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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수처럼-207화 (207/287)

< [50화-1] 이계의 말썽꾼 >

[50화] 이계의 말썽꾼

학명: 울프남(남자 같은 늑대)

서식지: 도시

특징: 변신합니다!

위험도: 5종 보통

비고: 늑대 같은 남자란….

***

이 세상은 방대하고 다양하며 무한하다.

우주를 뜻하는 게 아니라 그만큼 무수히 많은 상황이 예고 없이 찾아온다는 뜻이다.

가령, 외계인이 침공해온다든가?

첨단무기를 퍼부어도 죽지 않는 괴수와 정령이 있는 마당에, 마법과 초능력을 쓰는 인간이 튀어나온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 없다.

그럼,

여기에 한술 더 떠서, 그 ‘외계인 힘’을 익힌 원주민(지구인)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그 주인공이 있다.

이젠 이 남자와 관련된 일이라면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엘퍼러』

소설책에 나오는 ‘마법사’들처럼 방대한 주문을 암송하는 고난은 없었다. 수학을 도입해서 머리 싸맬 필요는 더욱 없었다.

그저 자연스럽게 행하는 것이다.

자신의 손발을 움직일 때마다 계산할 필요는 없잖은가?

필요한 건 ‘적성’과 ‘촉매’다.

특히, 마법을 발현해주는 매개체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 고대의 전설에서 마법사가 굳이 날카로운 검을 놔두고 지팡이와 수정구를 들도록 묘사되는 게 아니다.

다 이유가 있다니까?

재미있으라고 욱여넣은 과장이나 허세도 다수 포함되어 있긴 하지만.

“아, 그렇군?”

호들갑 떨지 않고 담담히 받아들였다.

모든 걸 해명할 필요는 없다. 그건 고명한 전문가들이 대신 머리 굴려주리라.

무일은 ‘실전’에서 써먹을 수가 늘어났다는 걸로 충분했다.

그리고,

실바니아 하이로드의 상태였다.

그녀는 무일의 이마에 박힌 영혼석에 갇혔다. 다시 몸으로 돌아가려 해도 영혼석이 육체에서 떨어져나온 탓에 당장은 방법이 없었다.

대신, 특이한 상황이 연출됐다.

『원격조종』

실바니아 하이로드는 자신의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고대에 사라진 컴퓨터, 오락기 게임처럼 ‘아바타’를 조종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당연히 치명적인 단점이 존재한다.

3인칭 시점이란 것!

내 몸을 제삼자 입장에서 고려해야 한다.

이게 무슨 말이냐….

“대단히 곤란하게 됐네.”

실바니아 하이로드의 몸은 한무일의 시야에 안 보이면 안 된다.

모니터 안 보고 게임이 가능할 리 없잖은가?

영혼에서 영적인 신호가 뇌로 보내지면 그걸 해독해서 몸이 움직이도록 생체신호를 보내는 방식이다.

다만, 일방통행이라서 ‘오감’을 전달받을 순 없다.

이 탓에 그녀는 영국 왕실이 원하던 의도대로 ‘항상 곁에 있는 비서’처럼 꼭 붙어 다닐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아, 정정한다.

함께 있을 변명이 생겼다!

“폐를 끼쳐서 죄송해요, 기사님.”

“됐어.”

선지혜가 잠깐 신경질 부린 걸 제외하면 무난하게 넘어갔다.

그녀의 위치는 늘 한무일 앞이다.

영혼석이 보여주는 시야는 한무일이 바라보는 정면뿐인 까닭이다. 그래서 최근 며칠 동안 그녀는 벽에 부딪히고 계단에서 구르는 등의 고난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대로 괜찮을까?

당연히 그럴 리 없다.

선지혜가 열심히 정비과를 쪼아대고 있었다.

그래서 새로운 장비가 뚝딱 계발됐고, 실용화 단계에 놓였다.

“이게 그 카메라인가.”

목걸이 형태의 감시카메라 일종이다.

시각과 청각을 대처한다.

이걸 ‘실바니아 하이로드 육신’의 목에 단단히 고정하고, 여기서 받은 정보를 ‘실바니아 하이로드 정신’에 전달하는 것이다.

어떻게?

엄지손톱 크기의 얇은 필름처럼 생긴 초소형 모니터로.

이걸 영혼석 표면에 잘 보이도록 착! 붙였다.

그야말로 진짜 ‘RPG 게임’이 완성됐다! 장르는 현대물?

“과학은 위대하네요.”

진심으로 그녀는 인류문명과 용신의 MID 기술에 감사했다.

늘 기사님 곁에 있을 수 있다는 건 좋다.

하지만….

화장실에서 볼일 볼 때까지 동행하는 건 역시 좀 그랬다! 물론, 거사를 치르는 광경을 보여주는 불상사는 벌어지지 않았다.

