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수처럼-168화 (168/287)

< [40화-4] 고대의 전설을 보면…. >

꽤 자신만만하게 나오는 프린스트 카론.

한유일은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숨겨둔 수라도 있나?’

물론, 한무일에 비하면 자신은 약하디약하다.

가더발트와 에쏘드를 못 쓰기 때문만이 아니라 전투적인 측면에서 많이 부족하다. 경험과 기술, 숙련 등 모든 면에서.

특히나 [반격]은 엄두도 안 난다.

게임처럼 정형화된 기술이었다면 흉내가 가능했으리라. 하지만 상대의 공격이 매번 똑같이 들어올 리 없잖은가?

그 상황과 변수에 따라 [반격]도 달라지는데, 한유일은 그걸 할 수 없다.

카르 4세는 [예감] 이전에 [반격]의 달인.

즉, [반격] 빼면 시체다.

숙주의 가장 뛰어난 능력을 못 쓴다는 건 대단한 페널티다.

하지만,

“네가 나를 죽여서 부활까지 몰면 승리다. 사정 봐주지 말고 전심전력으로 덤벼라. 나도 너를 죽일 의도로 갈 테니.”

더부살이라며 완강히 거부하는 에쏘드 대신 ‘엔타리얼 치프트’를 뽑았다.

목숨 걸고 칼을 써보긴 처음 아닐까.

하지만 한유일의 자세는 숙련된 검객의 풍모마저 엿보였다.

이것이 기억과 경험을 공유한 결과.

하지만 한무일이 못 따라 하는 게 있듯, 한유일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여유로움을 잠시 접어두고 진지해졌다.

변변찮은 1종 피라미를 잡을 때도 진지한 한무일 흉내는 원치 않지만, 6종이고 무기까지 장비한 프린스트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내가 이기면 무엇을 해줄 것이오?”

“밍밍과 함께 목포로 이주한다. 그리고 얌전히 지낸다는 조건으로 안전을 보장하지.”

꽤 파격적인 제안이다.

한유일은 대단히 선심 쓴 것이다.

뛰어난 백성을 눈 빤히 뜨고 지켜봐야 한다는 것도 고역이고.

“듣던 중 반가운 소리…. 흠?!”

장소를 옮기자고 제안하려던 카론은 깜짝 놀라며 서둘러 방어했다.

기습…!

영상으로 보았던 엘퍼러하고는 느낌이 달랐다.

방어적인 스타일이 아니라 공격, 또 공격! 역시나 인간이 아닌 괴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최강의 절단기를 휘두르며 몰아붙인다.

물론, 깔끔하진 않다.

노골적으로 [반격]에 특화된 ‘카르 4세’는, 검술을 비롯한 전투법이 이런 공격일변도에 맞지 않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먹힌다!

“속담 중에 이런 게 있더군. 뼈를 주고 목숨을 취한다.”

“불사의 왕….”

모두가 ‘하렘의 왕’으로 기억해서 잊고 있지만, 한유일은 ‘죽지 않는 괴수’다.

그렇다고 정말로 안 죽는 건 아니다. 하지만 웬만한 죽음으로는 진정한 죽음을 맞이하지 않는다.

그것이 뱀페스트 왕.

무려 9종으로 불리는 존재다.

순수한 전투력은 일반 뱀페스트와 다를 게 없지만, 귀족에게도 없는 왕족만의 권능이라고 불리는 특수능력이 있다.

공작쯤 되면 ‘통치’ 빼고는 엇비슷하긴 해도….

왕이 뱀페스트 중에서 가장 특별한 존재라는 건 틀림없다.

“네 실력은 솔직히 감탄했다. 사냥꾼을 많이 죽여본 솜씨라고 해야 하나.”

“......”

“그렇다면 목숨을 주고 목숨을 취할 수밖에.”

실력은 엇비슷. 똑같이 ‘남성형’이다. 하지만 ‘능력’이 문제였다.

프린스트의 능력은 ‘치료 후에 설득’이다.

뱀페스트는 ‘회복 및 부활’.

