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수처럼-180화 (180/287)

< [43화-4] 옆집에서 재난이…. >

어려운 일이 생긴 때는 외국으로 도피?

고대인들의 지혜는 이해할 수 없는 구석이 많다고 무일은 중얼거리면서도, 도움을 요청한 유키 짱의 손을 뿌리치지 못했다.

그대로 목포까지 동행했다.

일본에서 뭐라고 할 것 같지만, 그건 선지혜가 어떻게든 해결해줄 거란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넌 뭐니?”

“신세 좀 질게, 예요. 언니.”

“누가 네 언니야?”

“그러지 말고 자매처럼 잘 지내봐, 예요. 시장님.”

무슨 말을 해도 물 흐르듯 넘기는 유키 짱.

막말을 퍼부어주고 싶은 선지혜였으나 선배의 시선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그리고 아예 처음 보는 ‘뉴페이스(new face)’도 아니었다.

그러니 이건 예정된 미래 중 하나.

‘꼭 나쁘다고 할 수 없으려나?’

선지혜는 마음을 고쳐잡았다.

강력한 경쟁자가 뭘 하는지 모르는 것보다는 가까이에 두고 감시하는 편이 더 이롭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일단 ‘유학’에 대해서는 수락했다.

이 문제로 천왕이 소리를 꽥 지른 모양이지만, 엘퍼러에게 ‘통보’하는 방법을 가르쳐준 거나 다름없는 선지혜에게 통하지 않았다.

국제사회도 일본 편이 아니었다.

특히, 여성의 권익을 상징하는 수많은 여성단체가 천왕을 비난했다.

『계약의 자유!』

『사랑의 자유!』

『충성의 자유!』

여기에 세계 인구의 80%가 여성. 사냥꾼 대우가 좋은 일본만 해도 74%가 여성이었다. 아무리 겁 없는 천왕도 깨갱 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이런 여론이 순식간에 형성된 걸까?

그건 자신에게서 계약자를 빼앗으려 한 일본 정부와 본부에 대단히 유감 많은 가상세계 하느님 ‘엑시리얼 온드미온’이 본격적으로 나선 까닭이다.

【판타이탄 / 7종 특수】

전자계통으로는 8종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실질적으로 이쪽 계열은 판타이탄이 최강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판타이탄을 괜히 ‘신(神)’에 비유하는 게 아니다.

특히, 인간에 대해 잘 아는 괴짜, 엑시온(애칭)은 정도가 더했다.

유명한 사이트의 검색어 순위조작은 일도 아니다. 여기에 실존하지 않는 인물을 대거 투입해서 동정여론을 부추긴다.

좀 더 근본적인 문제도 지적했다.

『유키나 미나미가 계약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여기에 감시카메라로 찍은 영상을 살짝 편집해서 인터넷상에 유포했다.

가녀린 미소녀를 강제로 끌고 가려는….

실제로는 대단히 정중한 초청이었지만, 각도와 시각을 조금만 고치면?

단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일본은 ‘여자를 노예로 아는 나라’로 찍히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건 대단한 치명타로 적용했다.

하물며 국력 11위의 국가.

이번 ‘허리케인 사건’으로 순위가 여기서 또 대폭 하락한 일본은, 수많은 강대국의 비난을 얻어맞아야 했다.

특히, 미확인 괴수를 독점하려 한 일본의 태도에 강력히 항의하고 나섰다.

“헤에~, 제법인데?”

“유키와 나를 위해서 한 조치였을 뿐, 칭찬받을 일은 아니다.”

칭찬에 인색한 선지혜도 그런 판타이탄의 빠른 대처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엑시리얼 온드미온처럼 해보라고 자문단에 지시해도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리고 된다는 보장마저 없다.

요즘처럼 정보가 범람하는 시대에는 금방 묻혀버리는 까닭이다.

게다가 판타이탄은 혼자이면서도 족히 ‘수십만 명’ 역할을 홀로 하고 있었다. 가장 흔히 쓰는 여론 수법이 ‘분신1’과 ‘분신2’로 대화하는 식.

