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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수처럼-95화 (95/287)

< [23장-1] 그분이 돌아왔다. >

파르나르 장편소설

괴수처럼 12

[23장] 그분이 돌아왔다.

학명: 백혈구울(죽지 않는 핏덩이)

서식지: 도시

특징: 물린 당신은 노예♥

위험도: 6종 특수

비고: 심장이 없어요.

***

다른 나라나 도시보다 한국의 서울에 유독 뱀페스트가 많이 번식하고 서식하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가상현실게임.

집에 틀어박혀 무방비하게 접속기기에 집중하는 여자들은 좋은 표적이다.

물론, 서울은 겉보기에 안전하다.

감시카메라가 으슥한 골목에도 쫙 깔렸고 MID 기술이 도입된 과학수사 앞에 완전범죄란 없다!

게다가 범죄는 걸리는 즉시 변호사 선임과 인권은 생략하고 끔찍한 고문 후 사형 아니면 추방 확정이니 미친놈, 망나니라도 한 번쯤 망설일 수밖에 없다.

서울에서 좀도둑은커녕 양아치도 보기 힘든 이유다.

그 때문일까?

너무 평화로운 나머지 문단속을 철저히 안 하는 시민이 많다.

솔직히 말하자면,

하더라도 별 의미 없다.

【뱀페스트 / 2종 특수】

일반가정집의 문고리쯤은 흡혈귀가 살짝만 힘줘도 간단히 부서진다.

감시카메라로 보기에는 잠겨있지 않은 집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처럼 보이니 ‘시민의 자발적인 신고’가 없으면 알 방도가 없다.

여기에 대한 대책도 마련됐다?

그럼 창문으로 침투한다!

야심한 시각에 2층, 3층 베란다까지 단숨에 뛰어오르는 흡혈귀가 감시카메라에 찍히는 순간은 정말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

순간포착?

길어도 4시간마다 교대되는 경비원은 믿을 게 못 된다.

어디든지 의심 없이 방문할 수 있는 택배 기사도 치명적인 복병이다.

그보다 더 무서운 건?

지인(知人)!

친구, 남편, 친척, 동료 등이 뱀페스트 숙주면 속수무책으로 줄줄이 엮이는 건 정말 시간문제다. 집 안에서 피를 빨리는지 ‘응응’하는지 누가 알겠는가.

하여간 모든 문제는 시민의 ‘신고’가 중요하다.

그런데 ‘신고’는 들어오지 않는다.

왜일까?

『게임 중….』

뱀페스트는 ‘잠자는 숲 속의 공주’처럼 얌전히 누워서 가상현실을 뛰노는 여성의 목덜미에 송곳니를 박으면 그걸로 상황종료다.

엄마, 딸, 여동생, 누나, 언니, 고모 등이 세트로 누워있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

헌병대에 신고할 기회조차 안 주어지는 것이다.

피가 빨린 여성들은 그 자리에서 말 잘 듣는 노예로 전락한다.

집의 보안장치에 이 ‘외간남자’가 언제든 방문할 수 있도록 ‘가족’으로 설정을 바꾼 집주인의 운명은 이웃들도 모르는 사이에 밑바닥까지 추락한다.

서울에서는 제법 흔한 패턴이다.

하지만 성공률 100%일 리 없잖은가?

이렇게 쉬운 ‘가축 늘리기’도 못해서 헌병대에게 붙잡히는 멍청한 뱀페스트(숙주가 멍청했을 확률이 높다.)가 간혹 있다.

덕분에 이 방법은 한국 본부에도 제법 상세히 알려졌다.

문제는,

『알면 뭐해?』

시민들에게 아무리 주의하라고 외쳐도 ‘소귀에 경 읽기’다.

가상현실게임을 가족들끼리 교대로 접속?

혼자 사는 여자는 가상현실게임을 자제?

정부와 본부에서 주관한 캠페인은 하나같이 실천할 수 없는 무리한 요구뿐이다!

그럴 바에 흡혈귀도 찾지 않을 만큼 몸을 더럽게 굴리는 쪽을 택하겠다는 여자들이 많으니 이건 논할 가치가 못 된다.

...외국은 상황이 좀 나을까?

가상현실게임을 덜 하기에 피해자는 적지만 겉보기에는 거기서 거기다.

서울에는 고위계약자가 많다.

