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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수처럼-177화 (177/287)

< [43화-1] 옆집에서 재난이…. >

파르나르 장편소설

괴수처럼 22

[43화] 옆집에서 재난이….

학명: 해바라돈(해를 보는 공룡)

서식지: 사막

특징: 햇빛을 보고 성장합니다.

위험도: 1종 중형

비고: 놀랍게도 식물

***

현대전의 폭격, 공습, 기동이 총망라된 몸에 담고 있는 최강최악(最强最惡)의 순양함, 배틀씹이 한 여인의 수중에 떨어지면서 세계는 공포에 빠졌다.

정확히 말하면 지도층이 공황상태에 놓였다.

이 난국을 어찌 해결하리오?

미국에서 ‘시계’로 찍은 영상은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초토화! 고슴도치 통구이로 만들게!』

『잠-!』

『귀염둥이들, 발사!』

깜찍한 발성과 달리 결과는 참혹했다.

무려 5,000km나 떨어진 바다에서 지시를 받은 배틀씹이 쏘아낸 알들은 정확하게 일본을 건너 한국에 떨어졌다.

먼 거리와 변칙적인 풍향을 생각하면 대단히 정밀한 폭격이었다.

문제는 감탄만 할 수 없다는 것!

8종 괴수로 짐작되던 ‘고슴도치’를 일방적인 공격으로 10분 만에 세상에서 지운 배틀씹은 공포 그 자체였다.

당연히 그 무적순양함 함장도.

『초토화! 도시를 불바다로 만들게!』

『잠-!』

『귀염둥이들, 발사!』

...이런 시나리오를 한 번쯤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세계는 강력한 수호자를 둔 아리따운 계약자의 힘으로 지탱되고 있는 건 맞다. 하지만 엄연히 따지면 일부 ‘초강력 괴수’의 방관으로 성립된 평화다.

놈들이 움직이면 도시는 ‘무조건’ 사라진다.

그저 온화한 성품 혹은 특유의 무관심 덕분에 인류는 멸망을 모면한 것이다.

물론, 모든 초강력 괴수가 평화적인 건 아니다.

대표적인 예로 ‘3대 재앙’을 들 수 있다.

『7종 특수, 갤럭쉽 - 솜사탕』

『9종 소형, 워페레스 - 여왕벌』

『9종 대형, 문팽이 - 불도저』

이 괴수들은 ‘왕’으로서 영토에 민감한 탓에 인간에게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 그래서 틈만 나면 도시를 공격하는 재앙이다.

그중 문팽이가 계약자를 구하면서 빠져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3대 재앙’이 ‘2대 재앙’으로 줄어드는 건 아니다. 인간에게 적대적인 괴수는 세상에 차고 넘치는 까닭이다.

그렇다면 ‘3대 재앙’이 최강이냐?

절대로 그렇지 않다.

자신의 강함을 드러내지 않는 겸손한(?) 괴수도 있다.

그중 가장 강한 대적불가의 셋을 이렇게 칭한다.

이름하여 ‘3대 최강’이라고.

『8종 대형, 배틀씹 - 순양함』

『8종 소형, 쉬임프 - 불사신』

『8종 특수, 올란드 - 산신령』

모든 속성 브레스와 원거리 폭격의 대명사로 불리는 배틀씹, 절대적인 방어력과 바다의 생명력을 공유하는 쉬임프, 대륙의 정령 혹은 땅의 신이라고 불리는 올란드.

당연하게도 전부 8종이다.

이들이 만약 9종이었다면 인간의 도시에 무관심하지 않았으리라. 그리고 활동지역도 인간이 없는 태평양과 하와이란 점이 크게 작용했다.

그러니 착하다는 말은 어폐가 있다.

그 증거로, 3차 세계대전 당시에 수많은 해상도시(海上都市)가 이들 셋의 공격으로 가라앉았다. 이후에 잠잠해지면서 차차 ‘3대 최강’이라고 불리는 것뿐.

사실, 여기에는 하나가 빠졌다.

