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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수처럼-219화 (219/287)

< [53화-1] 환영인사는 없다. >

파르나르 장편소설

괴수처럼 27

[53화] 환영인사는 없다.

학명: 퀸크랩(다산의 여신 게)

서식지: 해저

특징: 어마어마하게 낳습니다.

위험도: 4종 보통

비고: 게판

***

지구에서 ‘몬스터월드’라고 명명한 ‘아르테르’ 행성. 그곳에는 783개의 크고 작은 나라가 끊임없이 대립하며 존재한다.

어째서 대립하는가?

그 이유를 설명하자면 남녀의 성향 차이에서 온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어째서 고대부터 전쟁은 ‘남성’ 몫이었고, 육체적으로 혹사할 필요 없이 버튼 하나라도 되는 현대에도 ‘남성’ 군인이 압도적으로 많은 이유.

그건 남녀의 보편적인 성격이 다른 까닭이다.

『단체생활』

남성은 많이 뭉치는 게 가능하다.

단순히 짧은 만남이 아니라 짧게는 몇 달씩, 길게는 수십 년씩 함께 부대끼며 사는 걸 그리 힘들어하지 않는다.

반면, 여성은 남성보다 더 잘 뭉치지만, 숫자가 많아지고 시간이 ‘아주’ 길어지면 서로 껄끄러워지며 불화가 생긴다.

이런 게 어디 있느냐고 할 수 있겠지만….

아기자기한 분홍색보다 시원시원한 파란색을 남성이 더 선호하는 이유가 뭐냐고 따지는 거나 다름없기에 설명은 여기까지.

『아르테르』

이곳은 마법을 다루는 여성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지구는 여성우월사회 역사가 끽해야 100년뿐이 안 됐고, 마법이 아닌 계약은 썩 효율적인 힘이 아닌 까닭에 많은 무리수가 따랐지만.

목성 크기의 이 행성에서는 여성의 권위는 하늘 끝까지 솟구쳤다.

반대로 남성은 밑바닥. 쓸모있는 ‘하인’ 겸 ‘소모품’을 낳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기르는 ‘축생’쯤이라고 보면 된다.

마법으로 얼마든지 죽이고 농락할 수 있는….

“그년을 찾아낸 지 어느덧 1년. 그런데도 여태 못 죽였다고?”

“송구하게도 그렇습니다, 황비님.”

아르테르 행성에서 5번째로 넓은 영토를 보유한 ‘인펠리아’ 제국은, 무려 3천 년 역사를 자랑하는 강대국이다.

이쯤 되면 황제의 계보도 수백 대에 달할 것 같지만, 현재 ‘황제’는 위대한 건국황제의 증손자. 즉, ‘인펠리아 4세’다.

그의 역할은 하나다.

짧게는 몇 년, 길게는 수백 년마다 한 번씩 바뀌는 ‘황비’에게 ‘명분’을 주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황제 남편은 ‘제국 지배권’이라고 할 수 있다.

『전통』

상당히 번거롭지만, 이것이 이 아르테르 행성의 ‘미덕’이었다.

여자가 여황제, 여왕이 되는 대신, 늘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도도하게 존재하는 것. 그리고 힘들고 더러운 일은 남자가 전면에서 하는 것이다.

정치, 노동, 가사….

이 전부가 남자들의 몫이다.

아예, 남자의 야만적인 근육과 뇌는 ‘여자를 편하게 해주기 위해 그렇게 진화한 것’이란 정의마저 내려진 상태다.

여자는?

『마법』

이 하나로 모든 게 설명된다.

불합리해 보이는 것도 간단히 넘어가고,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이루어낼 수 있는, 정말 말도 안 되는 힘! 만능의 힘!

당연히 그 마법의 정점은 ‘황비’다.

그 밑으로 ‘여왕’과 ‘황녀’가 있으며, 그보다 한 끗발 밀리는 ‘공주’와 ‘공녀’ 식으로 쭉쭉 내려간다. 권위뿐만 아니라 마법 실력도.

“에르티나. 그 아이는?”

자기 배로 나은 첫 번째 딸이지만, 애정은 진즉 식었다.

아기였을 때는, 시도 때도 없이 울어서 싫었다. 특히, 처녀가 아니게 되면 ‘계약’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줘서 더욱 그랬다.

어디 그뿐이랴?

질질 짜기만 하던 딸이 어느새 물이 잔뜩 오른 숙녀가 된 이후에는, 그 마법 실력이 나이에 비해 아주 우수해서 싫었다.

물론, 싫다고 해도 ‘전 황비’의 자식인 ‘유라 솔리넬 인펠리아’만큼은 아니다.

똑같은 남편, 황제라는 접점이 있긴 했지만….

왕조가 바뀌었다고 왕궁을 새로 짓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있으면 거슬리지만, 없으면 또 허전한 남편이란 존재.

당연히 내키지 않는다.

특히, 약해빠진 주제에 침대 위에서는….

“황녀님은 생포되셨습니다.”

“한심한!”

