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화-1] 중원을 찾은 용사 >
파르나르 장편소설
괴수처럼 20
[39화] 중원을 찾은 용사
학명: 위치봉(마녀의 지팡이)
서식지: 나무, 여자
특징: 나도 오늘부터 마법사☆
위험도: 4종 특수
비고: 극심한 남성혐오증!
***
엘퍼러의 중국 방문은 세계의 지도층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한무일은 아무 생각 없었지만, 국제사회의 정세는 ‘황후’ 선지혜의 의도대로 흘러갔다고 할 수 있었다.
목적은 하나였다.
『까불지 마!』
황진천의 생포는 엘퍼러의 의도와 상반됐다.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
그 주장에 설득된 한무일이 ‘원치 않는 길’을 가야 했던 사건이었다.
결과적으로만 보면, 서울은 변종 백혈구울뿐 아니라 폭주한 엘로엘이 싸지른 똥까지 치울 수 있었다.
하지만 인적 피해는?
미래에 9종 계약자를 출산할지도 모를 여인들의 희생은?
너무나 뼈아프다.
『그러니 까불지 마!』
절대로 지나온 길을 후회하는 법이 없이 없던 카르 4세.
그가 최고의 힘을 얻고 고뇌했다.
겉으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11년째 스토커 중인 선지혜는 너무나 간단히 간파했다. 그리고 순수하게 분노했다.
어찌 감히!
내가 사랑하는 남자를 귀찮게 하는 역할은 오직 나만의 것인데!
그래서 보복조치를 했다.
유일하게 고분고분 있었던 중국을 ‘편애’한다는 방식으로.
그 행동은 한무일이 했지만, 선지혜가 ‘중국’을 언급하며 베갯머리송사 하듯 은근슬쩍 부추긴 결과다.
『고립?』
땅이 크다고 전부는 아니다.
세계열강들은 엘퍼러를 따돌릴 수 없다.
반대는 가능하다.
엘퍼러가 중국을 계속 편애하며 키워준다면?
한국의 국력은, 두 8종을 끼고도 2323년까지 세계 4위. 이집트, 미국, 브라헨티나 다음이었다.
1위 이집트의 전력을 ‘100’이라고 한다면?
『1위 - 이집트: 100』
『2위 - 미국: 52』
『3위 - 브라헨티나: 49』
『4위 - 한국: 47』
『5위 - 영국: 38』
즉, 1위 이집트가 ‘넘사벽(넘을 수 없는 차원의 벽)’이고 2~4위가 고만고만. 6위 밑으로 평균 ‘30’에서 도토리 키재기였다.
...그보다 아래?
강대국을 제외한 나라들은 평균 ‘2’다.
그 구도가 2324년에 들어서면서 세상은 대격변을 맞이했다. 한국이 단숨에 1위로 껑충 뛰어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2325년에는….
비상(飛上)했다는 표현으로도 부족할 지경이었다.
『1위 - 한국: 1200』
『2위 - 이집트: 100』
『3위 - 미국: 91』
『4위 - 프랑스: 84』
『5위 - 독일: 83』
한국의 국력 데이터는 오타 같은데….
아니다! 실제상황이다!
최종병기나 다름없는 8종 수호자를 30초 내외로 피해 없이 썰어버리는 9종 괴수가 엘퍼러다. 대적이 아예 불가능하다.
세계정복도 가능하다는 말은 농담이 아니다.
각설하고,
노블레스와 에쏘스트의 등장으로 가장 큰 수혜를 받은 국가가 독일과 프랑스였다.
특히, 에쏘스트는 ‘신의 한 수’라고도 일컬어진다.
뱀페스트 힘을 쓰는 에쏘드 계약자!
뛰어난 용사파티로 유럽의 최강국을 자처하던 영국을 밀어내고, 프랑스와 독일이란 양대산맥을 이뤘다.
그 정점(頂點)은 에쏘스트.
파티 없이 홀로 무쌍을 자랑하는 용사다.
