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장-4] 그분이 돌아왔다. >
정상적인 미녀를 마지막으로 만나본 게 언제였지?
...정상의 기준치를 내렸다.
바로 몇 시간 전에 도와주겠다고 와준 ‘7종 계약자 윤소영’이 있었다. 부디 그 미소녀만은 아름다운 마음을 유지해주길!
몸에 이어 마음도 예뻐달라는 건 너무 과한 요구일까.
실없는 생각 중이던 6급 사냥꾼을 깨운 건 까마득한 후배였다.
“선배님!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급브레이크를 즐기는 문세웅이지만 괴수가 우글거리는 장소에서까지 그러진 않는다.
요란한 소리로 도발했다가 연약한(!) 나브랑모스 레비터를 향해 괴수가 달려들면 정말 후회막심인 탓이다.
스포츠카는 얌전히 서행하다가 폐건물 근처 갓길에 조용히 멈춰 섰다.
주차장이 있긴 하지만, 괴수가 숨어있으리라 짐작되는 건물 앞이나 뒤편에 주차하는 건 절대로 좋은 선택이 아니다.
목적지를 본 무일은 고개를 갸웃했다.
“흠. 영 모르겠는데.”
민간인 실종신고를 받고 출동한 2급 사냥꾼만 벌써 3번째, 이 폐건물에서 연락이 끊겼다는 제보를 받고 왔는데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던 탓이다.
이 동네 주민들이 궁금해서 들어갔다가 아침에 ‘또’ 한 명이 못 돌아왔다고 하니 무언가 있긴 할 것이다.
원래는 아침에 해결했어야 할 문제다. 하지만 뱀페스트를 줄줄이 처리하느라 조금 많이 늦고 말았다.
그 사이에 괴수가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않았길 빌 뿐이다.
대구경 라이플 ‘타이타니 로니오’ 조립을 마친 이승필이 말했다.
“괴수가 숨어있긴 합니다. 다만, 1종 같습니다.”
카르 4세가 ‘타로’를 동행시킨 효과가 바로 나왔다.
이 사냥꾼은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또 흡혈귀 아닐까요?”
망원경으로 멀쩡한 창문 등을 관찰하던 문세웅이 물었다.
이에 타로는 ‘좀 더 생각하고 대답해.’라는 훈계조로 설명했다.
“그건 아닐 거야. 2급 사냥꾼이 하나도 아니고 셋이나 연락도 못 취하고 살해될 정도로 강한 뱀페스트였다면 대장님의 감에 잡혔겠지.”
“그럼 뭘까요?”
“그건 쏴보면 알겠지.”
폐건물은 괴수의 본거지나 다름없다.
아주 약한 괴수라고 생각하지만, 인간의 몸은 연약하다. 언제 어디서 어떤 어처구니없는 실수나 착각으로 죽을지 알 수 없다.
그건 프로사냥꾼도 예외가 아니다.
실력과 별개로 인간의 몸은 너무나 연약하기 때문이다.
카르 4세가 고개를 끄덕이며 허락하자 타로는 비스듬히 ‘타이타니 로니오’ 총구를 2층으로 조준했다.
산탄총 ‘라스베리터 람부스’가 ‘학살의 황제’라면 ‘타이타니 로니오’는 ‘암살의 왕’이다. 황제가 아닌 건 2번째쯤 하는 까닭이다.
그래도 그 위력은 무시 못 할 수준이다.
슈웅!
풍선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나며 커다란 탄피 하나가 떨어졌다. 하지만 ‘암살의 왕’이란 표현답게 그밖에는 정말 아무런 소리도 안 났다.
결과도 겉보기에는 조용했다.
총구를 내려놓은 타로가 능숙하게 탄창을 채우며 보고했다.
“처리했습니다.”
그럴 것이다.
안 죽었다면 지금쯤 분노한 괴수가 폐건물 밖으로 튀어나왔을 테니 말이다.
...괴수는 2층에 있었나?
역시나 느끼지 못했던 카르 4세는 못마땅하다는 얼굴로 앞장서서 폐건물 안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너무 약해서 곤란하다니, 작년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좋아. 어떤 녀석이었는지 확인해보자고.”
괴수가 침범해서 일가족 전체가 살해됐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집 내부는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일단은 소형.
인간이 다니는 길을 별 무리 없이 이동했다는 게 그 증거다.
그리고 나름 지능범이다.
주변을 엉망으로 해둔다면 사람이 놀라거나 겁먹고 접근하지 않을 거란 사실을 알고 최대한 보존해놓은 것이다.
...약한 흡혈귀일 가능성도 있겠는데.
총기류를 소지했다면 2급 사냥꾼쯤은 순식간에 죽이는 것도 가능하다.
“저 방입니다.”
타로가 2층의 방을 가리켰다.
모든 방의 문이 조금씩 열려있지만, 유독 그 방만 활짝 열려있었다.
