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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수처럼-210화 (210/287)

< [50화-4] 이계의 말썽꾼 >

검과 방패를 든 한유일의 모습은 위풍당당했다.

빗발치는 총알은 물론이고, 용의 브레스와 할퀴기 같은 공격도 요리조리 피했다. 이것만으로도 하나는 알 수 있다.

‘저 녀석은 [예지]와 [예감]을 모르는군!’

그 하나의 사실만으로도 아주 만만하다고 느꼈다.

아담은 아예 손 쓸 도리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 안일한 마음은 상대의 눈빛이 신중해지면서부터 달라졌다. 지구인에게 [예감]이 있다면 저 외계인도 나름의 장기라는 게 있었다.

말하자면 초능력이라고 할까.

마법과 뭐가 다른지 굳이 정의하자면, 한 가지 능력에 특화됐다고 할 수 있다.

“반사…?”

한 방 먹여줄 생각이었던 한유일은 몸이 뒤로 튕기며 믿을 수 없다는 어조로 말했다.

명백한 치명상을 줄 공격이 역으로 되돌아왔다!

만약, 폴리검이 잘 부러지는 싸구려 검이었다면 순식간에 결판났으리라.

“안 쓰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지.”

“정말로?”

“여자만 밝히는 놈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걸 지킬 힘도 있다는 걸 간과했다. 좋아! 너를 인정하마. 내 힘에 죽을 수 있는 자로.”

“잘난 척은.”

눈살을 찌푸리며 재차 공격해봤지만 무의미했다.

한유일의 그 어떤 공격도 녀석에게는 닿지 않았다.

세상에 이런 말도 안 되는 능력이!

그 세상의 모든 여자에게 절대적인 호감을 얻는 능력이 있는 남자가 할 소리는 아니었지만, 어떤 공격도 안 통하는 적이란 게 말이 되나!

방패로도 어떻게 할 수 없었다.

괴수의 능력을 흡수하는 사기적인 성질도 저 ‘초능력’은 해당하지 않았다. 애초에 방패로 막는다는 개념이 아니었으니까.

‘이건…. 무일의 [반격]을 업그레이드 한 버전인가…?’

몸으로 때우는 한무일은 ‘기술’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건 그냥 타고난 능력. 괴수가 등장했더니 저절로 초능력자도 생겨났다는 흐름의 결과다.

하지만 그런 세세한 것까지는 알 수 없다.

당장 알 수 있는 사실은, 자신의 그 어떤 공격도 통하지 않는다는 것뿐!

“이런 능력을 갖추고 여기로 가출한 이유가 뭐냐.”

“...그걸 질문이라고 하냐. 잔인한 놈.”

“여난(女難)?”

“지옥에나 떨어져라. 망할 승리자. 그리고 염라대왕이 물으면 말해라. 서세진. 세상에서 가장 강한 남자가 보내서 왔노라고.”

뭐냐, 저 어마어마한 자신감은…!

대사부터 말투까지 사람 짜증 나게 하는 모든 요소를 다 갖추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 대꾸해줄 수 없었다.

어째서 숙주가 대뜸 ‘필살기’부터 갈겼는지 알 것 같았다. 저 녀석의 진짜 방어력은 몸에 두른 마법 장비가 아닌 초능력이었다.

저걸 뚫지 못하면 필패이리라!

그리고 폴리검은 분하게도 저 공격을 뚫지 못했다.

‘에쏘드는 어떨까.’

모든 특수능력 무효화는 저 초능력에 통할까?

폴리검이 안 되는 걸로 봐서는 영 힘들 것 같다. 그렇다면 시작부터 방심한 틈에 끝장내려던 한무일의 선택은 탁월했다고 봐야 한다.

다만,

저 능력은 ‘지속성’인 것 같다.

본인 뜻대로 항상 유지할 수 있는 편리한 능력!

“까불지 마라. 피차 공격이 안 들어가는 건 마찬가지니.”

이렇게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서로의 방어는 단단했다.

초능력은 흡수할 수 없지만, 외계인 ‘서세진’의 주력 무기인 ‘마법총’과 ‘마법검’은 유감없이 폴리검의 방패에 흡수됐다.

공격을 반사하는 초능력이 얼마나 만능인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서로에게 그렇다 할 공격이 안 들어가는 건 같았다.

물론, 언제든지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는 아슬아슬한 줄다리기였다.

각자에게 피해 주길 포기하고 옆으로 눈을 돌린다면?

‘뭐…. 저 애들이 순순히 당해줄 것 같진 않지만.’

저 외계인에게 피해를 줄 순 없어도 당하진 않으리라!

이 또한 무작정 신뢰하면 큰코다칠 수 있지만, 적어도 아직은 괜찮아 보였다. 그리고 저 서세진이란 녀석이 ‘용’을 얼마나 아끼느냐가 또 관건.

