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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수처럼-181화 (181/287)

< [44화-1] 친위대 >

[44화] 친위대

학명: 배틀씹(바다의 사기)

서식지: 해저

특징: 알까기

위험도: 8종 대형

비고: 거북이가 아니라 용!

***

세계 각지에서 새로운 괴수가 출몰했다.

그 종이 너무나 다양했던 탓에 괴수대응연맹에서는 임시로 가명을 붙였다. 3차 세계대전 당시에 사용했던 방식이다.

예를 들자면?

한국에 출연한 고슴도치 괴수의 경우에는….

『슈퍼-고슴도치』

이런 식으로, 비슷한 동물의 ‘한글명’ 앞에 ‘슈퍼(super)’를 붙였다.

대단히 성의 없어 보여도 세상은 학자들의 지식욕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쉬워야 전략, 전술 등에서 유리하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겠지만, 3차 세계대전 당시에 쓰인 가명에는 한글이 들어가지 않았다. 한국이란 나라는 ‘성매매 선진국’이었을 뿐이니까.

세계를 주도하는 강대국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세상이 달라졌다.

『엘퍼러』

한 인물의 영향력이 얼마나 클 수 있는가?

그건 엘퍼러를 보면 알 수 있다.

단시간에 선보인 업적들을 쭉 나열하면 하나같이 위인전에 올라갈 법한 경력들이었다. 엘퍼러의 도움을 받아냈다는 이유로 ‘첸지 죠’가 중국 위인에 등재됐을 정도니 말 다했다.

그런 남자.

하지만 정작 조국인 한국에서는 반응이 시원찮은….

최강의 프로사냥꾼은 뭘 하고 있을까?

...별로 달라진 게 없다.

부산이나 목포로 향하는 수송행렬을 야생괴수로부터 지키는 일을 하고 있다.

한 손이 열 손을 감당할 수 없다?

그건 ‘왕’에게 해당하지 않는 사항이었다.

수송선 지붕 위에 드러누워 있는 것만으로도 야생괴수는 멀찍이서 멀뚱멀뚱 지켜보거나 줄행랑칠 뿐이다.

“놀고 있는 것 같아서 찜찜한데….”

세상이 평화롭다는 건 좋은 것이다.

머리로는 이해하는데 실직(失職)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던 무일은, 청명한 하늘을 멍하니 올려다보며 늘어지게 푸념을 중얼거렸다.

그런 하늘을 올려다보는 청년의 시야를 가리는 얼굴이 있었다.

눈웃음이 특히나 매력적인 묘령의 여인이었다.

『여우 같은 마누라』

실존한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남자의 욕망이 만들어낸 허상이 아니라 정말로 ‘여우’다.

한국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 신출귀몰한 괴수.

【다미호 / 1종 특수】

직역하면 ‘꼬리 많은 여우’다.

고대의 한국에서 수많은 남정네를 저승길로 보냈다는 ‘구미호’의 원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구미호는 인간의 사랑에 굶주린 요괴로도 표현된다.

그렇다면 ‘다미호’는 어떨까?

사랑을 먹고 사는 ‘여성형 괴수’다.

특징이라면 역시 꼬리.

체모(體毛)랑 똑같은 색의 긴 꼬리의 숫자가 많을수록 다미호는 강해진다. 일설에는 최대 9개가 되며, 그 유명한 ‘구미호’가 된다고 한다.

그 이상이 되면?

꼬리가 10개째가 되면 ‘인간’으로 환생한다고 전해진다.

어디까지나 전설이다.

하지만 여태 ‘십미호(十尾狐)’가 등장한 적이 없고, 다미호의 탄생과정을 떠올리면 신빙성이 대단히 높다.

『환생』

다미호는 요절한 절세미녀와 판박이다.

그렇다고 무덤에서 시체가 벌떡 일어나는 건 아니다. 자연법칙에 따라 ‘다미호의 자궁’에서 정상적으로 태어난다.

하지만 남자의 정자 없이 수태(受胎)하고, 모친의 외모(절세미녀라는 공통점은 있다.)와 유전자를 전혀 물려받지 않는 독립개체다.

그것이 다미호.

꼬리 개수가 곧 ‘몇 종’인지 뜻한다.

예를 들어, 구미호는 9종. 모든 다미호를 지배하는 여왕님이다.

그러니까….

수송선 지붕 위에 누워있는 엘퍼러의 몸 위에 야릇하게 올라탄 여인의 풍만한 엉덩이에는 금색 꼬리가 아홉 개 달려있다.

“도련님.”

“...대충 예상은 된다만, 왜?”

“한가하시다면 소첩에게 수청(守廳)들 기회를….”

“싫은데?”

“흑흑!”

“우는 척해도 이젠 안 통해.”

다미호의 여왕(女王)이란 녀석이 이 모양이다.

