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수처럼-165화 (165/287)

< [40화-1] 고대의 전설을 보면…. >

[40화] 고대의 전설을 보면….

학명: 프린스트(선교하는 왕자)

서식지: 인류

특징: 꽃미남입니다.

위험도: 6종 특수

비고: 내 말을 들어봐!

***

서유기(西遊記)를 아는가?

중국 629년, 승려가 불경을 구하러 인도로 떠난 17년 여정을 그린 이야기다. 완전한 허구는 아니다.

승려 현장은 실존인물로서, 불경 657부를 가지고 당나라로 돌아왔으며, 이후 불경 해석으로 여생을 바친다.

그렇다면 의문이 생긴다.

승려 현장, 삼장법사라고 잘 알려진 그는 어떻게 그 길고 긴 실크로드(Silk Road) 여정을 버틸 수 있었을까.

떠날 때의 그는 홀몸이었다.

호위도 없고 돈도 없이 무작정 불심(佛心)으로 뛰어들었다. 살아있는 걸로 모자라 657권의 책을 들고 돌아왔다는 건 기적에 가깝다.

『요괴』

그 해답은 여기에 있다.

당나라로 돌아온 삼장법사는 ‘요괴’ 얘기를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느새 살이 붙으면서 그의 여정은 ‘환상소설’로 탈바꿈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 리 있겠는가?

삼장법사가 무사히 천축을 다녀올 수 있었던 건 ‘손오공’이란 강력한 ‘요괴’ 덕분이었다.

가짜일까? 허구일까?

투철한 신앙심 빼면 별거 없는, 보신(保身)할 힘도 없는 승려가 무슨 수로 17년 동안 버틸 수 있었는지는 미스터리다.

그렇다.

서유기가 완전히 거짓말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제천대성, 쑨우쿵』

삼장법사는 누군가의 도움을 절대적으로 받았다.

첫 번째 제자라는 돌원숭이.

그 이력은 이렇다.

원숭이 왕이 불사의 열매를 먹고,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사서 바위 밑에 깔린다. 그리고 삼장법사가 ‘금고리’를 머리 위에 씌워 얌전하게 만든다.

녀석의 특기는 분신술.

몸의 털만큼 많은 분신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말을 안 들을 때마다 조여지는 머리띠 앞에서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약점이 있다.

많이 생략되긴 했지만….

쑨우쿵 혹은 손오공이라고 불리는 돌원숭이는 이런 배경을 가졌다. 그리고 ‘8종 괴수’ 쑨우쿵도 매우 흡사하다.

중국 혹은 인도의 선조들은 ‘쑨우쿵’을 알고 있던 게 아닐까.

녀석을 제어하는 방법도.

『금고아』

쑨우쿵의 머리띠는 ‘계약’이라고 보는 편이 맞다.

삼장법사는 ‘계약자’.

서유기를 보면 요괴들이 삼장법사의 고기를 원한다고 계속 나온다. 하지만 남정네의 고기가 부드럽다는 서술이 이상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얘기는 간단하다.

『삼장법사는 원래 아름다운 처녀다!』

미녀라면 살결이 고운 건 당연하다.

아니면 삼장법사 곁에 ‘계약자’가 함께하고 있었던가.

그 아름다움에 빠져든 고위괴수(요괴)들이 계약을 뺏기 위해 덤벼들었다면?

쑨우쿵은 그걸 막고.

자연스럽게 아귀가 탁탁 맞아떨어진다.

삼장법사가 탄 말과 저팔계, 사오정은 그 유례가 어디서 온 건지 알 수 없지만, 쑨우쿵만은 명확했다.

【쑨우쿵 / 8종 소형】

털 대신 바위로 분신을 만드는 괴수.

바위가 있는 곳이라면 ‘불사신(不死身)’이기도 하다.

분명, 엘로엘에 의해 모든 분신이 하늘에서 공중분해 되며 생을 마감했을 괴수가 떡하니 등장했다.

능력을 제약하던 ‘금고리’를 빼둔 채.

계약자 미호 첸에게서 해방된 쑨우쿵의 군세는 그만큼 어마어마했다.

괴수 본연의 야성을 되찾은 것이리라.

“계약자가 사라지면서 더 강해지다니?”

첸지 죠는 할 말을 잃었다.

이건 그냥 강해진 정도가 아니다.

바위만 있으면 분신을 무한대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지만, 쑨우쿵도 엄연히 한계를 갖고 있다. 제어할 수 있는 분신의 양이 정해져 있다.

대략 3천.

그 숫자를 넘어서면 군대가 분열한다.

아군도 공격한다는 뜻이다.

“현재까지 대략 3만…. 앞으로도 더 늘어날 것 같습니다.”

“그게 말이 되는가?”

위진 창의 암울한 답변에 첸지 죠는 기가 막혔다.

제어할 수 있는 분신 숫자가 10배?

능력이 향상돼도 이렇게까지 확 변할 수 있는 건가.