『미국 - 할리우드 초인, 캡틴세븐』
『프랑스 - 나폴레옹 환생, 루이스 보나파르트』
『독일 - 베를린 성검(聖劍), 그람』
영국처럼 뛰어난 파티를 짜지 못한 이들 셋은 오랫동안 주목받지 못했었다.
하지만 세상이 변했다.
파티를 짤 필요가 없어졌다!
일본의 에쏘스트가 ‘엘퍼러’도 아닌 ‘카르 4세’에게 발리면서 거품이란 우려가 나돌고 있지만, 국력을 좌지우지하는 것만은 확실했다.
아! 참고로, 에쏘드를 잃은 일본은 7위에서 11위로 밀려났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까.
국력 3위까지 치고 올라갔던 스페인은 ‘에쏘스트 완전체’로 불리던 ‘다윙 밀리언’이 테러리스트로 전향하면서 14위로 떨어졌다.
시간으로 따지면 겨우 1년 남짓.
한 남자의 영향력이 얼마나 막강한지 단적으로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제대로 미움 샀군.”
괴수대응연맹 맹주 ‘아몬 헤이젤’은 쓰게 웃었다.
항의할 처지도 아니었다.
황진천 생포작전은 엘퍼러의 뜻하고 완전히 상반된 일이었으니까.
그걸 억지로 밀어붙여서 서울의 피해를 확산시킨 건 분명 세계열강이었다. 그 증거 중 하나로 서울의 지붕이라고 불리던 북한산이 날아갔다.
8종 괴수 와이츠의 둥지가 있는 곳.
이에 대한 한국 정부와 본부의 항의도 꽤 골치 아픈 실정이다.
하지만 엘퍼러의 조치는 차원이 달랐다.
‘중국이 얼마나 성장하느냐에 따라 세계 구도가 또 달라지는가….’
국력의 순위 변동만을 뜻하는 게 아니다.
엘퍼러의 수혜를 받은 중국이 경쟁국 인도와 러시아를 핍박하는 악수를 두지 않는 한, 편애는 꽤 오랫동안 계속될 것이다.
그게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9종 괴수 엘퍼러의 뜻에 반항하는 나라는….
『강대국에서 약소국으로 전락한다!』
특히나 대립관계인 프랑스와 독일은 선택지가 없다.
두 나라가 ‘엘퍼러랑 놀지 말자!’라고 협약이라도 한다면 모를까, 완벽한 우위를 점할 수단을 놔두고 머뭇거릴 리 없다.
두 나라가 ‘엘퍼러 편’으로 돌아서면 위기의식을 느낀 영국과 스페인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유럽이 그렇게 나오면….
세계의 모든 나라가 따를 수밖에 없다.
“선택의 기로(岐路)로군요.”
이지적인 미모의 여인이 맹주에게 말했다.
괴수대응연맹에서 고문(顧問) 역할을 하는 사람은 대단히 많지만, 여성의 숫자는 손으로 꼽을 정도로 적다.
더군다나 4종 계약자!
똑똑하기도 나무랄 곳 없다.
거기다 참견쟁이네?
괴수대응연맹의 학자들이 싫어하는 모든 요소를 한 몸에 갖고 태어난 인기인!
『미츠코 사스키』
그녀의 왼팔에는 뱀처럼 칭칭 감긴 나무줄기가 자리했다.
한쪽 끄트머리에는 징그러운 눈알이 깜빡깜빡!
반대편 끝의 손처럼 생긴 나뭇가지가 ‘남자친구의 팔’처럼 그녀의 오른쪽 어깨까지 끌어안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저것이 미츠코 사스키의 4종 수호자.
【위치봉 / 4종 특수】
대마법사라고 불리는 8종 괴수 듀크마에 비하면 조족지혈(鳥足之血)이지만, 마법을 쓰는 뱀 겸 지팡이다.
천재지변에 버금가는 마법은 못 쓰는 대신, 계약자에게 대단히 관대하다.
머리를 며칠째 안 감았다던가…. 안 씻은 몸에서 냄새가 난다거나…. 다크써클을 늘 달고 살아도 용서해준다.
본판만 예쁘면 그만이지!