카르 4세가 앞장서고 있지만, 신장이 작은 덕에 문세웅도 어렵지 않게 방 내부를 볼 수 있었다.
그러면서 왈.
“어, 엄청난 미녀인데요?!”
침대 매트에 얼굴을 파묻고 있어서 알 수 없지만, 알몸으로 누운 뒤태만 봐도 정말 황홀한 미인일 거란 느낌이 물씬 풍겼다.
저 검은색 생머리에 가려진 얼굴은 또 얼마나 아름다울까!
무척 기대되는 몸매의 여성이었다.
잡티 하나 없이 매끈한 우윳빛 피부는 그야말로 압권! 비단 같은 머릿결이 흘러내린 등과 엉덩이, 다리까지 이어진 라인도 예술이었다.
여기에 바짝 오므린 허벅지가 마침표!
남자의 욕망을 사로잡는 완벽한 미녀의 자태에 문세웅은 눈을 뗄 수 없었다.
‘장혜린 양도 대단하긴 했지만….’
흡혈귀에게 유린당한 가인을 씻겨주는 과정에서 보고 만질 때도 속으로는 ‘남자로 태어나서 기쁩니다!’라고 외쳤을 만큼 훌륭했다.
하지만 아닌 건 아닌 거다.
장혜린도 이 정도까지 완벽한 몸매는 아니었다.
목숨을 걸어도 볼 수 없는 ‘8종 계약자’ 선지혜의 나신(裸身)이라면 이 여인의 상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문세웅이 무슨 생각을 하든 상관하지 않고.
카르 4세가 입술을 뗐다.
“타로.”
“네.”
대답과 동시에 ‘타이타니 로니오’에서 쏘아진 탄알이 여인의 심장 부근을 등에서부터 정확히 관통했다.
너무 놀란 문세웅은 입을 벌린 그대로 굳었다.
붉은색이 아닌 명백한 은색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던 탓이다. 그리고 즉사였을 여인이 찢어지는 비명을 지르며 몸을 일으키며 얼굴을 들었다.
“헉!”
문세웅은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치며 숨을 크게 들이켰다.
그 극상의 여체에 어울리지 않는 최악의 얼굴.
그야말로 ‘괴수’였다.
아름다운 눈동자가 있어야 할 자리에서 이빨 달린 촉수가 튀어나왔다. 입은 인간의 범주를 넘어선 너비로 쫙 벌어졌고 그 안의 이빨들은 톱날처럼 날카로웠다.
기다란 혀끝에 달린 눈알은 비호감의 결정타!
그 눈알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욕지거리가 튀어나오게 할 만큼 혐오스럽게 깜빡거리고 있다.
눈썹과 코는 그나마 예쁘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용케 살았네.”
“한 발로 모자랐던 모양입니다.”
“그래도 두 방은 무리겠지.”
“네. 곧 죽을 겁니다.”
비틀거리며 일어선 괴수의 뻥 뚫린 가슴이 메꿔지고 있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아름다운 젖가슴까지 완벽히 복귀했다.
괴수다운 재생력과 생명력이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촉수가 안으로 쏙 들어가며 눈이 감기고 입도 조그맣게 줄이더니 꼭 다물어졌다.
충격적인 장면을 본 후에도 눈을 뗄 수 없는 아름다운 몸매만큼이나 ‘닫힌 이목구비’도 영락없이 ‘잠에 취한 절세가인’이었다.
그 상태로 괴수는 맥없이 쓰러졌다.
“...이건 뭡니까?”
제정신을 차린 문세웅이 질문했다.
안면(顔面)만 심각하게 유감스러운 아름다운 괴수의 긴 머리채를 잡아 들어 올린 카르 4세가 대답했다.
“바디엘프. 쓸모는 없지만, 관상용으로 비싼 1종이야.”
“아! 이름은 들어본 것 같습니다.”
“남자의 동정심이나 욕망을 자극해서 무방비한 접근을 유도한 후에 순식간에 물어뜯는 질 나쁜 수법을 써.”
현재 상태도 넓게 해석하면 ‘죽은 척하기’하는 중이다.
죽기 직전에 모든 힘을 쥐어짜서 외형을 복원한 것도 ‘부활’할 때까지 인간의 동정심을 자극해서 시간을 벌기 위함이다.
실제로 바디엘프가 민간병원에 입원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
그 대부분이 환자의 피를 뽑는 과정에서 괴수라는 게 밝혀지며 조기에 진압되지만, 가끔 병원에서 공포영화의 한 장면이 벌어지곤 한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길가에 쓰러진 미녀를 구하고 싶은 본능은 남자의 숙명인 것을.
“...선배님과 형님은 멀쩡하시네요.”
바디엘프는 정말 아름다웠다.
눈을 감고 있는 현재는 그야말로 요정 같다.
하지만,
“돈으로 보이거든.”
“나도 대장님이랑 같은 마음가짐이다.”
카르 4세와 타로가 차례로 대답했다.
