멀찍이 튕겨 바닥을 구른 그는, 이 이상한 상황을 단번에 이해하고는 표정이 굳었다.

원래대로라면 방패로 ‘흡수’됐어야 옳다.

하지만 허용치를 초과하며 그대로 충격이 가해진 것이다!

“쿨럭! 너무하는군.”

하지만 답변은 없었다.

아예 말을 안 섞겠다는 태도로, 인정사정 안 봐주고 죽이겠다는 의지가 다분했다.

물론, 정말로 단숨에 끝장낼 의도라면 ‘에쏘드’를 뽑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지만, 마법이 얼마나 통하는지 확인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문제라면….

‘너무 요란한데…?’

일본의 수도 도쿄를 깡그리 부순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양심적으로 너무 요란하게 마법을 사용한 건 부정할 수 없었다.

마법은 좀 자제해야 할 것 같았다. 적어도 도시에서는.

배보다 배꼽이 컸다.

“슬슬 끝을 보지.”

“끝이라…. 미안하지만, 나도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아서.”

“누구 마음대로!”

“그 좋은 인질극을 왜 안 했다고 생각하나?”

“......”

“언제든지 빠져나갈 준비를 해놨기 때문이지. 물론, 쫓아오겠다면 말리진 없겠지만.”

랜슬럿이 자연스럽게 등을 돌리자, 감쪽같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마법을 쓸 수 없는 남자가?

당연히 ‘사령마녀’의 작품이리라.

엘퍼러가 도쿄에 걸어놓은 차단막을 무효화시켜서 영혼이 빨려 들어가는 걸 저지하고, 덤으로 이렇게 기사를 살려가는 것이다.

“하아…. 정말 짜증 나는군.”

그 차원이동마법은 우습게도 벌써 익혔다.

엘프에게서 배울 예정이었지만, 앞서 한번 보고는 그대로 따라 할 수 있게 됐다. 괜히 대마법사라 불리겠는가?

‘무일! 쫓아가서 작살을 내주자!’

하렘의 왕, 한유일이 바득바득 이를 갈며 말했다.

하지만 무일은 고개를 내저었다.

엘퍼러가 벌써 차원이동마법을 익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강대국들이 또 이상한 바람을 휘둘릴 게 뻔했으니까.

적어도 며칠은 조용할 것이다.

이 또한, 금방 공개할 생각이지만, 알더라도 흉내 내긴 요원할 것이다. 엘퍼러를 택시기사 정도로 아는 머저리는 아직 없을 테고.

지금은 힘을 비축할 때다.

(맹주. 통화 가능합니까?)

(음! 말씀하십시오.)

괴수대응연맹 맹주, 아몬 헤이젤은 살짝 놀랐다.

먼저 연락하는 법이 거의 없는 엘퍼러가 ‘일방적인 전투’ 이후에 해온 탓이다.

뭘까? 왜 전화한 걸까?

오랫동안 정치 감각을 쌓아온 그였지만, 도저히 감도 잡히지 않았다.

(제 싸움을 얼마나 잘 관찰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조만간 몬스터월드에서도 대규모 병력이 침공해올 겁니다.)

(......)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아이나미 산토의 육체를 차지하고 있던 마녀는 ‘지구’의 많은 정보를 가지고 귀국했습니다.)

툭 건드리면 쓰러질 만큼 약하다는 것도.

심지어 단합되어있지 않다는 점도 빠짐없이 보았으리라.

‘많이 훼방해놓기도 했고.’

일본만이 아니다. 사령마녀가 그 짧은 시간 동안,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엉망진창으로 만든 게 한둘이 아니다.

브라헨티나의 영웅….

이건 하나의 예에 지나지 않는다.

새로운 괴수의 등장과 이상행동 또한 ‘암살’하고는 살짝 거리가 멀었다.

『침공』

그 이유는 명백하다.

지구를 하나의 나라에 비유한다면, 첩자의 농간으로 국력이 약화하고 모든 기밀정보가 누설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짓을 하는 이유는 하나다.

정복하기 위해.

식민지로 삼기 위해.

하지만 그게 꼭 정상적인 형태일 리 없다. 몬스터월드에서 여태 지구를 가만 놔뒀던 것도 전부 ‘혈통’ 때문 아니었던가.

혹시라도 섞일 것을 우려한 것이다.

‘랜슬럿을 보자면….’

몬스터월드가 지구를 삼킨다면 극단적인 방침으로 지구인을 대할 것이다.

불임, 고자.

혈맥을 완전히 끊어버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여태는 그렇게까지 해서 차지할 필요성을 못 느꼈겠지만, 이젠 아니다.

유라 솔리넬 인펠리아

인펠리아

우수한 ‘마녀 혈통’ 둘이 버젓이 지구에 사는 중이다.

지구에서 마녀가 태어날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이 둘을 제거하거나 회수하기 위해 몬스터월드는 대대적인 움직임을 보일 겁니다. 우리가 넉 놓고 있으면 멸족이란 최후만 기다릴 뿐입니다.)

(...이미 저희는 대비하고 있습니다, 엘퍼러.)

(모자랍니다. 태평합니다. 이 지구를 노리는 건, 지구 인구의 300배에 달하는 몬스터월드라는 걸 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다.

슈퍼월드는 이미 침략 의지가 확고했다.

일본 천왕이 뭐라고 하던 그대로 목포로 귀국한 엘퍼러는 ‘친위대’ 강화에 힘쓰는 한편, 선지혜로 하여금 일본을 압박도록 했다.

목적은?

천왕

그를 왕좌에서 밀어내는 것이다.

몇 번을 생각해봐도 그는 민폐 덩어리다.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도 아니고, 바로 옆에서 계속 삽질하는 꼴은 잠자코 두고 보기 힘들다. 등 뒤에 진검 든 초짜를 둔 기분이었으니까.