무일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딱히 인연이 있던 건 아니고 지나가는 길에 쓰러져 있는 걸 주웠다.

괴수가 쓰러져?

굶으면 괴수도 버틸 수 없다.

아무 남자의 사랑이나 먹기 싫다는 권태기의 결과!

고대의 무수히 많이 등장했던 구미호를 아사(餓死)로 몰아간 레퍼토리를 그대로 밟고 있던 여왕은, 굶어 죽기 직전에 ‘사랑하고 싶은 남자’를 발견했다.

“매정하시옵니다.”

“제멋대로 따라온 네가 더 난감하거든?”

똑같은 ‘9종’끼리도 지배력이 통한다는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

그건 한무일의 특수한 성질 때문이다.

괴수의 종족을 초월해서 ‘여성형 괴수’이기만 하면 그 위에 군림할 수 있는 잡식성!

그 증거로, 엘퍼러와 구미호 주위에는 다양한 다미호가 새색시 혹은 신하처럼 얌전히 무릎 꿇고 앉아있다.

꼬리 여덟인 팔미호(八尾狐)도 무려 둘이나 된다!

직책은 여왕을 보필하는 시녀(侍女).

사적으로는 모녀(母女)관계였지만, 혈연에 대해서는 서로 무심한 태도였다.

왜냐?

『환생』

이 하나의 사실만은 뚜렷하게 기억하는 탓이다.

전생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본인은 원래 요괴가 아닌 인간이었다는 자의식이 대단히 강하다. 그래서 ‘엄마가 요괴, 딸이 요괴’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는다.

진실은?

알 수 없다.

환생했다고 착각 중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8종이 둘.

권태기에 빠지며 완전히 푼수가 된 여왕까지 합치면 셋이다.

괴수도 치매에 걸리는 걸까?

‘내가 아는 구미호는 이렇지 않은데….’

어느새 100년도 더 된 3차 세계대전.

세계의 그 어떤 군대보다도 빠르게 괴멸한 걸로 유명한 한국군. 여기에는 말 못할 사정이 하나 있다.

국방부가 구미호의 수중에 떨어진 것!

그녀의 매력에 빠져든 수뇌부가 자신들의 역할을 전혀 수행하지 못했다. 여기에 대통령을 비롯한 각부 장관들이 해외로 도주했으니….

구심점이 없어서 각개격파 당했다고 할 수 있다.

“빤히 쳐다보시면 소첩은 부끄럽사옵니다.”

“옷부터 입고 그런 소리를 해라.”

꼬리 덕분에 뒤태는 가려졌지만, 앞은 그냥 적나라하다.

인간이 되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면서 정작 ‘인간의 옷’은 안 입는 다미호.

그래도 원치 않는 남정네가 빤히 쳐다보면 긴 꼬리로 음문(陰門)과 유두(乳頭)를 슬쩍 가리긴 한다.

그 자태가 더 선정적이지만.

남자를 유혹하는 기술이 타고난 것 같다.

하지만 다미호의 특기는 어디까지나 ‘요술’이다.

꼬리가 늘어날 때마다 쓸 수 있는 요술이 하나씩 늘어나며, 구미호의 아홉 번째 꼬리에는 지배력이 깃들어있다.

‘이러다 목포가 괴수 도시로 변하는 게 아닐지….’

‘그건 싫다! 미소녀가 없는 도시 따위!’

‘...유일. 이 여우들은 어때?’

‘진짜 싫다! 흡혈해달라고 애원해도 싫다!’

하렘의 왕, 한유일의 심미안에서 ‘여성형 괴수’는 논외였다.

굳이 표현하자면 변태녀 혹은 된장녀?

그 감상을 입 밖으로 내면 ‘한무일의 추종자’들에게 무슨 보복을 당할지 알 수 없기에 잠자코 있는 것뿐이다.

“선지혜가 또 투덜대겠네.”

“본처의 질투가 심하다는 말씀이온지요? 도련님은 너무 심려치 마시옵소서. 사랑은 시련을 겪을수록 더욱 달콤한 법이옵니다.”

“아니, 그건 완전 민폐라고 생각해.”

“소첩에게 그 달콤함을 맛볼 기회를 주시면….”

“잠이나 자.”

...그렇게 엘퍼러의 세력은 빠르게 늘어나고 있었다.

존경할 구석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여왕을 모시는 두 시녀 겸 자매(姉妹)가 불쌍하게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웬만한 도시는 순식간에 초토화할 수 있는 8종.

그런 대단한 전력이 여왕의 꼬리손질 같은 잡일이나 하는 중이다.

“동침 말씀이옵니까?! 기쁜 마음으로 기꺼이!”

“...야!”

“걱정하지 마시옵소서. 바로 3시간 전에 온몸을 정결하게 씻었사옵니다. 도련님의 옷을 더럽힐 일은 일절 없사옵니다.”

