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수처럼-99화 (99/287)

< [24화-1] 수호자를 찾습니다. >

[24화] 수호자를 찾습니다.

학명: 바디엘프(몸만 아름다운 요정)

서식지: 초원

특징: 매우 멍청합니다.

위험도: 1종 소형

비고: 낚이면 바보.

***

와이츠가 서울에 돌아오자마자 한 일은 법안을 뜯어고치는 것이었다.

국회의사당을 꼬리로 삥 두른 용신이 평화롭게(!) 지켜보는 앞에서, 국회의원과 각부 장관들의 권한을 시골 촌장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법안이 통과됐다.

정말 평화적이었다.

신봉자인 대통령만 빗겨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체계가 완성되자마자 와이츠는 의사소통을 가능케 해주는 장치를 이용해서 추종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밥벌레들의 세금을 올린다!』

가장 먼저 가상현실게임밖에 할 줄 모르는 사내들이 현실로 끌려왔다.

데릴사위, 기둥서방 등의 방식으로 호가호위(狐假虎威), 호의호식(好衣好食)하던 남성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냥꾼이 아닌 남편을 둔 아내에게도 똑같이 세금 폭탄!

그야말로 날벼락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시민들은 인터넷 등에 하소연, 비방, 욕설, 저주의 글을 남기는 걸 제외하고는 정말 고분고분 따랐다.

현실은 익명성을 보장해주지 않으니까!

가상현실에 찌든 시민들에게는 그야말로 쥐약이나 다름없었다.

그다음으로는,

『출산을 강제한다!』

권장도 아니고 강제였다.

대상은 계약자와 미성년자를 제외한 모든 여성! 계약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실패자’와 ‘미계약자’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 잘난 미모를 딸에게 물려줘라!

빠져나갈 수 있는 ‘예외’마저 완벽하게 차단하고 ‘공명정대하게’ 강제했다. 그걸로 모자라 기한까지 걸어버렸다.

30일.

올해 초가을 전까지 임신하거나 계약자가 못 된 여성은 예외 없이 ‘사냥꾼’으로 밀어 넣는다는 악독한 정책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사냥꾼이 된 여성은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무조건 ‘개성시’에서 반강제이주, 의무복무하게 되어있다.

현재 텅텅 비어있는 개성시를 단번에 채우겠다는 의도다.

죽어도 아깝지 않은 ‘암컷’들로….

반대시위를 벌인 여성부는 15분 만에 무력진압, 폐지됐다. 그리고 여성부 장관을 포함한 주동자들은 전부 추방됐다.

그야말로 폭거!

하지만 평범한 시민들은 고분고분 따랐다.

오랜 가상현실 생활로 현실적응력을 상실한 그들은 저항할 의지와 방법 자체를 완전히 까먹은 탓이다.

모든 건 와이츠의 뜻대로.

서울은 정말로 그렇게 변하고 있었다.

“피도 눈물도 없네.”

특공대 대장실에서 텔레비전을 시청 중인 카르 4세는 중얼거렸다.

용신의 정책은 복잡한 것 같으면서도 단순했다.

남성은 거의 전원 사냥꾼으로 집어넣어 ‘우수한 종자’만 남기겠다는 의지가 확고했다. 뛰어난 사내일수록 빨리 죽는다고 생각한다만.

아무튼, 여성도 다를 게 없었다.

성형수술이든 뭐든 예뻐야 남자를 유혹할 수 있고 임신도 가능하다.

일단 서울에는 남성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나마 있던 사내들은 본부로 끌려가서 사냥꾼 교육을 강제로 받고 있는 탓에 당분간 속세(?)의 여자들은 면회조차 할 수 없다.

남은 건 사냥꾼.

하지만 사냥꾼들은 거의 매일 목숨을 건 임무 탓에 자기관리를 해야 한다. 심지어 휴가와 휴식도 당분간 할 수 없도록 본부에서 제한했다.

이 와중에 정력고갈로 비실비실?

죽고 싶지 않다면 그것만은 절대로 안 될 말이다.

자연히 여자들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임신은 ‘미모 순서’로 결정될 판이었다.