5종 수호자만 떠도 뱀페스트는 벌벌 떨어야만 하는 처지다. 그건 귀족이 되더라도 마찬가지라서 사고 치지 않고 조용히 활동한다.

가령,

“무일 오빠! 괜찮으세요?”

7종 계약자 윤소영과 수호자 레드군이 뜨면 죽었다고 복창해야 한다.

뱀페스트 귀족이든 왕족이든 마지막 핏방울 하나까지 깔끔히 증발시켜줄 용왕님 앞에서는 부활이고 뭐고 부질없다.

이미 주모자는 죽고 잔챙이들은 도망친 후지만 그래도 든든했다.

“방송으로 바쁠 텐데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윤소영 양.”

“...오빠.”

“네.”

“편하게 불러주시면 안 돼요?”

미소녀가 수줍은 얼굴로 소곤소곤 말했다.

파충류의 표정을 무일이 읽을 수 있을 리 없지만, 그녀 옆에 선 레드군이 못마땅해 한다는 건 확실하게 전달받았다.

카르 4세는 부드러운 미소로 얼굴을 완전무장했다.

서울과 이웃의 평화를 위해서!

“호칭은 지금처럼 ‘윤소영 양’이 딱 좋습니다. 윤소영 양은 어른스러운 아가씨 같은 호칭이 매력적이니까요.”

“정말요…?”

“제가 보증합니다.”

아름다운 공주님의 청혼도 걷어찬 무례한 사내의 휴짓조각 같은 보증이다.

그 대가로 여태 동정이란 벌을 받는 중….

다행히도, 다혈질 용왕님마저 신사로 만든 순수한 미소녀는 믿는 눈치였다.

오늘도 서울은 평화롭다.

“그럼, 오빠! 나중에 놀러 갈게요!”

방송일정을 내팽개치고 온 ‘서울의 영웅’ 윤소영은 카메라감독의 눈물겨운 통화를 받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손을 흔들었다.

늘 그랬듯 레드군은 자신의 레이디를 소중히 안아 들고는 2쌍의 날개를 활짝 펼치더니 물리법칙을 깔끔히 무시하며 날아갔다.

저 씀씀이의 1%만 서울에 투자해도 더욱 평화로워질 텐데 말이다.

아니, 배부른 소리다.

‘프랑스의 레드군’이 쌓아올린 악명(惡名)을 안다면 ‘한국의 레드군’ 엘카르는 멋진 수호천사가 분명하다.

여태 동해 일부밖에 안 태웠잖은가.

“선배. 도와주려고 열심히 달려왔어.”

무시무시한 복병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순서로 따지면 윤소영보다 이쪽이 더 빨리 왔을 것이다.

“어, 음. 감사합니다, 특공대장님.”

오랫동안 흡혈귀 후작의 노예 겸 가축으로 지낸 여인들에게 위로의 한마디를 전할 시간조차 카르 4세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

특공대에 갓 입대한 초짜들을 일사불란하게 통솔해서 이끌고 온 선지혜는 평소의 맹한 눈빛이 아니었다.

헐벗은 인질들을 보며 불끈한 대원에게 올려 차기!

남자의 본능을 잔인하게 응징한 특공대장은 생긋 웃으며 말했다.

“고맙긴. 또 플래그 세우려는 거 다 봤는걸.”

“빨리 온 이유가 그겁니까?!”

“응. 달리 또 필요한 이유는 똑똑한 나도 모르겠는걸. 어젯밤에도 가축답게 엎드리라고 마구 매도해놓고선.”

“잠깐! 증거도 없이 그런 유언비어를 떠들지 마!”

보는 눈은 물론이고 듣는 귀도 많다.

하지만 선지혜는 가차 없었다.

“미안. 내 기술이 미숙해서 우리의 증거는 못 남겼어. 입술도 멀쩡하고 채찍 자국도 없는걸. 대신, 오늘은 열심히 할게.”

대화가 길어질수록 인간쓰레기가 돼가는 것 같았다.

최근에 계속 바쁘다는 핑계로 상대해주지 않았더니 심통이 제대로 난 모양이다.

그렇다고 사회적으로 매장하려 하다니….

선지혜라면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을 만큼 매장해놓은 후에 ‘나는 선배 편이야.’라고 태연히 말할 여자다.

무조건 항복하는 길밖에 없다.