『9종 소형, 엘퍼러 - 지배자』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문제는 엘퍼러 밑으로 재앙과 최강이 몰렸다는 점이다.

여섯 중의 절반, 셋이 그의 수중에 떨어졌다. 그리고 그중 둘을 제어하는 절세미녀의 성격은 썩 평화적이지 않다.

수틀리면 도시 한두 개는 심심풀이로 밀어버릴 심성의 소유자!

9종 계약자, 선지혜.

사랑하는 남자가 고삐를 풀어주는 순간, 문팽이를 부산에서 서쪽으로 쫓아낸 일본의 수도, 도쿄부터 밀어버릴 거란 심리학자들의 분석은 딱히 놀랍지도 않다.

그다음은 중국 상하이.

이유?

밀다가 말아서 찜찜하니까!

“숨통이 조여지는 기분이군….”

일본 총리, 코죠 카즈마의 이마에 깊은 주름이 지어졌다.

외모는 딱 30대 초반의 미남.

하지만 고심하는 표정이 곁들어지면서 산전수전 다 겪은 노장(老將)으로 승화됐다. 저것이 바로 30년 넘게 일본국민의 신뢰를 끌어낸 얼굴.

그러나 지금의 그는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빠졌다.

이유라면?

‘배틀씹이라니….’

문팽이가 쳐들어오더라도 해볼 만하다고 판단했었다.

수호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방어전이라면 일본에도 9종이 있었던 까닭이다.

【오니오프 / 9종 소형】

본국에 협조적이지 않은 도깨비 왕이지만, 자신의 영토에 침범한 달팽이 왕에게 순순히 영토를 내줄 리 없다.

특히나 오니오프의 특수능력은 상륙한 해양괴수에게 치명적이다.

도깨비불.

꺼지지 않는 불씨가 해산물을 바짝 익혀주리라!

그래도 이길 수 있다고 낙관하지 않았다. 하지만 양패구상으로 끌고 갈 순 있다고 여겼다. 한국이 같이 멸망할 생각이 아니면 절대로 공격해올 수 없다는 믿음.

하지만 그 믿음이 깨졌다.

상황이 달라졌다!

【배틀씹 / 8종 대형】

괜히 ‘바다의 사기’라고 불리는 해양괴수가 아니다.

오니오프의 능력이 뛰어난 건 사실이나, 그건 어디까지나 육지에서 싸웠을 때의 얘기다. 바다에서 일방적으로 폭격하면 달리 방도가 없다.

도깨비불?

아무리 꺼지지 않는 불꽃이라도 바다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하물며 5,000km 너머의 태평양 한가운데까지 도깨비가 갈 방법이 없다.

‘도깨비의 요술이라면 못 갈 것도 아니지만….’

문제는, 배틀씹이 폭격만 잘하느냐?

그건 또 그렇지 않다.

상성에 맞춘 여섯 종류의 브레스가 도깨비들을 반겨줄 것이다.

그 브레스 하나하나가 작거나 약한 것도 아니다.

세상에서 2번째로 큰 덩치를 자랑하는 배틀씹인 만큼 ‘세계에서 가장 큰 브레스’는 스치기만 해도 도시고 괴수고 남아나지 않는다.

게다가 아가리가 6개.

동시에 쏠 수 있는 브레스도 6방이다.

초장거리 미사일부터 중거리 함포까지! 끝으로 그 두께가 짐작도 안 되는 갑판, 등껍질은 보기만 해도 전의를 상실하게끔 한다.

“총리.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보는가.”

그때, 쭉 관망하고 있던 일본 천왕이 입술을 떼며 물었다.

패배한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상징적인 지위였지만, 3차 세계대전 당시에 도쿄를 구한 왕족(王族) ‘미오 타미에’ 덕분에 그 이상의 발언권이 생겼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새 100년 전의 얘기.

당시를 뚜렷하게 기억하는 고대인들은 여전히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신세대는 ‘천왕 일가’에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이유라면 장기집권.

중국의 사회주의와 다른, 일당독재, 아니, 천왕의 사촌부터 팔촌까지 정치권을 장악하고 국가의 모든 대소사를 좌지우지하는 까닭이다.

