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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수처럼-140화 (140/287)

< [34화-1] 새우와 함께 춤을 >

[34화] 새우와 함께 춤을

학명: 발키지어(가슴을 밝히는 천사)

서식지: 고산, 여자?

특징: 내 손은 브래지어

위험도: 7종 소형

비고: 가슴은 사랑입니다.

***

목포시. 막연히 그렇게 부른다.

하지만 세계를 주름잡는 정치가와 재력가들은 이 계획도시를 ‘아이언문(Iron Moon)’이라고 부른다.

도시건설에 가장 많이 쓰이는 콘크리트와 시멘트 대신 알루미늄과 강철, 합금 등의 철판으로 도배했다.

물론, 고위괴수에게는 거기서 거기겠지만, 하위괴수는 이 강철의 도시를 마음대로 때려 부술 수 없는 견고함이다.

그뿐이랴?

도시가 올라가는 속도도 그야말로 경이로운 수준이다.

저 아까운 전함들을 통째로 용광로에 넣어서 불순물을 제거한 후에 형틀로 찍어낸다. 그렇게 완성된 ‘주택 A’와 ‘주택 B’를 좌우에서 붙이면 3층 주택이 탄생한다.

소꿉놀이 인형집도 아니고!

하지만 괴수의 힘은 그런 말도 안 되는 작업을 가능케 했다.

단점이라면 ‘아이언문’의 모든 건물이 똑같이 생겼다는 점이다. 흰개미 집처럼 둥그스름한 형태는 꼭 동화 나라의 난쟁이 집을 떠올리게 한다.

투박하지만, 튼튼하다.

『세계에서 가장 안전할 수도 있는 도시』

아이언문의 명성은 그렇게 차츰차츰 퍼지고 있었다.

하지만 어째서 ‘안전할 수도’라는 모호한 표현을 썼느냐면, 이 도시의 지분(持分) 49%를 쥐고 있는 ‘사모님’ 함자가 ‘선지혜’였기 때문이다.

그런 불안감 조성은 전부 입주희망자들의 수작이다.

어떻게든 경쟁자를 줄여보겠다는 심보!

아직 완공되지 않은 도시의 분양신청이 진즉부터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없어서 못 살 지경이랄까.

꼭 한국인이 아니더라도 ‘집세’를 감당할 수 있으면 받아준다.

자본가들은 문팽이와 선지혜의 고삐를 꽉 쥐고 있는 ‘엘퍼러’를 믿고 과감하게 이사를 추진하고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용사!

보증수표보다 더 확실한 신용이다.

『아이언문』

문팽이의 요구에 따라 계획단계부터 총면적이 서울보다 넓은 무리수를 뒀고, 낮은 뒷산 하나 없이 완벽한 평평함을 자랑한다.

도시는 해안을 끼고 있는 반원 형태로, 원의 잘린 부분에 항구와 해수욕장, 양식장, 선착장, 조선소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하지만 서울보다는 수용할 수 있는 인구가 많이 적다.

고층아파트가 하나도 없다는 것도 이유지만, 해양생물인 문팽이의 가호를 받는 도시답게 깊은 수로(水路)가 거미줄처럼 깔리며 많은 면적을 차지했다.

여기에 더해서 농경지.

자급자족 가능한 도시를 만들려니 또 주거지가 줄어든다. 추가로 학교와 병원, 레저시설 등이 첨가되면서 더욱 좁아진다.

특징이라면 승용차 전면 금지!

택배와 이삿짐 트럭, 소방차, 구급차 등만 다닐 수 있다.

그 대신, 자기부상열차와 지하철, 수상버스가 무료(집세에 포함되어 있다.)로 정밀하게 돌아가고, 헬기장과 요트장이 듬성듬성 배치되어 있다.

문팽이?

바다가 있는 남쪽을 바라보면 도시 어디에서든 볼 수 있다.

그런 아이언문으로….

콰광!

작은 인형이 운석처럼 추락했다.

그보다 조금 늦게 날붙이 하나가 빙글빙글 돌면서 떨어지더니 청년의 손에 감기듯 착 쥐어졌다.

그 청년, 무일은 살짝 당황하고 말았다.

순백의 깃털이 빼곡한 한 쌍의 날개를 잃고 땅에 떨어진 발키지어는 죽은 듯이 미동이 없었다.

날개 좀 잘린 정도로?

괴수가 추락사한다는 얘기는 금시초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어린 여자아이네.”

“신체 일부를 잃은 만큼 작게 축소하는 과정에서 어려진 거예요. 제가 이전의 소녀였던 것처럼. 차이가 있다면 이쪽은 목숨이 간당간당하네요.”

그래도 여자랍시고 허리는 잘록했지만, 나머지는 밋밋했다.

대략 7살 전후의 외형을 한 발키지어.

낙하의 충격으로 잠깐 기절했던 것뿐인지 곧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비틀비틀 일어서다가 발을 헛디디며 벌러덩 쓰러진다.

그 뒤로는 숨을 헐떡이기만 할 뿐, 움직이질 않았다.

“뭐가 어쨌든 제압되긴 했네. 음?”

