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화-3] 중원을 찾은 용사 >
희망은 배신 받기 일쑤다.
미계약자들에게 둘러싸인 청년이 난감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그러면서 손으로는 그녀들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이러면 안 되는데….
딱 그런 모습이지만, 전부 ‘가식’이다.
첸지 죠는 자신의 정치 생명을 걸고 장담할 수 있다.
“한 공!”
이게, 한무일 때하고는 전혀 다르다.
한유일로 변하는 순간 바뀌는 건 성격뿐이 아니다.
외모를 제외한 모든 게 변한다!
가더발트와 에쏘드가 매몰차게 침묵하면서, 전투능력도 대폭 떨어진다. 그래도 공유 중인 숙주의 [예감] 덕분에 여전히 최강.
한유일이 ‘엔타리얼 치프트’를 휘두르면 6종까지는 손쉽게 끝난다.
다만, 차이는 명확하다.
“죠 씨. 또 잔소리하러 왔구나.”
“어떻게 안 됩니까!”
“나는 그저 가만히 앉아서 알아듣지도 못하는 중국 드라마를 보고 있었을 뿐이다.”
“그…. 그렇지요.”
이런 식이다.
한무일과 한유일의 차이.
그건 권능이라고 불리기에 손색없는 능력에서도 확연하게 드러난다.
무엇을 지배하는가?
한무일은 ‘여성형 괴수’에 대한 강력한 통제력을 발휘한다. 그리고 한유일은 ‘여성형(?) 인간’에게 미친 친화력을 갖고 있었다!
현재, 중국 본부는 3일 만에 한유일의 수중에 들어갔다.
‘어찌 이런 일이….’
중국도 여성 비율이 대단히 높다.
특히나 절정고수라고 불리는 프로사냥꾼으로 남성이 쫙 빠진 본부는 ‘여인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성은 손에 꼽을 정도고….
핵심인사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정보과장 위진 창이 유일했다.
헌병대장? 경비대장? 수색대장? 특공대장?
전부 용기를 발휘하며 ‘공무 중에 여인들과….’ 어쩌고 했다가 사방에서 쏟아지는 여자들의 매도에 ‘깨갱’ 했다.
“이러면 또 무일이 뭐라고 하는데….”
“저희가 비밀로 해드릴게요!”
“좋아하는 여성 취향이 있으세요?”
“오늘도 영웅담을 들려주세요.”
흡혈했다는 소식은 없었다. 몰래 한 것 같지도 않다.
그런데도 ‘왔노라! 보았노라! 홀렸노라!’ 이 패턴이 끊이지 않는다.
만나면 그대로 애인(愛人) 확정!
뱀페스트 왕에게 이런 능력이 있다는 건 금시초문이다. 있었다면 서울은 40년 전에 끝장났을 테니까.
아무튼, 중국은 국가전복의 위기에 놓여있었다.
인구 80%를 차지하는 여성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하렘의 왕’을 정치적으로 이길 방법 따위는 없다.
첸지 죠는 패배감에 녹초가 돼가고 있었다.
간신히 ‘비비 황’만 지켜내는 수준이었다.
“한 공. 같이 식사라도 하시겠습니까?”
“그러지! 깐깐한 숙주 때문에 어울리지 않는 금욕(禁慾) 중인 바람에 식욕(食慾)이 무척 땅기거든.”
첸지 죠는 간신히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오늘도 얼마나 많은 사상자(사랑의 열병)가 발생했을지 걱정이 앞섰다.
대응이 느렸다!
맹주에게 잘난 척하지만 않았어도 잽싸게 대응할 수 있었을 것을! 그렇다고 어중이떠중이에게 감시를 맡길 수 없다.
엘퍼러는 귀빈.
격에 맞는 신분이 상대해야 예의다.
하지만 그 ‘격’에 맞는 인물 80%가 여성이라면?
아무것도 모른 채 속수무책으로 당한 첫날의 대참사 이후로 두 번째 패착이었다.
‘내가 역으로 고립되다니….’
정말 웃기지도 않는 농담이다.
국가통치자가 자국 사령탑에서 ‘왕따’당하고 있다고 하면.
하지만 현실이다!
저 ‘하렘의 왕’이 풍기는 마성(魔性)으로부터 자유로운 여성은 미소녀가 아니거나 ‘한무일을 좋아하는 여인’으로 한정됐다.
왕끼리는 간섭할 수 없다는 걸까…?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문제는, 누굴 좋아하든 중국의 미소녀가 전멸했다는 게 중요하다. 유부녀와 미망인은 당연하고 계약자와 미계약자도 가리지 않는다.
대부분 한유일 ‘추종자’.
같은 남자가 봐도 한무일은 여성에게 호감 가는 성격은 아니었으니까.