애초에 [예감]과 [예측]이 뛰어난 사냥꾼만 돼도 걸리지 않는 저급한 수법이다. 지식이 풍부한 1급 사냥꾼에게도 안 통한다.
하지만 간혹 환경이나 상황이 그럴싸해서 이번처럼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보통은 정말 생뚱맞게 초원 한가운데 알몸으로 쓰러져 있다.
진짜 인간일 가능성?
없다고 보면 된다.
아리따운 여성 추방자가 옷을 다 빼앗긴 채 들짐승이 우글거리는 초원에 쓰러져있다는 건 아무리 양보하려 해도 할 수 없는 까닭이다.
【바디엘프 / 1종 소형】
몸만 요정처럼 아름다운 여성형 괴수.
눈구멍과 입만 봉인하면 야생동물 수준의 위협밖에 안 된다.
주로 최고급 ‘여성 휴머노이드’ 외피(外皮)로 쓰이지만, 현실에서 불건전한 폭력성을 분출하고 싶어하는 사내들이 찾기도 한다.
미녀 대신 ‘미녀처럼 생긴 괴수’란 건데….
괴수를 고문하고 욕보인다고 비난하는 사람은 없지만, 의도 자체는 훌륭한 결정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심장과 머리만 멀쩡하면 웬만해선 ‘완전한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가 없는 바디엘프.
이 괴수를 사적인 목적으로 구매한 인간들이 뭘 하는지 볼 기회가 생긴다면 ‘세계에서 가장 잔인한 동물은 인간’이란 공식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괴수를 동정?
그건 당연히 아니다.
바디엘프는 곱게 죽을 자격이 없다.
“대장님. 희생자들의 시신을 찾았습니다.”
“화장실이겠지?”
“네.”
건물의 청결을 위해 그렇게 했을 것이다. 주위에 시신이 널린 장소에서 멀쩡히 누워있는 건 이상하다는 상식쯤은 갖고 있다.
시신들은 하나같이 눈구멍이 파여있었고 팔다리는 멀쩡히 놔둔 채 몸통의 내장만 파먹힌 상태였다.
피비린내가 확 올라왔다.
뱀페스트가 여탕에서 저지른 만행에 비하면 그나마 착하다고 해야 할까.
코를 틀어막은 문세웅은 본부 구조대에 연락을 넣었고, 타로는 코를 찡그리며 습관처럼 가슴 앞에 십자(十)를 그리며 죽은 자들을 애도했다.
카르 4세는….
‘가슴이 탁 막히는 기분인데.’
이건 구충제를 막 먹고 메스꺼워진 위장을 달래고자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고 싶은 상태랑 비슷했다.
이 정도에 비위 상할 단계는 넘어섰다고 생각한다.
무일의 눈매가 좁혀졌다.
여전히 [예감]은 감감무소식. 하지만 [예측]은 몸속에서 생리작용 외의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짐작 가는 거라면 뱀페스트 알.
절대로 부화할 리 없는,
“아! 혈향(血香)!”
무일은 살짝 망연자실한 기분을 담아 비명을 질렀다.
냄새라는 건 방귀의 메탄가스처럼 기체인 경우도 있지만, 오줌의 암모니아와 몸에 뿌리는 향수 같은 액체도 무척이나 많다.
그렇다면 이 피 냄새는 어떨까?
소량이지만 공기 중에 ‘피’가 섞여 들어있다.
시신 중에는 당연히 여성도 있었다.
그렇다. 뱀페스트의 부화 조건인 ‘여성의 피’가 폐에 스며든 것이다.
“선배님?”
“...아니야. 낮에 새로운 트라우마 하나가 추가돼서.”
“그런가요.”
문세웅은 깊게 생각하지 않고 넘어갔다.
남들은 트라우마라고 하면 사냥에 지장이 생길 정도로 치명적이다. 하지만 카르 4세는 ‘돼지만 봐도 구역질!’이라고 해놓고 플라돈을 잘만 썰고 다닌다.
정말 트라우마이긴 한 걸까?
그 정도로 카르 4세의 정신력은 남달랐다.
타로도 별 신경 안 쓰는 눈치였다.
“대장님.”
“밖에서는 조장님이면 돼, 타로.”
“네, 조장님.”
“뭔데?”
“와이츠가 대한민국을 또 한 번 세계로 비상시켜줄까요? 서울 위를 날아가는 은색 용의 웅장한 광경을 보고도 영 실감이 안 납니다.”
죽은 줄 알았던 이웃이랑 민간인대피소에서 재회한 기분?
정치와 경제구조가 효율적으로 개편될 거라고는 생각되지만, 그 외에는 딱히 개선될 여지가 없어 보인다.
...정말 그럴까?
용신이 위대한 이유는 인간도 할 수 있는 ‘잡일’이 아닌 ‘MID 과학’ 때문이다.
카르 4세는 바디엘프를 트렁크에 실으며 말했다.
“많이 변할 거야. 벼르며 귀환했거든.”
< [23장-4] 그분이 돌아왔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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