이래저래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다.

아니, 어째서 자신들은 싸워야 하는지부터가 의문.

점점 소강상태에 접어드는 중이라 대화는 간단히 이루어졌다. 그 와중에 방패로 총알을 무효화 하는 걸 잊지 않으며.

“어째서 기습한 거냐?”

“하아? 그걸 몰라서 하는 소리냐?”

역으로 되묻는 서세진.

하지만 정말 알 수 없었던 한유일은 인내심을 갖고 재차 질문했다.

이 녀석은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안 든다고 되새기며,

“모른다. 어째서 네가 여기 있는지부터 전부.”

“원정이다.”

“원정…?”

“내 고향은 여기처럼 괴수에게 일방적으로 당하지 않았거든. 역으로 괴수를 사육하고 길들이는 수준이지.”

근본적인 차이가 있었다.

우선, 세상에 괴수가 등장하자마자 ‘짜잔!’ 하며 나타난 초능력자 같은 게 없었다. 그리고 모든 괴수가 싸움만큼은 멍청하지 않은 지능범이었다.

과학기술에서도 차이가 있었다.

『마정석』

여기서는 괴수를 아무리 죽여도 이런 ‘특이자원’ 같은 게 나오지 않는다.

괴수도 죽으면 공평하게 고깃덩어리가 될 뿐.

즉, 난이도가 달랐다.

신(神)이 안배라도 해둔 것처럼, 인류가 괴수의 침공을 막기 위한 그 어떤 초월적인 현상이나 도움이 일절 없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는 중요하지 않았다.

“배가 불렀으니 여기도 넘보겠다는 건가?”

“뭐…. 그런 거다. 예린의 등쌀에 못 이겨서 잠시 휴식 차원으로 선발대에 지원했지. 아! 예린은 참고로 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여자다! 성예린.”

“안 물어봤다.”

전투 양상은 느긋하게 대화할 수 있을 만큼 지지부진했다.

다만, 둘 다 먼저 후퇴하지 않고 꿋꿋이 버티는 상황!

어느새 자존심 싸움이 된 것이다.

‘저 반사도 완벽하진 않은 모양인데…?’

정신력 같은 게 소모되는 걸까.

무적처럼 보이던 서세진은 눈을 가늘게 뜬 채 버티고 있었다. 노려보는 것처럼 힘을 꽉 준 표정이지만, 눈만큼은 졸려서 확실히 풀려 있다.

그건 본인도 느꼈다.

서세진은 자존심을 접고 후퇴하기로 마음먹었다.

‘뭐 저런 괴물이….’

똑같이 지칠 줄 알았는데 상대는 팔팔했다.

인간인지부터 의문이고.

마정석을 가공해서 만든 무기가 안 통하고 오직 초능력만 효과가 있다. 이런 ‘괴물’은 자신 같은 ‘방어형’이 아닌 ‘성예린’ 같은 ‘공격형 초능력자’가 상대해야 한다.

이대로라면 진다.

아니, 원군이 올 때까지 버틸 순 있다.

(서세진 대장님! 혼자서 또 어딜 가신 겁니까?)

(이 행성의 생태계 조사….)

(어서 돌아오십시오. 고향에서 사모님이 빨리 전화받으라고 전해달라 하셨습니다. 10분 이내로 안 받으면 바람피운 걸로 간주한다고.)

(헉! 여긴 전파가 잘 안 잡혀서 그런 건데! 바람이라니!)

하지만 그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사방에서 말똥말똥 쳐다보는 ‘전라의 미녀’들 때문에 그렇다.

이런 광경을 아내가 본다면….

‘죽는다! 반사고 뭐고 잔소리에 죽는다!’

자신이 ‘최고의 방어형 초능력자’라면 아내는 ‘최강의 공격형 초능력자’다.

막기만 해서는 이길 수 없다.

그래서 늘 서세진은 성예린에게 순순히 져준다.

...본인은 그렇게 생각한다.

침대 위에서는 역전되어 늘 공격하는 입장이었기에 그 믿음 또한 확고부동! 그러면서도 어째서 자신은 여기에 있는지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었다.

“쯧. 오늘은 내가 좀 바쁘니 다음에 또 붙자.”

이렇게 피로를 느껴본 적도 참 오랜만이라고, 서세진은 생각했다.

선발대로 나서기 전에 정력을 너무 써서 그런 걸까?

‘아니, 그럴 리가.’

이건 분명히, 아까 그 이상한 공격을 막은 후유증이다. 너무 강해서 반사는커녕 옆으로 살짝 굴절을 일으키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그 여파만으로도 몸에 두르고 있던 ‘최상급 마정석’ 수십 개가 못 쓰게 됐다. 균열이 여기저기 생기는 바람에 충전과 재활용도 불가.

이걸 새로 장만하려면 또 얼마나 걸릴까.

