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화-2] 이계의 말썽꾼 >
‘시체가 얼마나 있으려나…?’
역시, 이 문제가 남았다. 어차피 영혼만 소환해서 영혼석으로 옮기면 다시 죽는 셈이니 사요나락이 미남, 미녀를 따질 필요도 없다.
게다가 운이 좋았다.
울프남의 가죽은 사냥꾼의 옷을 만드는 재료로 쓰이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시체를 소각하는 일은 없었다.
도끼토끼와 오니오프의 공격을 받고 뼈조차 못 남긴 녀석들은 어쩔 수 없지만.
“이, 이게?!”
“크억?!”
“죽었을 텐데?!”
신비로운 현상에 익숙한 괴수에게도 ‘부활’은 자주 경험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무두질을 위해 공장으로 옮겨진 울프남.
무일은 각국에 협조를 보낸 후에 가장 많은 시체를 보관 중인 나라부터 하나씩 순회하기 시작했다.
목적은 당연히 영혼을 추출하기 위해.
그 목적만 본다면 전설의 ‘대마왕’이라고 해도 할 말 없다.
<뭐지…?>
<여긴 어디야?>
<...감방인가.>
영혼석으로 영혼이 빨려드는 조건은 딱 둘이다.
영혼석 근처에서 죽을 것.
명백한 죄를 지었을 것.
특히, 후자는 좀 모호한 감이 있다. 죄의 기준은?
그 기준은 ‘엘퍼러’가 ‘쟤는 나쁜 놈!’이라고 주관적으로 판단하면, 실제로 선량하든 아니든 빨려 들어간다.
그래서 늑대인간은 예외 없이 끌려갔다.
삼투압 현상처럼 영혼석 속으로.
<아…. 재미없는 멍멍이다.>
떡처럼 주무를 젖가슴도 없고 목소리 깜찍한 여자도 아닌, 시커먼 울프남에 실망한 교도소장 ‘에필로드 프롤로드’.
당연히 그 대우도 죄수 1번, 2번과 다를 수밖에 없었다.
사심 듬뿍!
창고에 욱여넣듯, 요강 하나 없이 텅 비고 비좁은 감방에 늑대인간 서넛씩 배정했다.
굳이 고문을 안 해도 이 자체만으로도 지옥이었다.
자유로이 초원과 도시를 헤집고 달리던 늑대에게 이건 견딜 수 없는 답답함!
<꺼내줘! 꺼내라! 아니, 꺼내주세요!>
<나와서 정정당당하게 겨루자!>
<이 상황이 대체 뭐야! 뭐냐고!>
감방문을 탕탕 두드려도 소리 하나 안 났다.
방음처리가 철저히 이루어진 것도 있지만, 영혼뿐인 그들에게는 힘이 없었다. 이 교도소 내에서는 교도소장이고 왕(王)이고 신(神).
뭐든 마음대로였고, 그게 가능했다.
못 하는 건?
『영혼 파괴』
이 감옥의 목적의의이기에 영혼에 물리적으로 해를 끼치는 행동은 할 수 없다. 구타와 고문 같은 것이 그렇다.
오직, 정신적이 고통을 주는 것만 가능하다.
이걸 다행이라고 할까?
성추행이 생활화된 이 교도소장은 그런 악취미나 직업 정신이 전혀 없었다. 상대가 남자면 공기처럼 여기는 모양이다.
완전히 개무시!
하지만 누가 그랬던가?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벌은 ‘무관심’이라고.
“쌓여가는군.”
텅텅 비어있던 영혼석은 빠른 속도로 늑대인간의 영혼들로 채워졌다.
그 용량 한도가 없는 것처럼 꾸역꾸역.
겉으로 그 현상이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다. 영혼이 절규하며 보석에 빨려 들어가는 비쥬얼이 보였다면 사람들은 공포에 떨었을 것이다.
아니, 이미 각국 인사들은 오금이 저려서 말도 안 나왔다.
『딱, 저승사자!』
어릴 적에, 엄마 말 안 들으면 귀신이 잡아간다는 얘기를 믿고 밤새 벌벌 떨었던 추억과 비슷했다.
하지만 이들은 어른!
어른이 된 그들은 어른의 말을 믿지 않는다. 역으로 속이는 쪽이다.
분명 그랬을 터인데….
바로 눈앞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까지 외면할 순 없었다. 정말로 끌려가서 영원히 고통받는 시스템!
‘무기징역….’
‘마법의 촉매….’
‘수명 무한….’
인간이 생각하는 ‘무기징역’은 죽을 때까지 평생 감방에서 썩는 걸 뜻한다.
즉, 영원하다고 해도 결말이 뚜렷하게 존재한다.
언젠가 늙어 죽을 테니까!
하지만 영혼에 수명이 있다고는 여기지 않는다. 아니면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길던가. 이미 윤회사상이 허풍이나 망상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과학이론도 나오고 있다.
