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수처럼-118화 (118/287)

< [28화-4] 유명작가 가라사대 >

‘무언가에 쫓기고 있다?’

세이랑의 외형은 딱 봐도 괴수다.

손발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갈퀴도 아닌 완벽한 지느러미가 달렸다. 미녀의 팔다리 끝에 금붕어 꼬리지느러미가 총 4개 달리 기형적인 신체구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답다.

신장보다 긴 푸른 머리카락, 음란하다고 쓰인 이목구비, 포유동물이라고 주장하는 젖가슴, 다산의 상징인 엉덩이와 그 아래 고혹적으로 뻗은 두 다리.

그렇게 나무랄 곳 없지만, 정점(頂點)은 ‘허리’다.

척추동물의 기능미와 조형미를 완벽하게 소화했다!

근육이라고 할 건 안 보이는 매끈한 허리였지만, 저 잘록한 몸통을 쉬지 않고 움직여 태평양도 순식간에 횡단할 수 있을 것 같다.

...저 허리로 헤엄만 잘 칠까?

그런 여성형 괴수.

인어공주들이 전속력으로 헤엄쳐오고 있다.

“...그렇다고 할 일이 바뀌는 건 아니지.”

조심해야 할 건 하나다.

머리박치기!

하늘에 사는 볼링공이 볼트윙이라면 바다에는 세이랑이 있다.

사냥꾼의 천적인 최면술은 번식기 시즌에 바다를 찾는 ‘인간 남성’의 정자를 쉽게 얻는 용도에 지나지 않는다.

세이랑은 손이 없어서 도구를 쓸 수 없다.

발도 없어서 똑바로 서질 못한다.

물고기라면 당연한 얘기지만, 총탄을 가볍게 막아주는 비늘이 없는 세이랑의 연약한 육체는 ‘무척추 괴수’ 다음으로 방어력이 떨어졌다.

덩치까지 고려하면 더 약할지도?

그럼에도 ‘4종’으로 분류된 건 최면술 때문이 아니다. 4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무인로봇이 활성화되어 있어서 ‘유혹’은 그다지 위협이 못 됐으니까.

덥석!

재주 좋게 세이랑의 머리채를 움켜쥔 카르발트는 그녀들의 돌진력에 더하여 하늘 높이 포물선을 그리며 육지로 날려버렸다.

인어공주는 우아하게 싸우지 않는다.

전설과 동화 등에 나오는 삼지창 같은 건 없다. 두 팔은 남자를 껴안는 용도고, 두 다리는 생식할 때만 벌어진다.

그럼에도 4종.

끔찍하리만치 단단한 돌대가리인 까닭이다!

‘그뿐만은 아니지.’

세이랑이 ‘요정’인 이유는 ‘바다의 가호’를 받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괴수는 신체가 절단되면 그만큼 몸의 크기가 줄어든다. 하지만 세이랑은 바닷속에 있을 때만큼은 ‘불사신’이다.

부서진 육체를 바닷물로 대신할 수 있기에 뱀페스트 이상의 끈질긴 생명력과 재생력을 자랑한다.

약점은 뇌(腦).

하지만 그 뇌는 두개골 속에 있다.

유일한 약점이 유일한 무기인 셈. 그러니 그 방어력과 공격력이 얼마나 대단할지는 물어보나 마나다.

상대가 지나치게 강해서 빛을 못 봤을 뿐.

도망치긴커녕 몰려와 준 덕분에 그물에 낚인 생선 걷어내듯 순식간에 모든 세이랑을 육지로 보내는 데 성공했다.

“원정대가 매일 이런 식이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

계약하고 남는 인어공주도 많을 것 같다.

그 여유분(?)은 서울로 귀환한 후에 인재를 물색하면 되니 처치 곤란 같은 배부른 상황은 좀처럼 없으리라.

당장 의문점은 세이랑이 이상행동을 보인 이유.

