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수처럼-216화 (216/287)

< [52화-2] 재난 >

소득이라면, 이 전투에서 엘퍼러는 많은 수의 영혼을 수집할 수 있었는데, 여전히 ‘영혼석’은 그 한계를 모르듯 꾸역꾸역 수용됐다.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건 남성형 괴수.

덕분에 무일은 대마법사 너머까지 찍어버린 기분이었다.

‘하지만 초능력을 상대로 얼마나 통할지….’

대비는 확실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방심해선 안 된다.

아직 괴수의 위협도 끝나지 않은 마당에, 외계인 침공을 걱정해야 한다는 게 참으로 기가 막혔지만 어쩌겠는가?

세상일이란 기다려주지 않는 법인데.

현재, 무일의 최대 관심사는 ‘차원이동마법’이었다. 처음에는 어디서부터 접근해야 좋을지 감도 잡히지 않았지만, 이젠 아니다.

『엘프의 마법』

이걸 참고할 생각이다.

얼마나 도움될지 미지수지만, 없는 것보다야 나았다. 그리고 한 번만 보면 대충 요령을 터득해서 흉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것도 슈퍼월드의 초능력자들하고 다른 점이다.

분명, 간접적이긴 했어도 무일은 ‘서세진’이란 자의 ‘공간이동’을 목격했다. 그럼에도 흉내는 고사하고 그 원리조차 파악이 힘들었다.

그 해답은 의외로 가까이에서 나왔지만.

『초능력』

마법하고는 살짝 별개다.

슈퍼월드에서 사용하는 모든 종류의 초현실적인 능력은 ‘초능력’이다. 본인들이 능력을 뭐라고 정의하든 간에.

그 반면, 판타지월드와 몬스터월드가 쓰는 기술은 ‘마법’이다.

자연의 힘인 ‘마나’를 이용한다는 점에서 ‘괴수의 마법’하고는 차이가 있었지만, 그 촉매와 재료만 빼고 보면 다를 게 별로 없다.

즉, 흉내가 가능하다.

무일이 노리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진척이 얼마나 됐어, 유일?’

‘역시, 가장 성가신 걸림돌은 남편이란 녀석이다.’

엘프 마을은 현재 뜨거운 프라이팬 위에 올려진 달걀처럼 어수선했다. 아무리 전염병이니 어쩌니 해도 ‘순종 엘프’는 연구할 가치가 있다.

‘다수결로 계속 찍어 누를 수 있을까?’

‘아마도 가능하리라 싶다.’

높은 위치까지 도달한 자들의 최대 단점이 이거다.

그들은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두 눈 시퍼렇게 뜨고 보호하는 탓에, 그 보호하는 가족이 설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당했을 거라고는 조금도 가정하지 않는다.

좋게 말하면 자기신뢰.

나쁘게 말하면 자기과신.

‘어찌 됐든 성공했단 거네.

‘맞아. 썩 훌륭하다고 말하긴 힘들지만, 결과적으로는.’

이집트에서 어떻게 생각하든, 엘프들은 이주계획을 차근차근 짜나갔다.

멀리 떨어져 있는 ‘주인’의 지시에 따라서.

차원이동마법은 그녀들이 오면 배울 수 있으리라. 그전에 이즈헬의 방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정말 기우로 그쳤다.

이집트가 외부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던 덕분!

강력한 신종이 끊임없이 모래 벽을 부수고 도시를 공격하는 바람에, 영토의 군주로서 눈 뜨고 당해줄 순 없는 것이다.

영토를 침범받는 굴욕에 비하면 원숭이 수십 마리의 이탈쯤은...

이집트 정치인들도 이 상황에서는 달리 토를 달지 않았다. 당장 내 목숨이 경각에 달렸는데 ‘순종 엘프’를 챙길 겨를이 어디 있겠는가!

전체적인 상황은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엘퍼러가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린다고 여길 때였다.

(엘퍼러.)

(...무슨 일입니까 주석.)

엘프를 같이 연구하자는 내용은 아니겠지?