딸의 별명은 ‘흑발마녀(黑發魔女)’였다. 밤하늘처럼 검은 머리카락 한올 한올이 강력한 암기였던 최강의 암살자.

물론, 최강이란 표현은 ‘에르티나 페르시 인펠리아’의 마법이 특수한 탓이다. 정면대결을 펼친다면?

제법 시간은 걸리겠지만, 아직 한참 어려서 자신의 상대는 못 된다. 이 ‘황비’ 자리를 노리려면 앞으로 100년은 더 있어야 한다.

그때까지 살아있다면.

하지만 이런 식으로 끝장날 줄은 몰랐다.

“듣기로는 이계의 황제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했다고 합니다.”

“그 열성인자 행성에서?”

“네. 황비님.”

아르테르 행성에서 여태까지 단 한 번도 ‘지구’를 침략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아서!

식민지라면 ‘노예’와 ‘자원’을 생산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마법’으로 모든 걸 해결하는 아르테르 행성에는 없는 게 없었다.

땅이라면….

아직도 강력한 ‘동물의 왕’이 지배하는 미개척지역이 널리고 널렸다.

물론, 이유는 이뿐만이 아니다.

『열성인자』

지구에서 ‘엘프의 피’를 성인병 취급하듯, 아르테르 행성에서도 ‘지구인 유전자’를 매우 부정적으로 보고 있었다.

한 방울이라도 섞이면 파멸을 불러올….

아르테르 인(人)들은 태생부터 능력을 타고났다. 남성은 근육을, 여성을 마법을.

하지만 지구인들은 그런 게 전혀 없었다!

노력할수록 강해진다는 건 같지만, 시작점이 전혀 다르다. 남자가 자기 몸무게의 20배에 달하는 바위조차 못 드는 약골!

여자는 더 끔찍하다.

마법을 전혀 못 쓰는 ‘지구 여성’들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아르테르 행성의 ‘마녀’들이 보자면 그랬다.

“그것도 남자에게?”

“황제입니다.”

“그러니까, 남자에게.”

“네, 황비님.”

황비의 넷째 딸이지만, 마법 실력이 열등해서 ‘하녀’라는 신분을 가진 여인은 송구하다는 듯이 고개를 조아렸다.

물론, 하녀라고 해도….

뛰어난 남자들로 구성된 기사단 한둘쯤은 졸면서도 전멸시킬 힘이 있다.

다만, 그 이상으로 뛰어난 마녀가 제국에 많을 뿐.

“그렇게 조심하라고 일렀거늘…!”

아르테르 행성은 대단히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지구의 열성인자가 자신들의 행성에 퍼지는 것도 원치 않았지만, 역으로 지구에 ‘아르테르의 우성인자’가 전해지는 것도 바라지 않았다.

그래서 차원이동을 금했다.

물론, 몇 년에 한 번씩 ‘어린 마녀’들이 ‘차원이동마법’을 수련한답시고 동식물들을 지구로 날려버리긴 하지만.

『예외?』

당연히 어디에나 있는 법이다.

마법이 사기적이고 강력하긴 하지만, 여성이 아닌 남성이 늘 황제로 있는 전통이 생긴 이유도 바로 여기서 기인했다.

『바스테유(기사의 검)』

약해빠진 ‘남자’들이 마법에 대항할 수 있을 만큼 강해지게 만드는 정령.

아무리 강력한 마녀도 언젠가는 죽는다.

하지만 ‘바스테유’는 사용자가 죽어도 늘 남는다! 그리고 새로운 사용자를 찾아가면 피해라고 할 건 별로 없다.

그래서 이 검의 보유 숫자가 곧 국력(國力).

하지만 사용자는 그리 흔하지 않다. 특히, 육신이 뛰어난 대신 정신적으로 미숙한 아르테르 행성의 남자들은 인재가 ‘희박’했다.

그래서 외제(?)를 수입했다.

다른 차원의 ‘남성 영웅’을 납치해서 복종시키고 ‘기사’로 임명했다.

“홍길동은?”

황비는 하녀를 추궁하듯 물었다. 그녀에게 죄가 없음을 알면서도.

그만큼 심기가 좋지 못하다는 방증이다.

위험하다.

『홍길동』

제국 내에서 특별히 선별한 ‘유능한 기사’다.

가랑이를 찢어버려도 시원찮은 계집 ‘유라 솔리넬 인펠리아’가 ‘지구 조선’이란 나라에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자마자 그곳 출신의 기사를 뽑았다.

황녀 ‘에르티나 페르시 인펠리아’가 수월하게 암살할 수 있도록. 그곳 지리와 문화에 익숙한 자를 붙여준 것이다.

당연히 거세시킨 고자! 지구의 열성인자가 아르테르에 퍼지면 안 되니까.

하지만 그 정신력만큼은 여전히 사내다운 진짜다.

“지구 잉글랜드에서 실종됐습니다.”

“여전히?”

“네. 워낙에 신출귀몰한 자라….”

하녀는 말을 아꼈다.

