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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수처럼-173화 (173/287)

< [42화-1] 세계의 비밀? >

[42화] 세계의 비밀?

학명: 안드로다(사차원 별똥별)

서식지: 우주

특징: 도시파괴자

위험도: 7종 소형

비고: 추락하곤 합니다.

***

웨일풍의 몸속은 개미집처럼 얽혀있다.

그 전체 면적을 층으로 나눴을 경우, 서울의 3배 면적이 미로라고 보면 된다. 그것도 2차원 평면이 아닌 3차원 공간.

통로는 좌우뿐 아니라 천장과 밑으로도 뚫려있다.

평범한 사람을 이곳에 던져놓으면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으리라.

‘저 안쪽인데….’

상당히 먼 거리였다. 부수며 직선으로 이동하면 더 빠르겠지만, 중국 측이 원하는 대로 웨일풍이 최대한 안 다치도록 해야 했다.

8종으로 추정되는 괴수의 행동은 이상했다.

어째서 다른 곳으로 이동할까?

뻔히 자신의 존재를 눈치챘음에도 장소를 옮기는 괴수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도망치는 건 분명 아닌데.

“전하. 우리를 유인하는 것 같아.”

뒤를 바짝 쫓아온 퐁퐁이 말했다.

...엘퍼러는 이런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머릿속에 가슴뿐이 없는 발키지어가 그렇게 느꼈을 만큼 놈의 행동은 뻔했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녀석의 뜻대로 유인당해줄 것인가, 아니면….

“우리는 이대로 쭉 가지. 녀석이 뭘 숨겨뒀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괴수가 무언가를 감췄을 거란 생각은 별로 안 들었다. 덤으로 유인해서 함정에 빠트린다는 생각도 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혹시…?’라는 게 있다.

방심했다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누가 책임진단 말인가!

애초에 엘퍼러의 목적은 ‘의문의 8종 괴수’ 토벌이 아니다. 가능하다면 다른 괴수처럼 쫓아내도 상관없다.

게다가 ‘위험 경보’가 울렸다.

엘퍼러의 [예감]이 반응했다는 건 쉽게 봐선 안 된다는 의미.

이미 적의 앞마당이나 다름없는 웨일풍 안이다. 여기서 더 놈의 의도대로 움직여줘서는 안 될 말이다.

‘의외인데? 무일, 네가 물러서다니.’

‘만용이나 방심은 독이지.’

‘이 앞에 미소녀를 숨겨둔 것 아닐까?’

하렘의 왕에 어울리는 추측이었다.

무일은 그저 피식 웃었다.

이런 곳에서 계약자가 뭘 먹고 산단 말인가?

톡톡.

쉬임프가 군주의 어깨를 손가락으로 건드렸다.

용신 아쿠버스는 ‘발성기’가 이미 일본 등에서 개발된 상태라서 제작이 쉬웠지만, 쉬임프 전용은 없었다.

쉬임프를 수호자로 둔 국가가 없으니까.

아쿠버스 라미아가 제작 중이지만, 단시간에는 무리일 것 같았다. 그러니 그때까지는 이렇게 간단한 손짓, 표정으로 알아보는 수밖에 없다.

“그래. 놈이 달려온다. 앞으로 15초.”

웨일풍 몸속을 일직선으로 뚫으며 올 줄 알았는데 나름 신사이지 않은가!

기존의 터널을 따라 최단거리로 이곳을 향해 오고 있다.

모든 길을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리라.

아니, 어쩌면 [예지]일지도 모른다. 엘퍼러가 이 미로 속에서 헤매지 않는 것도 [예감]과 [예지] 덕분이니까.

이 느낌, 이 긴장감.

한무일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무일! [예지]가 안 된다!’

‘그래. 능력에서 밀린다는 뜻이겠지. 하지만 [예감]은…. 아니, 붙어봐야 알려나.’

‘어떤 놈이길래…?’

뱀페스트 왕의 [예지]는 귀족보다 한 수 위다.

물론, 높아 봐야 6종 언저리지만.

하지만 여기에 [예감]이 합세하며 8종도 농락하는 ‘미리 보기’가 완성된다. 그러나 [예지]에서 지나치게 밀려버리면 아예 쓸모없어진다.

내가 1초 미래를 본들, 상대가 2초 미래를 떠올린다면 무슨 대책을 세우든 간파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단은 ‘소형’이다.

터널을 자유자재로 돌아다닐 때부터 예상하긴 했지만.

‘나도 의문이다. 소형 중에서 쉬임프 말고 일대일에 강력한 괴수가 있었나?’

없다. 8종 중에는 쉬임프가 유일하다.

그렇다고 7종이 자신을 이렇게까지 긴장시킬 수 있으리라고 보진 않는다.

어떤 놈인지 궁금하지만….