주위에 도와줄 여자들이 많았으니까.

하지만 이것도 썩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 촉감도 못 느끼는 탓에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시야에 안 닿으면 내가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른달까!

실바니아 하이로드는 그냥 몸을 포기하고 싶었던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눈에만 안 띄면 어디서 뭘 하든 상관없기 때문이다.

내 몸이지만, 남의 일처럼 느껴진 까닭이다.

“힘내. 방법을 찾아볼 테니.”

필름 모니터를 이마의 보석에 붙이며 무일은 그녀를 위로했다.

무일은 영혼석 내부가 어떤 기분인지 모른다.

가봤어야 알지!

휴식시간이 와도 그는 영혼석으로 들어갈 수 없다. 그저 위에서 내려다보는 감시자처럼 모든 걸 볼 수 있을 뿐.

한유일은 ‘손님’ 신분이라서 가능했다는데, 이것도 진실이 아닌 것 같다. 따져보면 한무일의 몸에 기생하는 ‘죄’를 범했으니까.

다만, 감옥 관리자가 가더발트 ‘에필로드 프롤로드’라서 편파적인 판결을 내렸을 뿐이다.

그렇다면 듀크마는 어떨까?

<어찌 이런 일이….>

여전히 망연자실해 하고 있다.

그녀는 수갑과 족쇄를 차고, 오른쪽 엉덩이에 ‘2’라고 큼지막하게 쓰인 하얀색 팬티를 입었다. 당연히 교도소장(에필로드 프롤로드)가 지급해준 것이다.

저 ‘2’는 ‘죄수 번호’를 뜻한다.

영혼석에 두 번째로 갇힌 죄수.

첫 번째로서 ‘1’이라고 쓰인 팬티의 주인은 실바니아 하이로드였다.

간편하게 1번.

성희롱이 취미인 교도소장은 인정머리가 없었다.

“선배! 마법 보여줘!”

오늘도 운동 후에 상의를 훌러덩 벗어 던진 선지혜가 바짝 안기며 떼썼다. 어디까지나 의도적인 행동이었다.

실바니아 하이로드는 할 수 없는 행동.

남자 품에 안긴들 그 기분이 어떤지 전혀 느낄 수 없기에 기쁨도 슬픔도 없다. 막말로, 육체가 윤간당해도 ‘어머!’ 정도로 끝날 수도 있다.

질투의 여왕….

핵미사일 발사 스위치와 핵폭탄 탄두 도화선을 수백 개쯤 달고 있는 수준급의 아가씨를 자극해서 좋을 것 없다.

그래서 점잖게 타일렀다.

“서커스 아니다.”

“쪼잔해.”

“정말 필요할 때만 쓸 생각이야. 실비에게 되도록 고통이 안 가도록 해야지.”

“민폐만 끼치지 말고 도움도 돼야지.”

선지혜도 만만치 않았다.

나름 정론.

하지만 상대는 한무일이다.

이성보다 감성이 앞서고 정의에 사족과 변명은 필요 없다는 주의.

아무리 설득해도 안 된다는 걸 ‘14년 스토커 경력’으로 잘 아는 선지혜는 한마디만 하고 순순히 물러났다.

어디까지나 선배가 아닌 ‘민폐녀’ 본인이 들으란 의도다.

반응은 바로 나왔다.

<저는 괜찮아요. 견딜 수 있어요.>

솔직히, 시험 삼아 써본 ‘간단한 마법’조차 대단히 고통스러웠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무자비하게 채찍질하고 상처에 소금 뿌린 아픔.

고문이 따로 없다.

그 부담은 죄수 1번과 2번이 반반씩 동등하게 나눈다. 죄수가 셋이 되면 3등분 될 것이고, 백 명이면 100등분 되는 식이다.

그러니 마법을 팡팡 쓰고 싶다면 죄수를 늘리는 수밖에 없다.

‘유일. 너는 왜 예외일까?’

‘그래서 불만이냐.’

‘그건 아닌데. 가더발트가 차별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엥? 그걸 이제 알았어?’

‘...음?’

‘나는 너와 하나다. 교도소장은 너에게 피해갈 짓을 하지 않아. 내가 고통으로 맛이 가버리면 하루의 6시간이 망가진다고.’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실바니아 하이로드’도 빼줄 수 없었을까?

가더발트 ‘에필로드 프롤로드’는 엘퍼러의 말을 듣지 않는다. 그럼에도 반항적이지 않는다는 게 신기하다.

아니, 어쩌면 ‘흡수’됐기 때문이리라.

그녀도 한유일처럼 ‘엘퍼러’에 기생하는 일부라고 봐도 무방했다.