가만 놔두면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할 게 뻔했다.

“음…?”

그렇게 하겠노라고 결정한 지 하루도 안 지났을 때였다.

멀쩡했던 하늘이 갈라지며 무언가 지구에 왔음을 엘퍼러는 [예감]할 수 있었다.

몬스터월드? 슈퍼월드?

어쩌면 또 새로운 차원의 불청객일 가능성도 열어둔 채, 첨단장비를 동원하여 이 불길한 느낌의 원인 규명에 들어갔다.

(오스트레일리아에 미확인 ‘여성형 괴수’ 출현!)

(정체불명의 단체와 충돌했습니다.)

(초능력자 무리로 추정됩니다.)

속속 보고가 들어왔다.

나중에야 알려지지만, 지구에서 가장 허술한 땅이 오스트레일리아다.

그래서 슈퍼월드는 비밀기지 겸 전초기지를 그 땅에 단시간에 세웠고, 본대의 충원이 이루어지길 기다렸다.

하지만 운이 나빴다.

하필, 몬스터월드에서 ‘캥거루 괴수’가 온 것이다!

지구에 오자마자 가장 먼저 ‘지구의 캥거루’를 구경하러 왔다가 슈퍼월드 인물과 접촉하게 되며 사달이 났다.

이유야 뭐….

다른 차원에서 알몸의 절세미녀를 보고 불끈불끈!

별거 아닌 일이 엄청나게 커졌다.

“...독특한 괴수로군.”

지구를 무슨 달나라에 온 것처럼 폴짝폴짝 뛰어다닌다.

도끼토끼와 흡사하긴 했지만….

붉은 눈에서 쏘아지는 레이저를 멀리서 쏴대며 싸우는 ‘토끼 괴수’와 다르게, 이 ‘캥거루(추정) 괴수’는 완전히 육체파였다.

이건 또 ‘새우 괴수’ 쉬임프하고 비슷한데….

단단한 갑주 대신 양손과 양다리에서 장풍이 쏘아졌다!

‘진짜 무림인이 등장했다!’

남자를 개똥으로 아는 엄청난 여고수라고 할까…?

그녀가 슈퍼월드 진영과 만난 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우발을 가장한 필연….

물론, 슈퍼월드가 오스트레일리아에 진을 쳤다는 건 ‘엘퍼러 측’에서도 진즉 확인이 끝난 상태였다.

이미 정보전은 ‘판타이탄’의 도움을 받은 엘퍼러가 압도하고 있었기에, 놈들에게는 비밀이라고 할 게 남아있지 않았다.

그 당사자들만 까발려졌다는 걸 모르고 있을 뿐.

가만 놔둔 이유는 간단했다.

괴수처럼 사방에서 침공해오지 않고, 한 곳에 집결하도록 유도하는 미끼. 엘퍼러 혼자서 모든 적을 처리하긴 무리인 탓이다.

협공당할 위험성이 농후하더라도.

“쉴 틈을 안 주는군.”

아니, 그것보다도 선발대가 와해한 슈퍼월드에서 어떻게 나올지가 관건이다.

무슨 선택을 하든 모든 정보를 해킹 중인 판타이탄의 감시를 벗어날 순 없지만, 방어한다는 대전제가 뒤집히기 전까지는 그게 그거다.

엘퍼러는 엘퍼러대로 열심히 준비에 임했다.

일본에서 인명피해를 발생시키진 않았지만, 시설물파괴가 심했다.

그건, 상상력이 부족했던 탓!

마법이랍시고 상상해낸 게 기껏 ‘골렘’이었다.

그래서….

“선배는 액션 만화를 안 좋아했는데, 취향이 바뀐 거야?”

사냥꾼인 한무일은 인생 자체가 스릴 넘치는 액션이었다.

굳이 몸을 혹사하는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를 봐가면 간접 체험할 이유가 없었다. 대리만족은 더욱 하기 힘들고.

하지만 틈틈이 찾아보는 중이었다.

심지어 ‘마법 소녀’ 같은, 완전히 별나라 이야기 같은 것도 시청하고 있었다.

“에쏘드가 아니었으면 보다가 잠들었을걸.”

“헤에~.”

하늘을 날고 불덩이를 던지는 등의 마법은 정말, 창의력과 성의가 부족하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사냥꾼인 한무일에게 살짝 높은 벽이었다.

그는 타고난 대마법사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우연과 우발이 중첩되면서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결과로 재탄생한 것뿐.

천재가 아닌 둔재가 가야 할 길은 고대부터 정해져 있었다.

노력

부족한 재능은 시간으로 때우는 수밖에!

하지만 그 재능결핍도 지극히 상대적인 얘기다.

다양한 공격에 순간적으로 대처하는 [반격]의 극에 달한 한무일이다. 당연히 ‘다양한 반격’을 찰나의 시간 동안 떠올리는 능력을 갖췄다.

상상력 부족?

아니다. 그저 익숙하지 않을 뿐.

그러니 이건 속성으로 깨우치는 공부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준비가 끝났는데…. 나머지가 문제군.”

외계인도, 지구인도 뭘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서 헤매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엘퍼러도 여유 부릴 틈은 없었다.

여전히….

겁도 없이 덤비는 ‘남성형 괴수’는 여전히 꾸역꾸역 몰려드는 추세다.

여기에 오늘은,

‘주먹과 발차기가 매서운 괴수 아가씨가 온 건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한국까지 무슨 수로 온 걸까?

물론,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엘퍼러의 [예감]을 자극하는 괴수가 제주도에 도착했다는 게 중요하다. 엘프 거주지가 들어서고 있는 땅으로.

< [53화-4] 환영인사는 없다. > 끝

ⓒ 파르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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