그녀들이 도망쳐온 방향으로 달려가서 확인하려던 카르발트는, 이쪽을 향해 상반신만 물 밖으로 내놓은 채 돌진해오는 사내를 보았다.

정정한다.

남성형 괴수였다.

【변강쉘 / 7종 보통】

조개껍데기가 촘촘히 이어진 갑주 비슷한 비늘로 뒤덮인 거대한 청년이었다.

역삼각형으로 딱 벌어진 어깨는 한국 괴수대응본부의 마초 일인자라고 불리는 경비대장 임진철에 버금갔다.

신장은 대략 건물 1층(4m) 높이.

중후한 턱수염이 없는 걸로 봐서는 아직 성장기 변강쉘이었다.

저 무거운 몸뚱이가 맥주병처럼 가라앉지 않는 이유는 온몸에 박힌 조개껍데기에서 끊임없이 물을 뱉어내며 부력(浮力)을 형성한 덕분이다.

변강쉘 주위로 물거품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아아, 너였군.”

세이랑이 도망친 이유는 바로 이 녀석 때문이었다.

딱 봐도 ‘조개 기사’인 변강쉘의 이름이 이렇게 붙은 이유는 간단하다.

녀석은 세이랑의 천적이다.

수컷뿐인 변강쉘의 번식법은 인어공주를 강간해서 씨를 뿌리는 것뿐이다. 그리고 씨를 받은 그녀들은 높은 확률로 죽는다.

태아(胎兒) 대신 볼링공을 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뱃속에 든 변강쉘이 성장함에 따라 몸이 무거워져서 가라앉던가 느려지면서 무리를 이탈하게 되는 것이다.

임신 내내 세이랑은 고통에 시달린다.

변강쉘의 몸을 덮은 조개껍데기는 부드럽지 않은 까닭이다.

‘하나로 만족 못 하고 쫓아온 건가.’

녀석의 왼손에는 머리채 잡힌 세이랑이 있었다.

유일한 무기인 머리를 쓸 수 없는 그녀가 가녀린 팔다리를 허우적거려보지만, 단단한 변강쉘의 몸은 꿈쩍하지 않았다.

침략국의 기사와 망국의 공주님 같은 광경.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세이랑의 겁에 질린 얼굴과 처절한 몸짓은 남자의 영웅심과 보호본능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무일은 이미 [예측]이 끝난 상태였다.

‘약점은 가랑이인데….’

인간처럼 생긴 외형에 속으면 안 된다.

머리카락 한 올 없는 변강쉘의 머리는 장식품이다. 아니, 오장육부(五臟六腑)가 전부 머리에 몰려있다.

음식물을 입으로 먹고 찌꺼기를 코로 뱉어낸다고 보면 된다.

호흡은 아가미 대신 전신호흡!

머리를 제외한 나머지 부위는 뼈와 근육으로 꽉 찼다.

그 유일한 예외는 심장과 생식기가 딱 달라붙은 가랑이다. 조개의 주둥이처럼 생긴 촉수(음경)가 들락날락하는 그 부위만 조개껍데기가 없었다.

남자의 중심은 시원하게 개방돼야 한다는 자연법칙을 충실히 따른 것이다!

솨아아아악!

번식을 방해할 의도가 없었던 무일은 빠르게 후퇴했지만, 변강쉘은 눈앞의 훼방꾼을 놓아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여유로운 오른팔을 앞으로 쭉 뻗으며 돌진해온다.

“쯧.”

짧게 혀를 찬 카르발트는 왼쪽 허리에 메인 ‘카르세리안 레이소’ 모양의 에쏘드를 뽑는 대신 그 옆으로 손을 향했다.

상아색 곡도(曲刀)하고 다른 검은색 직도(直刀).

이러면 힘을 분산시키기 어려워지는 대신 찌르고 베는 동선이 직선적으로 변하면서 시간이 단축된다.

부러지지 않을 거란 장인(匠人)의 자신감.