...그런 마인드의 ‘장비형 괴수’다.
“미츠코. 내게 무슨 용무라도 있는가.”
“산책 중이었어요. 소식(小食), 채식(菜食)으로 몸매를 관리 중이지만, 그렇다고 운동을 전혀 안 하면 몸이 상하니까요.”
“하필 여기서 말인가?”
맹주만의 전용공간은 아니지만, 산책할 장소는 아니다.
일단 사방이 탁 막힌 실내라는 것부터가 에러다.
“추운 겨울이에요. 수호자는 삐친 상태고.”
미츠코 사스키는 태연자약한 미소를 지었다.
계약자의 발언에 위치봉은 ‘내가 언제?’라고 묻는 것처럼 눈알을 깜빡였다. 하지만 미츠코 사스키의 젖가슴을 보고는 눈동자가 헤실헤실 풀려버렸다.
예쁘면 뭐든 용서해준다는 마인드!
...진짜 최곤데?
그렇다면 ‘마녀의 지팡이’라고 안 불렸을 것이다.
본질은 사악(邪惡)!
가더발트처럼 계약자가 아닌 숙주를 지배하여 온갖 괴랄 맞은 짓을 다 한다. 그래도 일단 계약하면 이후부터는 온순해지는 편이다.
가끔 계약자를 성추행하긴 하지만.
특히, 허벅지에 감겨 있을 때는…!
“뭐, 좋네. 이왕 왔으니 자네의 고견을 들어보도록 하지.”
“이래서 제가 맹주님을 좋아해요.”
“내 수명을 단축 시키는 발언은 자제해 주게. 사스키 양.”
영혼 없는 고백이지만, 그걸로도 위험하다.
눈알을 찌푸린 위치봉이 아몬 헤이젤을 향해 하나뿐인 손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한다.
뭐, 늘 이런 식이다.
마른하늘에 우박을 맞고 응급실로 실려간 적은 있지만, 괴수대응연맹 맹주는 여전히 죽지 않고 살아있다.
이번에도 무사히 넘어가면 좋으련만….
그렇다고 미츠코 사스키를 다그치면 더욱 위험하다. 위치봉은 계약자의 감정 기폭에 대단히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그녀가 연맹을 자기 발로 나가지 않는 한, 혹은 아주 큰 잘못을 저지르기 전까지는 강제퇴출은 대단히 위험하다.
‘이 정도쯤이야….’
미츠코 사스키의 능력도 뛰어나지만, 위치봉은 연맹의 큰 복덩이다.
4종 수호자의 마법?
그보다는 오묘한 손장난을 즐기는 저 손이야말로 ‘진짜 마법’이다.
키보드의 성능만 받쳐주면 한 손으로 7,000타 정도는 가볍게 소화하는 괴물. 웬만한 보고서는 위치봉이 뚝딱 해결한다.
용신처럼 똑똑한 건 아니다.
그저 계약자 미츠코 사스키의 생각을 읽고 문서로 대신 작성해주는 것뿐이다.
작업 능률로 따지면 거의 스무 명 몫을 홀로 해낸다.
저 위치봉도 괴짜다.
인간을 위해 키보드를 두드리는 괴수라니?
엘퍼러를 위해 적극적으로(그가 볼 때만) 인간을 돕는 중인 아쿠버스 ‘산드라미아 레미’를 제외하고는 유일할 것이다.
“여러 길을 모색해봐야 할 때라고 보이네요.”
“여러 길?”
“계속 엘퍼러에게 끌려다니고 있어요. 대세니 어쩔 수 없다는 건 알지만, 점점 사고들이 그쪽으로만 쏠리고 있더군요.”
“흠….”
“백혈구울은 뱀페스트보다 더한 정신력을 요구한다지요? 뇌가 녹아내리지 않도록 보호해줄 재생형 특수체질도 필수고.”
황진천은 정말 특수한 경우였다.
행운의 여신이 안배해둔 기연을 쫓은 것처럼.
하지만 그걸 인위적으로 똑같이 따라 하려니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기생하는 찰거머리가 뱀페스트 왕이 아니더라도 쉽지 않다.
