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화-4] 세계의 비밀? >
“일단은 하나 됐고….”
짐짝 치우듯 시커먼 사내, 아담을 정리했다.
땀내나는 사나이들의 칼부림보다 나긋나긋한 여인네의 손길이 더 좋다. 이건 본능이니 어쩔 수 없다고 무일은 마음속으로 변명했다.
문제는 여성 쪽.
수정의 재질도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확 베어내고 싶은데, 이건 [예지]로도 앞을 내다볼 수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죽지 않는다고 100% 장담할 수 없다.
그래서 또 제쳐놨다.
‘남은 거라고는 검 쪽인데….’
마찬가지로 성과가 없었다.
이게 괴수라는 말도 있고, MID 군수품 같기도 하단다. 감정을 용신에게 맡겨도 ‘모른다.’는 답변뿐.
정말로 모르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아쿠버스 라미아는 답하기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는데, 그것만으로도 대답은 충분했다.
뭐가 있는 건 분명한데!
감질나게 그게 뭔지 알려주지 않아서 답답해도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사용법을 모르겠단 말이지.”
방패랑 한 세트로 해서 에쏘드 짝퉁 같은데, 성능은 모르겠다.
용사의 정신력인지 뭔지의 강한 영향을 받는 에쏘드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은 엘퍼러가 유일.
만약, 그가 아닌 다른 에쏘드 계약자는…. 그냥 한 방 감이고, 그나마 강한 에쏘스트도 방패의 아성을 못 넘고 끝내 패배하리라.
특히, 그 신묘한 검술.
한무일은 학습할 수 있다지만, 다른 에쏘스트는 그런 괴수 같은 방식이 불가능하다. 그냥 현재 실력으로 상대할 뿐.
싸우면서 발전하지 못한다.
“다른 세계에서 넘어온 건 확실한걸.”
선지혜가 불쑥 끼어들었다.
딱히 호기심 있어 하는 말투는 아니다. 그저 어떤 여자인지 확인해보는 차원. 무일이 이성으로서 관심 있는지 감시하는 정도였다.
질투.
무일은 그게 싫지 않다.
역으로 자신 같은 걸 좋아해 줘서 고맙게 생각한다고 할까. 하지만 역시, 조금은 진지하게 공적인 문제에 신경 써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지혜. 이걸 어떻게 할까?”
“세계에서 가장 날카로운 절단기도 베어낸 검이란 말이지? 꼭 당장 써먹어야 하는 게 아니면 그냥 갖는 편도 좋다고 생각해.”
“흠. 그런가.”
“아니면 몸에 붙어사는 벌레가 쓰도록 해도 좋고. 엔타리얼 치프트가 잘려서 더는 못 쓰게 됐잖아.”
“과연….”
선지혜의 말이 옳다.
에쏘드를 못 쓰는 한유일에게는 간절히 필요한 무기일지도 모른다.
이 검이 예측대로 7종 괴수까지만 썰어버릴 수 있다면 웬만한 위협은 자신이 잠든 6시간 사이에도 일어나지 않으리라.
그러니 이건 보험이 아닐까.
학자들이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하는 즉시, 허리에 차고 다니기로 했다.
‘부산도 순조롭고.’
그놈의 연구가 뭔지 목포로 흘러드는 돈이 마를 기미가 안 보였다.
아담에 대한 흥미는 빠르게 식었지만, 여전히 수정 속 여인, 이브의 인기는 폭발할 지경이다. 예쁘다는 이유도 크게 한몫했을 것이다.
별나라에서 온 것 같은 미모.
여성형 괴수하고는 다른 비현실감이 은연중에 드러났다.
요즘이 어느 시대인데 신성함이라니?
아무튼, 그 덕분에 부산과 목포 개발은 대단히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예정된 일정보다 더 빠르게, 멋지게 완공될 것 같다.
왜?
목포에서 생활하는 학자들이 편의를 자국에 요구했고, 국가들은 자신들의 학자가 편안히 연구할 수 있도록 목포 개발을 돕는 구조였던 까닭이다.
(특공대장님!)
(음? 부대장이 무슨 일이야.)
부대장. 정확히 말하면, 현역으로 복귀한 지 이제 막 1년이 돼가는 타로, 이승필이었다. 그 짧은 사이에 ‘타로 8세’란 호칭을 얻었다.
저격수답게 세대교체가 빠르게 이루어진다고 할까.
노블레스와 에쏘스트의 등장으로 사냥이 좀 더 안전하고 수월할 것 같지만, 테러리스트의 등장으로 더 위험해진 경향이 있다.
덕분에 이승필은 ‘타로 8세’가 됐다.
물론, 이 위로는 이제 나름 비결이 쌓인 베테랑들이라서 웬만하면 안 죽을 것이다. 어쩌면 만년 ‘타로 8세’에서 머물지도 모른다.
호칭이 뭐 그리 중요하느냐만은….
(서울을 무시하고 지나치는 고위괴수가 있습니다. 계속 남하 중입니다.)
(흐음?)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일까.
고위괴수가 대도시를 놔두고 지나간다니?