이건 막말로,

안 예쁘면 막노동(사냥)하라는 계시였다.

“주인님. 저도 그 대상자에 들어가요.”

이 대한민국에서 예외가 있다면 오직 선유나뿐일 것이다. 그래서 페이 링도 ‘임산부’와 ‘계약자’ 둘 중 하나가 돼야 할 팔자였다.

가만히 기다렸다가 가을부터 그녀를 특공대에 입대시켜도 무일은 상관없지만 그건 비효율적이라고 본다.

저 미모로 벌써 아줌마는 인류의 손실이다.

페이 링은 생일파티장에서 보여준 ‘음란한 하녀’ 코스프레는 아니었지만, 중국에서 그녀에게 ‘지원’이라며 보내준 옷들도 건전하진 않았다.

음란마귀가 쓰인 ‘한푸’랄까.

만약 페이 링이 계약자였다면 특공대 인구는 절반쯤 줄었을 것이다.

“페이 링은 괴수를 잘만 고르면 7종도 될 것 같은데….”

“7종씩이나요?”

“하지만 그건 운이 많이 필요하니 5종 아니면 6종쯤?”

공주님과 괴수의 운명적인 만남이 있을 때까지 기다려줄 예정이었는데 아무래도 동화책처럼 인위적인 우연성을 첨가해야 할 것 같다.

페이 링이 ‘미계약자’라는 사실은 로니콘으로 일단 입증됐다.

하지만 와이츠의 법은 ‘미계약자’도 용납하지 않는다. 계약하지 않으면 밥벌레인 건 마찬가지란 이론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수호자도 없는 미계약자가 계약자라도 된 것처럼 돌아다니며 사방팔방에 민폐와 오해를 뿌리고 다니는 건 확실히 문제가 있다.

“아저씨. 밖으로 멀리 나가세요?”

소파에 엎드린 채 열심히 숙제 중이던 최은비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특공대 대장실이 워낙 넓어서 조만간 칸막이라도 설치할 예정이지만, 그전까지는 이렇게 셋이서 프라이버시 없이 함께 지내야 할 것 같았다.

제법 살이 오른 소녀는 ‘미소녀’의 조짐이 조금씩 보이고 있었다.

지금도 1종이라면 쉽게 될 것 같다.

하지만 수호자로서 가치가 많이 떨어지는 1종은 ‘인류에 유익한 종’을 제외하고는 정말 없느니만 못하다.

“흠. 아마도 그렇겠지.”

“...저도 아저씨와 언니를 따라갈 수 있을까요?”

“도시가 답답해?”

“그건 아니지만요. 게임에서는 가족끼리 소풍을 못 가서….”

최은비가 우물쭈물 대답한다.

지극히 어린이다운 이유에 카르 4세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했다.

페이 링이 최은비랑 가상현실게임을 조금씩 같이하고 있지만, 그건 정말로 ‘조금’에 지나지 않는다.

와이츠가 한국인을 ‘말 잘 듣는 바보’로 만들려고 게임을 권장했다는 게 밝혀진 상황에서 아이에게 게임을 많이 시키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그래서 하루에 1시간.

게임을 안 한다고 봐도 무방한 접속시간이다.

“7종만 안 마주치면 어떻게든 되겠지. 좋아.”

“저, 정말요?!”

“절대로 유급하지 않는다는 조건이야.”

“네!”

배경지식이 밑바닥인 최은비에게는 초등학교 과정도 무척 어렵다. 그렇지만 쉽게 약속하는 게 또 어린애다워서 무일은 별말 안 했다.

동심(童心)은 소중하니까!

최은비의 마음에 상처가 생기지 않도록 안전을 좀 더 고려해야 할 것 같다.

안전장치는 많을수록 좋은 법.

바쁜 7종 계약자 윤소영에게 부탁하는 건 도리에 어긋나니 논외다. 주위에 부탁할 사냥꾼은 많아도 계약자는 이리도 없나 낙심하길 몇 분째.

카르 4세는 마침내 한 명을 떠올려냈다.

(무슨 일이세요, 오라버니.)