『갇히면 끝장!』
막대한 빚을 지고 사회적으로 매장된 것보다 더 문제다.
빚쟁이가 되면 극복 혹은 자살이란 방법이 있다.
이건 결말이 없다.
끝없이 괴로운 과정만 있고 ‘희망’이 안 보인다. 자살이란 어리석은 판단조차도 ‘죽으면 자유로워진다.’는 막연한 기대가 있다.
한데, 이건 생각해볼 것도 없는 최악의 결말! 아니, 과정뿐!
“협조에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살펴가십시오! 엘퍼러!”
떠나거나 방문하는 엘퍼러에게 깍듯하게 인사했다. 누구든.
밉보이면 그걸로 인생은 안녕~!
몰라도 좋은 사실까지도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엘퍼러 덕분에 모두가 목울대로 침을 넘기며 등 뒤로는 식은땀을 주르륵 흘렸다.
만용? 허세?
그것도 때와 장소를 가려가며 해야 하는 법이다.
『사나이로 태어나서 한 번 크게 하고 떠나야지!』
뭘 크게 할 건데?
아니, 그거야 마음대로 해라.
하지만 ‘비장하게 죽는 주인공’처럼 멋지게 무대에서 퇴장할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조상님들도 말씀하셨다.
개똥에서 구르더라도 이승이 낫다고.
“흠…. 대략 천 마리쯤 확보한 건가.”
그 이상은 무리였다.
시체의 훼손도 훼손이지만, 사요나락의 설명을 빌리자면 ‘영혼의 유통기한’이 지났기 때문이다. 이건 개인차가 심해서 해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
죽고 100년이 흐른 후에도 부활시킬 수 있는 자가 있지만, 죽고 하루도 안 지나서 영혼을 찾을 수 없는 부류도 있다.
인간은 이 기복이 그나마 적어서 대략 1년쯤은 부활 가능 범위.
하지만 괴수는 이 기복이 매우 컸다.
아무튼….
마법을 별 무리 없이 쓸 수 있을 만큼의 영혼을 확보했다.
‘듀크마는 바본가?’
포식자의 정점인 8종 괴수 중에서 가장 약하다는 평가를 받던 듀크마.
하지만 그건 전부 자초한 일이었다.
영혼석에 가둘 대상을 ‘미녀’로 고집부리는 바람에 영혼을 많이 확보할 수 없었다.
촉매가 적으면?
당연히 ‘마법’은 약해진다.
그 반대면?
엘퍼러처럼 진짜 대마법사가 될 수 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죄수 2번 ‘원조 대마법사’는 도라질 치며 극구 부정했다.
영혼석에도 엄연히 한계가 있다.
수용할 수 있는 영혼의 숫자는 정해져 있는데, 한 번 잡아둔 영혼은 빼내거나 교체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수집품’을 신중히 고르게 된 것뿐이다.
전부 미녀로.
그런데 ‘엘퍼러’는 그런 게 없어 보였다.
외적 요인(가더발트)과 합쳐지면서 영혼석이 크게 변질하거나 강화된 게 아닐까?
그 정도밖에 추측할 수 없었다.
“...흠. 좀만 더 모으면 영혼석에서 빼내는 것도 가능하겠는데.”
무일은 ‘대마법사’로 거듭나면서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창조주의 마법 실력을 뛰어넘을 수 없었던 듀크마와 달리, 엘퍼러는 ‘변질한 영혼석’ 덕분에 초월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한 번 가둔 죄수는 풀려날 수 없다.’는 대전제마저 고칠 수 있는 ‘마법’을 쓸 역량에 점점 가까워지는 중.
다만, 당장은 영혼을 더 모을 방법이 없었다.
그 과정에서, 인간형이 아닌 괴수는 영혼석에 안 들어가 진다는 것도 실험을 통해 겸사겸사 알아냈다.
“기사님! 정말이세요?!”
가장 기뻐하는 인물은 당연히 죄수 2번.
실바니아 하이로드는 MID 기술 덕분에 당면한 불편함은 해소할 수 있었지만, 여전히 원래 몸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렇게 간절한 이유는 점점 도가 심해지는 교도소장 때문이리라.
이젠 내 가슴이, 내 가슴 같지 않다!
가더발트 계약자들이 어째서 일찌감치 자살을 택하는지 알 것 같았다. 여자로서 굴욕과 수치를 뛰어넘어, 견디기 힘들었다.
‘숨 돌릴 틈은 줘야지!’
그나마 듀크마와 함께 번갈아가면서 당하는 덕분에 참아지는 것이다.
온종일 주물러졌다면 미쳐버렸으리라.
남정네 손도 잡아본 적 없을 만큼 곱게 자란 왕녀에게, 이건 견디기 힘든 고문 아닌 고문이었다.
아니, 여자에게 당한다는 점에서 정신피해가 더욱 컸다.
나날이 영혼이 피폐해지는 기분이다.
“앞으로 500명쯤 더 확보하면 돼.”
