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수처럼-169화 (169/287)

< [41화-1] 지구는 돌고 돈다. >

파르나르 장편소설

괴수처럼 21

[41화] 지구는 돌고 돈다.

학명: 에쏘드(어떤 용사의 최종병기)

서식지: 용사

특징: 필살기가 미쳐 날뜁니다!

위험도: 8종 특수

비고: 신세계는 싱크로율 100%부터♥

***

새해 시작부터 수많은 국가의 지도자들은 두려운 소식을 접했다.

에쏘드의 또 다른 능력!

작년 말에 엘퍼러가 이미 공개했던 내용이다.

완벽한 용사가 되면 각성할 수 있는 필살기(必殺技)가 있다고. 무한한 체력을 잠시 포기하는 대가로 얻는 강력한 공격이라고 했다.

원거리, 근거리, 점사(點射), 방사(放射)….

그 활용법이 다양하다고도 분명 설명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걸 진지하게 오래 들어준 국가는 단 한 곳도 없었다.

왜?

『싱크로율 100%』

이건 무슨 별나라 얘기란 말인가.

혼자 화성에 착륙해서 ‘이런 외계인이랑 악수했습니다.’라고 설명해봐야 별 감흥 없다. 그래서 깜빡 잊고, 혹은 제쳐놓고 다른 연구에 몰두했다.

그런데 웬걸?

이건 포기할 수 없는 힘이었다!

여전히 뜬구름 잡는 얘기라는 건 변함없지만, 에쏘드의 필살기 ‘마기나로크’의 위력과 사정거리는 MID 기술로도 흉내 낼 수 없었다.

『소멸』

빛줄기는 그대로 안드로다를 관통하며 분쇄했다.

심지어 중력, 굴절, 환경 등의 그 어떤 외적 요인의 영향도 전혀 안 받는다. 그렇기에 사실상 방어나 회피는 불가능.

쏘아지는 속력도 그 생김새처럼 딱 빛!

마왕(魔王)의 조상님이 와도 이건 피할 수 없다.

『299,792,458m/s』

매초 약 30만km를 직선운동 하는 이 필살기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다.

유일한 회피법이라면 거리를 벌리는 것뿐.

필살기 ‘마기나로크’는 중력의 영향을 전혀 안 받기에 휘지 않는다. 그리고 지구는 평평하지 않고 둥글다.

엘퍼러가 지구에 구멍을 뚫을 의도가 없다면 사정권에서 벗어나기란 의외로 간단하다.

하지만 글쎄….

아름다운 인어들이 모는 썰매, 포세이돈을 타면 지구 어디든 3시간 내로 갈 수 있는 엘퍼러에게 거리는 별 의미 없으리라.

“...이런 연구가 굳이 필요합니까?”

“대처방안을 떠올릴 시간에 그 싱크로율부터 어떻게 해결해야지요!”

“옳소! 엘퍼러가 이상한 것이오!”

“좀 인간적인 잣대를 들이밀란 말입니다!”

괴수대응연맹의 학자들은 머리를 쥐어뜯고 싶은 심정이었다.

밀린 연구가 한둘이 아닌 탓이다!

인간이 좀 신비주의도 있고 해야 하는데, 엘퍼러는 뭔가 새로운 능력이나 지식정보가 생기면 꼬박꼬박 가르쳐준다.

그래서 문제다!

도무지 쉴 틈이 없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그들은 ‘아! 나는 똑똑한 인간! 무엇이든 물어봐!’ 같은 마인드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 반대다.

모르는 현상투성이!

빨리 가르쳐달라고 보챈다 해서 그게 단숨에 될 리 없잖은가?

최소한의 연구할 시간이란 게 필요하다.

“자네들이 하는 일이 이것 아닌가. 괴수의 신비를 푸는 것.”

괴수대응연맹 맹주 ‘아몬 헤이젤’은 학자들의 불만을 한마디로 일축했다.

이런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라고 높은 월급과 대우, 복지를 보장해주는 것이다. 전부 이럴 때 도움이 되라고 있는 ‘천재’들 아니던가.

하지만 학자들도 이번만큼은 만만하게 물러서지 않았다.

까놓고 말해서, 이러다 과로사할 것 같다!

“맹주! 신비를 푸는 건 좋소. 하지만 판도라의 상자를 열쇠 없이 풀려면 시간이 걸리는 법입니다.”

“일반인보다 빨리 푸는 것이 그대들 소임이오만.”

