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수처럼-179화 (179/287)

< [43화-3] 옆집에서 재난이…. >

“용사님! 같이 가요!”

“떼놓고 가면 슬퍼요.”

한세리와 한유나가 잽싸게 따라붙었다.

중국 때하고 차이가 있다면 이번에는 세이랑 무리를 엘퍼러 혼자서 모는 게 아니라 두 에쏘드가 함께한다는 점이다.

속도는 떨어졌지만, 대신에 쉬임프가 자유로워졌다.

플로라는 도쿄 항로(航路)까지 길을 뚫는 역할을 하기로 했다. 엘퍼러의 앞길을 가로막을 만큼 간 큰 괴수가 더러 있기 때문이다.

누구?

『남성형 괴수』

하지만 ‘불사신’으로 불리는 쉬임프를 당해낼 순 없었다.

황제의 앞길을 막아서기 전에 그녀에게 무참히 짓밟히며 생을 마감했다. 그럼에도 끊이지 않고 덤비는 괴수들은 미련함을 넘어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이번에는 소수정예다.

군식구 같은 ‘용사의 정령’ 둘은 어쩔 수 없이 포함 시킨 걸 제외하면.

아쿠버스, 라미아가 상당히 애석해 했지만, 다음번으로 미뤘다.

‘위험하니 할 수 없지.’

일본에 등장한 검의 절삭력이 ‘아담의 검’하고 엇비슷하다면 라미아의 목숨이 위험해질 소지가 다분하다.

아니, 8종 용신이란 게 믿기지 않을 만큼 허망한 죽음을 맞이하리라!

쉬임프는 가볍게 막을 것이고, 에쏘드는 베이면 집(검)으로 강제소환되는 정도. 위험하지 않다는 판단이었다.

그 결정은 탁월했다.

도쿄에 도착한 무일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푸른 불꽃….”

수소와 산소가 타면 붉은색 불꽃이 피어오른다. 그 정열적인 색깔이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는 ‘불’의 모습.

그런데 도쿄를 불태우고 있는 불은 명백한 푸른색이었다.

넘실거리는 화염은 이질적이었고, 프로사냥꾼은 저걸 이렇게 부른다.

『도깨비불』

일본의 터줏대감 오니오프가 움직인 걸까?

그랬다면 도쿄가 남아나지 않았으리라. 그러니 이건 오니오프 자신이 아니라 추종자를 움직인 거라고 보는 편이 맞다.

그렇다고 해서 마음 놓을 수 없다.

여태 해결하지 못했기에 저 도깨비불이 여전하다는 뜻이니까.

“서둘러야겠군.”

오니오프가 움직이면 도쿄는 그걸로 끝장이다. 수호자도 아닌 엄연한 ‘야생괴수’에 속하는 도깨비 왕에게 적당히 요구하는 건 무리다.

포세이돈에서 훌쩍 뛰어내린 엘퍼러는 현장을 향해 달렸다.

천왕의 경고?

그런 건 무시해도 된다.

황진천 때처럼 서울을 방관했던 일이 떠오른다. 나름 옳은 선택을 했다는 것도 알지만, 역시나 그의 정의하고는 맞지 않았다.

똑같은 ‘정의’지만, 그래서 이번에는 ‘후회’를 안 남길 생각.

‘저 녀석인가.’

투포환을 던지듯 빙글빙글 돌면서 긴 검을 휘두르고 있다.

누군가의 피로 붉게 뒤집어쓴 여인은 같은 사람이란 게 믿기지 않을 만큼 괴상했다. 생김새가 이상하다는 게 아니다.

피를 뒤집어쓴 여인은 표정부터 모든 게 정상이랑 멀었다.

“캬캬캬캬!”

삼류악당 같은 천박한 웃음소리.

요괴 혹은 도깨비라고 불리는 일본 특유의 괴수들이 사방에 쓰러져 있었다. 그 대부분은 토막 난 채로 죽었고, 산 괴수는 멀리서 요술을 부리며 몸을 사렸다.

괴수가 싸움을 피할 정도로 벅찬 상대?

그럴 리 없다.

괴수는 적이 강하다고 몸을 사리지 않는다.

상대가 왕이라면 모를까, 이건 ‘추종자’로서 왕의 지시를 받고 움직인다는 뜻이다. 정작, 그 왕은 모습을 안 드러내고 있지만.

무일은 눈을 가늘게 뜨고 에쏘드를 뽑았다.

직후,

‘뭐가 됐든 내가 움직이는 건 변함없지.’

빙글빙글 도는 ‘허리케인’을 향해 도약했다.

그는 발전했다.

아담의 ‘신묘한 검술’이 자연스럽게 발현됐다.

수많은 인간을 죽이며 힘을 축적하고 원심력마저 극에 달한 공격을 비스듬히 흘리며 칼날을 앞으로 쭉 뻗었다.

예전 같으면 [반격]을 먼저 떠올렸으리라!

하지만 이건 명백한 ‘선공’이었다.

“캬캬, 캬아-?”

목이 찢어질 기세로 웃던 여자가 실 끊긴 인형처럼 푹 쓰러졌다.