무일은 거절할 준비를 한 채, 중국 국가주석 ‘첸지 죠’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건 깜빡 잊고 있었던 문제였다.

(아담의 연구가 끝났습니다.)

(아담…? 아! 그 아담~.)

한순간 ‘갑자기 연락해서 웬 아담 타령?’이라고 생각했던 무일은 그제야 기억났다는 말투로 회답했다.

아담의 본명은 진즉 알려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시 ‘아담과 이브’로 명칭이 굳어버린 외계인 남녀였다.

특히, 아담은 연맹에서조차 잊고 있던 비운의 존재!

중국에서 꼼꼼하게 챙겨주지 않았다면 그가 굶어 죽더라도 아무도 몰랐으리라!

(그는 이번, 신종 침공의 경위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호오~.)

유라 솔리넬 인펠리아, 그녀의 상태는 여전히 호전될 기미가 안 보인다. 그래서 거의 짐 같은, 공기 같은 취급이다.

다시 ‘이브’라고 불리게 된 이유!

여기에 편승해서 자연스럽게 ‘아담’도 묻혀버리던 추세였는데, 중국은 아담을 포기하지 않았고, 끝끝내 재활용에 성공한 모양이다.

그럼, 알아냈다는 게 뭘까?

(일본의 폴리검. 그건 이브를 제거하려는 제국과 이웃하는 왕국의 공주를 지키는 ‘기사의 검’입니다. 몬스터월드에서는 매우 유명한….)

지구에서는 ‘에쏘드’가 주류였다면, 몬스터월드에서는 ‘폴리검’이 대세였다.

쓰기 편하고 주체와 주도권이 여성에게 있었던 까닭.

각설하고, 현재 일본에서 사용하는 폴리검의 주인은 약소국 공주이긴 하지만, 수많은 추종자를 이끄는 매우 강력한 ‘마녀’다.

즉, 지구에 출몰 중인 대다수 신종은 그녀의 작품!

(놀랍군요. 유리아가 다중계약자라고 듣긴 했지만, 마녀란 존재가 그 정도일 줄은.)

(유리아? 아! 이브 말씀이시군요.)

(...너무 늦은 질문인 것 같지만, 아담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저희 중국을 제2 고향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중국의 주입식교육은 위대했다!

목숨을 위협받는 황녀를 지키며 100년을 외롭게 견뎌온 ‘불굴의 기사’도, 중국이 가상현실세계에 파놓은 수많은 복선과 떡밥에 함락됐다.

현재는 ‘새로운 파트너’를 찾기 위한 여정을 다니고 있단다.

이미 유적이란 유적은 빠짐없이 뒤진 중국이었지만, 아담은 꿋꿋하게 돌아다니며 ‘새 검’을 찾고 있었다.

의외로 고집불통이 아닐까.

(아담이 뭐랍니까?)

(지금 같은 소모전은 제국이 즐겨 쓰는 방식이라고 합니다.)

(제국이라….)

괴수의 본고장에서 말하는 ‘제국’은 지구의 기준과 다르다.

국토(國土)를 한 40배쯤 뻥튀기해서 생각해야 한다. 군대와 저력도 마찬가지.

이 작은 지구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지구인으로서는 지금 같은 ‘소모전’은 대단히 불리하다고 할 수 있다.

엘퍼러는 주석이 하려는 말뜻을 이해했다.

‘기습해서 힘을 빼놔야 한다는 거군.’

지금처럼 정직한 뺄셈은 끝끝내 지구의 패배로 끝날 것이다.

엘퍼러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활약 중이긴 하지만, 이 순간에도 수호자 숫자는 야금야금 줄어들고 있었다.

아직은 버틸만하지만….

일정 한계점을 벗어나면 순식간에 밀려버릴 것이다.

(저희, 정보과에서는 여기에 대한 방책을 떠올렸습니다. 아담의 협조 덕분에 의외로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습니다.)

(방책이라면…?)

(여제와 공주의 사이를 갈라놓는 겁니다.)

지구에서 날뛰는 세력은 둘이다.

제국과 왕국.

전심전력은 아니고, 그 두 나라를 대표하는 ‘마녀’ 두 명이 지구로 넘어와 있는 상태다.