대단히 야릇한 자세로 남녀의 몸이 포개졌다.

하지만 가더발트로 단련된 무일의 정신력은 금강석처럼 견고했다.

완벽한 부동심(不動心)!

쉽게 넘어오지 않는 엘퍼러가 여왕의 자존심과 도전정신을 자극했다. 그리고 이런 패턴이 계속될수록 그녀는 점점 ‘사랑의 늪’에 빠져들었다.

왕을 지배하는 왕.

그런 존재를 세상에서는 ‘황제’라고 부른다.

‘유일.’

‘또 뭐냐? 여우 밑에 깔린 숙주.’

‘너는 백성 좀 늘었어?’

‘흥! 나는 너처럼 길가에서 주워오지 않는다! 그리고 많지! 이미 왕족 셋이 완성됐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번식 중이다.’

태조(太祖) ‘하렘의 왕’이 낳은 계보(系譜)의 첫걸음.

공작이라고 칭해지는 셋은 ‘여성 죄수’들의 자궁에 씨를 왕창 뿌렸다. 그리고 그녀들은 수많은 남성 죄수들과 성관계를 했다.

그걸로 끝.

그 많은 죄수가 전부 뱀페스트 숙주로 전락했다.

번식력의 끝판왕이라고 불리는 뱀페스트다운 감염속도였다.

‘남은 건 피를 공급해줄 여성 쪽인가.’

그 흡혈귀들이 부산을 지킬 수 있는 전력으로 성장하려면 흡혈은 필수.

이미 거기에 대한 방책은 마련된 상태다.

부산 시민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해서 서울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현재, 서울 인구의 80%에 해당하는 여성 중에서 ‘죄인’이란 낙인이 주민등록증에 찍힌 숫자가 50%에 달한다.

첫째가 출산을 거부, 둘째가 계약을 거부, 셋째가 반란에 동조한 여성이다.

이 중에서도 세 번째가 대단히 많다.

황진천이 서울에서 난동을 부릴 당시에, 와이츠의 정책에 불만은 품고 있던 여성들이 한꺼번에 폭발했다!

전부, 와이츠의 의도대로.

‘미카헬로 싸이어…. 인간을 원숭이로 아는 용신의 대표주자….’

와이츠는 인권(人權)을 대단히 싫어한다.

뭔가 효율적인 정책을 시행하려고 할 때마다 발목을 잡는 부분이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였던 까닭이다.

가장 쉬운 예로, 인구밀집문제.

서울에 집중된 인구를 파주와 개성, 인천으로 분산시키려고 해도 시민들이 ‘주거의 자유’를 들먹이는 통해 진행이 안 됐었다.

그걸 와이츠는 해결했다.

서울 시민의 40%에게 죄인이란 낙인을 찍어버리는 방식으로!

죄인의 ‘인권’은 무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음…?”

창공으로 빠르게 접근해오는 거대한 괴수 하나가 보였다. 처음에는 무식하게 크기만 큰 3종 새 ‘신드버드’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새로운 종.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슈퍼-독수리’쯤 될까.

한 쌍의 날개와 다리 외의 팔이 달린 시점에 신드버드는 절대 될 수 없었다.

방향을 보아하니 ‘목포’로 향하는 중인 것 같았다.

‘점점 늘어나는군.’

새로운 괴수는 세계 곳곳에 균등하게 출몰하고 있었지만, 녀석들은 빠르든 느리든 한결같이 한국의 ‘목포’로 향했다.

가는 길에 도시나 괴수가 보이면 공격할 뿐.

그 행동방식이 예외 없이 똑같아서 모를 수 없었다.

놈들의 목적은?

『이브』

일부 학자들이 ‘아담일지도?’라는 반전의견을 내놨지만, 낭만을 모르는 동성애자란 야유를 들으면 찌그러졌다.

그러니 녀석들의 목적은 ‘수정 속의 여인’이 맞을 것이다.

공통점만 봐도 알 수 있다.

전부 7종 이상!

현대장비로 부술 수 없는 수정을 깨부술 수 있는 최소의 능력 하한선이다.

“도련님. 저희가 처리하겠사옵니다.”

“굳이 그럴 필요는….”

“아니옵니다. 도련님께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살생(殺生)도 기쁠 것 같사옵니다.”

구미호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다미호 무리가 일제히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것 아닌가! 여왕이 하는 짓은 푼수 같아도 권한은 진짜였다.

요술을 발동하는 춤사위.

폭죽이 요란하게 팡팡 터지는 화려한 마술쇼가 지나간 자리에는 부질없이 추락하는 ‘슈퍼-독수리’만 보일 뿐이었다.

“...요즘은 8종도 참 허망하게 죽네.”

엘퍼러가 보유한 전력이 그만큼 사기적이란 뜻이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그걸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 [44화-1] 친위대 > 끝

ⓒ 파르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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