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화-1] 유명작가 가라사대 >
[28화] 유명작가 가라사대
학명: 이구하마(거대한 입의 거룡)
서식지: 늪지, 공장
특징: 한 번 물면 놓지 않습니다.
위험도: 6종 대형
비고: 방사능을 흡수해요.
***
에쏘드가 가출하면서 초상집 분위기였던 중국.
다행히 그 공백은 무법자의 천국이었던 무림을 병합하면서 상쇄할 수 있었다.
러시아와 인도는 움츠러들었고 내정은 안정됐다. 뭐만 하면 부숴대던 무림인들이 통제되면서 중국은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다.
그런 대국(大國).
다소나마 고대의 자존심을 회복한 중국의 국가주석 ‘첸지 죠’는 국민들의 뜨거운 성원에도 불구하고 표정은 굳어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도 정치인이기 이전에 중국인이었던 까닭이다.
“페이 링이 용신을…?”
그냥 용(龍)이나 용왕(龍王)도 아니고 무려 용신(龍神)이었다!
뛰어난 사냥꾼은 많지만, 기술력에서 극심한 열세에 시달라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가장 절실한 수호자가 바로 ‘용신’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용신은커녕 이무기조차 외면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에는 있는 ‘용의 계약자’를 중국에서는 한 명도 확보하지 못한 것이다. 그랬는데 드디어 나왔다.
중국인에서 ‘용의 계약자’가 마침내 나온 것이다.
“하지만 편법이었습니다, 주석.”
중국 괴수대응본부 정보과 수장이란 의미심장한 직책에 있는 ‘위진 창’ 정보과장은 자책할 필요 없다는 의미로 그의 말에 덧붙였다.
한국 원정대가 출발한 첫날.
괴수를 쓰러트린 후에 입맛대로 계약시키는 ‘카르발트’의 행동에 경악했던 선진국들은 당일 ‘오후’에 또 한 번 전율했다.
다른 괴수도 아닌 무려 용신이랑 계약을 성사시켰다.
그 의미는 특별하다.
인류에게 더는 때어놓을 수 없는 MID 기술의 중추인 용신이랑 마음대로 계약할 수 있다는 건 ‘기술침략’의 전조(前兆)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건 아니었다.
“나도 아네, 과장. 인연이 있었다고….”
카르발트는 고백했다.
대화(?)로 이어줄 수 있는 건 ‘5종’까지고 ‘6종’부터는 아무리 그 미모가 출중해도 인연이 있어야 계약할 수 있다고 말이다.
안타깝게도 용신은 최소가 ‘6종’이었다.
와이츠 하나로도 세계 정상을 한 번 찍었던 대한민국에 등장한 2번째 용신. 인류적인 측면에서는 축하할 일이나 대국적으로 보면 위험하다.
그런데 더는 늘릴 수 없다고 말뚝을 박았다.
안도하면서도 아쉬워한 건 중국만의 생각이 아닐 터였다.
“페이 링의 정기보고로는, 수호자 아쿠버스는 계약자보다 카르발트를 더욱 잘 따른다는 모양입니다. 이 또한 인연의 영향 같습니다.”
정기보고라고 표현했지만, 실상은 여자들의 수다였다.
친한 동생인 ‘시링 팽’이랑 곧잘 국제전화하는 페이 링의 대화를 도청한 정보과에서 분석한 것이다.
그러지 말고 채근할 법도 하지만 중국 정부는 하지 않았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너무나 강했기에 자극해서 좋을 게 하나도 없었다.
“에쏘드는?”
“메이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걸 잘 지낸다고 할 수 있을지…. 저희가 그녀에게 해줬던 대우에 비하면 정말 찬밥신세입니다.”
그래도 정령은 좋단다. 용사님이 뭐라고 하든 호감도는 ‘MAX’에서 떨어질 기미가 없다.
메이 때는 상상도 못 했던 애교와 앙탈.
어느 나라에서나 ‘갑’의 위치였던 에쏘드가 대한민국에서는 완벽한 ‘을’이었다. 용사님에게 지극정성이란 표현도 부족했다.
페이 링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랑의 노리개가 된 여자아이 같다고 한다.
“깜빡 속았지. 카르발트의 비공식 신고가 아니었다면 몰랐을 거야.”
외모와 성격은 물론이고 이름마저 바꿨다.
에쏘드가 집을 옮긴 사례가 없다 보니 분석력이 남다른 중국 정보과에서도 놓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아무래도 좋았다.
어차피 적임자도 없어서 골머리를 앓던 참이다.
그보다는 ‘용(龍)’이 역시나 신경 쓰이는 첸지 죠였다.
오랫동안 국가주석을 보좌해온 위진 창 정보과장은 그 심정을 눈치챘는지 화제를 바꿨다.
“...주석. 제안할 일이 있습니다.”
“뭔가.”
“용신은 무리지만, 용이라면 5종 중에 다수 있습니다.”