다른 괴수까지 도움을 주는 프린스트와 달리 뱀페스트의 능력은 이기적이다. 대다수 괴수가 다 그렇듯 자신만을 위한 능력뿐.

‘거머리 따위가…!’

프린스트는 기생한 게 아니다. 원래부터가 ‘남성형’.

그런데 겨우 기생충에게 밀린다는 건 대단히 불쾌한 일이었다. 설사, 그게 왕이고 그 숙주가 너무나 대단한 존재일지라도.

이건 자존심 문제였다.

만약, 한무일이 상대였다면 패배를 당연시했을 것이다.

그 괴랄 한 [업보]는….

괴수를 도발하는 게 아니라 ‘위기경보’다.

“기고만장하지 마시길.”

그렇다고 카론이 불리한 건 아니었다.

프린스트는 엄연히 6종.

육체적인 능력에서 압도적으로 뛰어났으니까.

다만, 엘퍼러의 [예감]과 [예지]가 합쳐진 무지막지한 반응속도를 뚫지 못할 뿐. 만약, 육체에서 엇비슷하거나 밀렸다면 진즉 결판났으리라.

하지만 흡혈귀 왕은 끽해야 4종.

프린스트, 카론의 눈빛이 신중해졌다.

‘역시, 쌍수를 당해낼 순 없군.’

근력에서 밀리는 한유일은 검을 양손으로 쥔 채 싸우고 있었다. 그럼에도 프린스트의 한 손을 당해내지 못한다.

하지만 그런 눈에 보이는 ‘능력’이 전부는 아니다.

뱀페스트가 굳이 ‘강력한 숙주’에 집착하는 것도 그런 연유다. 다 엇비슷했다면 아무 남자의 몸에나 기생했으리라.

어차피 괴수의 눈에 비치는 남자란 생물은 다 똑같이 원숭이니까.

“무슨 생각 중인지 뻔히 보이네.”

“그렇습니까.”

아이밍 리는 갈팡질팡 중이었다.

수호자와 함께한 세월은 거의 역사라고 해도 좋다. 그런데 누구를 응원해야 좋을지 모른다는 게 말이 되는가!

하지만 흔들리고 있었다.

그것이 왕.

저 지배력 앞에 그 어떤 관계도 흔들린다. 애초에 계약이란 것부터가 괴수의 일방적인 통보이지 않던가.

『계약 vs 왕권』

그저 ‘왕의 힘’이 더 강했을 뿐이다.

여자의 마음은 갈대라는 표현조차 부족하다.

‘힘으로 밀어붙일 생각인가. 죽고 싶으면 무언들 못하리…. 흠. 무일. 넌 늘 이런 기분이었군? 모든 걸 내다보고 싸우네.’

‘방심은 금물이야. 그리고 다른 위기가 있다.’

마음속에서 무일은 전혀 다른 방향을 보고 있었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프린스트의 운명은 정해져 있다. 그건 녀석이 ‘검사(劍士)’가 아니기에 할 수 있는 실수다.

엔타리얼 치프트보다 내구성이 약한 스콜레옹 포르소가 부러지며 순식간에 결판나며 죽는다.

이대로라면 그렇게 흘러갈 것이다.

하지만….

‘무일. 뭐가 문제냐?’

‘저 안드로다. 굉장히 수상해.’

‘생긴 것부터 원래 수상한 놈이다.’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야.’

무일은 자신의 [예감]을 강하게 울리는 괴수로 안드로다를 꼽았다. 어디가 머리인지도 모르는데 무슨 생각 중인지 알 도리가 있겠는가.

하지만 단 하나만은 눈치챘다.

녀석은 우리가 모르게 무언가를 하려고 한다는 것을.

그렇다면 무엇일까?

‘뻔하지. 낙하. 안드로다가 할 줄 아는 유일한 행위인데.’

‘그럼 어디로 떨어질까.’

‘보통은 환영이 있는 곳으로 추락하지만, 가끔 궤도를 변경하기도 하지. 분명 방금까지는 베이징이라고 하지 않았어?’

그렇게 편리한 괴수가 아니다.

떨어지고 싶은 곳으로 막 추락하는.