잔재주 같은 기교(技巧)가 아닌 정면승부를 강요하는 칼날 형태만 봐도 알 수 있다.

어디서 이런 오만함이 나오는 걸까?

『스콜레옹 포르소』

무게를 무시한 흉기가 빠르게 개발되고 있으나, 아직은 ‘세계에서 2번째로 날카로운 검’이라는 칭호를 잃지 않은 MID 절단기.

바로 그 ‘스콜레옹 포르소’이기에 가능하다.

일본의 용신 ‘야미르’가 선보인 24세기 최고의 걸작!

가격대성능비를 조금은 고려한 영국의 용신 ‘와이츠’랑 달리 오직 성능만 따진 결과물답게 일단 소유하고 나면 그 능력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이거다, 싶은 끌림은 없지만….’

여자친구를 처음 쥐었을 때처럼 감동은 없었다.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너무 쉽게 얻은 탓에 애정 같은 게 없다는 푸념에 가깝다. 한무일이 여전히 ‘카르 4세’와 ‘카르발트’를 고집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이미 ‘에쏘드 계약자’로서 달리 불려도 이상하지 않은 그였다.

미국의 ‘마이티가이’라던가…?

본인 의지와 관계없이 언젠가 바뀌겠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푸화아아아!

파공성과 함께 물살을 가르며 변강쉘의 4m 덩치가 전방을 휩쓸고 지나갔다.

순수한 힘 싸움을 하고 싶다는 마음도 잠깐.

하지만 쉽게 가기로 했다.

“원망하지 마라.”

변강쉘은 ‘7종 괴수’로 책정되어 있지만, 그건 무턱대고 싸우는 ‘수호자 vs 야생괴수’의 싸움이거나 ‘사냥꾼 vs 야생괴수’일 때의 얘기다.

약점을 알고 단번에 공략할 수 있는 자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

첨단무기가 일절 통하지 않는 외피?

뻔히 공략법과 약점을 놔두고 부서지지도 않는 껍데기에 칼질하며 용쓸 필요는 없다. 안다면 써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알지만 공략이 어렵다고?

맞는 얘기다.

저 거대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작은 방울과 고추. 조개껍데기로 보호받지 않는 부위의 면적은 당구공 하나 간신히 들어갈 정도로 비좁다.

심지어 각도도 중요하다!

변강쉘의 심장과 뇌는 거기서도 조금 안쪽에 있는 까닭이다.

푹!

놀란 변강쉘이 소심하게 손바닥으로 가려보지만, 카르발트가 힘껏 차올린 충격이 손 너머로 중심을 흔들자마자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놓치고 말았다.

그대로 끝.

틈새가 보이자마자 칼집에 끼우듯 단숨에 스콜레옹 포르소를 거인의 가랑이 깊숙이 밀어 넣었다.

같은 수컷으로 잠시 동정해보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입과 눈을 쫙 벌리며 경악하던 변강쉘의 거구가 빠르게 힘을 잃더니 맥주병처럼 빠르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녀석의 손아귀에 붙잡혀있던 세이랑도 마침내 도망쳤다.

‘나름 신사였는데….’

세이랑을 쥐고 있던 왼팔도 동원했다면 좀 더 성가셨을 것이다.

하지만 변강쉘은 ‘욕심’을 안 버렸다.

두 다리를 이용한 발차기도 나름 위협적이었지만, 팔처럼 유연하진 못했다.

그 결과가 이거다.

유일한 공격수단인 오른팔로 약점인 가랑이를 가린 채 허둥대다가 일방적으로 농락당하다가 죽었다.

이게 무슨 7종이냐!

...라고 할 만큼 허망한 최후였지만, 현대무기로 이 녀석을 이겨보라고 하면 레드군보다도 불가능에 가깝다.

(반장님.)

(네.)

(제가 현재 있는 위치를 지도에 표시해주십시오.)

(시체회수인가요?)