“아! 그 말은…?”
첸지 죠는 눈을 크게 떴다.
중국에는 단 한 명도 없는 용의 계약자.
고대부터 용을 숭상해온 중국은 근대부터 쭉 용이랑 계약하고자 무수히 많은 노력과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 와중에 죽은 사냥꾼 숫자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하지만 계속된 실패!
중국 사냥꾼들의 [예감]을 지탱해주는 믿음은 ‘국가’에서 나온다. 나라가 곧 신앙의 대상인 공산주의의 폐단이자 장점이었다.
그런 나라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용’에게 버림받았다고 믿은 순간부터 사냥꾼의 능력은 급감하고 말았다.
“아직은 자력(自力)으로 시도할 참입니다.”
무림인들이 초절정고수라고 부르는 노블레스.
흡혈하면 혼자서 5종 괴수도 격퇴할 수 있는 그들은 정부의 요청대로 착실하게 [업보]를 쌓아가는 중이었다.
카르발트가 [업보]로 괴수를 압도하여 얌전하게 만들었던 것처럼.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대참사로 [업보]의 위험성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용의 계약자’에 강하게 집착하는 중국인들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들은 그렇게 해서 용을 얻을 수 있다면 예정된 피해와 죽음도 감수하겠다는 의지로 충만했다.
이것이 현재의 중국.
늘 타산적으로 움직이던 무림이 가담하면서 과거보다 몇 배는 강해진 전력과 협력을 보이고 있었다.
“명문가에서 드디어 진가를 드러내는군.”
유교사상이 뿌리 깊게 내린 중국은 고대부터 ‘핏줄’을 중요시했다.
그 결과물이 수많은 무가(武家).
계약자 앞에서는 벌벌 떠는 주제에 자존심만 괜히 높아서 늘 민폐 덩어리였던 그들이 마침내 빛을 보게 됐다.
중국은 그 많은 인구수 이상으로 특이체질도 많았다.
무림에서 ‘천음절맥(天陰絶脈)’이나 ‘구양절맥(九陽絶脈)’ 같은 희소성 높은 체질을 높게 쳐주는 풍조와 문화가 그대로 이어진 덕분이다.
거기에 더해진 막대한 수의 사냥꾼.
민간인까지 징병하는 강수를 둬야만 했던 한국이랑 달리 중국은 ‘뱀페스트 지배자’가 넘쳐나고 있었다.
역으로 뱀페스트가 모자랄 지경!
한국에서 수입해와야 하는 게 아니냐는 농담이 오갈 정도다.
“과거보다 4배 이상의 국력 강화를 이뤘습니다.”
노블레스를 도입한 나라들이 대체로 2배쯤 강해진 거에 비하면 압도적인 성장세였다.
특이체질이 많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것이 공산주의.
약자고 소수에 해당하는 1종, 2종 수호자를 토벌하고 계약자는 노블레스의 아내로 두셋씩 강제로 혼인시켰다.
아이도 낳고 피도 제공하는 일석이조(一石二鳥)를 노린 것이다.
다른 나라 같으면 큰 반항을 불렀을 텐데 ‘국가를 위한 희생’이란 한마디로 모든 게 무마되고 국민들도 동참한다.
대한민국 와이츠랑 전혀 다른 방식.
힘들게 ‘게임 바보 만들기’란 수단으로 멀리 돌아서 간 용신이랑 달리 전광석화였다.
“과장.”
“네.”
“이 기세로 공중요새부터 이번에야말로 성공했으면 하네.”
“아! 훌륭한 혜안이십니다, 주석!”
단합도 안 됐고 국력도 모자라서 실패했던 웨일풍 공략. 심지어 미국의 ‘하늘 고래’보다 커서 3차례나 큰 손실만 입은 채 막을 내렸다.
하지만 전력이 무려 4배! 협동은커녕 견제를 심하게 받았던 이전 토벌대를 떠올리면 30배 가까운 병력투입도 가능하다.
웨일풍 공략은 사냥꾼과 현대무기로만 해야 한다.
거대한 고래의 몸속에 서식하는 괴수뿐만 아니라 ‘서식지’ 자체를 파괴하는 수호자에게는 맡길 수 없는 일.
이제 그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미국이 자랑하는 공중도시보다 거대한 공중요새가 중국의 품으로!’
여기에 편대(編隊)처럼 비룡(飛龍)을 상주시킬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정보과장은 욕심부리지 않았다.
웨일풍을 쓸 수 없어서 여태 천덕꾸러기였던 ‘7종 계약자’가 마침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운송수단, 전략무기가 되려 한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에쏘드를 잃었지만, 앞으로 좋은 일만 있길 바랐다.
늘어난 전력만큼 농지와 집터를 확보할 수 있을 거고 인구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식의 선순환이 계속된다면?
고대의 국경과 국토 이상을 회복하는 것도 이론상으로는 꿈이 아니다.