인간이랑 덩치가 비슷한 4종 괴수 3만 마리. 그 터무니없는 군단이 ‘쑨우쿵’이란 하나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자신의 분신을 통제한다는 점에서 ‘왕’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가능해. 가능하고말고.”

한유일은 씩 웃으며 답했다.

이제 자유시간이 30분도 채 안 남았다. 그런 아쉬움은 있지만, 내일을 기약하면 된다. 그러니 이 우매한 중생들에게 약간의 도움을 주기로 했다.

뭐….

조언이 필요할지 의문이지만.

어차피 숙주가 달려가면 3만이 아니라 30만이 되더라도 쓸려버릴 오합지졸이다.

도시를 지키기 힘들 뿐.

“한 공. 어떻게 쑨우쿵의 능력이 증폭된 겁니까?”

“복수심.”

“......”

“저건 쑨우쿵 1마리가 아니야. 적어도 10마리가 함께 뭉쳐있어.”

“예…?”

“아메바 알지? 자기복제. 그거야. 평소 같으면 1마리가 남을 때까지 서로를 죽이고 죽였을 텐데, 일시적으로 동맹을 맺었다고 할까.”

쑨우쿵은 모든 분신이 본체다.

물론, 사령탑은 있다.

하지만 사령탑이 죽더라도 우왕좌왕하지 않고 곧바로 다른 분신이 사령탑을 인계하는 식으로 유지된다.

한유일은 말했다.

그 사령탑이 저 3만 대군에 10마리가 있다고.

다르게 말하면?

8종 괴수가 10마리란 뜻이다!

게다가 앞으로 더 늘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8종이 10마리라니….”

“계약자가 없어서 그래. 계약자가 1명뿐이라면 서로 차지하려고 싸웠을 텐데, 전부 못 가졌기에 협력체계가 가능한 거지.”

“허어…!”

“그렇다고 벌써 자포자기하진 마, 죠 씨. 일시적으로 동맹을 맺긴 했지만, 복수심으로 유지할 수 있는 숫자에도 한계가 있다.”

숫자가 더는 안 늘어난다고 좋아할 때가 아니다.

중국의 모든 수호자와 노블레스를 동원해도 베이징을 완벽하게 지켜낼 수 없다. 아니, 4종 3만 마리가 전방위에서 달려들면 학살이 벌어질 것이다.

베이징에 도착하기 전에 막아야 한다.

어디서 갑자기 저 많은 숫자가 튀어나올 걸까?

위진 창이 답했다.

“백두산과 두만강입니다. 백두산의 바위로 몸을 구성하고, 1마리씩 은밀하게 이동하여 두만강에 잠수하고 있었습니다.”

돌원숭이 쑨우쿵은 물을 싫어한다.

그런데 그 강물 속에 숨어있었으니 찾아낼 방도가 없었다. 게다가 이미 죽었다고 알려지기도 했으니 더욱 방심할 수밖에.

그만큼 복수의 집념이 강했다는 뜻이리라.

조금씩 늘어난 원숭이 무리가 두만강에서 우르르 물가에 상륙했다.

그 군세는 대략 3만.

2222년의 악몽 당시에도 보기 힘들었던 숫자다.

(주석! 강습반과 기사단 준비가 완료됐습니다!)

강습반은 계약자 집단, 기사단은 노블레스 부대다.

문팽이의 공격으로 와해 된 기사단은 별 기대 안 하지만, 원정대 3일 만에 수십 배로 불어난 강습반 전력은 무지막지하다.

4종 괴수가 3만?

좋다! 상대해주마!

이쪽은 4종 이상의 고급전력 3백이다.

분명, 쑨우쿵 분신 하나에도 고전하는 수호자가 있겠지만, 5종부터는 못해도 자신의 10배 전력을 쓰러트릴 수 있다.

8종 괴수 하이블쯤 되면 아예 쓸고 다니리라!

“그럼, 출진-.”

“주석!”

“...과장. 또 무슨 일인가.”

“쑨우쿵 무리에서 프린스트가 포착됐습니다! 저건, 아이밍 리의 수호자입니다!”

이 상황에 변수라고?

끽해야 6종 하나 추가된 것뿐이지만, 첸지 죠의 눈빛은 날카로워졌다.

이건 절대 우연이 아니다.

엘퍼러가 지원 오고 겨우 3일째 되는 날, 정말 뜬금없이 등장한 쑨우쿵. 여기까지는 ‘하필 오늘!’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저 프린스트가 있다면 얘기가 다르다.

‘아이밍 리. 살 기회는 지금뿐이란 걸 깨달은 건가!’

첸지 죠는 원정대가 마무리되는 즉시, 이 지긋지긋한 테러리스트를 정리할 생각이었다.

그 시류와 위기를 아이밍 리가 못 읽어냈을 리 없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발악’할 줄은 몰랐다.

지나치다.

체제가 마음에 안 든다고, 나라를 아예 지워버릴 생각을 하다니?

