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화-1] 진격의 늑대 >
파르나르 장편소설
괴수처럼 25
[49화] 진격의 늑대
학명: 윈드걸스(바람둥이 소녀들)
서식지: 고산
특징: 날개를 뜯으면 사람이 됩니다.
위험도: 2종 소형
비고: 나무꾼에게 털린 선녀
***
먹이사슬은 괴수에게도 통용되는 단어다.
괴수를 먹는 ‘괴수 종’은 그리 많지 않지만, 영역 다툼은 자주 있다. 그래서 정말 엄청난 숫자의 괴수가 보이지 않는 장소와 시간에 죽는다.
다만, 이 세계의 생명체가 아닌 괴수는 시체 부패가 대단히 빠르게 이루어지는 탓에, 좀처럼 흔적이 안 남을 뿐이다.
쿵!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는 ‘4종 대형, 맘모슨’이 쓰러졌다.
지방도로를 내는 유익한 코끼리는 다시 일어서려고 했지만, 목을 파고든 길고 긴 발톱에 그대로 절명하고 말았다.
그 발톱의 주인.
직립보행하는 늑대였다.
덩치는 일반가정에서 쓰는 대형 냉장고 수준. 털을 검은색부터 은색, 갈색, 회색으로 된 일색(一色)으로, 인간의 머리카락 색과 엇비슷했다.
그 숫자는 대략 일곱.
하지만 점차 그 숫자가 늘어났다.
그러나 그 전부가 늑대의 모습을 한 건 아니었다. 털북숭이 사람이라고 할까. 가슴과 겨드랑이, 다리, 턱 등에 털이 수북했다.
【울프남 / 5종 보통】
세상 사람들은 녀석들을 이렇게도 부른다.
늑대인간, 웨어울프(werewolf)라고.
녀석들에게 물리면 동족이 된다는 전설은 거짓말이다.
바위를 맨손으로 부수고 강철을 엿가락처럼 구부리는 울프남의 공격은 스치기만 해도 사망! 놈들은 우아하게 ‘앙!’하며 물지 않는다.
찢어발긴다.
아주 끔찍하게 죽인다.
맘모슨처럼 덩치가 크고 재생력이 빠르면 그런 흔적이 거의 남지 않지만.
매우 드문 경우다.
“이렇게 모습을 드러내도 조용하군.”
“하핫! 그 가증스러운 흡혈귀들이 줄어든 덕분이지!”
“듣자하니 왕위 다툼이 있었다고 한다.”
“약해진 지금이 기회다.”
그런 울프남도 천적이라고 부를 괴수가 있다.
아니, 천적보다는 앙숙이라고 할까.
【뱀페스트 / 3종 특수】
마냥 약하게만 보이지만, 그 나약함을 교활함으로 덮은 흡혈귀.
울프남이란 종족 전체가 밀리고 밀려 추운 시베리아까지 몰리고만 근본적인 원흉. 인간의 틈바구니에서 인간을 조종해서 자신들을 사냥토록 했다.
똑같이 대응?
인간사회에 적응하기란 울프남에게 무리였다.
어찌 ‘털 없는 원숭이’에게 고개를 숙일 수 있단 말인가!
그건 종족의 수치다.
하지만 현실은 ‘종족의 존엄성’을 포기한 흡혈귀의 승리로 끝났다. 그리고 점점 벌어진 세력 차이는 노력만으로 극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랬는데,
“아우우우!”
“신호가 왔다!”
“형제가 우리를 부른다!”
뱀페스트가 감염과 기생을 통해 급속도로 번식한다면, 울프남은 포유류의 생식활동으로 숫자를 늘린다.
율프남은 전부 수컷.
그렇기에 다른 종족의 암컷의 자궁을 활용한다.
하지만 대다수 ‘남성형 괴수’처럼 ‘인간 암컷’만을 고집하진 않는다. 조개 인간, 변강쉘을 포함한 몇몇 특수한 괴수처럼 잡식성이다.
어디 그뿐이랴?
단 1년이면 어엿한 성체가 된다. 그저 숨 쉬는 것만으로도 ‘5종’의 힘을 쓸 수 있는 최강의 투견(鬪犬)이 되는 것이다.
“이 맘모슨이면 한동안 굶주릴 일 없겠군.”
“여기서 만족하면 안 된다.”
“우리의 목적은 암컷들이 다수 밀집해 있는 인간의 도시.”
“이제 곧 전사들이 보충된다, 형제들이여!”
그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울프남은 대륙 모퉁이까지 밀려났다.
인간의 도시에 스며든 뱀페스트의 지시를 받은 사냥꾼과 계약자들의 집중공격으로 아주 박살 난 것이다.
뱀페스트처럼 적당히 타협할 줄 알았다면 양상이 크게 달랐겠지만, 울프남의 본능은 공존보다 마이페이스에 익숙했다.
『한 마리의 고고한 늑대』
이 말은 그냥 튀어나온 게 아니다.
물론, 늑대는 무리 지어 생활하는 사회적인 동물이긴 하다. 무리마다 우두머리가 있고 새끼를 돌보는 등의 행동들은….
