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장-3] 저주받은 사냥꾼 >
주인과 노예의 대화를 주워들은 대책반장은 그저 멍했다.
괴수를 집에서 길러? 그것도 7종을?
특공대장의 집이라고 한다면 여의도 한가운데에 위치한 괴수대응본부 특공대 막사다. 거기서 7종 수호자가 폭주하면 단순한 대참사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 위험성이 어떤 수호자든 마찬가지라고 넘어가더라도….
괴수는 괴수의 생활에 어울리는 보금자리가 있는 법이다. 그런데 인간의 편의에 맞춰진 집으로 불러들인다는 건 문제가 있다.
그러니 특공대장이 그냥 해본 소리라도 믿고 싶다.
‘...공감은 조금 되지만요.’
복잡한 대도시를 활보할 수 있는 수호자는 많지 않다.
박선영의 엘로엘이나 윤소영의 레드군은 정말 편하게 지내는 경우다.
대다수 수호자는 건물마다 의무적으로 설치된 ‘괴수용 테라스’라고 불리는 지지대를 뛰어넘으며 이동한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형’은 서울 안으로 들이지 못한다.
수호자가 못 들어오면?
당연히 계약자가 수도권 변두리로 나가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여자들이 좋아하는 백화점은 전부 시내에 있다는 비극이….
초대형 괴수는 건물 안으로 따라 들어올 수 없어서 호위로도 매우 부적합하다. 와이츠처럼 비행이 가능하다면 또 다르지만.
즉, 작은 수호자가 편하다.
국가적인 측면에서는 도시의 병풍이 되어주는 커다란 수호자가 좋지만 말이다.
“소형을 고집할 거면 역시 인간형이 답이지.”
“주인님. 안 보이는데요.”
홀로그램에 ‘소형’이 조금 있긴 했지만 ‘인간형’이라고 부르긴 힘들었다.
카르 4세는 고위괴수들을 쭉 훑어봤다.
이리저리 방랑하는 괴수는 6종이 대부분이고, 7종부터는 자신만의 영역을 갖고 그 안에서 잘 나오지 않는다.
이 또한 괴수마다 개인차가 심해서 그다지 신빙성은 없지만, 대체로 지켜지는 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레이더가 만능은 아니다.
“인간형의 특징은 레이더로 못 잡아낸다는 거야. 멀리서 보면 추방자랑 다를 게 없거든. 뱀페스트도 그렇고. 백혈구울은 인간을 완전히 탈피해서 잡히지만.”
“그럼 어쩌죠?”
“공백이 큰 장소를 수색해봐야지.”
8종 괴수들은 매우 넓게 띄엄띄엄 분포되어 있다. 그리고 7종은 그 영역 안에서 좀 더 조밀하게 퍼져있다.
그런데 그 사이사이마다 단추가 떨어진 것처럼 공백인 지역이 간혹 있다.
레이더로 못 잡아내는 ‘7종’이 있다는 뜻이다.
“주인님. 제가 계약할 수 있을까요?”
페이 링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 광대한 중국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7종 계약자’가 될 거란 자신감과 믿음은 아무리 애써도 안 생겼다.
그녀는 전쟁고아였고 아미파에서 주워 기른 계집일 뿐이다.
시링 팽처럼 대단한 가문도 아니고 모친이 미인이었는지 확인할 방도도 없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미모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카르 4세는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안 되면 6종도 괜찮아. 말이 통하는 인간형이기만 하면 돼. 응?”
말하면서 문뜩 떠오른 괴수 때문에 손뼉을 딱 쳤다.
어째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시링 팽의 미모가 아깝긴 하지만, 꼭 7종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대책반장 최이슬의 말처럼 ‘몇 종’이냐는 중요한 게 아니다.
얼마나 인류에 보탬이 되느냐가 관심사다.
“왜요, 주인님.”
“아주 괜찮은 괴수가 생각났어. 여기서 거리는 좀 되지만 그만한 가치는 충분해. 용신(龍神)이니까.”
“용신이요?!”
페이 링은 두 눈을 크게 뜨며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중국인들이 얼마나 ‘용(龍)’에 집착하는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그건 한국인의 노예가 된 그녀도 예외가 아니었다.
‘인간형 용신이라면….’
괴수에 대해서는 잘 몰라도 용은 잘 안다고 자부하는 페이 링이다.
주인님이 말할 조건에 부합하는 ‘용신’은 단 하나뿐이다.
하지만 그건….
“주인님. 인간형 용신은 7종뿐인데요.”
“음? 6종 아니었어?”
“아니요. 아쿠버스는 7종 맞아요. 전투력은 분명 6종 턱걸이지만, 물에 산다는 지리적 이점과 타고난 지혜는 7종으로 불리기에 합당하죠!”
“그럴 리 없는데….”