그중 하나는?

(슈퍼-메두사…. 역시…. 인간이었나.)

(이브의 동생입니다. 특기는 머리카락을 이용한 공격. 매우 호전적인 성향 탓에 따르는 수호자가 매우 적지만, 그 약점을 본인의 강함으로 메꾼 암살자입니다.)

(황녀가 암살자?)

(그 ‘몬스터월드’에서는 후계자 아닌 황녀는 고귀한 신분이 아닙니다.)

현재까지 지구로 넘어온 차원은 총 셋이다.

몬스터월드, 슈퍼월드, 판타지월드.

이중 판타지월드는 이미 접수(?)가 끝난 상태고, 슈퍼월드와 몬스터월드만 남았다. 그리고 이중 엘퍼러가 가장 경계하는 건 역시 ‘몬스터월드’였다.

괴수의 본고장.

정말 강한 괴수는 그곳에 있으리라.

강자가 고향을 떠날 이유가 얼마나 있겠는가?

지구로 넘어온 녀석들은 회귀본능 덕분에 ‘강한 것’처럼 보이는 것뿐이다.

(슈퍼-메두사의 소재도 밝혀졌습니까?)

(죄송하게도 그건 무리였습니다. 암살자란 원래 모습을 잘 드러내지도 않을뿐더러, 마법은 저희에게 미지의 영역이라….)

(마법이라….)

(하지만 왕녀라면 이미 파악이 끝난 상태입니다.)

중국 주석이 이 때문에 연락했음을, 엘퍼러는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여태까지 들려준 얘기는 떡밥에 지나지 않는다.

뭐, 여기서 한 방 먹여줄 생각이지만.

(일본의 9종 계약자였던 ‘아이나미 산토’ 말씀입니까.)

(이, 이미 알고 계셨습니까…?)

(물론입니다.)

사실은 긴가민가했었다.

...라고조차 민망할 정도로 전혀 몰랐었다.

그냥, 유키나 미나미가 수시로 ‘수상해, 예요!’라며 보채는 바람에 조금 관심을 뒀고, 첸지 죠의 설명을 들으면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정말인 모양이군?

영 도움이 안 되는 이브보다는 쓸모가 많은 아담이었다.

첫인상은, 소설에서 대사 한 줄 던지고 죽는 ‘호위기사 1’ 정도로밖에 안 보였는데.

(괜한 참견이었군요. 송구합니다, 엘퍼러.)

(아닙니다. 아담이 의외로 도움이 됐다는 걸 알았다는 걸로 충분합니다. 같은 남자로서 민망하게 말로 표현할 순 없지만, 응원한다고 할까요.)

몬스터월드의 남성 지위는 지구보다 최악이었다.

육체 능력이 엘프보다 우수함에도 그렇다.

마법

남성의 괴력 대신 여성이 받은 축복은 그만큼 압도적이었고 강력했다.

인간 수컷을 ‘씨앗 주머니’ 수준으로 격하시킬 만큼.

당연히 예외도 있는 법이다.

몬스터월드의 대다수 남성의 지위는 ‘집에서 기르는 애완괴수(?)’ 밑이지만, 극소수가 마법소녀(?)들을 압도했다.

그중 하나가 아담 같은 ‘기사’란 존재.

다음이 건국황제 정도다.

여자가 나라를 세우는 경우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건 마법의 강력함과 관계없이 ‘성별 특징’의 문제.

나라를 세우려면 개인의 힘으로는 무리다. 그리고 그 마이페이스의 강력한 마녀들의 힘을 하나로 합칠 수 있는 건 남성의 ‘날카로운 창(!)’뿐.

우아한 표현으로 ‘사랑’이라고 한다.

살짝 깊게 파고들자면, 끈적끈적한 육체적 사랑!

‘사랑은 모르겠고, 어서 만나자! 무일!’

‘너무 서두르는 거 아니야?’

‘동정인 너와 같은 수준으로 취급하면 곤란하다.’

‘아, 그러셔. 퍽이나….’