“알지요! 하지만 새로운 판도라를 무더기로 옆에 쏟아놓고 한꺼번에 풀라고 채근하면 어쩌란 겁니까!”

연구라는 건 하루 이틀 만에 되는 게 아니다.

보통, 일평생이 걸린다.

수명의 한계가 흐릿해지면서 연구 도중에 늙어 죽는 사람은 안 생겼지만, 여전히 기니긴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엘퍼러는 한 해에 이것저것 많이 쏟아놓는다.

사소한 문제라면 무시하겠는데, 허투루 넘길 수 있는 사안이 하나도 없다.

“에쏘드의 필살기를 원하는 국가가 많습니다.”

“맹주! 계속 똑같은 얘기를 몇 번째 반복하시는 겁니까! 에쏘드에게 필살기가 있다는 사실은 작년, 시간으로 따지면 한 달도 안 됐습니다!”

무리다. 지나치게 무리다!

심지어 연금된 황진천이 지루함을 참지 못하고 ‘이봐. 나를 해부하려던 거 아니었어?’라고 물어볼 정도였다.

밀린 연구가 많아서 기형 백혈구울은 아직 제대로 손도 못 댔다.

학자들의 주요 연구과제는 여전히 ‘노블레스’였으니까.

이걸 강대국들의 보챔에 못 이겨 무턱대고 진행했다가, 테러리스트와 사이코패스가 양산된 것 아니던가!

개선, 보완해야 할 사항들이 너무 많다.

노블레스의 베이스인 뱀페스트의 생태부터 다시 세밀하게 조사하며 차근차근 풀어가야 하는데, 새로운 일거리가 계속 쏟아지니 미칠 노릇이다.

‘순서로 따지면 가더발트가 먼저인데….’

계약은 아니지만, 남자와 계약한 거나 다름없는 착용형 괴수.

여전히 해명되지 않았다.

싸게 만들기 쉬운 노블레스의 등장으로 묻히고 말았지만, 학자들 입장에서는 흡혈귀보다 이쪽이 더 흥미로운 과제였다.

입에 풀칠하며 살 수 없어서 해달라는 연구를 하고 있을 뿐.

하지만 그 해달라는 요구가 쌓이고 밀리니 이젠 도저히 참을 수 없다!

“불만은 이해합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습니다.”

아몬 헤이젤은 달래듯 말했다.

인류의 가장 큰 위협인 ‘왕’도 그렇고, 엘퍼러가 준 정보들을 바탕으로 ‘괴수의 비밀’을 푸는 건 대단히 중요하다.

인류의 생존권은 보장받았지만, 고대인 관점에서는 멸종한 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가족과 친지를 잃는 아픔을 겪었다.

괴수가 없는 세상.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길 간절히 소망한다. 아니면 괴수의 횡포를 물리칠 강력한 ‘복수의 힘’을!

이 시대를 이끌어가는 지도층 대부분이 ‘고대인’이다. 그렇기에 이 같은 성향은 모든 국가가 비슷비슷할 수밖에 없다.

막말로….

엘퍼러를 양산할 수 있다면?

인류는 충분히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다!

“...맹주. 현재까지 나온 과제만으로도 족히 100년은 꼬박 연구해야 합니다. 용신이 도와주기라도 하지 않는 한, 근미래까지는 절대 불가능합니다.”

용신은 일절 돕지 않는다.

괴수의 비밀.

특히, 이런 쪽은 알아서 눈치채라는 식으로 방관자의 태도를 일관한다. 마치, 원숭이들이 어디까지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지 시험해보겠다는 듯이.

그래서 더욱 어렵다.

지금도 인류는 용신의 발명품, MID 제품에 의존하고 있다. 그리고 그중에는 여전히 해명되지 못한 부류가 다수 존재한다.

설명서대로 따라 할 순 있어도 응용은 엄두도 못 낸다고 할까.

“밀리고 밀리는군….”

노블레스, 그 하나만으로도 인류에게는 혁신이었다.

어째서 ‘사냥꾼’은 거의 ‘남성’뿐인가?

그건 너무나 당연하다. 생물학적으로 남성의 육체가 더 뛰어날 뿐만 아니라, 괴수에게 기억을 공유 당할 염려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인간에 대해 ‘잘 아는 괴수’와 ‘모르는 괴수’는 그 위험성부터가 차원이 다르다.

총과 미사일의 외형은 발톱처럼 날카롭거나 뾰족하지 않으니까.

모르면 상대하기가 비교적 수월하다.