무일은 곧바로 백과사전을 검색했다.
아, 그렇군.
아쿠버스를 보유한 선진국(덤으로 중국)들은 7종이라고 명시해놨다. 하지만 없는 나라에서는 질투심의 발로로 6종으로 격하해놨다.
한국은 당연히 후자다.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용신 ‘와이츠’가 있기에 질투라고 할 것까지는 아니지만,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법이다.
결국,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괴수대응연맹에서도 ‘6종’으로 책정했다.
【아쿠버스 / 6종 소형】
가장 가까운 예로 일본에도 ‘아쿠버스 계약자’가 있다.
그 용신의 대표작이 ‘모짜리나 바글버글’이다. 세계의 수많은 남정네를 구원해준 몰래카메라의 창시자인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남성형’일 것 같지만, 아쿠버스는 명백한 ‘여성형’이다.
몽마(夢魔)의 기원이라고 불리는 아름다운 괴수.
(세웅아. 지금부터 ‘금강호수’까지 달린다.)
(알겠습니다!)
호버크라프트 운전기사 문세웅은 군말 없이 따랐다.
지리적으로 보면 강원도 설악산 위쪽.
우주에 사는 괴수가 4차 세계대전 기념(?)으로 대한민국 금강산을 폭격해서 커다란 크레이터를 만들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커다란 호수가 형성됐다.
그게 ‘금강호(金剛湖)’다.
꽤 먼 거리고 길이 험난하리라 예상되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대책반장님.”
“...네?”
“맘모슨이 길을 뚫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부터 야생괴수의 습격에 대비해야 하니 현장지휘를 부탁합니다.”
“네!”
대한민국에 ‘용신’이 둘로 늘어날 절호의 기회다.
최이슬은 특공대장이 부탁하지 않더라도 꼭 도와주고 싶었다.
“용사님! 같이 가요!”
패배뿐인 카드게임에서 빠져나올 기회를 모색 중이던 에쏘드 한세리는 도망치듯 뛰어와 계약자의 팔을 껴안았다.
왜 따라왔지?
물질세계로 꺼내놓으면서 ‘버프’는 다 들어왔다. 그런데 호버크라프트 안에 있지 않고 이렇게 또 매달리는 이유가 뭔지 알 수 없었다.
“...용사는 소설처럼 민폐녀를 안고 싸워야 한다는 건가.”
“저, 민폐 아니에요!”
“그럼?”
“물리적으로 가까이 붙어 있을수록 용사님은 강해져요. 어떤 식으로 강해질지는 상대에 따라서 달라지겠지만요. 그리고….”
“그리고?”
“피가 더 필요해요.”
네가 흡혈귀냐는 핀잔에 한세리는 서둘러 변명했다.
그녀의 역할은 ‘용사의 보조’다.
전투능력이 없는 대신 용사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한다. 귀찮은 청소, 빨래, 요리 같은 건 기본이고 ‘괴수의 피’로 필요한 물건도 만든다.
그 물건에는 ‘용사의 전투복’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다.
“얼마나 튼튼한데?”
“그건 재료로 쓰인 괴수의 피에 따라 달라요.”
한세리가 굳이 양도 적은 ‘백혈구울’의 피로 육체를 구성한 이유도 그 때문이라고 한다.
백혈구울의 피는 따져보면 ‘미녀의 피’다.
이걸 재료로 하면 여성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할 수 있기에 적은 양에도 불구하고 선택했다는 것이다.
검 밖으로 나올 수 있는데 안 나오면 용사님이 진흙땅에 담가버린다는 협박도 주효….
여기서 아름다움이란 외관이 아닌 페로몬이다.
어떤 남자든 친절하게 만드는 힘!
이상한 집념이라고 중얼거린 계약자는 또 질문했다.
“뭐든 만들 수 있어?”
“살아있는 생명체와 복잡한 전자제품은 못 만들어요. 흉내라면 가능하지만요.”
“본질은 피라는 거군.”
“네.”
“피를 구하러 따라온 거고.”
“그것도 있지만, 한무일 용사님이 좋아서요.”
그에게는 에쏘드라면 절대 거부할 수 없는 향기가 난다.
평양에서 카르 4세가 남자라는 걸 알자마자 중국의 에쏘드 메이가 미련 없이 가출한 것도 이 때문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순도 98% 용사!
부족한 2%는 성품(性品)이다.
용사라면 당연히 미녀를 포기할 줄 몰라야 한다. 그런데 한무일은 견고한 정신력으로 틀어막고 취미인 애니메이션으로 대리만족 중이다.
용사답지 않은 유일한 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용사 싱크로율’은 경이로운 수준이다.
“현재 장비보다 방어력을 올리려면?”
에쏘드의 사랑 고백에도 시큰둥하게 할 말만 하는 계약자였다.
귀엽게 볼을 부풀리며 불만은 대신한 한세리가 답했다.