이젠 7종이 쓱싹 처리돼도 그러려니 받아들이는 최이슬이었다.

인류가 어떻게 대적할 수 없다고 지정한 7종부터는 국가재난에 속하는데 말이다.

(버리기 아까운 괴수죠.)

거의 모든 괴수의 사체(死體)는 쓸모가 없다.

타이어처럼 질긴 육질을 식용으로 쓰려면 이빨을 합금으로 교체해야 할 것이다. 그나마 뼈는 종종 쓰이지만, 부식이 잘 돼서 버리긴 마찬가지.

아무리 방부처리 해도 얼마 못 가는 탓이다.

비싼 돈 들여 힘들게 가공해봐야 금방 못 쓰게 되니 아예 수집을 포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몇몇 예외인 괴수가 있다.

부식은 잘 된다.

하지만 가공이 거의 필요 없는 원자재로 바로 사용 가능한 몇몇 괴수는 챙기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중 하나가 ‘7종 괴수 변강쉘’이다.

맛있는 조갯살로 꽉 찬 몸은 버릴 게 없고 온몸을 감싼 조개껍데기는 하나하나가 훌륭한 보호구다.

접착제로 옷에 붙이면 그걸로 장비 완료!

호버크라프트가 정박해있는 해안가로 귀환하는 무일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하지만 이상한걸.’

한국에 변강쉘이 출현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 ‘조개 거인’은 세이랑이 많이 서식하는 대서양에서 주로 활동한다.

당연히 절대적인 건 아니지만, 수심이 겨우 45m밖에 안 되는 이 인근 해역을 어슬렁거리는 건 확실히 이상했다.

아직 어려서 그런 걸까?

변강쉘 성체(成體)는 8m에 육박한다. 하지만 이 녀석은 그 절반밖에 안 되는 유생(幼生)이라서 얕은 황해도 좁다고 생각 안 했던 걸지도 모른다.

“주인님!”

페이 링이 후다닥 달려왔다.

그러면서도 수건으로 무일의 몸에 묻은 바닷물을 닦는 능숙함은, 주인에게 헌신하려는 하녀처럼 지극정성이었다.

하지만 단순히 마중 나온 표정은 아니었다.

“왜?”

“시링이 울면서 전화해왔어요.”

“걔가 왜?”

생일파티 이후로 종종 시링 팽하고 영상통화를 한다.

당연히 그는 늘 받는 입장이었다.

주로 목욕 도중에 연락해서 이것저것 다 보여주는 그녀 덕분에 눈이 호강하곤 하지만, 전에 어린 최은비에게 걸려서 진땀 흘렸던 적이 있었다.

“난리가 났데요!”

“...중국에 슈퍼달팽이가 나타나기라도 했데?”

“어떻게 아셨어요?!”

“그야 찍었지. 그런데 정말이라고?”

“네.”

이놈의 감은 안 좋은 방향으로 척척 족집게다.

페이 링의 설명이 이어질수록 카르 4세의 눈빛은 신중해졌다. 페이 링이란 한 다리를 걸치긴 했지만, 중국의 의도가 뻔히 보였던 탓이다.

그렇다고 외면할 생각은 없었다.

인류를 위한 길에 계산이나 정치는 필요 없다. 아니, 그런 잡다한 문제는 나중에 생각해도 늦지 않다.

가만 놔둬도 선지혜가 알아서 해주지 않을까.

“용사님! 이 생선들을 이제 어쩌죠?

생포한 모든 세이랑의 목에 튼튼한 목줄을 채워 질질 끌고 온 한세리였다.

같은 여성에게 유독 잔인한 미모의 노예상인이 이럴까!

도저히 ‘용사의 정령’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 탓에 잠시 말문이 막혔던 용사가 쥐어짜듯 말했다.

“아무리 급해도, 하던 일부터 마무리하자.”

< [28화-4] 유명작가 가라사대 > 끝

ⓒ 파르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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