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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수처럼-197화 (197/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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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화] 가면의 공주

학명: 나무무(나무 빼고 없다.)

서식지: 대지

특징: 자연 생성기

위험도: 5종 대형

비고: 지나간 자리에는 대자연이….

***

인류가 거쳐온 역사적 근거로 보았을 때, 절대왕정과 공산주의, 독재주의는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에 밀려 사라지는 추세다.

그렇다는 얘기는, 앞서 세 체계가 나쁘기 때문일까?

우리는 이미 자유주의가 불러온 개인 혹은 집단이기주의를 지긋지긋하게 실감하고 있다. 그리고 자본주의가 불러온 황금만능주의 폐단도 보아왔다.

즉, 모든 체계마다 장단점이 있다.

그렇다면 절대왕정과 공산주의, 독재주의는 어째서 선택받지 못했는가. 분명 장점이라고 할 매력이 있을 텐데.

이유는 간단하다.

『의존도』

개인이나 소수에게 국가의 명운이 좌지우지된다.

절대왕정을 예로 들어보자.

왕이 현명하고 어질 때는 나라가 평화롭고 부강해진다. 세금낭비와 부정부패 등이 없는 ‘이상적인 나라’라고 해도 과하지 않다.

하지만 왕이 ‘평범 이하’일 경우에 사태가 심각해진다.

분명, 훌륭한 집안의 며느리에서 태어난 아들에게 소실 적부터 제왕학 같은 체계적인 교육으로 ‘왕의 소질’을 길렀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일이란 게 공식처럼 딱딱 떨어지던가?

『늘 변화무쌍하다.』

극단적으로….

지나치게 훌륭한 부모 때문에 정신적이 스트레스가 심했던 왕자가 그대로 왕이 되어 사이코패스 같은 짓을 벌일 수 있다.

아니면 무난하게….

청소년기에 사춘기가 심하게 와서 구제불능으로 자라날 수도 있다. 혹은, 정실의 장남이란 이유만으로 못났어도 왕위에 오르기도 한다.

즉, 절대왕정을 포함한 세 정책은 ‘지도자’의 재능과 성품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탓에 대박 아니면 쪽박이란 극단적인 경향이 심하다.

국가경영 측면에서는 좋지 않다.

『안정감』

나라는 국민들이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터전을 늘 제공해줘야 한다. 그러나 절대왕정과 공산주의, 독재주의는 그렇지 않다.

물론, 뛰어난 지도자를 만나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솔로몬, 세종, 엘리자베스, 레닌, 광무제….

하지만 잠깐이라도 이상한 놈이 튀어나오면 끝장이다. 그것도 아주 폭삭 망한다! 이 이상 비참하고 불행해질 수 없을 만큼.

루이 14세, 스탈린, 모택동, 김일성, 히틀러….

악명을 떨쳤던 인물들이다.

그에 반해,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는 무난하다. 선거로 뽑은 ‘임기직 지도자’도 평균 이상은 하고, 경제가 무너져도 산소호흡기가 완전히 떨어지진 않는다.

단점이라면 ‘전성기’ 같은 기복도 없다는 정도?

늘 평균이다.

“세상에 이런 자가….”

일본의 9종 계약자 ‘아이나미 산토’는 기가 막혔다.

이건 말도 안 돼!

그녀가 조사한 ‘엘퍼러’라는 인물은 몸부터 뇌까지 돌연변이였다.

심하게 까다로운 자격조건에 비해 성능은 기대 이하인 ‘용사의 검’으로 전설의 필살기 ‘마기나로크’를 개방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어째서 아직도 살아있는 거야!’

아이나미 산토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조잡한 ‘용사의 검’보다 ‘기사의 검’이 압도적으로 강하고 효율적이다. 하지만 그걸 뒤집어버리는 경우가 조건부로 존재한다.

『마기나로크』

용사의 모든 힘을 집약한 최후의 일격!

쓴 직후에 탈진한다는 약점이 있지만, ‘필살기’이기 때문에 상관없다. 마왕이든 뭐든 무조건 사망 내지는 전멸이라서 뒤를 걱정할 필요 없다.

하, 지, 만!

강력한 힘에는 위험도 따르는 법.

마기나로크를 개방한 용사는 필연적으로 ‘배신의 저주’를 받는다.

“위대한 건국황제조차 피해가지 못했는데….”

하거나 당하거나 결과는 같다.

허망한 죽음.

탈진으로 약해진 틈에 ‘배신’당해서 살해되는 사례가 가장 많지만, 꼭 그런 건 아니다. 용사의 ‘비참한 최후’는 매우 다양하다.

무시무시한 적수가 사라진 용사는 세상에 불필요하다.

그러니 무대에서 퇴장해줘야지.

그런데….