하지만 늑대인간과 늑대가 완전히 같을 순 없다.
너는 너고, 나는 나.
울프남이 무리를 짓는 이유는 본능보다 생존을 위해서다. 괴수 중에는 답도 없이 강한 종이 너무나 많기에 불가피하게 힘을 합칠 뿐이다.
그 본성은 혼자서 모든 걸 해결하려 한다.
지금도 그랬다.
이렇게 머리를 합쳐도 나오는 정보들이 고만고만했다.
“지금이 흡혈귀의 심장부를 칠 때요.”
“주제에 왕이라고 수많은 암컷을 거느린다고 들었는데….”
“나도 들었다. 놈을 죽이고 차지하자!”
“한국이 어디에 있지? 러시아 도시 이름인가?”
인간의 협조를 받지 않으니 가진 정보도 대단히 단편적이다. 주로, 인간 수컷을 죽이고 암컷을 차지하는 과정에서 주워들은 내용.
하지만 전문사냥꾼이 아닌 만만한 민간인을 습격하는 울프남이 제대로 된 정보를 받을 리 없다. 그리고 그건 본인들도 알고 있다.
인간들이 자신들을 ‘5종’이라고 부른다는 것부터.
괴상한 생명체 취급한다는 것까지.
그래서 인간들의 말을 신뢰하지 않는다.
『우리가 약하다고? 괴수라고?』
신(神)에게 선택받은 위대한 전투민족인 자신들에게 ‘울프남’이란 괴상한 명칭을 붙인 것도 그렇다.
이러니….
조금도 수긍할 수 없는 내용만 지껄이는 인간의 말을 어찌 믿는단 말인가!
파상풍 비슷한 치명적인 독소를 품고 있는 울프남의 발톱은 그 자체만으로도 위험하다. 여기에 강력한 힘과 생명력까지!
독특한 특수능력을 보유한 괴수들에 비하면 많이 약해 보인다.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다.
뱀페스트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울프남의 최대 장기인 ‘재생력’과 ‘생명력’은 지구에 오기 전부터 막강했었으니까.
“이 행성은 정말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군.”
“돌아갈 방도를 찾은 형제 있는가?”
“우리가 이렇게 구석까지 몰릴 줄이야!”
차원을 넘으면서 괴수들은 강해졌다.
하지만 모든 괴수가 공평하게 강해진 건 아니다. 어떤 종은 많이, 어떤 종은 조금. 그런 의미에서 뱀페스트와 울프남은 손해를 많이 본 축이었다.
전매특허인 재생력이 더 향상돼서 어쩌라고?
아무리 밟아도 잘 안 죽는 바퀴벌레 같은 ‘질긴 괴수’로 전락했다.
『이게 무슨 뜻?』
게임으로 치면 이렇다.
생명력 ‘1,000’인 울프남이 차원을 넘으면서 생명력 ‘11,000’이 됐다. 그런데 생명력 ‘50’인 다른 괴수들도 똑같이 증가하며 생명력 ‘10050’으로 뻥튀기했다.
즉, 별 차이가 없게 됐다.
불공평한 현실은 그뿐만이 아니다.
덩치가 클수록 ‘일격필살’로 안 죽는다는 공식이 자연스럽게 성립되면서 ‘소형’에 해당하는 울프남은 또 한 번 약한 축으로, 굴욕을 맛봤다.
고향 행성에서는 한 주먹거리도 안 되던 녀석들이 역으로 기고만장해진 상황!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따름이다.
“흥! 선조들이 말한 낙원을 본 적도 없으면서 아는 척은.”
“듣기만 해도 충분히 이해한다.”
“겨우 1살 갓 넘은 애송이들이 뭘 안다고. 10살은 돼야지.”
울프남은 생후 1년이면 어엿한 성년이 된다.
전투능력이 최고조인 전성기는 8살.
수명이 15년 전후로 일반적인 ‘늑대’와 똑같은 늑대인간들은 과거를 모른다. 입으로는 ‘고향 행성’ 어쩌고 하지만, 이들에게는 이곳이 고향이다.
물론, 구전으로 정체성에 대해서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너무나 많이 누락됐고 어째서 이 행성으로 오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예 짐작조차 못 하는 게 현실.
무엇보다도….
사는 게 너무 힘들어!
역사 공부 따위를 할 틈이 없다.
『위대한 전투민족』
『앙숙 흡혈귀』
작금의 늑대인간들이 기억하고 신뢰하는 정보는 이 둘뿐이었다.
나머지는 외부에서 뭐라고 지껄이든 무시하는 편.
당연히 ‘엘퍼러가 나와 가족의 복수를 해줄 것이다! 분명히!’ 같은, 인간 수컷의 마지막 헛소리는 귓등으로 흘렀다.
안 그런가?
그 엘퍼러라는 녀석이 인간의 왕이라는 건지, 흡혈귀의 왕이란 건지 도통 알 수 없다. 사람마다 말이 다르고 터무니없는 얘기도 많았다.