『일본 나빴어.』

『응. 정말 못됐어.』

이런 식으로 맞장구치는 토론을 아주 자연스럽게 해낸다.

일인이역(一人二役)이란 말로도 부족했다.

일본 정치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판타이탄의 분노’였다. 일본의 모든 비밀정보가 7종 수호자의 손에 들려있다는 이유만이 아니다.

여론과 평판이 생명인 정치인에게 판타이탄은 천적!

“내 밑에서 계속 일하는 건 어때?”

“정중히 사양하지.”

목포에서 무전취식 중이나 다름없는 계약자 ‘유키나 미나미’를 대신해서, 선지혜의 자문단으로 활동하는 엑시온의 휴머노이드가 대답했다.

심지어 건설장비로 변신해서 목포의 건설현장을 뛰기도 한다.

혼자서 도대체 몇 명의 역할을 대신하는 걸까?

인류에 유익한 정도를 등급으로 매겼다면 판타이탄은 가볍게 9종도 찍었을 것이다. 혼자서 작은 왕국이었다.

왕과 신하, 백성을 전부 혼자서 맡은….

“그런데 네 공주님. 정말로 도깨비랑 계약할 수 있는 건 맞아?”

“...모르겠다.”

“그럼 괜한 설레발? 선배에게 들러붙을 변명?”

“그건 또 아니다.”

엑시온은 인물정보 하나를 선지혜에게 보여줬다.

유키나 미나미와 완전히 똑같은 것 같으면서도 표정이나 옷맵시 등에서 차이가 대단히 큰 인물이었다.

미오 타미에.

오니오프 옛 계약자.

여전히 살아있으며, 수많은 남자와 잠자리를 함께하고 아이를 낳은 미녀로 더욱 유명해진 전직 공주님이다.

비슷한 외모도 ‘인연’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건 도깨비 왕만이 알 것이다.

“가능성이 대단히 높네….”

“그런가.”

달팽이 여왕님은 그렇게 느꼈다.

옛 애인과 비슷하게 생긴 여자를 만난 것 또한 ‘인연’이라 할 수 있는 까닭이다.

하물며 엘퍼러의 도발로 계약자를 급히 구하는 중인 오니오프는, 생판 모르는 여자보다 그래도 접점이 있는 여성이 더 좋으리라.

“그 허리케인이란 검은?”

“상대할 방법이 전혀 없었다. 현대무기의 모든 걸 무시하더군.”

며칠 전을 회상하며 판타이탄이 대답했다.

그랬다.

유키나 미나미가 목포로 이사 온 지도 꽤 시일이 지났다.

그동안 일본은 엉망진창!

아들 녀석의 실수로 에쏘드를 잃었다고 고백한 총리, 코죠 카즈마는 대국민사과문을 낭독한 후에 폐허로 변한 도쿄 한복판에서 석고대죄했다.

일본인의 충격은 대단히 컸다.

【에쏘드 / 8종 특수】

괴수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도 ‘8종’이란 단어에는 대단히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리고 ‘에쏘드’의 중요성을 잘 아는 ‘몬스터 마니아’들은 그 심각성에 전율했다.

에쏘스트.

그 힘은 이제 인류에 빼놓을 수 없다고 보는 사람이 많았다.

많이 부풀어진 감이 있지만, 사람들은 국가의 의도적인 홍보와 정보조작으로 착각할 수밖에 없었다.

『조금 약한 엘퍼러 = 에쏘스트』

실제로는 ‘아주 많이 약한 엘퍼러’가 에쏘스트다.

여기에 가더발트와 하렘의 왕까지 합치면 전투력은 비교가 아예 불가능해진다.

어디 그뿐이랴?

지배력과 필살기도 있다.

굳이 가치로 따지면 태양과 반딧불만큼 격차가 날 것이다.

하지만….

한무일과 계약한 ‘용사의 정령’ 한세리만이 8종으로 불릴 자격이 있다는 걸 일반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용사의 정의? 그딴 걸 알아서 뭐하게? 영웅이랑 다른 게 뭔데?』

...이런 식이다.

그렇다 보니 ‘에쏘드를 잃었다.’는 총리의 발언에도 충격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 분노가 적을까?