검을 쥔 손목이 잘린 직후에 벌어진 일이었다.

숙주인지 계약자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이렇게 물리적인 연결을 차단하면 무기가 혼자 날뛸 수 있을 리 만무하다.

...라고 판단했던 무일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머리에 건물 잔해가 떨어지며 뇌진탕으로 죽은 여인이 벌떡 일어나더니 ‘허리케인’을 자연스럽게 줍는 게 아닌가!

다시 부활했다.

“꺄아아아!”

이번에는 엘퍼러를 위협하듯 소리를 내질렀다.

그 행동은 마치 들짐승을 연상케 했다.

하지만 엘퍼러에게 등을 보이더니 빙글빙글 돌면서 줄행랑쳤다. 자신의 상대가 아니란 걸 깨달은 것이리라.

꼭 당해봐야 그걸 아는 걸까?

지능이 일반적인 괴수보다 아주 낮은 것 같았다.

“이번에는 확실하게 끝내주마.”

뱀페스트의 힘에 가더발트의 증폭이 걸린 엘퍼러는 아스팔트에 균열이 생길 정도로 강하게 대지를 밟으며 돌진했다.

이 또한 ‘아담의 기술’이다.

방패가 있어야 완벽한 재현이지만, 무일의 스타일로 바꿨다.

허리케인은 적어도 엘퍼러를 상대로는 빙글빙글 돌지 말았어야 했다. 그랬다면 이런 일방적인 구도가 안 일어났으리라.

저건 [반격]하기 딱 좋은 ‘각’이다.

서걱!

일본에서 쩔쩔매던 허리케인의 부활은 너무나 싱겁게 끝났다.

이번에는 잽싸게 손잡이를 쥐어 더는 새로운 숙주를 구하지 못하도록 차단했다.

“남성에게는 반응을 안 한다는 건가.”

여성용 에쏘드?

그 정도로 해석해도 무방할 것 같았다.

하지만 아비규환이 된 도쿄를 보자면 에쏘드처럼 선량하지 않은 게 확실했다.

누군가 탐나느냐고 묻는다면?

『아니요.』

무일은 간단히 대답할 수 있었다.

에쏘드보다 성능이 떨어진다는 건 둘째다.

이건 수많은 사람을 학살한 검에 대해 꺼림칙함이었다. 검에는 죄가 없고 사용한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고 하는데….

허리케인은 그렇지 않다.

가더발트처럼 자기 의사로 난폭하게 행동한다.

화르륵!

그때였다.

가만히 있던 무일을 향해 푸른 불꽃이 쏘아져 날아왔다.

도깨비불?

명백한 특수공격이다.

에쏘드가 곁에 있는 무일은 피할 필요가 없음에도 털어내듯 쳐냈다. 몸이 멀쩡하다고 해도 착용 중인 장비는 그렇지 않은 까닭이다.

“오니오프…!”

“죽어라. 존재해선 안 되는 왕.”

메이지 신궁에서 죽은 척하고 있던 도깨비 왕.

사람의 평균보다 아주 큰 덩치는 그래도 인간의 범주에 들어갔다. 하지만 가르마 부근에 달린 두 뿔과 뾰족한 귀가 인간이 아님을 주장했다.

【오니오프 / 9종 소형】

영역인 도쿄에서 학살극이 벌어질 때도 움직이지 않았던 왕의 행차.

그건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오니오프는 명백한 ‘남성형 괴수’였다!

현재, 남성형 괴수의 열렬한 적의를 받고 있던 엘퍼러로서는 기가 막힐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 이런 일이?

더욱 기가 막힌 건 [예감]이 여전히 잠잠하다는 점이다.

그건, 오니오프의 장기인 ‘꺼지지 않는 불꽃’이 엘퍼러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말을 할 줄 아네.”

“시끄럽다.”

허리케인을 상대로 소극적이었던 추종자들이 엘퍼러와 플로라, 한세리, 한유나를 포위하듯 둘러쌌다.

왕끼리는 괜찮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벌써 100년 동안 한 자리에서 꿈쩍 않고 있던 오니오프가 움직였다는 사실이 그 증거. 이 싸움은 피할 수 없다.

만약 [업보]를 따져봤다면 덤빌 수 없어야 맞는데.

이건 상성이다.

요술을 쓰는 요괴는 그의 상대가 못 됐다.

만약, 상대가 엘퍼러가 아닌 에쏘스트였다면, 오니오프는 ‘꺼지지 않는 불’을 봉인 당한 상대로도 이길 수 있었으리라.

놈의 [예지]는 그만큼 뛰어났다.

“꼭 싸워야 하나? 용무도 마쳤으니 돌아갈 생각인데.”

“그렇다.”

“어째서지?”

“이건 명백한 침략. 왕의 긍지가 달린 문제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는 오니오프.

왕의 긍지라고?

엘퍼러의 눈매가 찌푸려졌다.

그딴 이유에 목숨을 거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안다. 무일도 ‘정의’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희생할 각오가 되어있는 까닭이다.

하지만 이건 아니다.

자존심을 위해 목숨을 거는 행동방식에는 찬동할 수 없다.

“사과하지.”