“또 뭐가 오네요.”

“...뒤로 물러서.”

“네. 용사님.”

세포까지 짜릿하게 해주는 [예감]이 온몸을 휘감는다.

무일은 정말 믿기지 않는 속도로 도약해오는 상대를 향해 에쏘드를 휘둘렀다. 깔끔하게 들어간 [반격]은 나무랄 곳 없이 훌륭했다.

하지만 직후, 몸이 붕 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에쏘드가 베지 못하는 건 없다.

그런데 저 상대는 베이다가 말고 역으로 자신이 밀려났다. 물리충격을 85% 흡수해주는 장갑 ‘앙그류 그랑모리’를 끼고도 말이다.

맨손으로 받았으면 팔이 뽑혔을지도 모른다. 정말 뽑히는지 확인해볼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지만.

가더발트가 만지작거려도 곤두선 신경은 그쪽에 완전히 무반응이었다. 그만큼 [예감]이 맹렬하게 울리고 있었다.

이런 적은 카르발트로 불린 이후로 단연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제법!”

상대의 모습을 파악했다.

들어가고 나올 곳이 뚜렷한 여성의 형태. 피부는 반투명한 붉은색 비닐처럼 얇은 껍질로 코팅되어 있다.

그 껍질 위로는 수많은 지느러미가 장식처럼 달려있다.

붉은색 유리갑옷을 입은 여전사(女戰士).

이렇게 표현하면 적합할까.

가녀린 체형이었으나 그 위를 감싼 갑옷 덕에 말랐다는 느낌은 전혀 안 들었다.

괴수답게 얼굴도 미모를 타고났다. 하지만 빈틈없이 눌러쓴 반투명한 투구가 그 미색을 불식시켰다.

머리카락은 완연한 붉은색.

투구 아래로 망토처럼 흘러내려 대지를 질질 끌려다닐 만큼 길었다.

【쉬임프 / 8종 소형】

새우처럼 생긴 갑옷을 걸친 요정. 그 타고난 미색보다는 ‘세계에서 가장 단단한 괴수’로 훨씬 유명하다.

그 견고함은 에쏘드의 특수한 절삭력도 막아냈다.

상대가 강할수록 강해지는 성질.

하지만 쉬임프는 하이블처럼 물리력에 특화된 괴수였다. 그것도 방어에 극도로 치중되어있었다.

그래서 에쏘드의 칼날도 안 먹히는 것이다.

‘쯧. 성가신데.’

온몸이 단단하다는 걸 제외하면 그 흔한 발톱조차 없는 쉬임프는 팔다리를 휘둘러 적에게 타격을 입히는 ‘격투 타입’이었다.

그래서 [예지]도 뛰어났다.

어디서 무술과 격투술도 습득했는지 움직임에 군더더기도 없다. 완전히 막대기로 전락한 에쏘드는 큰 도움이 안 됐다.

그렇다고 쉬임프가 에쏘드를 무시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웬만하면 피하려고 노력하면 그게 불가피할 때는 갑옷을 수직으로 베거나 찌르지 못하도록 방향을 조정한다.

어느새 공방을 주고받길 수차례.

쉬임프의 군청색 눈동자는 고요했고, 굳게 다물어진 연보라색 입술은 그녀가 얼마나 진지한지 잘 보여줬다.

그건 엘퍼러도 마찬가지였다.

“네가 상하이에 있었으면 정말 고전했겠어.”

문팽이의 추종자라는 건 상대의 정체를 깨닫자마자 알았다.

하지만 싸움을 멈추고 싶진 않았다. 그리고 그건 쉬임프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이유는 좀 다른 것 같지만.

문팽이. 완전 대충인 왕이다.

가장 강력한 수하에게 상황설명조차 해두지 않았다!

그 자유로운 통치이념 덕분에 추종자도 어마어마하게 많지만, 정보전달이나 명령체계도 똑같이 엉망이었다.

무일은 그걸 탓할 생각이 없었다.

정말 오랜만에 조우한 강적.

불필요한 싸움은 피하는 게 도리지만, 사냥꾼의 피가 끓었다.

“용사님! 뒤에 꼬맹이!”

날개를 회복할 여력이 없는 걸까?

발키지어는 엉성한 걸음걸이로 뒤뚱뒤뚱 도망치려 하고 있었다. 걷는 법이 서툴던 한세리처럼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이 같았다.

“붙잡아! 이크!”

한세리에게 명령하던 무일은 간신히 쉬임프의 발차기를 막았다. 하지만 공세를 잡자마자 연타로 들어오는 공격은 멈출 기미가 안 보였다.

화려하고 우아하다.

잠시도 두 발을 땅에 머물도록 놔두는 법이 없다. 거의 날아다닌다고 해도 좋으리라.

격투기 게임의 캐릭터처럼 높이 도약하는 건 기본이고, 장식처럼 달린 지느러미로 방향을 전환해서 대각선으로 내리찍는 공중옆차기도 한다!

휘이잉!

옆차기가 막히자마자 한 손으로 땅을 짚고 물구나무서기를 한 쉬임프가 두 다리를 쫙 벌리고는 팽이처럼 돈다.