지구 조선에서 한참 잘나가던 영웅을 납치해서 거세시켰다. 그리고 복종시키기 위해 온갖 마법으로 농락했다.

물론, 그 과정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조선이란 나라는….

지독한 남성우월사회였기에, 홍길동은 자신의 소중한 그곳을 사정없이(!) 때어낸 아르테르 문화에 대한 거부감과 적개심이 대단히 강했다.

하지만 그것도 몇 년뿐.

처절하게 짓밟힌 홍길동은 모든 ‘바스테유 기사’가 그런 것처럼 고분고분해졌다.

“배신이란 말이지…!”

“그런 것으로 점증적 결론지어졌습니다, 황비님.”

“붙잡히면 가만 안 두겠어!”

하녀는 황비의 분노가 얼마나 공허한 얘기인지 잘 안다.

지구에 있는 홍길동을 무슨 수로?

황녀는 물론이고, 이웃한 약소국 공주를 지구에 보낸 것만으로도 이미 주변국들의 맹비난을 사고 있었다.

만에 하나, 지구에 자신들의 ‘우수한 유전자’가 퍼진다면?

그건 불쾌감을 넘어 분노가 치미는 일이다.

곱게 키운 딸내미가 어디서 굴러들어온 사내새끼의 아이를 뱃속에 넣어온 것보다도 훨씬!

“연방국에서 항의가 왔습니다, 황비님.”

“그래서?”

“조속히 황녀를 구출하거나 말소시키라는 경고입니다.”

“음….”

역정을 내던 황비도 이 순간만큼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쉬이 말을 못 이었다.

명백한 실수였으니까.

이웃한 약소국 공주인, 죽은 자의 육신에 빙의해서 조종하는 ‘사령마녀(死靈魔女)’와, 그녀의 감시 겸 호위기사로 붙인 ‘랜슬럿’이 성과를 내길 기다렸어야 했다.

하지만 믿질 못했다.

황비는 자신의 마법을 제외한 그 무엇도 믿지 않는다.

본인도 그 사실을 안다.

다만,

‘유라 솔리넬! 끝까지 짜증 나게 하는구나!’

남에게 직설적으로 듣는 건 누구나 원치 않을 것이다.

그것도 싹수없는 말투로.

하지만 황비가 그녀를 싫어하는 진짜 이유는, 내심 ‘좋아하던 남자’를 빼앗겼기 때문이다. 아무리 여성우월사회고 남성의 지위가 바닥을 친다고 해도.

사랑이란 감정이 원래 그렇잖은가?

게다가 ‘좋아하던 남자’는 아르테르 행성 전체에서 제일가는 ‘3대 기사’ 중 한 사람이었다. 이 이상 괜찮은 수컷은 없다고 봐야 했다.

“현재보다 더 많은 ‘야수(野獸)’를 보낼까요?”

유전자가 섞일 염려가 전혀 없는 최선책.

하지만 이것도 영 효과를 못 보고 있어서 내키지 않았다.

“...그 황제라는 자의 이름은?”

“엘퍼러. 아마, 그랬던 걸로 기억합니다.”

“능력은?”

“근래에 들어온 사령마녀의 정기보고를 그대로 말씀드려도 될는지요, 황비님?”

“허한다.”

“그자는, 최강대국 ‘메시무스’의 건국황제, 그리고 마도제국 ‘오르페온’의 백만마녀(百萬魔女) 둘을 합쳐놓은 것 같다고 합니다.”

“......”

이미 죽고 없는 인물들이지만, 아르테르 근대역사를 화려하게 장식한 남녀였다.

마기노투 건국황제.

약소국에서 신흥강국으로, 다시 최강대국으로 단시간에 발돋움한 이 제국은 ‘마기노투’라는 남자가 세운 나라다.

수많은 마녀의 엉덩이에 거대한 창(!)을 찔러넣어 굴복시켰다는 염문설이 전설처럼 떠돌고 있지만….

진실이야 어쨌든 그의 무기는 창이 아닌 검이었다.

『마기노투(용사의 검)』

사용자의 적성에 따라 성능이 천차만별인 최강최약(最强最弱)의 정령.

그 마기노투를 능수능란하게 다뤘던 ‘메시무스 1세’는 남자가 오를 수 있는 경지와 가능성을 잘 시사해준 인물이었다.

후자는?

그 이름처럼 ‘백만 가지’의 마법을 다룰 수 있다고 전해지던 마녀.

근대라고 해도 무려 천 년 전의 인물이다.

그녀가 유명한 이유는 ‘무한한 감옥’이라고 불렸던 ‘영혼석’의 창조자이기 때문이다. 그 영혼석이 폭주하는 바람에 이래저래 욕먹긴 했지만….

매우 뛰어난 마녀.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런 둘을 합쳐놓았다고? 더구나 남자가 마법을 쓴다고?”

황비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불신과 더불어서 내심도 비슷했다.

< [53화-1] 환영인사는 없다. > 끝

ⓒ 파르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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