절대 그렇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코죠 카즈마는 강행했다.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천왕의 손바닥에서 놀아나리란 걸 잘 아는 까닭이다.

국민의 분노를 제대로 샀으니 이젠 달랠 차례.

일본 총리는 대놓고 천왕을 비난하며 ‘허리케인’에 대해 설명했다.

“총리의 수완이 제법 좋네. 위기에 강한걸?”

“오줌싸개 아들을 둔 것치고는.”

선지혜와 엑시온은 총리를 높게 평가했다.

코죠 카즈마는 짧고 강렬하게 하고자 하는 말을 전부 설명했다.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새로운 에쏘드를 찾아다녔다는 것, 그 과정에서 ‘신개념 에쏘드’를 발견!

하지만 천왕의 성급한 판단으로 도쿄가 이 지경이 됐다고 비난했다.

소유권을 인정받는 조건으로 연맹과 합동연구를 진행했다면 이런 비극은 없었을 거란 성명을 발표했다.

어디 그뿐이랴?

천왕이 ‘이 새끼가 미쳤나!?’라고 당황하는 틈에 ‘도쿄의 요정은 천왕 때문에 일본을 떠났다.’는 식으로 여론을 슬쩍 돌려놨다.

서둘러 ‘천왕 측’에서도 반격에 나섰지만, 그야말로 진흙땅 싸움이나 다름없었다.

“그 문제의 허리케인은?”

“일본 기술반에서 남성 연구자만 선별해서 연구 중이다.”

일본의 정치구도는 개싸움을 연상케 했지만, 아들의 삽질 이후로 계속 수세에 몰렸던 총리는 그 울분을 토해내듯 연승가도를 달리는 중이었다.

그 핵심은 허리케인.

서울 복원의 대가로 황진천을 생포했을 때하고 비슷했다.

총리는 ‘허리케인 공동연구’를 내걸고 도쿄 복원사업을 도와줄 강대국을 물색했다. 그리고 여기에 흥미를 보인 국가가 여럿 됐다.

무엇보다도 오니오프가 계약자를 물색 중이란 점이 중요했다.

계약만 성립한다면?

엉망진창이 된 일본은 이집트처럼 단숨에 국력이 뻥튀기될 수 있다!

그런 일본이랑 사이 좋게 지내서 나쁠 것 없다는 계산이다.

(이게 한국과 일본만의 이상 현상이 아니었군….)

같은 시각.

유학을 왔으면 공부를 해야지, 라고 설득해서 유키 짱을 ‘문팽이 고등학교’에 편입학시킨 무일은 정기보고를 받는 중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매일!

한국, 미국, 중국 괴수대응본부에서 수시로 정보를 제공해준 덕분에 엘퍼러는 따끈따끈한 현대정보를 접할 기회가 많아졌다.

(그래요, 대장님. 미확인 괴수가 세계 각지에서 발견되는 중이에요.)

이번 연락은 서울에서 왔다.

대책반장 최이슬은 농염한 눈웃음을 지으며 영상통화 중인 사내를 유혹하듯 달콤한 목소리로 회답했다.

미계약자가 말끔히 사라진 한국(부산 제외)에서 대책반이 할 일은 거의 없어졌다.

여성으로서 매력이 떨어지는 미성년자들의 성급한 계약을 저지하고, 남자친구에게 순결을 내주는 어리석음 등을 막는 일이 전부다.

그래서 한가하다.

하지만 공명정대한 와이츠 ‘미카헬로 싸이어’는 같은 월급을 받으면서 누구만 놀도록 가만두지 않았다.

그래서 대책반은 ‘정보과’ 일을 일부 돕도록 재조정됐다.

정확히 말하면 ‘엘퍼러의 귀’ 역할이었다.

계약자 선유나를 완벽히 해방해준 점에 대한 보답이리라.

(몸은 좀 어떻습니까, 반장님.)

(걱정해주신 덕분에.)

(제가 뭘….)

(아니요.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아이를 낳는 보람과 기쁨을 알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좋아하는 남자의 아이를 낳는다.