물론, 떨어지는 위치를 바꾸기도 하지만

‘...유일. 선수교대다.’

‘엥?

‘자존심 놀이에 어울려줄 틈이 없다.’

‘킁.’

애초에 지금은 자유시간이 아니었다. 비키라는데 비킬 수밖에.

변화는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카론조차 어떻게 된 건지 눈치 못 챌 정도로 빠른 교대. 그리고 그 결과는 금방 드러났다. 굳이 가더발트와 에쏘드도 필요 없다.

괴수를 ‘벨 수 있는 검’만 있으면 된다.

쉬임프에게 고전한 이유는 못 벴기 때문 아니었던가.

벨 수만 있다면 어떤 상대든 할만하다.

“헛?!”

프린스트는 너무 놀라서 숨을 들이켰다.

오른쪽 검이 청년의 머리를 우연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서둘러 왼쪽 검을 휘둘렀으나, 그보다 앞서 몸이 빨려 들어가듯 상대의 절단기로 향했다.

아니,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리며 그렇게 보였을 뿐.

상대의 힘으로 상대를 벤다.

그것이 [반격]의 정석!

노블레스 전용, 최강의 절단기 ‘엔타리얼 치프트’는 부드럽게 남성형 괴수의 몸을 훑고 지나갔다.

그걸로 끝이었다.

애초에 체구가 작은 ‘소형’인 데다가 방어도 터무니없이 약한 ‘인간형’인 프린스트는 버틸 재간이 없었다.

털썩!

무릎이 꺾인 프린스트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은색 피가 흥건하게 고였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벌어진 상황을 이해하기까지 시간이 살짝 걸린 아이밍 리는 한발 늦게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한쪽이 쓰러질 거란 예상은 당연했다.

하지만 이율배반적이게도 그녀는 아무도 안 쓰러지길 바랐다.

수호자의 편을 들어줘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뭐…. 죽진 않았을 거다.”

실력이 엇비슷했다면 봐주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차이는 월등했다.

한유일마저 기가 막혀서 말문이 막혔다. 자신보다 당연히 실력 면에서 숙주가 뛰어나리라고 예상하긴 했지만, 이렇게 극심할 줄이야!

약골 꼬맹이 몸으로도 4종까지 베었던 카르 4세다.

그런데 이 저주에서 탈출했다!

완벽한 성인 체형에 근력은 인간이 감히 엄두도 안 나는 4종 수준. 이 정도면 [반격]의 반동쯤은 받아낼 수 있다.

절단기만 쓸만하다면.

(엘퍼러!)

(네. 알고 있습니다. 운석이 떨어지고 있지요.)

(그걸 어찌?!)

(제가 막겠습니다.)

(상대는 안드로다입니다! 검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괴수! 현재, 그곳은 전혀 방비가 안 되어 있습니다!)

첸지 죠의 음성은 다급했다.

서둘러 철수준비를 해보지만, 앞으로 30초 내외.

괴수는 몰라도 인간은 탈출하기에 늦었다.

“...웃지 마라. 이상한 녀석.”

표정을 알 수 없지만, 안드로다가 그냥 웃는다고 느꼈다.

무일은 에쏘드로 가차 없이 환영을 벴다.

소리 없이 사라졌으나 분명 말할 수 있었다면 끔찍한 고통의 비명을 질렀을 거라고 무일은 장담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이미 싸질러진 똥을 치워야 했다.

바로 근거리에서 국가주석과 엘퍼러의 통신내용을 들은 아이밍 리는 사색이 됐다. 아무리 그녀가 막 나가도 동반자살은 원치 않았다.

즉, 이건 안드로다가 제멋대로 행동했다는 뜻이다.

‘서울에도 한 번 떨어질 뻔했었지.’

그때, 서울은 운석을 막을 기술적인 힘이 없었다. 그래서 원거리에 특화된 강력한 수호자를 활용했다.

강남구 쿠데타로 사멸한,

【솔라충 / 6종 보통】

현재는 달리 뾰족한 대처방안이 없다.

무식한 집중포화로 공중분해를 유도하는 정도. 그리고 대부분 국가가 그 방법을 채택 중이다.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집중포화.