‘넌 도대체 뭐야!’

엘퍼러는 어떤 의미로 진짜 ‘완전무결한 용사’였다.

이론으로만 가능한 남성.

여기에는 지구의 과학도 지대한 역할을 했다. 힘없는 ‘동물’의 [예지]를 응용해서 인간에 적합하도록 설계한 [예감]은 가히 혁명이라고 해도 좋았다.

어디 그뿐이랴?

“흡혈귀를 그런 식으로 활용할 줄은….”

용사의 가장 큰 약점인 방어력을 ‘불사(不死)’로 덮어버렸다!

에쏘스트.

덤으로 노블레스.

이 명칭만은 ‘아이나미 산토’도 수긍하고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중이다. 이건 기존에 없던 존재개념이기 때문이다.

덤으로 그 유용성과 가능성도 인정했다.

“껍데기가 잘 어울리십니다. 공주님.”

“흥! 지금은 기분 안 좋으니 말 걸지 말도록. 랜슬럿 경. 그리고 모습을 드러내지 말라고 명령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용서하십시오. 공주님. 고향 바람에 잠시 흥분한 모양입니다.”

“칠칠치 못하긴.”

“......”

“아직도 할 말 남았나?”

“없습니다.”

어둠 속으로 스며드는 미청년을 보며 아이나미 산토는 혀를 찼다.

기회만 주어지면 자신의 몸을 덮칠 늑대.

그 속셈은 괘씸하지만, 실력만은 진짜라서 묵인하는 중이다. 이번 일에 유용하게 쓰라고 제국에서 빌려준 기사이기도 하고….

자신의 기사였으면 거기부터 떼어냈으리라.

‘남자 주제에 꿈도 야무지지.’

수컷은 ‘기사의 검’이 없으면 약하디약한 생명체다.

애 낳고 싶어질 때만 잠깐 필요한….

남자는 아무리 강하다고 칭송받더라도, 맨손으로는 순박한 방앗간 딸내미도 못 이기는 게 현실이다. 마법은 그만큼 위대하다.

아이나미 산토는 다시 ‘엘퍼러’에 대해 떠올렸다.

“이렇게 완벽한 황제라니….”

그녀가 아는 ‘황제’란, 황비의 발가락이나 핥으며 재롱부리는 존재다.

제국 최고자리에 앉혀놓은 것도 다른 게 아니다.

인류의 번영을 위해!

가장 좋은 혈통의 사내가 필요해서 애완동물처럼 기르는 것뿐이다. 제대로 된 ‘황제다운 황제’는 초대(初代) 건국황제를 포함한 극소수가 끝.

하지만 그들조차 일찍 요절했다.

“누가 말입니까?”

“...어머! 여긴 무슨 일인가요. 카즈마 군.”

아이나미 산토는 화사한 표정을 지었다.

키바 카즈마.

총리의 아들 겸 사냥꾼이다. 용사로는 다소 무리지만, 기사의 재능이 제법 기대되는 자다. 똥오줌 못 가리는 천왕보다는 100배 낫다고 본다.

그렇지만….

그 재능을 키워줄 순 없다.

안 그래도 일본 여론은 ‘총리 vs 천왕’ 구도가 막상막하인 상태다. 만약, 천왕이 ‘폴리검 계약자’가 아니었다면 진즉 끝났을 정치 싸움.

‘혼란을 부추기려면 천왕은 꼭 필요하지.’

둘이 싸우며 약해질수록 그녀의 영향력은 강해진다.

계약자가 정치에 참여할 수 없도록 체계가 꽉 잡혀있긴 하지만, 지금처럼 총리와 천왕의 진흙탕 싸움이 계속되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 날이 멀지 않았다.

하지만 사냥꾼의 [예감]이 그녀의 발목을 잡고 있다.

그중에서도 키바 카즈마는 이 나라에서도 굉장히 우수한 축에 속했다. 엘퍼러에게 걸려서 박살 나긴 했지만, 그건 상대가 지나치게 나빴을 뿐이다.

“추모제를 다녀오던 길입니다.”

“아아~, 아직 안 끝났군요.”

옛 공주 ‘미오 타미에’의 요청으로 열린 ‘오니오프 장례식’이다.

그녀에게 9종 괴수 오니오프는 인생 전부였기 때문에 그 충격이나 상실감은 이루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

애증이라고 할까?

자신을 버린 남편의 죽음을 애도하는 심정!

하지만 그 감정은 둘째치고, 아이나미 산토는 일본인들의 사고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100년 전에 나라를 구한 여자였든 뭐든….

여러 남자에게 엉덩이 대주던 여자가 존경받는 문화가 영 적응 안 됐다. 혐오식품을 맛있다고 연기해야 하는 고역이랄까.

