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화-1] 이계의 피난민 >
파르나르 장편소설
괴수처럼 26
[51화] 사막에서 이런 우연이?
학명: 폴리검(다채롭게 변하는 칼)
서식지: 불명
특징: 변신하는 무기
위험도: 8종 특수
비고: 기사를 위한 맞춤형 서비스!
***
고대의 아프리카 대륙은 썩 훌륭하다고 평가하기 힘들었다.
다른 대륙에서 밤하늘의 달에 착륙할 때, 그들은 하루 끼니를 걱정하며 멍하니 달을 쳐다보는 게 전부였으니까.
인종차별 때문에?
그 외에도 복합적이 이유가 있겠지만, 이 인종이란 게 매우 크게 적용한 건 사실이다.
『인종(人種)이란?』
단순히 피부 색깔로 논하는 게 아니다.
체형과 체질, 두뇌 등의 내면적인 요인도 완전히 다르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평균이 그렇다는 것뿐이다. 가장 똑똑한 개라는 ‘푸들’ 중에도 정말 답도 없이 멍청한 녀석이 있는 것처럼.
즉, 인종이란….
태어날 때부터 결정되는 외모만큼이나 차별적이고 운명적인 속성이 강하다. 그건 23세기에 들어선 현재도 마찬가지.
수호자도 취향에 따라 ‘미녀의 인종’을 편식했다.
“호오…. 정령의 대륙이라더니.”
인종은 나라 숫자만큼이나 매우 다양하지만, 세분하지 않고 단순하게 나눠보면 셋이다.
백인, 황인, 흑인.
그리고 피부가 검은 미녀는 ‘정령’이 좋아한다.
대체로 그렇다는 얘기다. 최강의 계약자로 명성이 자자한 ‘박선영’과 ‘파라오’가 각각 황인과 혼혈인 것처럼.
그래도 아프리카에는 정령이 많았다.
『정령의 나라』
이렇게 들으니, 뭔가 환상적인 아름다움이 떠오르는가?
유감스럽게도 현실은 그 반대다.
정령은 물리적인 실체가 없어서 싸움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 탓이다. 사냥꾼들이 손가락 빨며 죽을 순간만 기다려야 한다는 뜻.
정령의 정점이라고 불리는 9종 괴수 이즈헬이 계약자를 얻기 전까지, 아프리카 대륙이 얼마나 판타스틱(!) 했을지는 상상에 맡기겠다.
다만….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그 흔한 ‘유령 영화’ 한 편 없다는 것만 알아두자.
인생과 현실 자체가 공포의 도가니니까.
부들부들….
하지만 그런 정령들도 한유일을 보자마자 줄행랑을 쳤다.
흡혈귀가 무서워서 그런 게 아니다.
한무일이 아닌 한유일인 탓에 그 터무니없는 [업보]도 잠시 가려졌기에 아니다. 그렇다면 정령들이 도망치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
그건,
【폴리검 / 8종 특수】
정령은 그 존재 자체가 ‘특수능력’이다.
그나마 에쏘드는 상대를 콕콕 찔러야 발동되는데, 폴리검의 방패는 자연스럽게 주위의 특수능력을 흡수한다.
즉, 정령은 접근불가!
보이지 않는 거리의 경계가 생성됐다.
그런 부차적인 상황이야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태도인 한유일은 사막 한가운데 오도카니 서서 고민하는 중이었다.
“으아…. 카이로냐, 피라미드냐. 그것이 문제로구나!”
이집트의 수도로 가서 미소녀 탐색에 나설 것인지, 아니면 이집트의 유물 속에서 있을지도 모를 조상님을 찾을지….
기껏 피라미드 근처까지 와놓고 갈등하는 하렘의 왕.
최대속도로 왔지만, 목포까지 돌아갈 시간까지 고려하면 일정이 대단히 팍팍했다. 이렇게 고민하는 것도 솔직히 시간 낭비.
‘아예 허락을 구한 다음에 마음 놓고 놀까?’
한유일은 다른 방책도 떠올렸다.
며칠의 자유시간을 한꺼번에 몰아서 쓰는 식으로 숙주와 거래하는 것이다. 주말을 반납하고 장기휴가를 떠난다고 할까.
솔직히 이런 대책이 필요하긴 했다.
매일 주어지는 6시간이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의외로 시간에 구애받아서 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
바로 지금처럼.
하지만 사전협의도 없이 ‘통보’하면 규칙에 어긋난다.
간신히 유지 중인 6시간이 5시간으로 줄어드는 악몽이 현실로…!
“흐음…. 아예 사막 한복판에서 깨어나도록 놔둘까. 하지만 이것도 약속에 살짝 어긋나는데….”
쓴 물건은 제자리에 돌려놓는다.
기본 된 도리다.
그리고 그건 한유일이 한무일의 몸을 쓸 때도 해당한다.