그건 ‘총리’도 마찬가지.

거의 연관은 없지만, 그래도 먼 친척에 해당한다.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왕이시여.”

“우리가 한국보다 못난 게 뭐가 있기에 뛰어난 무사와 미녀가 여태 태어나지 않느냐는 아주 간단한 질문일세.”

천왕의 목소리는 누가 들어도 공격적이었다.

그건 두 사람이 왕과 신하의 관계이면서도, 정치적으로는 야당과 여당의 대표 같은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천왕은 고대인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고대인.

총리는 고대인의 독주에 반감을 품은 신세대의 대변인.

그 감정적인 골은 대단히 깊었다.

두 사람이 유일하게 일치하는 정치적 견해라면 한국과 중국의 성장을 경계해야 한다는 단 하나뿐이다.

협력? 공조?

그것만은 절대로 안 된다는 태도다.

“다른 점은 엘퍼러뿐입니다. 그자는…. 우발의 산물입니다.”

“그자의 어느 점이 우발이란 건가?”

“그건…. 음….”

코죠 카즈마는 천왕의 지적에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아니, 할 수 없었다.

우발?

엘퍼러에게 태어날 때부터 용사가 될 운명이나 재능이 있었던 건 아니기 때문이다.

부산이란 척박한 위성도시에서 보고 자란 환경이 한무일이란 남자에게 ‘각오’를 하게 만들었고, 그 결과로 자연스럽게 용사의 길을 걷게 된 것뿐이다.

위성도시라면 일본이 한국보다 많다.

섬나라의 특징상 ‘배수진을 친 도시’가 많았던 덕분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내 생각을 말하겠네, 총리. 지금의 교육은 문제가 많네.”

“교육은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그렇지 않네. 굳이 내 입으로 말해야 알겠나?”

“...제 아들은 교육하고 상관없습니다.”

시간은 총리 편이었다.

수명의 한계가 흐릿해지긴 했지만, 천왕을 지지하는 고대인의 안락사 비율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인 덕분이다. 그건 부자가 자살하는 것처럼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삶에 지쳐서.

자연의 섭리가 정한 인간의 수명을 극복하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육체적인 측면일 뿐, 바다거북처럼 1,000년을 살 정신력이 없었다.

이 현상은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시간이 흐를수록 코죠 카즈마가 우세해졌었다.

분명 얼마 전까지는 그랬는데….

‘못난 녀석!’

그 상황이 완전히 뒤집혔다.

정치적인 실수나 실언을 한 건 아니었다.

백 년 묵은 능구렁이, 천왕에게 빌미 안 잡히려고 완벽주의를 지향하는 코죠 카즈마에게 실수란 용납되지 않는 단어였다.

그랬는데….

본인이 완벽하다고 자식까지 그럴 순 없었다. 그렇다고 망나니이거나 흠잡을 구석, 부끄러운 아들은 분명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의 잘못은 너무나 컸다.

『에쏘드 분실』

분실이라기보다는 헌납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까.

에쏘드가 환장하는 싱크로율 100% 용사 앞에서 재롱부렸으니 이건 해외까지 나가서 공물을 바친 거나 다름없다.

도저히 용서가 안 된다.

국민에게는 ‘힘든 방어전 끝에 에쏘드를 잃고 말았다.’라고 해놨지만, 진실을 감춘 대가로 총리가 희생하고 부담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자랑스러운 아들, 카르 3세!

...전부 옛말이었다.

현재는 에쏘스트는커녕 노블레스로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키바 카즈마』

명문가 자제인 키바 카즈마는 특수체질이라서 ‘여성의 피’가 수시로 필요했다. 하지만 제공해주던 여인들이 모두 그의 곁을 떠났다.

진실을 알기 때문이다.

한 남자의 같잖은 질투로 국가의 단 하나뿐인 귀중한 수호자를 잃었다.

그런 자를 위해서 목덜미를 내밀 수 없다는 이유였다.

“일단은 그렇다고 해두겠네, 총리.”

“......”