“하지만 좀 무섭군.”
“뭐가 말씀입니까?”
“카르발트.”
“......”
“이미 위기본능의 정점에 이른 사냥꾼이 양심선언을 하며 가진 모든 정보를 공개했네. 그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좋겠는가?”
첸지 죠 국가주석은 순수한 기우를 담아 물었다.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존재.
비밀병기 에쏘드도 잃은 중국이 단 몇 개월 만에 몰라볼 정도로 강해질 수 있었던 원동력은 모두 ‘한 남자’의 희생 덕분이다.
그렇다.
이건 ‘희생’이다.
기술과 정보를 독점할 수 있는 특권을 포기하고 인류에 헌신하려는 ‘진짜 용사’만이 할 수 있는 어리석음의 극치.
뼛속까지 정치인인 첸지 죠는 그렇게 생각한다.
“숨기고 있는 게 더 있을 거란 말씀입니까?”
충성심 하나는 으뜸인 위진 창은 살짝 불쾌감을 담아 되물었다.
카르 4세는 분명 타국의 인물이다.
하지만 그런 걸 떠나서 같은 인간으로서 어리석다고 평가하기 이전에 그를 존경했다. 같은 상황에 놓였다는 자신은 절대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지금도 정보과장은 정보를 감추기 급급하다.
그런 자신이 인류를 위해 강력한 지식과 비결을 공개할 리 없다.
“아니. 그가 감추고 있는 게 없다는 건 아네.”
부하의 실망하는 표정을 보고 손바닥까지 흔들어 보이며 황급히 정정하는 주석.
올곧은 용사가 얼마나 호구이면서도 강적인지 실감했다.
사람들은 남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는 용사를 비웃고 이용하려 든다. 그러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동경하고 질투한다.
민심을 휘어잡는 존재.
정치인에게는 가장 요리하기 쉬운 대상이면서도 힘든 인물상이다.
“그럼…?”
“정보공개를 하고도 그는 여전히 독보적이지. 에쏘드를 매료시킨 그 터무니없는 희생정신은 따라 할 수 없는 요소니까.”
에쏘드 한세리만이 아니다.
특수체질도 아닌 한무일은 여전히 뱀페스트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
진즉 부화한 거머리는 숙주의 심장에서 꼼짝달싹 못 하고 있다. 여성의 피를 아직 빤 적이 없어서 그렇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뱀페스트는 부화한 순간부터 숙주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그 정신력이 두렵다는 말씀이시군요.”
“카르 4세가 공개한 모든 정보를 우리는 쉽게 되짚어갔지. 하지만 가더발트 계약은 실패했고 [업보]라는 걸림돌에 막혔네.”
필요하다면 산맥을 없애고 바다도 메꿀 수 있는 강대국들이 유일하게 똑같이 재현할 수 없는 것은 정신력뿐.
이건 흉내 내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불순한 동기 없는 마음이란 그만큼이나 난해하고 섬세한 녀석이었다.
“정신력이 실패 원인이라고 보시는 겁니까.”
“그렇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미국처럼 ‘마이티가이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됩니다. 태어난 순간부터 용사로 성장시키는 양육계획이지요.”
“아니. 그런 인위성은 실패한다고 보네.”
시링 팽은 말했다.
카르 4세는 훈련의 일환(一環)으로 여기저기 둘러본다고 말이다.
놀이터, 유치원, 아이들….
그건 개방된 사고 속에서 형성된 믿음이란 반증이다. 그리고 그의 콩가루 집안도 어느 정도 보탬이 됐을 것이다.
나는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이런 식의 반항심리가 성장기에 큰 영향을 줬을 게 뻔하다.
“하지만 달리 방도가 없잖습니까.”
“있네.”
첸지 죠는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미국은 인공적인 환경을 조성한다는 수단을 고안했지만, 거기에 편승한다면 성공하더라도 뛰어넘을 수 없다.
모든 나라의 인재들이 ‘카르발트’의 발끝에도 못 미치는 것처럼.
국가주석은 호출버튼을 눌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여성이 이 비밀회의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겉보기 나이는 20대 초반. 자연미인이었다면 능히 8종 계약자도 됐을 거라고 생각되는 청순미가 돋보이는 성형미인이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주석각하. 그리고-.”
“자네는…!”
“멀찍이서 몇 번 인사드린 게 전부인 저를 기억해주시는군요, 정보과장님.”
“판판 소!”
현재는 유명한 작가님이 된 옛 부하의 이름을 외치는 위진 창이었다.
이 여인은 아주 오래전부터 카르 4세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정보과장은 첸지 죠의 계획을 깨달았다.
그 시선을 기분 좋게 받아넘긴 국가주석이 말했다.
“요리는 요리사에게, 약은 약사에게. 그에 대해 잘 아는 그녀라면 좋은 글이나 의견이 있을 거라고 생각되어 초청했지.”
< [28화-1] 유명작가 가라사대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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