급기야 무슨 요정, 하렘의 왕이란다.
“형제들이여. 마침내 때가 됐다.”
“위대한 선조들을 무수히 살해한 흡혈귀 왕이 실종된 지도 어느새 35년. 그리고 마침내, 작년에 그 왕과 ‘가장 강력한 공작’이 죽었다.”
“그건 확실한 정보인가?”
“아니더라도 상관없다. 우리는 이미 충분한 힘을 모았다!”
러시아와 캐나다 북부, 브라헨티나와 이집트 남부에서 야금야금 머릿수를 늘려왔다.
생후 1년 만에 성년.
씨를 뿌리는 족족 임신 되는 여자 자궁에서 두셋씩 태어나는 울프남은 ‘식량’과 ‘견제’만 해결되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
『전투민족』
이 명칭은 싸움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전쟁은 개인전이 아닌 단체전.
단체를 압도하는 개인도 분명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전투민족’인 건 아니다. 전투민족이라고 불리려면 복합적인 우수성이 검증돼야 한다.
번식력, 전투력, 생존력….
그리고 울프남은 이 모든 조건을 충족한 극히 드문 괴수였다.
이 모든 부분에서 상대적으로 처지는 뱀페스트가 ‘친화력’과 ‘정치력’을 동원해서 역으로 자신들을 압도하지 않았다면?
그 세월이 거의 35년이나 됐다.
“얍삽한 흡혈귀 왕의 죽음이 확실한가?”
“듣기로는 인간 연맹에 붙잡혀 생체실험 중이란 말도 있다.”
“뭐가 됐든 현재는 풋내기란 거군.”
“태어난 지 아직 1년도 안 됐다고 들었다.”
늑대인간들은 엘퍼러를 씹기 시작했다!
인간 암컷이고 수컷이고 할 것 없이 병아리처럼 ‘엘퍼러! 엘퍼러!’를 외친다. 그렇게 오래된 일도 아니다.
바로 얼마 전까지는 ‘엄마, 아빠, 오빠, 정부, 본부, 연맹’으로 다양하게 울부짖었는데….
그게 대단히 거슬렸다.
제까짓 게 뭔데 사방에서 불리고 지랄?
“마침내 복수의 날이 도래했도다!”
“가자! 위대한 형제들이여!”
“탱탱한 암컷들이 쌓였다는 한국으로!”
인간의 형태를 한 울프남들도 변신하기 시작했다.
몸집이 커지고 머리카락과 같은 색의 털이 온몸을 감싸는 동시에, 상대를 물어뜯기 좋도록 주둥이가 튀어나왔다.
마찬가지로 눈은 시각을, 코는 후각을, 귀는 청각을 극대화하도록 변했다.
이것이 전투민족.
도구 없이는 나약한 인간이 흉내 낼 수 없는 혈통.
늑대인간들이 고개를 쳐들고 외쳤다.
“아우우우~!”
“호우우우~!”
이 소리는 산맥과 호수를 넘으며 릴레이 하듯 이어졌다.
일본 북부 ‘홋카이도’에서 시작된 ‘울프남의 포효’는 형제에서 형제로, 음속(音速)으로 지구 전체에 퍼져나갔다.
최종목적지는 흡혈귀 왕이 산다는 한국의 목포.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목표 혹은 계기에 지나지 않는다. 거기까지 가려면 정말 많은 ‘왕의 영토’를 지나가야 하는 탓이다.
당연히 낭패의 기색을 보인 울프남도 있었다.
‘아직 이른데 누가…?’
‘준비가 아직 미흡하거늘!’
하지만 이미 멈추기에는 늦었다.
군중심리라고 할까?
대략 50년 전부터 ‘함께 힘을 모아서 싸우자.’라고 선조들끼리 약속했다. 따로 왕이나 우두머리가 없는 늑대인간치고는 드물게 기특한(?) 생각을 해낸 것이다.
생존을 위해서 뭔들 못 하리!
그 약속은 후손에게로, 아들에서 또 아들에게로 이어졌다.
그렇기에 이젠 멈출 수 없다.
약속도 약속이지만, 누구는 공격하고 누구는 구경만 한다면, 이길 전쟁도 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금은 무조건 진격하는 수밖에 없다.
“호우우우!”
“음?”
그 포효는….
아리따운 소녀의 몸을 차지한 듀크마와 한창 얘기 중이던 엘퍼러에게도 닿았다.
도시 밖에서, 괴수 소리와 함께 제법 흔하게 들을 수 있는 늑대 울음소리.
작년까지만 해도 야외에서 텐트 치고 자장가처럼 들어왔던 프로사냥꾼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도심 건물 안까지 들렸다는 점이 약간 신경 쓰였지만.
‘어느 고상한 부자가 늑대라도 키우나?’
조용한 [예감]을 보며 그러려니 넘어간 무일.
다시 괴수 면담(?)에 집중했다.
한 소녀의 운명이 달린 문제이기에 그 어느 때보다도 신중했다.
< [49화-1] 진격의 늑대 > 끝
ⓒ 파르나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