금서희가 1초 만에 전화를 받았다.

기쁜 것 같으면서도 조금 섭섭해 하는 기운이 물씬 풍겨나는 목소리였다. 운동 중이었는지 숨은 살짝 거칠었는데 그게 또 요염했다.

하지만 이복여동생.

프로사냥꾼의 정신력은 견고하다.

(부산에 돌아갔나, 궁금해서.)

(내일이나 모레쯤 한 번 인사드리고 귀환한 예정이었어요. 스콜레옹 포르소가 끼어있는 수송행렬을 부산에서 서울까지 호위하는 임무가 들어왔거든요.)

그 ‘스콜레옹 포르소’를 주문한 게 카르 4세일 것이다.

시일이 좀 더 걸릴 줄 알았는데 ‘최고의 검’도 그 가치가 빠르게 하락하는 중이라서 생산국 일본도 상당히 조급해진 모양이다.

조금만 더 기다렸다가 샀더라면….

한두 푼도 아니고 수백억쯤 절약할 수 있었을 거란 아쉬움은 최근 답답해진 가슴과 더불어 속을 쓰리게 했다.

그래도 일단은 전화했으니 본론을 꺼냈다.

그걸 제외하면 딱히 할 말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수호자 구하기를 겸해서 소풍 갈 예정이거든.)

(소풍이요? 오라버니가요? 아, 맞다. 양녀를 거두셨었죠.)

호적에는 분명 ‘양녀’로 올려놨으니 틀린 말도 아니다. 그래도 최은비는 여전히 ‘아저씨’라고 부르지만.

이 호칭 문제에 대해서는 무일도, 동정남이 ‘아빠’라고 불리는 것보다는 모든 남성을 포용할 수 있는 ‘아저씨’가 훨씬 낫다고 판단했다.

카르 4세는 곧바로 용건을 꺼냈다.

(같이 갈래? 아니면 말고.)

(계약자에게 그렇게 부탁하는 사냥꾼은 오라버니뿐일 거예요!)

(함께 소풍 갈 가족이 한 명이라도 더 늘면 좋겠다고 판단했었는데…. 커다란 지네는 아이의 정서에 안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뜩 들었거든.)

가족이란 뭉클한 첫마디 다음에 곧바로 도발?!

러닝머신 위를 달리고 있던 금서희의 눈썹이 꿈틀했다.

(정서에 안 좋긴요~. 편견이란 걸 보여드릴게요, 꼭!)

(음.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그러면 오라버니? 언제 어디서 만날까요.)

(내일 아침 9시, 장소는…. 내가 전화번호를 써준 건물 앞에서. 그전에 만나게 되면 곧장 서울 밖으로 나가고.)

(네! 내일 봬요, 오라버니!)

이걸로 5종 계약자 한 명 확보했다.

그냥 레이더로 탐색해서 서울로 쳐들어오는 6종 괴수에게 ‘이 예쁜 아가씨 어때?’라고 보여준다는 선택지도 있지만, 그건 위험부담이 매우 크다.

어디까지나 우연을 가장해야 한다.

적대적이지 않은 야생괴수가 먼저 페이 링을 발견하고 다가오도록 말이다.

‘5종 이하는 기웃거리지 않겠지.’

까까오가 훌륭한 필터링이 되어줄 것이다.

그렇다고 7종이나 8종이 튀어나오면 정말 곤란하지만, 그런 고위괴수는 심심풀이 땅콩처럼 돌아다니지 않을뿐더러 레이더에도 금방 잡힌다.

목표는 어디까지나 5종과 6종.

처음 해보는 일도 아니니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싶다.

『미녀는 괴수와 어떻게 만날까?』

당연한 얘기지만, 도심 속에 미녀가 틀어박혀 있어서는 뱀페스트 같은 음흉한 거머리밖에 만날 수 없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들어가야 하는 법!

나라마다 원정 횟수는 조금씩 다르지만, 한국도 1년에 4번, 계절마다 한 번씩 미계약자들을 이끌고 수도권 밖으로 나간다.

목적은 당연히 계약!