고양이가 생선을 포기한 격이다. 물론, 모든 야생괴수가 인간사냥에 혈안이 되어 있는 건 아니지만, 일단 모습을 드러내면 적의(敵意)라고 보면 된다.
물론, 5종이나 6종이면 그럴 수 있다.
이 자유로운 영혼들은 서식지를 자기들 멋대로 옮기기도 하니까. 우연히 도시 인근이나 너머로 정해서 움직인 걸지도 모른다.
그런데,
(정보과 말로는 8종입니다. 문제는 처음 보는 신종이란 점입니다!)
(신종? 미확인 괴수라고?)
(네. 그런 놈이 서울을 피해 계속 내려가는 중입니다. 빠른 편은 아니지만, 목적지가 부산이나 목포가 될 것 같습니다.)
단정은 무리지만, 이승필은 프로사냥꾼.
그의 [예감]이 그렇게 느꼈다면 높은 확률로 그리될 것이다.
(...정보 고마워. 계속 수고해.)
(대장님도 수고 하십시오, 그리고 언제 한번 서울에 올라오십시오. 세웅이가 대단히 보고 싶답니다.)
(사내 녀석이 남자를 찾아서 어쩌자고…. 올해 안에 한 번 기회를 마련해 보지.)
훈훈하게 통신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무일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이 시기에 미확인 괴수라니?
외계인이 목포에 있는 거랑 전혀 무관할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떤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
‘어떤 놈이길래….’
어떻게 생겼길래 ‘8종’이라고 단정한 걸까.
무일의 시선을 받은 선지혜가 자문단 쪽으로 연락을 취했다. 그리고 곧바로 그 실체를 위성사진을 통해 찍을 수 있었다.
고슴도치.
간단히 단정하면 그럴 것이다.
두 발로 선 고슴도치는 어울리지 않는 긴 팔다리와 목을 가지고 있었다. 통통하기보다는 날렵한 체형, 여기에 온몸이 가시다.
‘그렇군.’
어째서 놈을 8종이라고 했는지 이해했다.
녀석은 근처에 마주치는 모든 야생괴수를 공격한다. 그리고 가시로 꿰뚫어서 죽인다. 그 속도가 너무나 빠르고 가시의 관통력이 대단히 높다는 걸 알 수 있다.
저 정도면 못해도 7종.
괴수의 두꺼운 외피를 가볍게 뚫는 가시를 온몸에 두르고 있다면 일단 첨단무기로 상대는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여기에 저 민첩함과 거구를 생각하면 또 한 단계 업.
“괴수를 잡는 괴수인걸?”
선지혜가 호기심을 내비쳤다.
저런 돌연변이는 아무래도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물론, 세상에 ‘괴수를 공격하는 괴수’가 전혀 없진 않다. 주식으로 괴수를 먹는 녀석도 있으니 딱히 놀라운 일이라고 할 순 없다.
하지만 그저 가는 길에 거슬린다는 이유만으로 쫓아가서 죽일 정도로 수고를 아끼지 않는 괴수는 여태까지 없었다.
“대단히 뜬금없는 놈이군.”
2,222년에 괴수들이 지구에 등장했을 때처럼.
현재, 웬만한 괴수는 인공위성으로 생태까지 포착이 끝난 상태다. 그 작다는 ‘소형’조차 인간보다는 클 정도라서 놓칠 수 없다.
있다면 실체를 감추고 있는 ‘정령’ 정도.
하지만 저렇게 딱 봐도 ‘보통’인 놈을 100년째 몰랐다는 건 말이 안 된다.
하는 짓도 튄다.
고슴도치처럼 생긴 놈이 가는 길마다 괴수를 잡으며 돌아다니면.
‘건드리면 귀찮아지는 문(門)을 연 것 같은 기분인데.’
이 검은 그냥 딸려온 부속품이고, 수정 안의 여자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리라.
영상으로 파악한 괴수의 움직임은 대단히 신속했다. 그리고 솔직하다 싶을 만큼 일직선으로 한반도를 내려오는 중이다.
확실히….
부산보다는 목포가 맞다.
“까쓰의 영역까지 무단으로 침입할 것 같은걸~?”
선지혜가 재미있다는 어투로 말했다.
그녀의 수호자 문팽이 ‘까루나 막찌몬쓰’의 애칭 ‘까쓰’는 누구의 의사가 반영된 건지 알 수 없지만, 뭔가 으스스했다.
사람들이 사용하는 천연도시가스가 아니라 생화학가스가 연상된다고 할까!
무일은 나갈 채비를 했다.
목포까지 다가오도록 놔둘 순 없다.
“다녀올게.”
“잠시만. 최근에 태평양에서 영입한 애가 있어.”
“음?”
“아주 말을 잘 듣는걸. 그 녀석에게 맡겨보자. 내게 잘 보이려고 의욕이 대단하거든.”
수호자도 아닌 추종자가 의욕 충만?
이게 어떻게 된 노릇인지 무일로서는 알 수 없었다.
상대는 8종.
그렇다면 같은 8종이란 얘기인데….
“어떤 괴수인데?”
“배틀씹.”
“오! 신이시여…!”