저렇게 으스대는 한유일이지만, 선지혜를 포함한 ‘여성형 괴수’들 앞에서는 당당히 어깨도 못 펼 만큼 맥을 못 춘다.

최근에 폴리검과 변신기술이 추가되며 많이 강해졌지만….

여전히 많이 쳐줘도 7종 턱걸이.

가장 약한 ‘퐁퐁’조차도 ‘소형의 천적’이라고 칭해지는 ‘7종 괴수 발키지어’니, 한유일은 이 시청사에서 가장 약한 남자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남자라고 해봐야 한무일과 딱 둘뿐이었지만.

(그럼, 엘퍼러를 믿고 저희는 몬스터월드에 대해 좀 더 상세한 정보를 수집해보겠습니다.)

(예. 계속 수고해 주십시오.)

이래저래 도움이 많이 되는 중국이다.

판타이탄 계약자 ‘유키나 미나미’가 좀 더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지만, 그게 일본 전체를 대변해주는 건 아니다.

물론, 민폐나 끼치는 나라들보다는 낫다고 본다.

‘한동안 엘이즈 때문에 정신없겠지만.’

엘퍼러는 본의 아니게 쌓인 영혼석을 활용하기로 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8종 수호자, 옥황사제.

그 힘을 썩히는 건 죄악이다.

물론, 선결과제로 영혼석 안에 붙잡혀있는 ‘실바니아 하이로드’를 해방해주는 것부터 해야 할 것이다.

무고한 그녀가 고통받는 걸 원치 않으니까.

그 뒤는?

‘검사 그만두고 마법사로 전직이냐, 무일.’

‘...이 세상이 무슨 RPG 게임처럼 단순하게 돌아간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야, 유일.’

‘내 눈에는 다를 게 없는데.’

‘흐음….’

하기야, 무슨 ‘RPG 게임 용사’처럼 지나가는 길에 우연히 만나는 모든 여자가 한유일에게 친절하긴 했다.

현실이 현실감 떨어지긴 하는군?

무일은 저 ‘배부른 남자’의 인생철학을 이해했다.

녀석에게는 이 갑갑한 현실도 미소녀들 덕분에 아름다운 것이리라.

‘합쳐서 마검사? 잡케는 별로인데….’

‘숙주를 잡케에 비유하는 너에게 뭐라 해줄 말이 없다.’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짓던 한무일이 진지하게 변했다.

지금부터 중요한 마법을 쓸 예정이다.

그의 앞에는 실바니아 하이로드의 ‘영혼 없는 빈껍데기’가 얌전히 누워있었다.

“마법도 결국은 믿음. 원리는 똑같지”

고정관념이란 것이다.

엘프는 ‘마나’가 희박해서 마법을 쓰기 힘들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 또한 믿음이다.

자신들의 마법은 ‘마나’를 소모해서 발현된다고, 상식처럼 아는 확고한 믿음. 그 구체적인 구동원리가 마법이란 기적을 현실로 불러들였다.

그렇다면 엘퍼러는?

다를 거 없다. 그에게는 ‘촉매’로 영혼석이 있었다.

<크어억?!>

<뭐, 뭐야!>

<아파! 아프다고!>

마법이 발현됨에 따라 영혼석에서 처절한 비명이 들려왔다.

그리고 ‘무고한 영혼’이 그 안에서 빠져나왔다.

한무일이 마법 쓰길 꺼리게 했던 실바니아 하이로드는 원래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갔다.

이젠 마법을 망설일 이유가 사라졌다.

“이걸로 나는 준비가 끝났는데…. 과연, 너희는 어떨까.”

지구를 넘보는 ‘괴수전문 공격대’라고?

무일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그는 슈퍼월드 녀석들이 고향에서 얼마나 많은 괴수를 무찔렀는지는 하나도 관심 없다. 그들의 초능력이 변수이긴 하지만, 이 또한 상관없다.

나는 유일무일(唯一武一)한 괴수.

나는 요정의 황제.

나는 ‘괴수처럼’ 그들을 환대해주리라.

< [52화-2] 재난 > 끝

ⓒ 파르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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