반면에 ‘하렘의 왕’은 권능 외에도 재능이 있었다.
“한 공. 자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그저 현실적으로 내 백성이 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담소만 나눈 것뿐이다. 무일도 시끄럽고.”
깨물면 골치 아파진다.
그녀들은 목을 내밀지만, 그렇다고 대뜸 물면 안 된다.
한국이었다면 몇 번 튕겨준 후에 흡혈했겠지만, 중국인을 물면 국적부터 시작해서 정치적으로 대단히 껄끄러워진다.
배움이 늘어날수록 한유일은 지켜야 할 것들이 많아졌다.
자유시간을 얻는 대가로 걸린 조건.
거기에는 함부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양심’적인 사항도 있다. 말이 양심이지, 마음에 흙탕물이 튀면 그대로 아웃이다.
6시간 자유시간이 5시간으로 줄어든다!
그것만은 반드시 피해야 했다.
“따로 원하시는 거라도 있습니까?”
“흠. 별로.”
국가주석 첸지 죠는 소화불량에 걸릴 것 같았다.
이런 식의 흐름은 ‘매우’ 좋지 않다.
분명, 식사가 끝나면 한유일은 어기적어기적 귀빈실을 돌아다닐 것이다. 그리고 그의 ‘무색무취(無色無臭) 페로몬’에 반응한 미소녀들이 몰려오리라!
과학적으로 페로몬은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무언가 있는 건 분명하다!
그게 아니라면 첫 만남부터 ‘호감도 MAX’는 말이 안 되잖은가.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야…. 아직도 4시간이나…!’
여자들은 이상함을 못 느낀다.
그저 ‘첫눈에 반한다는 게 이런 거구나~!’ 정도로 태평하게 생각한다. 심지어 영상통화만으로도 해롱해롱.
음성통화는 그나마 덜하지만, 이 또한 장시간 노출되면 마음의 포로가 된다. 연구하던 미모의 기술반원 다수가 상사병으로 식음을 전폐 중이다.
『페로몬?』
이미 페로몬의 영역마저 넘어섰다!
생방송으로 한유일이 대중매체를 활용하는 순간, 시청한 모든 미소녀가 국적 불문하고 함락당한다고 보면 된다.
그야말로 ‘하렘의 왕’에 어울리는 권능.
첸지 죠는 깨달았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괴수는 ‘인간을 지배하는 9종’이라고.
“특이한 미소녀를 찾으신다고 하셨지요?”
“어. 천음절맥(天陰絶脈)으로 일찍 요절한다는 미소녀.”
“요즘은 그 병으로 죽는 여인이 없습니다.”
“그래? 소개해줄 수 있어?”
일단은 시간을 벌기로 했다.
한유일의 자유시간이 끝나면 18시간의 평화가 찾아온다. 물론, 이미 사랑에 빠진 처자들의 재활치료를 떠올릴 때마다 눈앞이 캄캄하지만.
국력 2위를 위해 멈출 수 없다!
그 증거로 ‘첸지 죠’의 지지율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훌륭한 정치 수완을 발휘한 위대한 국가주석으로.
『94%』
나머지 6%는 포용할 수 없는 부류다.
야당과 ‘짝사랑하던 여인을 한유일에게 뺏긴 사내’ 극소수, 타국의 힘을 빌린 걸 못마땅하게 여기는 국수주의자, 홍콩 대참사에서 살아남은 시민….
하지만 나머지는 절대적인 지지를 보냈다.
왜냐?
『어? 용이다.』
『정말 용이네?』
『진짜 용이잖아!』
『첸지 죠! 만세!』
아주 간단한 공식이다.
용(龍)들은 백인, 서구식 체형의 굴곡진 미인을 선호한다. 그래서 동양, 황인 국가에서는 ‘용의 계약자’가 매우 적다.
하지만 중국은 아예 전멸!
그래서 완전히 포기하고 있었는데 기적이 터졌다.
제발 하나만 달라고 빌었던 ‘용의 계약자’가 우수수 쏟아져 내린 것이다. 그것도 계약하기 어렵다는 6종.
너무나 비현실적인 결과에 5종은 아예 언급조차 안 된 실정이다.
‘수작이 있었단 말이지….’
첸지 죠 국가주석은 바득바득 이를 갈았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긴 했었다.
이미 인종을 구분하기 힘들 만큼 한국과 중국은 혼혈이 많았다. 그런데 중국만 ‘용의 계약자’가 전혀 안 생긴다는 건 말이 안 됐다.
중국인만 못생겨서?
가장 근거 없는 헛소리다.
하지만 현실이 그랬기에 속으로만 끙끙 앓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한무일에게 이 얘기를 들었을 때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었다.
『누군가 약에 장난친 것 같습니다만?』
계약자의 젊음과 생기를 유지해주는 노화억제제.