이미 지은 죄가 많은 북해빙궁이 자비를 구걸하더라도 용서해줄 마음은 없다. 그리고 그 사실을 궁주도 알고 있으리라.

이건 살기 위한 발악.

그런 당위성, 그 정도뿐인 명분이다.

지나치게 이기적이다.

“프린스트…. 그 특징을 잊고 있었군.”

왕은 아니지만 ‘왕자’다.

그래서 추종자는 없지만, 설득하고 선동할 순 있다. 종족의 구분이 없다는 점에서 범용성이 매우 높은 능력이다.

특히, 부상당한 괴수를 치료해주는 은혜로 ‘자신보다 강한 괴수’도 끌어들일 수 있다.

그래서 아이밍 리가 ‘7종 계약자’로 불리는 것이다.

곁에 7종 수호자가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녀 곁에는 프린스트 외에도 6종 괴수가 셋이나 더 있다.

동급이라면 설득해서 오랫동안 함께할 수 있다.

6종이 총 넷.

그렇게 합쳐서 7종 전력이 탄생했다.

“쑨우쿵을 구해준 건 프린스트였던 것 같습니다.”

정보과장 위진 창이 심각한 어조로 덧붙였다.

죽은 줄 알았던 괴수의 부활.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건 프린스트뿐이다.

“동료로 끌어들이는 건 실패했지만, 지금이 아니면 영영 기회가 없다고 부추긴 건가! 그렇겠지! 그럴 수밖에!”

첸지 죠는 아쉬움을 감출 수 없었다.

현재보다 더 많은 ‘용’이 확보되면 원숭이가 몇 마리가 됐든 도시 근처로 오기 전에 브레스로 녹여버리면 그만이니까.

그런데 그 전력이 아직 모이기도 전에 물량공세가 시작됐다.

쑨우쿵이 서울 대신 베이징을 선택한 것도 뻔하다.

상성 면에서 대단히 나쁜 ‘바람의 마녀’를 피한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중국에 도움을 주러 올 수도 있다는 판단에 여태까지 계속 숨죽인 채 힘을 키우고 있었으리라.

그런데 이제 그럴 걱정이 사라졌다.

황진천에게 당한 박선영의 상태는 여전히 썩 좋지 못했다.

삶의 의욕이 없다고 할까….

프린스트는 그 사실도 덧붙여서 쑨우쿵을 부추긴 게 분명하다. 아니면 겁먹은 원숭이가 두만강에서 튀어나왔을 리 없다.

“진정하십시오, 주석.”

한유일의 말투가 변했다.

그것만으로도 풍기는 분위기가 싹 달라졌다.

가벼움 대신 묵직함으로.

그의 한마디를 듣는 순간, 첸지 죠는 어째선지 불안감이 말끔히 사라졌다. 에쏘드로 아무리 휘둘러도 3만이란 군세를 전부 막아내지 못하리란 걸 알면서도.

이것이 황제로 불리는 남자.

6시간 잠에서 깨어난 한무일은 모니터로 전황을 살폈다.

“방법이 있는가?”

“...1초에 10마리씩. 1분이면 600마리. 1시간이면 36,000마리. 뿔뿔이 흩어진다면 좀 더 걸리겠지만, 분열된 군대는 별거 아니지요.”

“부활할 수 있네.”

첸지 죠가 걱정하는 부분이다.

바위가 있다면 쑨우쿵은 얼마든지 분신을 찍어낼 수 있다.

하지만 엘퍼러는 부정하듯 고개를 저었다.

“엘로엘의 경우로 알 수 있었습니다. 바람이란 분신을 베인 정령은 약해졌습니다. 쑨우쿵도 같겠지요. 에쏘드에 베이면 단시간에 치유되지 않습니다.”

“흠!”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공포로 분열되겠지요.”

8종 폭풍의 정령이 그랬다.

난생처음, 고통과 죽음의 공포를 느낀 엘로엘은 벌벌 떨었다.

에쏘드는 특수능력 천적!

쉬임프, 하이블 같은 물리특화만 아니면 그 어떤 괴수도 손쉬운 상대다. 에쏘드를 쌍수로 휘두를 수 있는 엘퍼러에게는 그랬다.

다른 에쏘스트는 공감할 수 없겠지만.

무기가 좋다고 해서 [예감]과 실력이 늘어나는 건 아니니까.

“1시간….”

엘퍼러의 말처럼 지리멸렬한다면 더 빨리 끝나리라.

하지만 너무 희망적인 견해 아닐까.

흩어진 놈들이 게릴라전을 펼치며 이동해서 야금야금 베이징을 물어뜯는다면 그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그럴 바에 피해를 감수하며 전력으로 밀어붙이는 게 낫지 않을까.

“그래서 저에게 다른 계획이 있습니다, 주석.”

“계획이라면….”

“녀석들이 계약자가 없어서 뭉칠 수 있었다면, 뭉칠 수 없도록 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새로운 ‘금고아’를 씌운다?”

< [40화-1] 고대의 전설을 보면…. > 끝

ⓒ 파르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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