일단 보이는 즉시 죽여놓고 생각하기로 했다.

앞으로 3초, 2초, 1초.

휘이익!

에쏘드로 최고속도의 발검(拔劍)을 시도했다.

한유일이 흡혈하는 양이 늘어남에 따라 점점 강해지는 육체, 그리고 그걸 수십 배로 뻥튀기하는 가더발트 조합은 엘퍼러를 최강의 반열로 올렸다.

하지만 들려온 소리는 공기처럼 부드럽지 않았다.

캉!

강철과 강철이 부딪히는 금속음.

한무일은 눈을 크게 떴다.

“인간…?”

괴수의 가죽을 뒤집어쓴 야만인. 딱 그 짝인 남자였다. 덥수룩한 수염은 그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웠지만, 단 하나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검과 방패를 쥔 그 능력이 범상치 않다.

절대로 평범한 인간일 리 없다. 괴수하고 팔씨름해도 될 정도로 근력이 강한 엘퍼러의 일격을 막아내다니?

어둠 속에서 빛나는 눈빛은 사나운 맹수.

인간의 탈을 쓴 ‘새로운 괴수’였다.

‘플로라. 놈이 숨겨둔 게 무엇인지 확인해.’

참전하길 머뭇거리던 쉬임프가 고개를 끄덕이며 멀어졌다.

인간도 안 지키는 쓸데없이 기사도 같은 걸 플로라가 배웠다는 한탄도 잠깐. 무일은 다음 지시를 내렸다.

‘퐁퐁. 플로라가 멀어지는 즉시 수분흡수를 시작한다.’

반대로 좁은 터널에서 날개를 펴려고 끙끙거리는 펠-쉐어퐁은 얼른 싸우고 싶다는 입장을 피력 중이었다.

빠르게 멀어진 플로라. 그리고 깃털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소형에게는 치명적인 공격이다. 갑주로 온몸을 밀폐한 쉬임프마저 경계할 정도로 발키지어의 능력은 사기적인 면모가 있다.

안 통하는 상대는 ‘발키지어’와 에쏘드 계약자 정도.

펄럭!

좁은 터널이 흰색 깃털로 가득해졌다.

그때였다.

야만인의 낡은 방패가 환히 빛났다. 수분을 몽땅 뺏기고 미라처럼 바짝 말랐어야 했던 놈은 멀쩡할 뿐만 아니라 더욱 강해지는 것 아닌가!

무일은 [예측]했다.

‘능력 흡수!’

7종 괴수 발키지어의 능력을 복사하진 못했지만, 순수한 물리력으로 저 방패가 치환시키는 것 같았다.

아직 밀리는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공중에 떠돌던 모든 깃털은 힘을 잃고 나뭇잎처럼 흐지부지 떨어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방출된 힘 이상을 흡수해가는 모양이다.

체구가 줄어든 퐁퐁은 낭패감을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내, 내 젖가슴이….”

공격 한번 제대로 못 해보고 7종 괴수가 좌절했다.

발키지어니까….

그렇게 이해한 무일은 야만인의 방패를 유의 깊게 살펴봤다. 퐁퐁의 희생(?)은 매우 중요한 정보를 그에게 안겨줬다.

공격한 상대의 힘을 흡수하는 방패라?

들어본 적 없다.

오른손에 쥔 검은 일단 에쏘드가 아니다. 그렇지만, 저 검이 평범하다고 단정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파괴불가 속성을 가진 에쏘드와 몇 번을 충돌했음에도 흠집 하나 안 생긴 칼날이 그 증거. 쉬임프처럼 급속도로 회복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단단하다.

혹은 무언가 알 수 없는 힘의 보호를 받고 있던가.

‘미지의 적이라….’

프로사냥꾼인 카르 4세의 머릿속은 백과사전이다.

뱀페스트처럼 도시에 숨어든 괴수에 대해서는 ‘불필요’로 인해 많이 공부해두지 않았지만, 그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한 괴수에 대해서는 정말 세밀하게 알고 있다.

하지만 이번 적은 정보 전무(全無)!

그래서 꺼려졌다.

여기에 검과 방패를 활용하는 검술 실력!

정말 분하게도….

저쪽이 몇 수 위였다. 무일은 그 부족분을 [예감]으로 틀어막는 중이었다.

“넌 누구지?”

전투 중에 말을 하는 법이 없는 무일.

기만책을 위해서 인간을 상대로 몇 번 했지만, 이렇게 순수한 질문은 처음이 아닐까.

하지만 상대는 답해줄 마음이 없는 것 같았다. 우직하게 검과 방패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며 엘퍼러의 약점 찾기 바빴다.

전투에 방해되는 통신마저 왔다.

(엘퍼러. 진입해도 되겠습니까?)

(......)

(엘퍼러?)

(...아직입니다. 고전 중입니다.)