한무일은 신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어찌하여 눈앞의 위험천만한 여자에게 ‘초대형 불도저’로 모자라서 ‘초대형 순양함’까지 주셨나이까!
마(魔)가 낀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다면 ‘배틀씹’이 들러붙을 리 없다.
【배틀씹 / 8종 대형】
세계에서 2번째로 큰 괴수다!
초대형 거북이.
움직임이 매우 느리고 3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조용히 바다를 떠돌고 있었다. 생김새는 등껍질이 있다는 걸 제외하고는 거북이랑 흡사하지 않다.
팔다리, 꼬리가 있어야 할 자리에 머리가 달렸다.
즉, 등껍질 하나에 머리 6개가 붙은 이상한 생김새. 그래서 헤엄을 못 칠 것 같지만, 그 머리들이 발과 지느러미 역할까지 해서 생각 외로 빠르다.
하물며 그 덩치.
상대적으로 매우 빠르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진짜 무서운 점은 그게 아니지.’
배틀씹은 ‘바다의 사기’라고 불린다.
등껍질에 난 무수한 구멍으로 대포로 쏴댄다. 3차 세계대전 당시에 가장 많은 전투기를 추락시킨 장본인!
그 위력은 인공위성까지 반파시킬 수준이다.
설상가상으로 쏘아진 대포알은 전부 ‘괴수의 알’이다. 가만 놔두면 새끼 배틀씹이 태어나서 주위의 모든 걸 뜯어먹는다!
저 거대한 녀석의 새끼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아담하고 약하지만, 방심했다가는 사람 팔다리쯤은 순식간에 절단할 힘이 있다.
어디 그뿐이랴?
6개의 머리는 각기 다른 힘을 내포하고 있다.
일명 다두룡(多頭龍).
배틀씹은 용왕(龍王)답게 브레스를 쏠 수 있는데, 진짜 무서운 점은 사용 가능한 속성이 무려 여섯 가지나 된다는 것이다.
화염, 냉기, 맹독, 음파, 폭풍, 뇌전!
“초토화! 고슴도치 통구이로 만들게!”
“잠-!”
“귀염둥이들, 발사!”
무일이 말릴 틈도 없이 선지혜가 외쳤다.
절대로 닿을 리 없어야 할 명령. 하지만 그녀의 생기발랄한 음성은 놀랍게도 저 멀리 태평양에 있는 괴수에게까지 닿았다!
덩치가 커서 수심이 낮은 한국에 오지 못하고 있던 배틀씹.
그 부름에 호응했다.
여제(女帝)께서 원하신다면.
선지혜가 말한 ‘귀염둥이들’이 일제히 발사됐다!
퍼버버버벙!
일본의 아래쪽 바다.
악몽의 3차 세계대전 전후에 있었던 지각변동 이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수심이 깊기로 유명한 ‘마리아나 해구’에서 폭음이 터졌다.
한국에서는 듣지 못했지만, 일본에서는 그 ‘신(神)의 호통’ 같은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민간인들은 알 수 없었지만, 각국의 나라들은 초비상에 걸렸다.
느긋한 평화주의자로 알려진 배틀씹이 갑자기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처할 틈도 없이 ‘알’을 쏴댔다.
배틀씹은 인공위성까지 추락시켰던 ‘정밀폭격’의 대가!
알들은 포물선을 그리며 쭉 날아가더니 한반도의 고슴도치에게 떨어졌다. 그리고 깨진 알에서 강제로 부화한 새끼들이 근거리의 괴수에게 달려들었다.
“완전히 사기네….”
모니터로 그 광경을 본 무일은 이 말밖에 할 수 없었다.
문팽이의 중력장도 사기적이긴 했지만 근거리였다. 그런데 이건 ‘거리제한’이 없다는 점에서 진짜 사기였다.
뜬금없이 초강력 우박을 얻어맞은 고슴도치가 찌부러지기 시작했다.
녀석이 자랑하던 가시들은 단단한 알이랑 충돌하며 부러졌고, 그 틈새로 파고든 새끼들이 죽기 살기로 물어뜯으며 재생을 방해했다.
끝내, 고슴도치는 죽었다.
선지혜가 ‘폭격 명령’을 내리고 10분도 안 돼서.
연맹에서 이름을 붙이기도 전에 세상에서 말끔히 지워졌다. 그리고 배를 채운 새끼들은 본능대로 바다를 향해 엉금엉금 기어갔다.
대부분이 바다를 못 보고 다른 괴수에게 잡혀먹히겠지만.
실제로, 배틀씹이 저렇게 많은 알을 뿌려도 생존율은 0.0001%도 안 된다. 아니었다면 지구는 진즉 거북이 세상이 됐으리라.
“청소 끝!”
“...정말 터무니없는 애를 입양했네.”
“직접 보면 더 귀여워.”
위성사진으로 본 결과.
선지혜의 심미안을 의심 안 할 수 없었다.
딱 봐도 악몽 꾸기 좋게 생겼는데?
아무튼, 뭔가 한가락 할 것 같았던 ‘8종 고슴도치’는 그렇게 일단락됐다.
< [42화-4] 세계의 비밀?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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