“...산토 양도 엘퍼러에게 관심 있습니까?”

“관심보다는 신기하달까요.”

신생제국인데 대단히 안정되어 있다.

그렇다고 엘퍼러가 정치경제에 능수능란한 건 아니다. 그 방면으로는 백지나 다름없는 ‘천생 무인’이다.

즉, 왕(王)이 될 재목(材木)은 아니다.

정계를 꽉 잡고 있는 유서 깊은 혈통도 아니고, 일찍부터 제왕학을 배우긴커녕 여태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저, 대한민국의 공주라고 할 수 있는 ‘선지혜’와 이어진 무식한 데릴사위, 벼락출세한 부마도위(駙馬都尉)일 뿐이다.

그 결말은?

갈팡질팡하다가 여난(女難)에 휩쓸리고 ‘앙심을 품은 애인’에게 암살당할 운명.

하지만 그 운명과 저주가 완전히 빗겨갔다!

‘있을 수 없는 지배력….’

무력으로는 적수가 없는 용사의 천적은 미녀(美女)다.

그런데 엘퍼러는 그 반대!

용사를 죽음과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아리따운 처자들이 속수무책으로 매료된다. 천적이 역으로 먹혀버리는 셈!

그리고 배신은커녕 황제를 보호하고 부족한 점을 메꿔주는 역할까지 한다.

군주는 모든 면에서 뛰어날 필요 없다.

『안목(眼目)』

간신과 충신을 구분하고 적재적소에 배치할 수만 있으면 된다.

그게 말처럼 쉽지 않을 뿐.

하지만 엘퍼러는 그럴 걱정 없다. 따르는 추종자가 100% 충성과 헌신으로 똘똘 뭉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제왕학?

그에게는 필요없는 이론서다.

물론, 이 사기적인 지배력도 완벽하진 않다. 대상이 ‘요정 암컷’으로 한정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틈새시장(?)마저 동업자(?)가 메꿔줬다.

『하렘의 왕』

나머지 ‘인간 여성’을 매료해버린다!

결국, 엘퍼러의 목숨을 위협할 수 있는 ‘미녀’는 하나도 안 남게 된다.

아이나미 산토는 단단한 벽에 봉착했다.

‘그자의 보호를 받고 있는 황녀를 무슨 수로 제거하란 건지….’

제국의 황비가 내건 조건은 대단히 까다로웠다.

죽은 줄 알았던 황녀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다수의 추종자를 이 세계로 보냈다. 그리고 그걸로 모자라서 자신…. 속국의 공주에게까지 명령했다.

하지만 답이 안 보인다.

상대는 이 지구란 행성의 ‘최강자’였다. 이 조그만 행성의 인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강하고 또 강했다.

만약,

『차원을 넘으면 얼마나 강해질까?』

여기서는 ‘우리 행성’의 상위권을 9종이라고 칭하며 ‘재앙’ 취급이다.

하지만 말이 상위권이지 마법으로 어찌어찌 상대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재앙’조차 뛰어넘는 자가 차원을 넘어 아예 초월해버린다면?

그때는 재앙으로 끝나지 않는다.

본토에서도 최강으로 통하는 마기나로크만 난사해도 대륙은 쑥대밭으로 변하리라!

‘엘퍼러가 신기하다…?’

키바 카즈마는 그 평가를 곱씹었다.

무엇이 신기하다는 걸까?

여성형 괴수를 지배하는 능력은 확실히 특이하지만, 그건 [혼돈]이란 약물과 터무니없는 [업보]가 합쳐진 결과물이란 이론이 힘을 받고 있다.

엘퍼러는 신비주의 같은 게 없다. 너무 없어서 산적해가는 일거리에 과학자들이 울상을 지을 정도다.

프로사냥꾼의 [예감]이 무언가를 포착했다.

하지만 키바 카즈마는 말을 꺼내려다가 잠자코 넘어가기로 했다. 현재, 그는 에쏘드를 외국에 팔아버린 매국노로 찍힌 상태.

여기서 혹시라도 또 사고 치면 돌이킬 수 없다.

“산토 양의 귀한 시간을 빼앗아서 죄송합니다.”

정중히 인사한 키바 카즈마는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빤히 쳐다보며 눈을 가늘게 뜬 아이나미 산토.

치열한 왕궁에서 오랫동안 살아남은 그녀의 감이 경고했다. 이건 사냥꾼의 [예감]이 아닌 여자의 순수한 육감에 가까웠다.

총리의 아들.

이게, 지구에서 말하는 ‘그 아비에 그 아들’이란 걸까?

천왕처럼 쉬운 광대가 아니었다.

‘나를 의심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할까나~?’

< [48화-1] 가면의 공주 > 끝

ⓒ 파르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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