(고전…?)

위진 창의 믿기지 않는다는 목소리.

그 어떤 상대가 엘퍼러를 힘들 게 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게 현실이었다.

(과장. 괴수의 힘을 흡수하는 방패처럼 생긴 괴수 혹은 MID 군수품이 있는지 빠르게 알아봐 주십시오.)

(그건…. 알아볼 필요도 없습니다. 없으니까요. 여태까지 없었습니다. 제 명예와 지위를 걸고 장담할 수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런 방패를 든 인간형 괴수가 수괴입니까?)

(예.)

역시나 없다. 모든 게 미확인.

에쏘드의 힘마저 빼앗지는 못하는 걸로 봐서는 만능이 아니다. 하지만 저 남자의 체력은 역시나 의구심이 생겼다.

어째서 안 지치는 걸까?

퐁퐁에게서 빼앗은 힘은 그 유효기간이 다 된 것인지 상대적으로 약해져 있었다. 하지만 승기를 잡기에는 여전히 부족했다.

‘순수한 인간은 아니군.’

싸우면서 한무일은 학습 중이었다.

야만인의 뛰어난 검술을 빠르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저 야만인도 마찬가지.

카르 4세의 전매특허인 [반격]을 방패로 가볍게 막아내는 걸로 모자라서 역으로 [반격]을 시도한다!

물론, 학습하는 양에서 차이가 있었다.

무협에 나오는 ‘신묘한 무술’처럼 야만인의 정수를 습득하는 한무일.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요령의 비중이 높은 [반격]을 익힌 야만인.

배우는 ‘질’이 달랐다.

“계속할 텐가? 그러면 너에게는 죽음뿐이다.”

“......”

부끄럽게도 배우는 양은 한무일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방패를 활용한 검술인 탓에 쓸모없는 부분이 많았지만, 그래도 공부가 많이 됐다.

게다가 한무일은 여전히 한 손.

상대에게 ‘비기(秘技)’라도 없다면 슬슬 끝낼 생각을 했다. 그 짧은 시간에 괴수의 암기력으로 이미 야만인의 검술 밑천까지 탈탈 털은 상태!

더는 배울 것도 없다.

방패의 방어가 두꺼워서 아직 결판 못 내고 있지만, 쌍수로 화력을 2배로 올리면 양상은 크게 달라지리라.

‘죽이기 아까운 자인데….’

상대가 괴수든 인간이든 상관없다.

같은 검객으로서 마음에 드는 자였다.

약간은 스승 같기도?

그때였다.

플로라가 예정된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쯤, 눈을 크게 뜬 야만인이 불안과 분노를 표출했다.

전체적인 감정은 초조감 아닐까.

“역시, 평범한 검이 아니었군. 덤으로 너도.”

칼날이 길어지며 괴수의 이빨 같은 톱니가 생겼다. 그리고 인간이라고 믿었던 야만인의 근육이 더욱 부풀었고 머리카락도 길어졌다.

심지어 머리카락 색깔과 스타일도 바뀌었네?

갈색(褐色)에서 명백한 적색(赤色)으로. 더벅머리에서 고슴도치처럼 사방으로 뻗친 머리카락은 당장에라도 활활 타오를 것 같다.

쭉 입을 다물고 있던 야만인이 말했다.

“카할 모테 바르트세.”

“용언(龍言)…?”

엘퍼러는 상대의 놀라운 변신(?)과 뜻밖의 언어에 놀라면서도 침착하게 두 번째 검을 뽑아들었다.

엔타리얼 치프트.

일본에서 무상으로 교환해준 세계 최강의 절단기를.

야만인처럼 화려한 변신은 못 하지만 이쪽도 한 단계 강화를….

댕강!

...잘렸다. 아니, 부러졌다.

상대의 괴력을 1초도 못 버티고 ‘인류 최강의 절단기’가 나뭇가지, 짚단처럼 뚝 끊어졌다. 어이없을 정도로 간단히.

식겁하면서도 간신히 에쏘드로 막긴 했지만, 진짜 훅 갈 뻔했다!

변신한 야만인이 강하다는 건 둘째다.

방패처럼 검도 비범하다는 건 셋째다.

엘퍼러에게 중요한 건, 엔타리얼 치프트가 고철이 됐다는 하나의 진실뿐.

‘역시! 공짜가 다 그렇지!’

‘내 애검(愛劍)이…!’

한무일과 한유일이 서로 다른 이유로 분노했다.

웬만하면 웨일풍에게 피해가 안 가도록 하려 했는데….

이젠 못 참아!

너는 즉결사형이다!

우우우웅-!

에쏘드가 신성한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여기라면 구경꾼도 없다.

야만인은….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

“마기나로크-!”

< [42화-1] 세계의 비밀? > 끝

ⓒ 파르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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