물론, 화장실에서 교대됐다고 해서 6시간 뒤에 다시 화장실에 주차(?)해놓을 필요는 없다. 어느 정도의 융통성이 허용된다는 뜻이다.
다만, 아시아와 아프리카 대륙의 거리는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려 해도 가깝지 않았다. 제자리에서 너무나 멀고도 멀었다.
심지어!
좋은 의도로 온 것도 아니었다.
늘 그렇듯, 미소녀들과 희희낙락하며 놀기 위한 해외여행.
‘피라미드부터 가서 변명거리를 만들어두는 걸로.’
한유일은 처음 계획대로 움직이기로 했다.
아프리카 대륙 최고의 미소녀들이 생긋 웃으며 그를 향해 손짓하는 환영이 어른거렸지만, 애써 외면했다.
오늘은 미안해! 하지만 다음번에는 꼭…!
...불특정 다수에게 사과한 한유일은 사막 한가운데 오도카니 놓인 피라미드로 향했다.
그 유적을 보며,
“진짜 할 짓 없나 보네.”
이런 무덤 만들 시간에 차라리 미소녀와 술래잡기를 하겠다.
하렘의 왕은 그다운 생각을 했다.
현재는 사람이 살지 않는 돌산에 지나지 않지만, 고대에는 관광명소로서 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곳이었다.
이집트의 주요수입원이었다고 할까!
그 피라미드도 현재는 하나뿐이 남지 않았다.
『쿠푸 왕의 대피라미드』
최초의 정삼각형 사각뿔 형태의 피라미드의 주인.
그런 시시콜콜한 내용은 넘어가더라도, 괴수의 단순한 화풀이, 심심풀이에 80개나 되던 피라미드가 전부 파괴되고 하나 남았다.
당연히 그 하나 남은 피라미드 안에조차 현재는 방치된 상태.
관리인은커녕 사람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생존의 달인인 프로사냥꾼조차 이 근방에서는 먹고 마실 수단이 없을뿐더러, 또 이런 돌무더기를 지킨다고 칭찬해줄 사람도 없는 까닭이다.
그래도 의미는 있다.
【이즈헬 / 9종 특수】
운이 좋아서 ‘쿠푸 왕의 대피라미드’가 살아남은 게 아니다.
모래의 정령이 살던 보금자리.
괴수 위에 군림한 왕으로서 존재하는 유일한 정령이기에 ‘정령왕’이라고도 불린다. 물론, 정령의 왕인 건 아니다.
사막을 서식지로 삼는 ‘사막형 괴수’들을 다스린다.
‘...아무도 없는 건가?’
옛 보금자리는 현재 버려졌다.
그래도 왕이 살던 곳이라고 괴수들이 건들지 않고 있지만, 그건 파괴할 이유가 딱히 없어서 그런 것뿐, 왕을 향한 예우가 아니다.
“입구를 봉쇄해놨군.”
친절하게 이렇지 않아도 되는데….
꼭 도굴꾼 같다는 생각에 살짝 머리를 긁적인 한유일은 옆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방패’ 겸 종자인 인형이 자연스럽게 검을 바친다.
스르륵.
하지만 삽질할 필요가 없었다.
주위의 특수능력을 흡수하는 폴리검의 능력이 자연스럽게 출구를 막고 있던 ‘모래 벽’을 허물었다.
하지만 살짝 의아했다.
이즈헬의 능력이 ‘모래를 움직이는 힘’인 건 맞지만, 일단 변형을 마친 후에는 ‘자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아프리카의 수많은 도시가 ‘모래’로 만들어진 것도 그렇다. 그걸 전부 유지하는 거였다면 최강 계열에 들어가는 이즈헬도 무리였으리라.
쉽게 말해서, 한 번 만들면 그걸로 끝인 거다. 그 이후에는 ‘마법’ 같은 특수능력이 전혀 개입하지 않는다.
그러니 폴리검의 ‘특수능력 흡수’에 반응할 이유도 없다.
한데, 이건 어찌 된 영문일까?
‘이즈헬이 아닌 누군가 해놨다고 봐야겠지?’
자연을 모체(母體)로 삼는 정령이 아니라면 당연히 힘이 소요된다.
불덩이를 손에 쥔 마법사처럼.
만든 걸로 끝나는 게 아니다. 그걸 난로 대용으로 쓸 수 없는 건, 끊임없이 정신력 비슷한 특수자원이 계속 소모되기 때문이다.
“두근거리네.”
동족(同族)이 해놓은 짓이란 가정은 벌써 송두리째 증발했다. 피 빠는 흡혈귀가 사실은 타고난 마법사라는 건 지나친 발상이다.
이젠 순수한 동심(童心).
한무일의 기억을 계승하면서 어른 흉내를 내고 있지만, 한유일은 이제 막 1살 지난 어린애였다. 호기심 왕성한 시기란 뜻이다.
