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수처럼-203화 (203/287)

< [49화-2] 진격의 늑대 >

(엘퍼러! 큰일 났습니다!)

무일이 심각하게 받아들이든 아니든 괴수대응연맹에서 즉각 연락을 보내왔다.

역시, 그 늑대울음이 문제였던 걸까?

평범한 늑대치고 너무나 큰 소리. 하지만 늑대가 울 듯 ‘늑대 괴수’도 울 수 있겠거니 하고 넘어갔었다.

실바니아 하이로드가 당장 더 중요하기도 했고.

하지만 맹주가 직접 연락해올 정도니 단순한 문제는 아니리라.

(늑대 때문입니까?)

늑대 괴수라고 하면 떠오르는 건 단 하나뿐이다.

5종 괴수, 울프남.

요즘처럼 고위괴수가 범람하는 시대에, 울프남은 주목받긴커녕 그저 그런 괴수다. 그런데 뭐가 문제란 걸까.

‘숫자가 많은 건가.’

딱히 생각나는 건 그 정도였다. 그리고 그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아몬 헤이젤의 설명을 들으니 그 숫자가 ‘많다.’는 수준을 아득히 넘어서 있었다. 아니, 많다기보다는 그 숫자가 동시에 움직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울음소리.

전 대륙에 울려 퍼진 그 신호가 도화선이었으리라.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모르지만, 대충 ‘같이 싸우자, 동지들이여!’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까.

...그 정도는 과학자가 아니더라도 알 수 있다.

어떻게든 정확한 원인을 알아보려는 시도는 있는 모양이지만, 별 성과가 없는 것 같다.

(세계의 모든 울프남이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정확한 숫자 파악은 됐습니까?)

(알 수 없습니다. 끊임없이 속출하고 숨길 반복하는 바람에.)

목적은 대도시였다.

하나하나는 그리 강하다고 할 수 없지만, 한 도시를 사방에서 수백 마리씩 산개해서 공격해오면 답이 없다.

약하다, 약하다 했어도 5종.

이제 막 노블레스 등장으로 ‘4급 사냥꾼’ 문턱이 낮아진 수준으로는 어림없는 강자다. 설상가상으로 최근에 ‘신종’의 출현으로 고위수호자를 잃은 나라가 많았다.

하위수호자는 말할 것도 없고.

‘또 소모전 양상인가.’

울프남은 신종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움직였다는 건 역시 ‘이유’가 있으리라.

무일의 머릿속으로 한 줄기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박민혁….”

국모 선유나와 대한민국을 가지고 놀았던 뱀페스트 공작은 죽기 직전에 발버둥 치듯 외쳤었다.

자신들이 아니면 ‘늑대인간’을 막지 못할 거라고.

그게 이런 뜻이었나?

당시에는 변명처럼 들려서 무시했었는데, 현실이 될 줄은 몰랐다. 물론, 막지 못할 거라는 호언장담에는 동의할 생각이 없었다.

아무리 많아도 5종.

다만, 어디서부터 ‘박멸’해야 좋을지 고민스러울 따름이다.

(막을 능력이 없는 개발도상국부터 지원하겠습니다.)

(그…. 알겠습니다.)

인류를 이끄는 선진국부터 돕는 편이, 미래적인 측면에서 이득이다.

막말로….

인간이라고 다 같은 인간이 아니란 뜻이다.

똑똑한 사람과 멍청한 사람의 목숨을 저울질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무일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마다 재능은 전부 다르다.

단순한 전투수행능력만으로 사람의 모든 걸 평가하려는 사고방식은 잘못됐다. 더 나아가, 평범한 부부 사이에서 인류를 구할 영웅이 태어날 수도 있다.

(저는 묻고 싶습니다.)

(뭘 말씀입니까.)

(강대국들이 힘을 모으려는 이유가 뭐 때문인지를. 까놓고 말해서, 노블레스 전용으로 개발되는 무기들은 ‘살인용’입니다.)

친위대를 무장시키며 깨달았다.

저 무기들은 괴수보다 사람과 기계에 더 효과적이라고.

도대체, 괴수를 상대하는 장비에 전자기펄스 면역코팅이 왜 들어간단 말인가? 그리고 괴수의 피부를 뚫지 못하는 다연발 기관총은?

상식 밖이다.

강대국들의 약화는 본인들이 자초한 것이다.

노블레스를 ‘인류의 구원’을 위한 수단이 아닌 ‘전쟁의 도구’로 보고 있다.

‘평화는 전쟁을 부르는가….’