고위계약자들은 아주 멀찍이 떨어져서 따라오고 사냥꾼과 미계약자들로만 이루어진 파티가 구성된다.

강력한 수호자는 야생괴수를 몰아내거나 역으로 도발할 수 있는 까닭이다.

그래서 ‘약한’ 사냥꾼들이 호위로 붙는다.

그 탓에 사냥꾼 사망률이 가장 높은 날이기도 하다.

“흠…. 일을 좀 크게 벌일까.”

카르 4세는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에 빠졌다.

대한민국은 볼트윙 테러와 강남구 쿠데타로 사냥꾼 숫자가 심각하게 부족해지면서 ‘원정 날짜’를 벌써 2번째 건너뛴 상태다.

이대로라면 올해 가을과 겨울은 물론이고 내년 원정도 힘들 것 같다.

신임 특공대장으로서 무언가 해야 하지 않을까.

강박관념은 아니지만, 이대로 공짜 집에 눌러앉는 것도 영 찜찜했다.

수화기를 들었다.

최은비에게 ‘가족’은 한무일, 페이 링, 문세웅 이렇게 셋뿐이다. 그러니 이렇게 셋이 가는 게 ‘가족 소풍’일 것이다.

하지만 카르 4세에게 ‘가족’이란 매우 포괄적인 의미였다.

(특공대장입니다.)

(아, 네! 대책반입니다! 말씀하세요, 대장님!)

쾌활한 목소리로 ‘반장’이 전화를 받았다.

특공대장쯤 되면 직통으로 수장끼리 연락 가능한 모양이다. 덤으로 화질 좋은 벽걸이 영상통화로.

대책반 반장은 목소리만큼이나 밝은 미모의 20대 중반 아가씨였다.

실제 나이는 상당하겠지만….

영양가 없는 [예측]은 접어두기로 했다.

무일은 프로사냥꾼으로서 ‘원정대’를 따라다니기만 해봐서 잘 모르지만, 본부 대책반에서 매번 임시파티를 꾸렸던 걸로 기억한다.

『대책반(Joining Spirit Ranger)』

우수한 계약자가 풍부한 한국에서는 ‘계약자 권익’을 보호하는 쪽으로 발전했지만, 외국에서는 ‘계약자 확보’를 우선시하는 부서다.

계약자의 건강과 미모를 항상 챙겨주고 수호자의 보금자리와 상태 등을 점검하는 것도 대책반의 일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학교를 포함한 공공시설을 돌아다니며 ‘계약 조건’을 설파하는 것도 이들이고, 계약자에게 안 좋은 소문이나 정보 등을 척결하는 것도 대책반이다.

서울의 영웅, 윤소영!

이 또한 대책반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계약자만 생각하는 부서처럼 보이지만, 자기중심적인 계약자가 사냥꾼과 시민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돕는 징검다리 역할도 한다.

그래서 주로 ‘은퇴한 계약자’가 대책반에서 일한다. 그녀들만큼 계약자와 민간인 양쪽 모두를 잘 이해하는 인재도 드물기 때문이다.

(원정대를 꾸릴까, 합니다.)

(정말이신가요?!)

(네.)

(진심이시라면 역으로 저희가 부탁하고 싶은 심정인데요! 규모는 얼마나 생각하고 계시나요, 대장님.)

와이츠가 ‘미계약자’를 용납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탓이다.

계약 안 할 거면 애나 낳으라고 말이다.

당연히 미계약자들 입장에서는 날벼락이었고 발등에 불 떨어진 셈이었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나는 미래의 계약자!’라고 우쭐거리면서 얼마나 많은 백지수표를 뿌리고 다녔던가!

그런데 아줌마가 돼버린다면?

진짜 뒷감당 안 된다.

(시범적으로 열 명 정도. 차차 늘려갈 계획입니다.)

(열 명…. 현재로써는 그것도 감지덕지하죠. 언제 결행하실 건가요?)

(내일입니다.)

(네. 바로 내일이군요…. 에? 내일이요?!)

< [24화-1] 수호자를 찾습니다. > 끝

ⓒ 파르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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