만약, 숙주가 ‘내가 먼저!’라고 못 박아두지 않았다면, 진작에 여체(女體)의 신비부터 낱낱이 파헤쳤으리라.
아무튼, 궁금한 게 많다.
인내심도 부족하고.
‘영화에서처럼 갑자기 무너지거나 하진 않겠지?’
죽음은 두렵지 않지만, 매몰(埋沒)은 솔직히 걱정됐다.
진짜 최악의 사태가 벌어져도 한무일이 어떻게든 해결해줄 거라고, 멋대로 단정한 한유일은 씩씩하게 피라미드 안으로 전진했다.
곁에 미소녀가 있으면 더 좋을 텐데….
그런 나사 풀린 푸념마저 할 정도로 여유만만했다. 누군가 ‘어째서 입구를 막아놨을까?’ 같은 의문이나 경계는 조금도 하지 않았다.
“음?”
하지만 [예지]와 [예감]마저 대책 없는 건 아니다.
한유일의 권태로운 성격도 이런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강해지면서 [예감]이 거의 무용지물이 된 한무일과 달리, 한유일의 수박 겉핥기식의 [예감]은 빠릿빠릿하게 작동했다.
여기에 더해지는 [예지]가 앞으로 상황을 예견해줬다.
“입구의 봉인이 풀렸습니다!”
“침입자를 찾아야 해!”
“상대는 대마법사가 분명해요!”
피라미드에 온갖 비밀통로가 있다는 건 거짓말이다. 고대의 기술력으로는 영화 같은 기계장치를 만드는 게 불가능했다.
즉, 외길.
하지만 한유일 앞에 모습을 드러낸 일련의 무리가 바로 코앞에서 휙 지나가 버렸다. 전혀 못 본 것처럼.
어두컴컴한 덕분이다.
‘이거…. 생각 외의 수확인데.’
벽에 바짝 붙어서 ‘보호색’으로 피부를 치장했다. 그리고 그의 의도에 동조하듯 ‘영혼석’의 마법이 남은 흔적을 감쪽같이 지워줬다.
한유일도 대마법사?
그건 아니다.
<이히히! 하렘의 왕. 조금은 도와줄 테니까, 안쪽으로 더 가봐. 숙주만큼은 아니더라도 약한 마법이라면 나도 지원해줄 수 있으니.>
방금 앞을 지나친 여자의 젖가슴이 참 맛깔나게 생겼다는….
불필요한 얘기까지 덧붙이며 가더발트 ‘에필로드 프롤로드’가 편승했다.
이걸 뭐라고 해야 좋을까?
바로 얼마 전까지 ‘카르발트’로 얼버무리며 불렸던 속옷은 이제 ‘듀크마’와 합쳐지며 완전히 새로운 종으로 탈바꿈했다.
기존의 능력에 마법이 첨가!
심지어 그 마법도 ‘대마법사 듀크마’를 능가했다.
그리하여 붙여진 이름이,
『옥황사제(獄皇死帝)』
감옥과 죽음의 황제!
점점 궤도를 이탈하는 가더발트의 기행에 괴수대응연맹 과학자들은 탈모증세마저 호소하며 쌓여가는 일거리에 암담함을 표시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
죽은 자의 영혼을 수집할수록 강해진다는 건, 끊임없이 성장한다는 의미였으니까.
잠시 뒷전으로 미뤄졌던 ‘카르발트’ 연구가 밑바닥부터 다시 진행됐다.
뭐….
피라미드에서 수상한 자들을 만난 한유일이나, 태평하게 잠자고 있는 한무일이 그런 사정까지는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지만.
‘헤에~. 피라미드에는 정말로 미소녀들이 사는구나!~.’
아무튼, 마법의 도움까지 받아서 피라미드 깊숙이까지 침투하는 데 성공한 한유일은 이상한 상식을 받아들였다.
좁아야 할 피라미드 내부는 무척이나 넓었다. 그리고 그 공간(空間)에는 조잡하긴 했지만, 사람이 살 수 있는 촌락 비슷한 건물이 아기자기하게 몰려 있었다.
사람의 도시?
...라고 하기에는 일반적인 사람과 생김새가 미묘하게 틀렸다.
귓바퀴가 뾰족하고 길었다.
“이게 그 전설의 엘푸…?”
활과 마법, 정령에 능하고 모두가 선남선녀 일색. 마누라로 얻으면 세상 부러울 게 없는 종족으로 자주 묘사되는 그 엘프.
저건 괴수일까, 사람일까.
그전에 정말로 엘프(elf)이긴 한 건지도 한유일은 의문이었다.
뭐가 됐든….
피난민처럼 꼴이 참 꾀죄죄한 미소녀들이 ‘하렘의 왕’을 안타깝게 했다. 한무일과 다른 의미로 정의심이 불끈불끈…!
<참아. 또 사고 치면 숙주가…. 알지? 히히히!>
< [51화-1] 이계의 피난민 > 끝
ⓒ 파르나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