“...침략이란 명분일 뿐. 나는 네 존재 자체가 대단히 싫다. 같은 땅을 밟고 있다는 사실을 도저히 참을 수 없다.”

“솔직한 답변이군.”

마음의 상처가 됐다고 하면 농담처럼 치부될까?

플로라는 전투태세를 마친 상태였고, 한유나도 한 손 건들겠다는 듯한 안정된 자세로 검을 고쳐잡고 있었다.

한세리는…. 야무지게 두 주먹을 쥐어보지만, 전투에 전혀 도움이 안 될 게 확실할 정도로 엉성해 보였다.

‘해결하러 왔다가 일을 늘렸군.’

세상의 모든 일이 뜻대로 풀린다면 좋으련만.

무일은 곰곰이 생각했다.

이 상황을 온전히 빠져나갈 방법에 대해서.

“이봐, 도깨비 왕.”

“...뭐지?”

“나와 싸우고 싶으면 격부터 맞춰라. 계약자도 없는 벌거숭이 왕이라니. 네가 내 입장이라면 싸워주고 싶겠어?”

“그건…. 흠….”

당장에라도 덤빌 것 같았던 오니오프가 갈등했다.

그 의견에 동조하듯 수많은 추종자의 시선이 왕에게 꽂혔다. 여기서도 의견이 둘로 갈라지고 있었다.

남성형 요괴는 그게 뭔 대수냐는 얼굴.

여성형 요괴는 힐난의 눈빛으로 왕을 보며 ‘엘퍼러 편’을 들었다.

오니오프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백성의 ‘절반’이 탈주할 조짐이 보였던 까닭이다. 이 자리에서 무턱대고 싸우자고 하면 ‘여성형 요괴’는 적으로 돌아서리라!

전력이 줄어드는 건 둘째 문제.

왕이 신하를 빼앗기는 것만큼 치명적인 굴욕도 없다.

“어떻게 할 거지?”

“...알겠다.”

이미 한 번 패배했음을 실감하면서도 의연하게 대답한 오니오프는 추종자를 해산시켰다. 그리고는 메이지 신궁이 아닌 괴수대응본부로 향했다.

그 틈에 무일은 도쿄를 벗어났다.

도깨비 왕의 엉성한 대응이 좀 황당했지만, 차라리 그랬기에 다행이다. 만약, 덤벼들었다면

죽여야 했으리라!

오니오프를 죽인다면?

일본 도쿄 방어선에 큰 구멍이 뚫렸을 것이다.

“카레 짱!”

“어…. 유키 짱이네.”

“바로 떠나면 매우 속상해, 예요.”

낙하산도 없이 하늘에서 바다 한가운데로 떨어지는 미소녀.

부산에서도 비슷한 일을 겪었던 무일은 침착하게 세이랑 고삐를 한세리에게 맡긴 후에 뛰어올라서 유키나 미나미를 안아 들었다.

판타이탄도 참….

계약자가 조심성 없어서 참 고생이다.

판타이탄이 변신한 수직이착륙 전투기가 바다 위로 천천히 하강했다. 그리고는 작은 인공섬으로 변하는 것 아닌가!

명불허전(名不虛傳)…!

범용성과 응용력이 사기적인 괴수다웠다.

“흐음. 단순히 보고 싶어서 온 것 같진 않은데.”

“너무해, 카레 짱! 내 마음도 몰라주고!”

“...흑심 100%.”

“땡! 384.76%쯤 해, 예요.”

소수점까지 구체적인 유키 짱의 기준점은 무일의 이해범주를 넘어서 있었다.

아니,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나?

갑자기 그녀가 목포로 돌아가는 그를 쫓아온 이유를 아직 듣지 못했다. 그리고 어째선지 대단히 성가신 일에 휘말린 느낌을 받았다.

이건 [예지]나 [예감]이 아닌 경험에서 우러난 [예측]이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야? 그리고 매번 말하지만 편하게 말해.”

“하지만 살갑게 대화하면서 너무 가까워지면 이 마음을 참기 힘들어. 그래서 이렇게 봉인하는 거야.”

대단히 판타지 같은 설정이군?

남녀가 반말로 주고받는다고 해서 관계가 야릿해지는 건 아닌데 말이다.

유키 짱에게 한글을 가르쳐준 여자가 정말 궁금해졌다.

“알겠으니 무슨 문제야?”

“실은…. 나, 쫓기고 있어. 오니오프가 계약자를 찾는다고 말한 직후부터 정부와 본부에서 나를 잡으려 해.”

“하아?”

천왕도 그러더니 이건 또 무슨 개똥 같은 소리일까.

유키 짱이 이상하다는 게 아니라 일본 정부와 본부의 대처방식이 이상했다.

합장(合掌)한 소녀가 무릎까지 꿇으며 부탁했다.

“오니오프가 계약자를 찾을 때까지만 나를 보호해줘. 여기에 사인만 해주면 일단 안심.”

“...교환학생?”

“이럴 때는 유학(遊學)이 최고래. 검증된 고대의 지혜야.”

< [43화-3] 옆집에서 재난이…. > 끝

ⓒ 파르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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