너무나 충격적인 자세에 그만, 한눈팔고 말았다.

그 벌로, 쉬임프의 발등이 엘퍼러의 팔뚝을 강하게 후려쳤다.

“웃…!”

멀리 튕겨져나간 무일은 비명을 삼켰다.

단 한 방이었지만, 입고 있던 튼튼한 장비와 가더발트의 방어가 단번에 뚫렸다. 그 충격은 팔뚝을 완전히 망가트렸다.

살이 터지고 뼈가 바스러졌다.

왼팔이 너덜너덜해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리고 붉은색 피가 옷을 적셔갈 즈음 놀라운 현상이 발생했다.

피가 다시 몸으로 스며들었다.

전부는 아니었지만, 빈혈로 빌빌거릴 정도는 아니었다. 다행히 뱀페스트 재생력이 가세한 것이다.

‘역시. 사심(私心) 가득한 전투라 많이 딸리네.’

쉬임프의 돌발행동에 정신을 살짝 놓아서 당한 게 절대 아니다!

정의(正義)와 무관한 싸움.

태양신을 향한 믿음 하나만으로 붙으니 아무래도 [예감]이 많이 약했다. 쉬임프의 [예지]에 살짝 밀리는 기분마저 든다.

좋지 않다.

패배를 생각하면 이길 수 있는 싸움도 진다.

그것이 사냥꾼의 [예감]이다.

“미인계로 좀 흥했다고 으스대지 마라!”

대꾸 없이 달려드는 쉬임프를 향해 [반격]했다. 예상대로 에쏘드가 ‘드드드득’ 소리를 내며 껍질을 뚫지 못하고 빗겨간다.

여기서부터 [예지]와 [예감]의 싸움.

쉬임프가 회피하면서 무릎 찍기를 시도한다. 동시에 오른손으로 주먹을 내지른다.

그렇다! [반격]에 [반격]을 가한 것이다!

와락 얼굴을 찡그린 엘퍼러는 파공성마저 들리는 무릎 찍기를 피하고 에쏘드의 진로를 단번에 수직으로 꺾어 올렸다.

그 종착점은 쉬임프의 투구 정중앙.

쉬임프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입술을 깨물더니 내질렀던 오른팔을 회수해서 그 공격을 막았다.

그렇게 서로 두 번씩 주고받으면서 원점.

이 같은 공방을 둘은 벌써 수십 번째 반복 중이었다.

‘개인전(個人戰)에 특화된 괴수란 건가.’

지나치게 성가셨다. 게다가 8종.

도시를 단번에 부수는 무시무시한 능력이 없음에도 8종이다.

그건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 견고함은 8종으로도 깰 수 없다!

바람의 정령, 엘로엘이라면 의외로 쉽게 쓰러트릴 수 있을 것 같지만, 어쩌면 영원한 무승부가 될지도 모른다.

저 껍질은 그만큼 단단하다.

바람으로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게다가 쉬임프가 공중제비나 공중옆차기 등을 하는 걸로 봐서는 일방적인 공방이 될 것 같지도 않다.

허공에 떠도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다고 봐야 한다.

『해양생물』

더 기가 막힌 건, 쉬임프는 바다가 주요무대란 점이다.

인어(人魚) 세이랑도 육지에서는 빌빌거렸다.

그건 아쿠버스도 예외가 아니다. 호수에서 6종, 바다에서는 8종. 하지만 완전한 육지에서는 이 용신의 전투능력이 5종이나 될지 의문이다.

미녀 발전기(發電機)랄까.

즉, 쉬임프가 육지에서 이 정도라면 바다에서는 완전히 신이란 얘기다.

그런데 멀쩡히 땅에서 지면 체면이….

찰칵, 찰칵, 찰칵!

쉬임프의 다리를 덮고 있던 껍질이 위치를 옮기기 시작했다.

보석 루비처럼 아름다운 갑주가 사라진 쉬임프의 두 다리가 새하얀 맨살을 드러냈다. 그 곡선의 아름다움에 현혹될 틈이 없었다.

미치도록 단단한 껍질은 쉬임프의 양손으로 몰리면서 ‘붉은색 검’이 되어있었다.

최강의 방어 일부를 공격으로 바꿨다!

그만큼 방어가 약해졌지만, 다리쯤은 괜찮다고 판단한 것 같다. 어쩌면 이대로는 승패가 나지 않는다고 여긴 걸지도 모른다.

“...완전히 나를 물로 봤네.”

쌍검(雙劍)이란 말이지?

그건 아무래도 좋다. 문제는, 얼마나 만만하게 보였으면 본인의 필승수단인 방어력을 깎는단 말인가!

이쪽도 진지해질 필요가 있었다.

‘사심 없이 간다.’

저 발키지어는 뱀페스트의 음모로부터 ‘인류’를 구하는 일에 꼭 필요하다.

그 ‘정의’를 방해하는 괴수를 쓰러트린다.

단지 그뿐이다.

< [34화-1] 새우와 함께 춤을 > 끝

ⓒ 파르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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