“그보다도 뒤를 돌아보십시오, 맹주.”

“세계가 우리를 욕하고 있습니다, 맹주.”

“무능하다며 손가락질하고 있어요, 맹주.”

학자들은 ‘맹주’라는 점을 특히 강조했다.

시민, 더 나아가 국민, 그리고 인류가 바라는 궁극적인 목적은 생존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해지는 길이다.

신기술과 신무기가 아니라.

그것들은 목적을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한데 어떤가?

엘퍼러를 쫓아간답시고 지나치게 무리했다. 아직 사상검증도 안 끝난 특수체질들을 무작정 노블레스로 만들어서 테러리스트를 양산했다.

여성들의 성역이나 다름없던 ‘괴수와 동조(同調)’에 남성이 무작정 침범한 탓에, 불만이 폭발한 수많은 여성단체가 국가와 인류에 반기를 들었다.

『인류는 안전해졌는가?』

수치상으로는 국력이 2배에서 3배 뻥튀기됐다.

하지만 그 반대급부도 커져 버렸다!

조무래기에 지나지 않던 테러리스트와 반란분자들이 강력해지면서, 괴수보다 더한 위협으로 다가왔다.

인간에 대해 잘 아는 괴수.

일반적인 야생괴수보다 더한 위협이다.

노블레스, 수호자, 에쏘스트.

이들은 인간에 대해 너무나 잘 알기에 어떻게 상대해야 효과적인지도 잘 안다. 총알이 다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건 약과고, 심할 때는 게릴라전술도 펼친다.

즉, 인류의 생존권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압니다. 알지만….”

괴수대응연맹은 회원국들의 회비로 유지된다.

아무리 인류를 위한다는 대의명분을 갖고 있더라도, 자금압박에서 벗어날 순 없었다. 뭘 하든 돈이 필요하니까.

그 돈이란 것도 한두 푼 들어가는 게 아니다.

현재, 연구를 재촉하듯 많은 돈이 연맹으로 흘러드는 중이다. 그리고 이미 먹은 게 많은 탓에 못 하겠다고 발뺌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하지만 그런 사정까지 학자들은 관심 없다는 듯이 계속 말했다.

“그리고 에쏘드가 왜 8종입니까?”

“필살기가 대단히 위협적인 건 사실이나, 쓸 수 있는 건 엘퍼러뿐입니다.”

“단언은 너무 성급하지만, 앞으로도 엘퍼러가 유일할 겁니다.”

“싱크로율 100%요? 현재, 엘퍼러를 제외한 평균이 23%란 건 아시는지요?”

에쏘드의 등급을 올린 건, 강대국들의 소소한 반항이다.

고대의 핵무기가 안전보다는 위협의 상징이었던 것과 달리, 그 어떤 나라의 국민도 ‘엘퍼러’를 위협적인 존재로 안 보기 때문이다.

지도자 입장에서는 민심이, 사람들이 경각심을 갖길 원했다.

실제로, 에쏘드를 8종으로 끌어올리니 미약하게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국에도 ‘8종’ 에쏘드가 있다는 위안 효과가 있었다.

다만 문제라면….

“시민들이 느끼는 불안감은 엘퍼러가 아닌 자국의 에쏘드입니다.”

“좀 더 깨어있는 사람은, 그 ‘8종’이라고 불릴 수 있는 건 엘퍼러의 에쏘드뿐이란 것도 잘 알지요.”

“정치가 개입하면서 연구가 엉망진창입니다!”

“에쏘드는 달라지지 않았소. 여전히 1종이어야 맞소!”

“옳소!”

학자들의 분노가 폭발한 결정적인 이유였다.

에쏘드 필살기 조건이 ‘싱크로율 50%’만 됐어도 이렇게까지 반발하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자그마치 100%다! 완전무결!

이건 아예 불가능한 수치다.

한무일이란 인간 자체가 기적이다.

엘퍼러를 제외하고, 가장 높은 싱크로율을 자랑했던 ‘다윙 밀리언’의 최고기록이 67%였다. 문제라면 그는 ‘인류의 용사’가 아니다.

자연의 용사.

그 자연을 훼손하는 인간을 멸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움직이는 현재는 싱크로율이 더 높아졌을 것이다. 하지만 전혀 기쁘지 않다.

놈이 ‘필살기’라도 쓰는 날에는 그야말로 악몽이니까.

“여러분의 뜻은 잘 알지만, 그 기술이 포기 못 할 만큼 터무니없이 강한 것도 사실입니다.”