“가더발트가 싫어해서 힘들 것 같아요.”
“하아?”
“용사님의 몸은 가더발트가 내 땅이라고 선포한 영역이에요. 제가 간섭하면 바로 파괴할 거예요.”
“즉, 공짜 전투복은 무리라는 거네?”
“네. 저도 좀 당황스러워요.”
중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다 뒤져도 이런 경우는 없으니 당연하다.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 카르 4세가 말했다.
“내 에쏘드는 애물단지란 거군.”
“너무해요! 으아앙!”
중국에서는 전투복 하나만 만들어줘도 황송해 했다.
누구나 그녀에게 친절했기에 무시당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팔짱이라도 해주는 날에는 계약자가 감격의 눈물을 글썽였다.
분명 그랬는데!
새로 맞이한 용사님이 쌀쌀맞았다.
그의 이상형을 실현한 미소녀인데도 예쁘다는 칭찬 한마디 없다. 심지어 바쁘다면서 어린애랑 카드게임이나 하라며 쉬쉬하는 추세다.
“...울지마. 착하지, 세리.”
“훌쩍!”
칠칠 맞은 콧물은 ‘고결한 미소녀’답게 흘리지 않았지만, 코가 새빨개진 에쏘드가 ‘피잉!’이란 귀여운 소리를 내며 숨을 들이켰다.
무일은 미안하다고 연신 달래며 그녀의 등을 토닥이고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어린애에게 무조건 약한 용사다운 모습이었다.
어쩌면 한무일의 이상형은 ‘미숙한 소녀’일지도 모른다고 한세리는 생각했다. 그게 아니더라도 이편이 더 유리해 보였다.
그가 꿈꾸는 ‘완벽한 숙녀’의 모습은 돼봤자 찬밥신세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에쏘드는 배시시 웃으며 눈을 감았다.
‘외모보정은 필요 없겠네요. 아웅, 좋아….’
자신을 달래주는 손길이 너무나 기분 좋다.
어차피 백혈구울의 피를 당장 구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말이다. 물건이랑 달리 육체는 성질이 다른 피끼리 잘 합쳐지지 않는 까닭이다.
한세리는 괴수의 피를 변형해서 옷만 걸치기로 했다.
“쉬이이이! 쉬이이이!”
파충류 계열의 거대한 괴수가 빠르게 접근해왔다.
친오빠처럼 다정하게 한세리를 보듬어주던 그대로 고개만 돌린 카르발트와 괴수의 눈이 딱 마주쳤다.
터무니없는 [업보]를 보고 괴수가 움찔했을 때는 이미 ‘카르세리안 레이소’가 미간 깊숙이 박힌 후였다.
하지만 생채기 수준이었던지 괴성을 지르며 계속 돌진해왔다.
괴수의 마음만은 분명 그랬다.
쾅!
반대방향으로 그 거대한 육체가 붕 뜨며 나뒹굴었다.
괴수는 똑똑히 보았다.
날개도 없는 ‘털 없는 원숭이’가 이마에 박힌 꼬챙이까지 모든 물리법칙을 무시하고 일직선으로 날아오는 광경을!
“용사님? 이건 분실한 집을 소환하는 능력인데요.”
용사의 등 뒤에서 목을 껴안은 채 업혀 있던 정령이 항의했다.
하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로켓처럼 쏘아져 날아가 괴수의 머리를 후려친 무일은 박힌 검을 회수하고는 뻔뻔하게 대꾸했다.
“주인이 직접 찾아가면 집도 좋아할 거야.”
“매몰차게 던져놓고 그런 말씀을 하셔도 말이죠….”
거대한 도마뱀 괴수는 어떻게든 반격해보려고 애썼지만, ‘[반격]의 대가’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덩치가 큰 덕분에 오래 버티긴 했지만 정말 시간문제였다.
아니. 그 시간조차 용납하지 않았다.
여기저기 베인 상처에서 흘러내려 땅에 고인 ‘괴수의 피’가 한세리의 손에 닿자마자 ‘거대한 창’으로 돌변했다.
그 일회용 무기를 자연스럽게 거머쥔 카르 4세는 한 손으로 힘껏 내던졌다.
정신감응 중인 수호자에게 웃으며 대꾸했다.
“자자, 좋게 생각해. 변변찮은 세리도 전투에 보탬이 되잖아.”
“분명 칭찬인데 울고 싶어요….”
거대한 괴수답게 녀석의 심장은 ‘카르세리안 레이소’의 칼날이 닿지 않는 몸속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카르 4세라도 장기전은 불가피하리라.
분명 그래야 맞는데….
에쏘드가 만든 ‘거대한 창’이 단숨에 괴수의 심장까지 꿰뚫었다.
쿵!
< [26장-3] 저주받은 사냥꾼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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