여전히 세상은, 인류는 괴수의 위협에서 벗어나지 않았지만, 이 또한 상대적이다. 고대인조차 세월이 지남에 따라 과거의 공포와 복수를 잊어가고 있으니까.

강대국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최악, 최후의 순간이 오면 엘퍼러가 구해줄 거라고.

그러니 걱정할 필요 없다….

『조금은 딴짓을 해도.』

그것이 전쟁준비다.

혹은 ‘내가 너보다 세!’라고 한마디 하고 싶어서 벌인 낭비와 허세.

뭐가 됐든 ‘엘퍼러’라는 절대적인 방패를 믿고 뒤에서 호박씨 까고 있던 셈이다. 그리고 바로 이 순간에 그 속셈이 빤히 드러났다.

문제는….

『나만 그 생각을 했을까?』

소위, 강대국이라고 불리는 나라들이 전부 괴수대응본부에서 ‘괴수대응’은 안 하고 ‘정복전쟁’을 야금야금 준비했다.

이런 바람은 ‘통제할 수 있는 괴수’ 노블레스 등장 이후에 야금야금 확산했다가, 최근에 목성 크기의 거대한 이계 행성 얘기가 뜨거운 감자로 오르며 가속화됐다.

거의 경쟁 수준!

하지만 그 결과가 이거였다.

늑대보다는 바퀴벌레라고 보는 편이 나은 울프남을 확실하게 죽일 화력이 부족했다.

『3차 세계대전』

이때, 인류가 패배한 이유는 명백하다.

모든 군수물자가 인간을 상대로 한 전투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이건 아무리 훈련 잘된 특공대, 해병대도 소용없다.

괴수를 상대로는 전부 햇병아리 풋내기.

장비마저 괴수보다 아군을 더 잘 죽이니 이건 해보나 마나 한 싸움이었다.

그런데 같은 실수를 또 반복하려 했다.

‘말도 안 되는 얘기지.’

울프남의 숫자가 많다는 건 엄살이다.

인류는 6종 이하의 괴수를 효과적으로 학살할 방법을 무수히 많이 갖추고 있다. 물론, 과거에는 이런 기술이 없었다.

하지만 용신의 지혜는 그걸 가능케 했다.

『MID(Made In Dragon)』

여전히 6종까지가 한계지만, 쓰러트릴 방법이 존재한다는 게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울프남은 손쉬운 상대.

하지만 강대국들에서 빌빌거리고 있는 건, 제대로 대응할 준비를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건 변명의 여지가 없다.

신종의 등장이니 어쩌니 같은 것도 말이 안 된다.

국가위기 봉착?

정말 그렇다면 더욱 방어를 굳건히 하기 위해 ‘괴수대응무기’ 개발과 생산에 박차를 가했어야 옳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서울은 무사할 것 같고….”

시간은 독이면서도 약이 걸까?

바람의 여왕, 박선영이 다시 재기했다.

쉬임프처럼 공중곡예가 가능한 ‘특수능력’은커녕 에쏘드의 면역저항 같은 것도 없는 울프남 따위는 홍수처럼 밀려와도 끄떡없다.

똥개는 전부 태평양으로!

목포라고 만만할까?

여긴 ‘문팽이’의 영토다.

울프남의 발톱이 박히지 않는 단단한 괴수가 그야말로 ‘게판’이다.

개판을 때려잡을 게판.

【퀸크랩 / 4종 보통】

늑대가 아무리 많더라도, 대한민국 해변을 성벽처럼 몸으로 둘러버린 이 ‘꽃게 괴수’에 비할 바는 아니다.

다 자란 성체 덩치는 트럭 수준. 평범한 꽃게와 달리 등껍질 위에 등껍질 하나가 더 천막처럼 얹어져 있다.

그 사이에는 뭐가 있을까?

『퀸크랩 알』

퀸크랩은 ‘다산의 여왕’이라고 불린다.

움직일 때마다 새끼가 한두 마리씩 매초 태어나며 모랫바닥에 떨어진다.

새끼들은 알에서 나오자마자 자유롭게 움직이는 건 기본! 갓난아기 주먹만 했던 것이 성체까지 자라는데 보름이면 충분하다.

만약, 동족을 잡아먹는 습성이 없었다면 ‘배틀씹’처럼 사기였으리라.

어디 그뿐이랴?

【변강쉘 / 7종 보통】

인간형 중에서는 쉬임프 다음으로 가장 단단한 괴수.

퀸크랩이 숫자로 압도한다면 이쪽은 단단함과 남자다운 돌격으로 울프남을 짓밟을 것이다.

그 외에도 무수히 많은 문팽이 추종자들….