제조과정에서 ‘이물질’이 첨가되어 있었다.
용들이 싫어하는 성분.
강대국들은 서로 조금이라도 우위를 점하기 위해 ‘노화억제제’ 제조법은 기본적인 걸 제외하고는 비밀로 하고 있다.
당연히 중국도 ‘비법’이라고 불리는 게 있었다.
그런데 그게,
‘엉터리였다니…!’
몸에 좋다는 영약(靈藥)을 첨가했을 뿐이다.
당연히 계약자의 인체에도 대단히 좋게 적용한다.
단, 용은 그걸 싫어했다!
어째서 여태 그 사실을 아무도 몰랐는지 의아할 정도다. 한무일이 지적해주지 않았다면 영원히 몰랐을 것이다.
몸에 좋은 약에 그런 허점이 있으리라고 누가 생각했겠는가!
그렇기에 ‘수작’이다.
많고 많은 영약 중에서 하필 ‘용이 싫어하는 것’을 넣을 게 뭐람? 이걸 우연으로 치부하기에는 걸리는 부분이 많았다.
인위적인 느낌이랄까.
건강보조식품인 ‘영약’을 굳이 차별해서 한 가지만 고집한 것부터 수상하다.
“죠 씨. 그래서 천음절맥은 어디에 있는데?”
“다들 유부녀, 아줌마입니다.”
“쩝.”
한유일은 입맛을 다시며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첸지 죠는 서둘러 이유를 설명했다.
『천음절맥』
일반적인 여성보다 음기(陰氣)가 많아서 선천적으로 미모를 타고난 여인.
계약자로도 충분히 활약할 수 있지만, 중국에서는 천음절맥 여성의 조혼(早婚)을 장려하고 출산을 부추겼다.
모친의 음기 일부를 물려받은 딸은 100% 확정 계약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편법은 안 통한다.
원시적인 출산 말고 인공임신 등은 효력이 없으니까.
태아가 자궁 안에서 천음절맥의 음기와 영양분을 함께 받으며 자라야 한다.
그래서 예외 없이 유부녀, 아줌마다.
“어쩔 수 없지. 나는 못 본 드라마나 마저 보러 간다.”
아직도 3시간 넘게 남았다.
첸지 죠는 머리를 맹렬하게 굴렸다.
어떻게든 더 붙잡아둬야 했다.
‘그렇다고 매일 내가 이렇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인데….’
슬슬 이야깃거리도 다 떨어졌다.
특히나 ‘미소녀’ 외에는 관심이 전혀 없는 한유일의 발걸음에 제동을 걸 만한 주제는 그리 많지 않았다.
이건 신(神)의 계시였을까?
첸지 죠의 머리로 전광석화처럼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멀쩡한 천음절맥이 한 명 있습니다.”
“없다며.”
“있긴 합니다만, 나이가 미소녀라고 불릴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해. 선지혜에게 이른다?”
“죄송합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지지율 94% 국가주석이고 뭐고 없다.
지지해줄 국민과 나라가 쓸려버리면 무의미하다.
“비밀로 해줄게. 죠 씨.”
“크흠.”
“그래서?”
“덤으로 범죄자라서 대답을 꺼렸습니다.”
“범죄자…!”
다시 식탁에 앉은 한유일의 표정은 진지 그 자체였다.
바로 이거다!
범죄자라면 백성으로 삼아도 깐깐한 숙주가 뭐라고 안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천음절맥이란 여자들은 문언으로만 보면 귀기(鬼氣)를 타고난 것 같았으니까.
즉, 최은설처럼 타고난 백성이다.
갑자기 돌변한 하렘의 왕.
첸지 죠는 ‘지뢰를 밟은 건가…?’ 싶은 심정에 휩싸였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되돌릴 순 없었다.
“아이밍 리. 혹시 들어보셨습니까?”
“알고말고! 중국의 테러리스트. 미녀우월주의자. 나이는…. 기억에 없군. 7종 계약자. 수호자는 6종 소형 프린스트.”
계약자는 7종이고 수호자는 6종인 이유는 하나다.
하위수호자가 단신으로 상위괴수를 쓰러트린 특수한 경우.
돌연변이라고도 한다.
“북해빙궁 궁주이기도 합니다.”
“음. 그런 것 같네.”
“본국의 순결한 처녀 중에서 천음절맥은 아이밍 리, 그녀가 유일합니다.”
“좋은 정보 감사. 죠 씨.”
“...별말씀을.”
첸지 죠는 한시름 놓았다.
아리따운 날씨예보 아나운서의 환영이 어른거린다.
고기압(?)의 영향을 받은 역병(疫病)이 중원에서 점차 멀어진다는 모양이다.
대신 어디로?
저 멀리 북해(北海)로.
< [39화-3] 중원을 찾은 용사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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