정신력.
이걸 키운다는 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더구나 중국에서 엘퍼러가 지적한 ‘협객’은 중국에만 해당하는 경고가 아니었다. 모든 나라에서 하는 중인 실수다.
간담이 서늘해지기에 충분했다.
“조건이 까다로워.”
연구를 때려치우고 ‘황진천’을 영입하는 편이 더 낫지 않느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건 엘퍼러와 전면전을 하겠다는 뜻이나 다름없지만.
이번에도 ‘인류를 위해서!’라는 말도 어물쩍 넘어갈 수 있을 리 없다.
“그럼 쉬운 길을 찾아봐야지요.”
“말처럼 쉬웠다면 이 고생을 안 했겠지.”
가더발트 연구는 조용히 계속되는 중이다.
하지만 지지부진하다.
평양 사건 때처럼 여자가 아닌 남자에게 들러붙는 조건은 해명되지 않았다. 한무일의 가더발트에게 입이 있다면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다.
물론, 다양한 시도는 있었다.
정말로 물어봤다.
여자와 계약한 가더발트에게.
『저런 더러운 원숭이에게 기생하느니 죽겠다!』
대체로 비슷비슷한 반응들이었다.
가더발트와 계약한 여성들은 현재 정신병원에 수용되어 있다.
수호자의 극심한 성희롱을 어떻게든 이겨내려 해도 ‘죽을 때까지 영원히’란 진실이 계약자를 절망에 빠트린다.
그런 ‘희생’으로 대략적인 윤곽을 잡았다.
괴수에게 한무일은 ‘대단히 문란한 여성’으로 보인다.
그런데 왜 기생했을까?
이 부분에서 탁 막혀서 진도가 안 나간다.
“맞아요. 쉬웠다면 100년째 괴수에게 밀리고 밀리는 이 지긋지긋한 공포영화를 진즉 돌파했겠지요.”
“...알아주니 다행이군.”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괴수가 있어요. 저의 위치봉도 그렇고.”
말은 참 쉽다.
괴수 중에도 동성애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남자를 좋아하는 특이한 취향이라던가?
하지만 그런 예외는 여태 없었다. 한무일이 기르는(?) 발키지어 ‘펠-쉐어퐁’이 평평한 남자 가슴을 좋아한다는 보고는 들어왔지만….
거긴 뭐든 비정상이니 논외로 치자.
“하고 싶은 말이 뭔가?”
“울프남.”
“늑대인간…?”
“과거의 연구는 모두 참담한 실패와 피해로 끝났지만, 지금은 우리에게 [혼돈]이란 약이 있어요. 괴수를 지배하는 힘이요.”
“...거의 멸종한 괴수라 잊고 있었군.”
뱀페스트 천적으로 유명한 괴수다.
하지만 인간사회에 숨어드는 방식이 글러 먹은 덕분에 6종 이상의 수호자가 거의 박멸시킨 괴수다.
무려 5종임에도 말이다.
뱀페스트가 이렇게 많아진 것도 그런 연유다.
“숭고한 정신력? 손톱만 부러져도 눈물이 나오는 저로서는 모르겠네요. 하지만 그런 인간은 되고 싶지 않아요.”
“...잘 들었네, 미츠코.”
맹주는 이 말만 해줬다.
강인한 정신력을 요구하는 교육은 자유를 억압하는 것과 다르지 않으리라.
하지만 괴수와 살아가는 이 시대에 안일한 마음도 정상일까?
아몬 헤이젤은 떠나가는 미츠코 사스키의 그림자가 완전히 사라지는 걸 확인한 후에 스마트폰을 조작했다.
부재중 통화만 3백여 건.
전부 받았다가는 제명에 못 죽을 것 같아서 미룬 결과였다.
...한국은 왜 전화했지?
괴수대응연맹 맹주는 이 부재중 명단에서 유일하게 빠진 나라, 중국에 통화를 시도했다.
가장 흥분해있을 강대국으로.
< [39화-1] 중원을 찾은 용사 > 끝
ⓒ 파르나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