(선배. 똥개들의 목적을 알아냈어.)

(어떻게?)

(싸움 도중에 순순히 가르쳐준다나 봐. 싸우다가 말고 대화하는 건, 만화에서만 나오는 상술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선지혜는 울프남을 머저리 취급했다.

무일은 얌전히 들어줬다.

개인적으로 ‘낭만을 좀 아네?’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목적은?)

(여기야.)

(...목포?)

(응. 정확히 구체적으로는, 선배를 쓰러트리고 똥개의 하렘을 만들겠다는 포부! 대박!)

(뭐냐, 그 패기는….)

정정한다.

낭만이 아니라 그냥 바보다.

그럼 이제부터….

망설임 없이 치우는 일만 남았다.

엘퍼러는 자신을 따르는 모든 추종자에게 자신의 의지를 하달했다.

‘모두 들었겠지? 울프남과 전쟁이다.’

보통 때라면 그녀들은 엘퍼러 곁에서 떨어지는 법이 없다. 멀리 있으면 게으른 아르바이트생처럼 무기한 휴업에 들어가며 뒹굴뒹굴.

하지만 이번 경우는 예외였다.

엘퍼러의 목숨을 노리는 거야 ‘정당한(무모한) 도전’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들의 몸을 노린다면 상황이 다르다.

『엉덩이 내밀라고? 늑대야, 죽고 싶니?』

...이렇게 되는 것이다.

이건 인간이고 괴수고 할 것 없이 여성이라면 비슷한 마음이리라!

출장이란 개념이 없던 ‘추종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시아 대륙을 시작으로 유럽,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북아메리카를 거쳐서 다시 돌아온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울프남이 없어서 논외.

그게 아니면 바다로 사면이 막혀서 울음소리, 출전신호가 전달 안 된 걸지도 모른다.

하나가 줄면 ‘번거로움’이 조금 줄어드니 나쁠 건 없지.

그렇다고 엘퍼러가 모든 대륙을 돌아다니며 슈퍼맨처럼 돕겠다는 계획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웨딩풍에서 사령탑처럼 있을 뿐.

울프남은 그녀들의 상대가 못 된다.

여자들에게 맡기고 뒤에 있는 건 그의 적성에 안 맞지만….

추종자들의 의욕적인(처음으로!) 모습에 밀려버렸다.

『9종 다미호 : 구미호 & 8종 팔미호』

『8종 도끼토끼 : 찌르뱅팽 & 7종 웨딩풍』

『8종 아쿠버스 : 산드라미아 레미』

『8종 오니오프 : 사유리』

『8종 쉬임프 : 플로티날 아브롤라』

『8종 사요나락 : 엔츄 베르테 & 8종 듀크마』

『7종 발키지어 : 펠-쉐어퐁』

변변찮은 전략조차 없이 돌진명령만 내려도 필승일 수밖에 없는 전력!

어떻게 싸워도 이길 수밖에 없다.

다만,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의 문제였다. 덤으로, 도시와 인명피해를 최소화 혹은 없도록 할 수 있는지가 관건.

이조차도 엘퍼러는 걱정하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와이츠 ‘미카헬로 싸이어’가 놀고만 있던 게 아닌 까닭이다.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용신의 MID는 단연 최고!

『라스베리터 람부스(잠깐 쏟아지는 소나기)』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샷건. 그래서 별명도 학살의 황제.

카르발트로 잠시 활동했던 한무일을 잡기 위해 ‘뱀페스트 후작’ 오창민과 그 일당이 사용했던 흉흉한 산탄총이다.

그것과….

『타이타니 로니오(아파도 너무 아픈 가시)』

특공대 부대장, 타로 3세가 애용 중인 강력한 스나이퍼.

최강은 아니지만 ‘암살의 왕’으로 불리던 저격총으로 2등쯤 한다. 소음이 탄피 떨어지는 소리뿐일 만큼 은밀한 게 특징.

그리고,

용신 ‘미카헬로 싸이어’는 이 둘을 합쳤다.

장점을 포기하지 않고 고스란히 계승한 탓에 무게가 쭉 올라갔지만, 어차피 인간이 쓸 무기가 아니었다.

이름하여,

『크리피칼 하프 (완벽한 죽음의 은총)』

뱀페스트 왕을 확실하게 죽이지 못한 과거에 한 맺힌 작명센스!

원래는 친위대를 무장시키고 수출할 예정이었는데….

2종 윈드걸스가 무장했다.

하늘에서 팡팡!

일방적인 늑대사냥의 시작을 알렸다.

< [49화-2] 진격의 늑대 > 끝

ⓒ 파르나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