서세진 본인이 ‘최상급 사냥꾼’으로서 ‘마정석’도 잘 모으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최상급’마저도 넘쳐나는 건 아니다.

그렇게 벌써 돈과 시간 계산에 여념 없는데….

“공처가 녀석. 아내가 부른다고 즉각 달려간다니.”

“...넌 내가 반드시 쓰러트린다! 다음번에는 이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을 거다. 괴물.”

“음?”

괴물이라고?

등에 달린 날개를 보면 부정하기 힘들었다.

딱 봐도 ‘남성형 괴수’였으니까.

“지금은 이렇게 물러나지만, 최강의 공격대로 곧 다시 상대해주마. 인간의 저력을 얕보지 말라고.”

“야! 대단히 착각하는 게 있는데….”

같은 사람이라고 말해 주려던 한유일은 말문을 잃었다.

촛불이 꺼지듯 외계의 인간과 용이 눈앞에서 감쪽같이 사라진 탓!

『공간이동』

지구의 기술로는 현재 미구현 상태인 능력.

하지만 ‘마정석’이란 변수가 있는 세계에서는 저게 가능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저쪽은 여기로 원정 온다고 했지만, 그건 이 지구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살기 급급하지만, 분명히 저 ‘마정석’을 탐낼 것이다.

저거라면 불리한 현 상황을 단번에 뒤집을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한유일은 거기까지만 생각하다가 말았다.

숙주도 그렇지만, 그도 이런 복잡한 일에는 관심 없다. 그는 언제나 ‘미소녀’만 곁에 있으면 그만이다.

“흐음. 이거, 대단히 편리한데?”

하렘의 왕은 날개를 파닥여보며 씩 웃었다.

오늘은 자유시간이 넉넉했다.

마기나로크를 찔끔찔끔 쓰던 한무일은 길어야 10분이면 피로회복 하고 깨어났다. 하지만 오늘은 좀 무리했다.

끽해야 10%로 썼는데 오늘은 무려 50%!

소모가 적을 때는 회복도 빠르지만, 커지면 커질수록 회복도 더뎌진다. 그러니 지금은 깊은 꿈나라에서 헤매고 있으리라.

‘...이게 말로만 듣던 일탈의 기회란 건가.’

날개가 생긴 덕분에 지구의 어디든지 갈 수 있다.

하늘뿐이랴?

반쪽짜리 백혈구울이었던 황진천처럼 자유롭진 않지만, 지하(地下)와 해저(海底)도 얼마든지 돌아다닐 수 있다.

여기에 스텔스기능까지!

레이디 가브리엘의 능력을 복사했다.

“늦기 전에 돌아오면 문제없겠지.”

웨딩풍의 계약자 ‘아이밍 리’에게는 목포로 먼저 돌아가라고 지시했다.

그 즉시, 거대한 고래가 성층권을 가르며 빠른 속도로 가던 길을 나아가기 시작했다.

물끄러미 사라지는 걸 확인한 하렘의 왕.

행복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어딜 먼저 가볼까나?”

무작정 가면 ‘왕의 품격(?)’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니 계획이 필요하다.

한유일은 천천히 ‘한무일의 기억’을 더듬어봤다. 온종일 괴수 생각뿐인 녀석이지만, 의외로 고대의 상식 같은 것도 많이 알고 있으니까.

금서(禁書) 마니아.

위인전을 제외한 고대소설을 좋아한 덕분이다.

‘음…. 아! 여기가 좋겠네.’

한유일은 자신의 날개와 새로운 능력을 보면서 느낀 바가 많았다.

그건 정체성이다.

고대의 인류에 등장했던 흡혈귀는 자신과 전혀 다른 종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달리 보이게 됐다.

어쩌면…?

이런 가정이 생긴 것이다.

“피라미드라…. 죽지 않는 ‘미라’라는 불사신이 산단 말이지?”

죽여도 죽지 않는 뱀페스트는 ‘불사신’이라고 칭한다. 여기서는 ‘흡혈’ 얘기가 없었지만, 살아있는 인간의 살을 물어뜯었단다.

진실이 살짝 왜곡됐다고 친다면…?

그 ‘미라’라는 녀석은 동족일 확률이 대단히 높았다!

그렇다면 당장 확인해보는 수밖에. 어쩌면 그 거대한 사각뿔 집에서 미소녀들과 알콩달콩 지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피라미드에 수많은 미녀와 아내를 함께 묻었다고 하니까.

‘아…. 스텔스기능은 의미 없나.’

몸에 두른 장비들에는 온갖 추적장치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여탕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니 당당하자!

하렘의 왕은 ‘외계인 침공설’ 논란은 잠시 제쳐놓고 아프리카 대륙의 초강대국, 이집트까지 쭉 날아갔다.

< [50화-4] 이계의 말썽꾼 > 끝

ⓒ 파르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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