국가의 모든 수호자가 총동원되는 작전이다.

안드로다는 쉬임프 안 부러울 정도로 튼튼하다. 마음에 드는 장소를 향해 우주에서 떨어지는 낙(樂)으로 사는 운석 괴수.

속살이 연한 쉬임프가 특수능력에 약한 면모를 보이는 거랑 달리, 안드로다는 웬만한 특수공격에도 끄떡없다.

한 방!

그 ‘한 방’을 위해 사는 괴수가 오죽할까!

“크윽…. 안드로다 녀석이 제멋대로….”

죽음을 간신히 면한 카론의 체구는 쪼그라들어 있었다.

성인에서 청년으로, 청년에서 소년, 소년에서 사내아이로 역행했다. 끽해야 5살쯤 되는 아이가 된 프린스트는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소녀로 변했던 발키지어 때보다 더 약화됐다.

저렇게 간신히 목숨만 붙여놓기도 쉽지 않지만, 펠-쉐어퐁 때처럼 ‘생포’를 목적으로 한 엘퍼러의 공격은 정밀했다.

그만큼 실력 차이가 크다는 의미이기도 하리라.

“테러리스트 문제는 끝났고….”

안드로다가 베이징을 겨냥하지 않았으면 진즉 끝났을 문제가 마침내 완료됐다.

문제는, 베이징 대신 이곳으로 떨어지는 중인 운석.

엘퍼러는 허리에 찬 에쏘드를 꾹 쥐었다.

에쏘드이기 이전에 ‘카르세리안 레이소’는 무일에게 매우 뜻깊은 무기다. 그 어떤 불가능한 적도 함께 해쳐온 여자친구.

선지혜가 들으면 냉큼 태평양 한가운데 던져버릴지도 모르니 비밀이다!

“세리. 녀석이 한 방이라면 우리도 한 방이다.”

“네! 용사님!”

쪼르르 달려온 한세리는 용사 근처에 무릎 꿇고 기도하는 자세를 취했다. 그건, 신을 향한 숭배가 아닌 승리의 염원 같았다.

싱크로율 100% 용사.

그 힘이 마침내 개방됐다.

우우우웅-!

뛰어난 명검에서는 검명(劍鳴)이 난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에쏘드는 순수한 쇠붙이가 낼 수 있는 소리와 차별화된 미지의 무언가를, 자연적이지 않은 소리를 토해내고 있었다.

맑다기보다는 신성(神聖)하다.

파괴불가 속성과 특수능력을 베는 능력뿐이었던 용사의 검.

그런데 그 칼날이 지금 빛나고 있었다.

모두가 깜짝 놀라는 가운데, 그 검의 주인인 한무일의 표정만 바짝 굳었다.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한 탓이다.

능력의 발현 조건.

그건 [예감]과 [예지]가 같은 답을 내놨다.

‘게임도 아니고 기술명을 외쳐?!’

주마등이 스치고 지나갔다.

한무일 인생 28년.

이렇게 막막했던 적은 처음이었다.

칼끝은 이미 안드로다를 향해 총구처럼 겨냥이 끝났는데….

“용사님! 어서!”

“맞아요, 용사님! 보여주세요!”

한세리와 한유나가 두 눈을 초롱초롱 빛내고 있었다.

다른 이들은 여전히 무슨 상황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에쏘드의 변화에 경악하기 바빴으니까.

무일은 등 뒤로 식은땀을 주르륵 흘러내리는 걸 느끼며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갈등할 틈도 없다니!

곧 안드로다가 지면에 처박힐 것이다.

당연히 그 전에 요격해야 한다.

그러니 망설이지 말고 외쳐!

엘퍼러는 영혼이 시키는 대로 떠밀리듯 큰소리로 내질렀다.

“너를 멸한다! 마기나로크(존재 삼키기)!!”

순백의 빛줄기가 천공을 꿰뚫었다.

바로 3시간 뒤.

괴수대응연맹에서는 ‘에쏘드’의 위험도를 재조정했다.

1종에서 8종 특수로.

< [40화-4] 고대의 전설을 보면…. > 끝

ⓒ 파르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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