여자에게 이보다 더 큰 행복은 ‘95% 할인행사’ 때뿐이 없을 거라고 ‘만삭(滿朔)인 최이슬’은 매일같이 깨닫는 중이었다.

과거의 자신이라면 코웃음 쳤겠지만, 뭐든 직접 겪어봐야 알 수 있는 법이다. 아이의 아빠하고는 이렇게나 멀리 떨어져서 공적인 얘기나 주고받는 사이였지만.

이게 또 엘퍼러답다고 생각했다.

바람둥이처럼 이 여자, 저 여자의 몸에 손을 데고 다니는 것보다는 공평하게 무심한 쪽이 더 좋다고 그녀는 자위했다.

(새로운 괴수가 세계 각지에서 출몰하고 있다는 건데….)

(뭔가 짚이는 부분이라도 있으세요?)

(아직은 없습니다. 아담이 입을 열거나 수정 속의 이브를 꺼내는 강수를 두기 전까지는 계속 평행선일 것 같습니다.)

시기가 대단히 공교로웠다.

외계인을 발견하자마자 등장하기 시작한 새로운 괴수.

단순한 우연일까?

무일은 중국 정보과에 기대를 거는 중이었다.

『가상현실세계』

그곳에서 어느새 1년(체감시간)을 보낸 아담은 매일같이 이등병, 신병(新兵)처럼 구르고 또 구르는 중이었다.

무협에서 말하는 수련의 시기!

이계의 최강자(엘퍼러)에게 패배한 아담은 무림에서 환생한다는 시나리오다.

하지만 갓난아기부터 시작하면 시간을 너무 오래 잡아먹고 번거로운 까닭에, 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소년의 몸으로 영혼이 들어간다는 설정이었다.

다행히 아담은 속아 넘어갔다.

며칠의 방황과 혼란 끝에 ‘가상현실세계’를 꿈이 아닌 ‘현실’로 받아들였다.

한무일에게 지적받은 대로 ‘현실성’에 초점을 둔 쾌거였다.

그렇게 시작된 한국어 무협!

『돌쇠의 일대기』

굳이 이름까지 구수한 한국식으로 할 필요는….

마적단의 공격으로 가족을 몽땅 잃은 ‘노비의 아들’ 돌쇠가, 무림고수의 제자가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스승이란 작자는 썩 훌륭한 성품이 아니었다.

검술 실력이 출중한 ‘아담’을 ‘내공’이란 사기적인 기술로 처바른다. 그리고 ‘아담’은 바득바득 이를 갈면서 저 빌어먹을 내공을 익히기 위해 순순히 제자가 된다.

그 뒤로?

밑도 끝도 없는 지옥이 시작됐다!

한국어를 배우는 건 물론이고, 스승의 말이라면 무조건 따르는 세뇌교육이 수련에 섞이기 시작했다.

보상은 ‘내공’ 쪼금.

하지만 더럽고 치사해도 ‘아담’은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조금씩 자신이 세뇌당하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곧 좋은 성과가 있을 것 같습니다.”

강대국들은 ‘돌쇠의 일대기’에 짙은 관심을 보였다.

언제 돌쇠가 ‘전생 이야기’를 스승에게 털어놓을지를 놓고 내기한다나?

돈을 걸진 않았지만, 한무일도 기대가 크다.

실존하지도 않는 ‘내공’을 익힌답시고 날마다 구르고 또 구르는 아담이 안쓰럽긴 했지만, 어쩌겠는가?

전부 자업자득인 것을.

그러게 순순히 아는 걸 토해냈으면 얼마나 좋았는가.

‘본인은 꿈에도 모르겠지.’

스승의 아리따운 딸이 달빛 아래의 연못에서 목욕 중인 장면을 목격한 건 절대로 우연이 아니란 사실을.

그 딸의 외모가 ‘수정 속의 여인’이랑 판박이란 것도 포함해서.

떡밥이 아주 난무하지 않는가!

아담의 근질거리는 입술이 떨어질 날도 그리 멀지 않았다.

< [43화-4] 옆집에서 재난이…. > 끝

ⓒ 파르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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