이전에는 그의 허리에 달라붙어 살았다면, 현재는 이마에 박힌 영혼석으로 본체가 들어가고 촉수만 현실에 남은 상황.

능력은?

만세라도 외치고 싶었다.

주물럭거리는 팬티 없이도 항상 적용되게 변했다. 정말로 육체에 가더발트가 완전히 흡수됐다는 뜻이다.

‘근력만이 아니지.’

괴수처럼 몸이 단단해졌다.

굳이 방탄복을 악착같이 입을 필요가 없어졌다는 의미. 옷보다 맨몸이 더 튼튼하니까!

그래도 인간답게 옷을 걸쳤다.

이마저도 안 하면, 시청사 곳곳에서 알몸으로 돌아다니는 추종자들하고 다를 게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이미 그는 ‘남성형 괴수’ 취급을 받고 있다.

여성형 괴수에게 사랑받고 남성형 괴수에게 절대적인 적의를 받는 9종. 연맹에서는 10종을 새롭게 만들자는 얘기가 조심스럽게 오가고 있다.

그 당사자 눈치 보느라 적극적으로 논하진 못하지만.

“즉, 죄수를 늘려야 한다는 거네?”

마법을 팡팡 쓰려면 영혼석에 많은 영혼을 가둬야 한다.

그래야 부담이 줄어드니까.

듀크마는 어찌 되든 상관없지만, 실비는 안 된다.

언젠가 저 안에서 꺼내준다는 ‘목표’도 세웠다. 세상을 [반격]으로 쓰러트린다는 목적과 별개인 개인적인 희망이다.

“범죄자를 만든다는 것처럼 들리는 건 내 착각이려나….”

“응. 아니야. 굳이 안 늘려도 이 세상에는 나쁜 연놈들이 사방에 넘쳐나는걸! 임자 있는 왕자님을 유혹하는 여자라던가…?”

“너무 몰아치지 마.”

“응. 하지만 괘씸한 건 사실이잖아. 이런 식으로 접근할 줄은 상상도 못 했어.”

“그건…. 글쎄….”

용신(龍神)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선지혜의 주장처럼 남자를 유혹하는 ‘돌직구’라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이렇게 육체와 영혼이 분리된 채 생활하게 될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발상의 전환도 정도껏 해야 한다.

아무튼,

죄수를 늘려야 한다는 점은 맞다.

검사로 시작해서 왕을 해먹고 마침내 마법사의 영역까지 들어섰다. 생긴 재능과 능력을 썩혀두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실바니아 하이로드의 고통?』

마법으로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다면 싼 대가다.

물론, 실비에게 희생을 강요하게 되는 만큼 무일은 따로 보상해줄 생각도 있다. 1차는 당연히 영혼석에서 해방, 2차는 유복한 일상생활 보장.

그 이상은 아직 생각해두지 않았다.

“괴수도 들어가지나 보네.”

“흠. 인간형이 아니어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가더발트처럼 인간의 모습으로 바뀌는 걸까?

장담하긴 힘들다.

일단, 가더발트도 에쏘드처럼 ‘정령’인 까닭이다. 다만, 현실에서 인간의 실체를 만드는 능력이나 기술이 없을 뿐.

궁금하면 즉시 시험해보는 게 인지상정.

괜히 이론과 추측으로 끙끙거리며 고민할 필요 없다.

‘괴수라면…. 되살려내서라도 감옥에 처넣고 싶은 놈들이 많네.’

온 세상의 도시란 도시는 전부 총공격해서 온갖 패악을 저지른 늑대인간.

본인들은 생존경쟁, 약육강식, 종족번영 등이라고 하겠지만, 그건 녀석들의 관점이다. 인간은 인간의 관점에서 해석하면 된다.

이 ‘듀크마’라는 감옥을 창조한 마법사처럼.

죄(罪)의 유무는 인간의 사고방식으로 판결된다. 여기에 배심원의 주관 같은 변수가 노골적으로 섞여들어 간다.

그러니 울프남은 전부 유죄다.

단 3시간 만에 박멸 직전까지 몰아넣는 걸로 보복조치를 했지만.

“잠만. 되살려내서라도?”

그럼 되살려내면 그만이잖아?

사요나락, 엔츄 베르테.

시체가 아직 있다면 그 영혼을 이 땅으로 다시 당겨올 수 있다.

지옥(地獄)에서 죄를 정산 중이던….

천국(天國)에서 하느님이랑 춤추던….

잠시, 하던 일은 중단하고 엘퍼러의 판결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결과는 딱 둘이다.

성불(成佛) 아니면 무기징역(無期懲役).

참으로 간단명료하다.

< [50화-1] 이계의 말썽꾼 > 끝

ⓒ 파르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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