“오백….”
조금이 아니잖아요.
실바니아 하이로드는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어리광부리거나 약한 모습을 보여줄 순 없었다.
사람은 ‘희망’이 보이면 강해진다.
그건 이 ‘가슴 지옥(地獄)’에서 탈출할 방도가 있다는 얘기를 들은 실바니아 하이로드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천 명을 확보했다.
또 어디서 울프남 같은 괴수들이 미쳐서 덤벼들면 순식간에 확보될 숫자.
그리고 시일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야금야금 늘어날 것이다.
‘테러리스트 체포에 좀 더 박차를 가해볼까.’
꼭 그녀를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지구를 위해서는 필요한 일.
무일이 그렇게 생각하며 웨딩풍을 타고 태평양을 횡단하고 있을 때였다.
“음…? 잠깐! 멈춰!”
웨딩풍의 반응은 빨랐다.
갑작스러운 무일의 지시에도 즉각 반응하며 허공에 멈춰 섰다.
그 직후.
강렬한 충격파가 웨딩풍 앞을 쓸고 지나갔다.
‘기습! 누가?’
오늘 본 각국 대표나 수장들은 간이 콩알만 해 졌다. 이렇게 대범하게 덤벼올 수 없다. 아니, 승패가 이미 갈렸는데 덤빌 생각이나 들까.
그렇다면 이건 누구의 소행인지 오리무중.
계속 웨딩풍이 나아갔다면 직격을 면치 못했을 방향에서 날아왔다. 덤으로 그 피해가 상당히 컸으리라 예상됐다.
정말 오랜만에 울리는 [예감] 덕분에 무사할 수 있었다.
이걸 기뻐해야 할까?
영 먹통인 [예감]이 고장 난 게 아니라고.
“내가 긴장해야 할 적이라?”
추종자들은 울프남 토벌을 마치고 귀환한 상태다. 그리고 현재 웨딩풍에 남은 전력은 도끼토끼와 사요나락이 유일.
웨딩풍에서 거주하는 윈드걸스 5백도 있지만, 이런 ‘강적’에게는 통할 것 같지 않다. 역으로 피해만 늘어날 뿐.
무일은 일단 답례부터 해주기로 했다.
저쪽에서는 기선제압이든 뭐든 원한다면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알려주리라.
미지의 적을 향해.
엘퍼러는 도끼토끼에게 지시했다.
“저 방향으로 크게 한 방 긁어.”
정확히 어디인지는 말해줄 필요 없었다.
추종자는 교감을 통해 정확한 지시를 하달받고 거기에 응했다.
파앙-!
그 짧은 시간 동안 웨딩풍과 아주 친해진 걸까? 공격받았다는 사실에 격분한 도끼토끼의 눈에서 강렬한 빛이 쏘아졌다.
그대로 구름조차 없는 허공을 찔렀다.
하지만 막혔다.
그 어떤 미지의 적이 친 보호막에 막힌 것이다.
“와이츠…?”
아니다. 덩치와 색깔은 분명 8종 용신 와이츠와 흡사했지만, 외형은 전혀 달랐다. 날개 없이 날아다니는 저 거구를 뭐라고 설명해야 좋을까.
괴수보다도 더 물리법칙을 무시한 도마뱀.
하지만 무일의 시선을 잡아끈 건 그 미확인 백룡(白龍)이 아닌, 그 녀석 머리 위에 올라탄 사내였다.
양손에는 무늬가 화려한 원거리 무기가 들려있다.
오른손에는 핸드건, 왼손에는 레일건.
총기류에도 제법 정통한 프로사냥꾼 한무일이 모르는 디자인이다. 그리고 복장은 과학에 어울리지 않는 르네상스식.
둥근 옥구슬이 여기저기 주렁주렁 매단 로브를 걸친 수도승 혹은 마법사라고 할까.
‘...지구인은 아니군.’
웨딩풍 밖으로 뛰쳐나온 엘퍼러는 자신과 대치 중인 상대를 ‘외계인’이라고 단정했다. 꼭 복장만이 아니라 [예감]이 그랬다.
발동조건이 까다로워졌지만….
한 번 발동한 [예감]은 지구의 그 어떤 사냥꾼보다도 압도적인 성능을 발휘했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사실과 정보를 찍어서 맞출 수 있을 만큼.
뭐하던 놈인지 알 수 없지만, 적의는 명백했다. 좀 더 명확히 하자면 남을, 세상을 깔보는 시선에 가까웠다.
적의는 먼저 공격당한 엘퍼러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기습이고 웨딩풍 안에 있었다지만, [반격]하지 못했다는 건 대단히 자존심 상하는 문제였다.
최근에 해이해진 게 분명하다!
반성하기로 했다.
“이계에서 굴러온 사고뭉치 양반. 집에서 쫓겨났다고 옆집에서 이러면 안 되지.”
< [50화-2] 이계의 말썽꾼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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