“하지만 배틀씹을 저대로 놔둔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보네. 국민들…. 특히, 도쿄 시민들이 그 끔찍한 폭음을 들었네.”

“압니다.”

“안다고 끝날 문제가 아닐세. 대책을 마련해야지. 그게 자네의 일 아닌가?”

이 대책 마련은 전적으로 총리가 뒤집어쓴 상태다.

사무라이 계급을 부활시켜야 한다는 고대인의 여론을 ‘구닥다리 사고방식’이라고 찍어누른 사람이 코죠 카즈마였던 까닭이다.

외통수.

엘퍼러가 있었기에 지금의 국력 1위의 대한민국이 있다는 건 아무도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한국의 뒤를 이어 중국마저 저 멀리 앞서가는 상황.

그 모든 ‘잘못’을 총리가 뒤집어쓴 상태였다.

왜?

그것이 아들의 실수를 덮어준 대가였다.

그렇다고 못난 아들의 잘못을 안 덮어줄 수도 없었다. 키바 카즈마가 ‘에쏘드를 한국에 바쳤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정치 생명이 끝나는 정도로 안 끝나겠지….“

일본 본부에서 에쏘드의 위치는 대단히 각별했다.

수많은 생명을 불태운 검.

그런 희생 끝에 얻은 정보는 정말 보잘것없지만, 일본인들은 그러한 실수와 실패의 과정에서도 자부심을 느껴왔다.

그런데….

이 피땀의 증거인 에쏘드를 한국에 바쳤다고?

용서할 수 없는 중죄(重罪)다.

그럼에도 천왕의 도움으로 목숨이 붙어있을 수 있는 이유는?

『1위 - 한국: 1700』

『2위 - 중국: 310』

『3위 - 이집트: 100』

『4위 - 미국: 91』

『5위 - 프랑스: 84』

『6위 - 독일: 83』

『7위 - 영국: 75』

『8위 - 브라헨티나: 63』

『9위 - 터키: 47』

『10위 - 오스트리아: 45』

『11위 - 일본: 44』

이것이 일본의 현주소였다.

고대부터 경쟁국이었던 한국과 중국이 나란히 1위, 2위. 한국은 아예 대적불가였고 중국마저도 국력이 7배에 달했다.

천왕은 이 암울한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어차피 죽은 목숨’인 총리에게 선심 쓰듯 떠넘긴 것이다. 코죠 카즈마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처지였고.

하지만 이젠 천왕도 맡겨두고만 있을 수 없게 됐다.

전부 ‘배틀씹’이 문제였다.

일본의 어디든 30초 안에 초토화할 수 있는 장거리포로 무장한 괴수.

“국민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네. 정부와 왕가는 이 순간에도 신뢰를 잃고 있단 걸세! 바다 위의 저 악마 때문에!”

“압니다.”

“안다는 말로 끝날 문제가 아닐세, 총리! 어떻게든 방법을 생각해내게! 그게 자네의 장기 아니었나!”

재촉한다고 뾰족한 수가 나오는 건 아니다.

물론, 잠자코 있던 것도 아니었다.

그걸 전부 일일이 천왕에게 설명해줄 순 없었다. 그런데 통신은 코죠 카즈마의 편이 아니었다.

하필 지금이라니!

(총리 각하!)

(...간단히 보고하게.)

(신사에서 에쏘드 비슷한 무기를 발견했습니다.)

(비슷하다고? 그게 무슨 뜻인가.)

에쏘드면 에쏘드지, 비슷할 건 뭐람?

천왕의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대답을 촉구했다.

(그것이…. 마치 흉악한 요괴가 봉인된 칼처럼 보입니다. 네! 이건 전설에 나오는 요도(妖刀) 같습니다!)

총리와 천왕은 서로를 돌아봤다.

그런 장비형 괴수나 정령은 에쏘드가 유일했던 까닭이다.

즉, 이건 미확인 괴수!

일본의 두 지도자는 희망과 기대로 한껏 들뜨기 시작했다.

< [43화-1] 옆집에서 재난이…. > 끝

ⓒ 파르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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