아몬 헤이젤의 소심한 반박에 학자들의 입이 꾹 다물어졌다.

그건 그랬다.

에쏘드 필살기가 8종이면 기존 8종은 전부 7종으로 낮춰야 했다. 그만큼 그 빛줄기는 대적할 방법이 없는 압도적인 힘이었다.

더 웃긴 건?

“최대출력의 10%라고 했지요….”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그 위력이 딸랑 10%란다.

쓴 직후에 10분쯤 탈진한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긴 하지만, 그건 다시 말해, 10분마다 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덤으로 100% 위력은 하루를 푹 쉬어야 한다는 모양이다.

하지만 엘퍼러가 100%의 ‘특제 필살기’를 써야 할 날이 과연 올까?

기술명을 외쳐야 한다는 것을 안 직후부터 ‘봉인’이라고 단호하게 시연식을 거부한 엘퍼러는 정신적인 피해가 막심해 보였다.

정말 배부른 투정이구먼!

기술명을 외친다는 것만으로 그런 힘을 쓸 수 있었다면, 아몬 헤이젤은 시내 한복판에서 몇 번이고 외칠 자신 있었다.

“...맹주. 이미 유행하고 있습니다.”

중국으로 낙하를 시도한 안드로다가 하늘에서 소멸하고 겨우 닷새 지났다. 그런데 이미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다.

혹시…?

이런 막연한 희망론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괴수를 쓰러트리는 결정적인 한 방을 가할 때마다 기술명을 외치기 시작했다.

가상현실게임 탓에 그리 거부감도 없었다.

사적으로 엘퍼러 펜클럽 회장인 미국의 에쏘스트 ‘캡틴세븐’은 날마다 ‘자유를 위해! 그레이트 빔!!’이라고 외치기 시작했다.

캡틴세븐의 에쏘드가 그때마다 배꼽 잡고 쓰러진다나….

“어디서부터 바로잡아야 할지 막막하군.”

세계가 점점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아름다운 계약자와 강력한 수호자, 그리고 변변찮은 사냥꾼.

어느새 100년도 더 되어 전통처럼 여겨지던 구도가 겨우 1년 만에 흔들리더니, 이젠 아예 뭐가 뭔지 모르게 변했다.

‘그나마 학자들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있어서 다행인가….’

여성을 깔보는 풍조만 아니면 나무랄 곳 없다.

음…?

아몬 헤이젤은 학자들의 연구복에서 이상한 공통점을 발견했다. 늘 입는 흰색 가운만 유일하게 통일되어 있었는데 오늘은 무언가 달랐다.

그래서 물었다.

연구 가운 안에 입고 있는 상의(上衣)가 뭐냐고.

“아! 아주 좋은 질문입니다. 맹주.”

“요즘, 저희가 의존하는 마음의 안식처. 여신의 티셔츠지요.”

“친구가 추천하기에 해봤더니 괜찮지 뭡니까.”

이젠 봉인을 해제해도 되느냐고 허락을 구하듯 서로를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인 학자들은 일제히 연구복 앞섬을 활짝 펼쳤다.

그들의 새하얀 티셔츠에는 한 여인의 사진이 뚜렷하게 새겨져 있었다.

지긋지긋하다는 얼굴로 오만하게 내려다보는….

“아쿠버스…?”

한국의 아쿠버스 ‘산드라미아 레미’가 그곳에 있었다. 사진 밑에는 한글로 ‘멍청한 하등생물을 용서하노라.’란 친필사인(?)의 필사본이….

믿었던 연맹마저 정상이 아니었다.

학자들이 받은 스트레스가 그만큼 컸던 걸까?

“소인은 저 한마디에 구원받았습니다!”

“여신님의 표정이 압권이지요!”

“내 마음은 이미 태평양 너머 목포항에 있거늘…!”

“......”

괴수대응연맹 맹주 아몬 헤이젤은 진지하게 낙향(落鄕)하고 싶어졌다. 목포항에서 바라보는 문팽이가 그리 장관이라던데…. 아차!

빠르게 마음을 다잡는 맹주는 ‘다음’을 고민했다.

이들을 어떻게 달래야 다시 연구에 매진하도록 유도할 수 있을까, 하고.

그때였다.

(맹주님! 급히 아셔야 할 문제입니다!)

(뭔가?)

(에쏘드로 추정되는 검이 발견됐습니다! 문제는 그 장소가….)

< [41화-1] 지구는 돌고 돈다. > 끝

ⓒ 파르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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