국제사회에서 ‘뜨거운 감자’로 오른 카르발트가 정치외교를 신경 쓰지 않고 활동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는 게 그녀인 까닭이다.

본인의 꿈을 현실로 날조하지 않으면 더 좋을 텐데 말이다.

“...선지혜.”

“으응. 조, 조금 당황스럽네. 고백받을 것 같은 분위기라서.”

“기대를 날려서 미안. 상담할 게 있어.”

“상담? 결혼 날짜?”

“진지해질 마음이 전혀 없구나!”

“응.”

무일이 가장 심각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라스베리터 람부스’가 동네구멍에서 파는 딱총처럼 굴러다닌다는 점이었다.

카르세리안 레이소?

분명 330억이나 하는 무기지만 사냥꾼에게나 귀한 사치품이다.

정말 잘 부러지기 때문이다.

거의 의장용으로 들고 다니는 카르 2세, 영국 왕녀님조차 부러트린 전적이 있을 만큼 ‘세계에서 3번째로 날카로운 절단기’는 다루기가 매우 까다롭다.

한 번 싸울 때마다 수리비로 100억씩 날아간다면?

가난한 사냥꾼은 버틸 재간이 없다.

물론, 카르 4세처럼 잘 다루는 검사도 있다. 하지만 그런 카르 4세도 ‘1번’이라도 부러졌다면 정신적으로나 금전적으로나 타격이 매우 컸을 것이다.

그에 반해 부자들은?

굳이 허영심 따위가 아니더라도 아름다운 배우자처럼 장식장에 최소한 한 자루씩은 갖춰놓는 명검이 ‘카르세리안 레이소’다.

오창민은 신조선 회장.

회원 중에서 부유한 이들이 집에 모셔놓은 ‘여자친구’만 모아도 얼추 숫자를 맞출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라스베리터 람부스’는 아니다.

민간인이 억만금을 줘도 서울에서는 암시장에서조차 판매가 금지된 총기류인 동시에 ‘6급 대량살상무기’인 까닭이다.

“선배. 어렵게 생각하지 마.”

“나는 심각하다만.”

“임길석이 어떻게 수색대장에 오른 줄 알아?”

“......”

“대원들의 생존율을 올리기 위해서란 명목과 재량으로 사유재산을 털어서 딱총을 꾸준히 주문했어.”

라스베리터 람부스는 절대 딱총이 될 수 없지만….

‘8종 대형, 와이츠’ 계약자에게 따지지 말자.

“오랫동안?”

“응.”

임길석은 위험한 대량살상무기만 구매한다는 의혹을 지우기 위해 각종 무기도 많이 사들였다. 그리고 충성심 높은 대원 순으로 빌려줬다.

당연히 시기의 목소리도 나왔다.

개인에게 너무 많은 무기를 허락하면 쿠데타 위험이 있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수색대의 생존율이 실제로 올라간 상황에서 무기들을 회수하기에는 명분과 실리 양측 모두에서 설득력이 떨어졌다.

내 사유재산으로 부하들을 한 명이라도 더 살리겠다!

이 말에 반박했다간 대통령이라도 암살당한다.

대안이랍시고 안전장치를 깔아두긴 했지만, 최근에 사냥꾼의 숫자가 급격히 줄어들고 귀해지면서 그조차도 유명무실해졌다.

“그 많은 재원이 어디서 난 거지?”

“임길석은 재벌 규수와 사모님들에게 인기 많았거든. 성지순례 하듯 서울을 한 바퀴만 돌아도 수백억쯤은 금방 모으는 능력자였어.”

“뱀페스트니 간단하려나.”

“아니. 임길석은 평범한 인간이야.”

극심한 인력난에 시달리는 중인 괴수대응본부가 아무리 대충 운영되더라도 괴수를 핵심간부로 올려놓진 않는다.

수시로 ‘인간’인지 확인한다.

이마저도 조작했다면 할 말 없지만,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다.

카르 4세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 의무대가 돈에 약한 건 사실이나 ‘괴수와 동거’할 정도로 용감하진 않다. 돈이 아무리 중요해도 목숨보다 귀할 순 없기 때문이다.

“그럼 공모자란 뜻이네.”

“응.”

“배후는 오창민이겠고.”

흡혈귀가 인간을 속인다면 모를까, 공모할 생각을 할 수 있는 괴수라면 그 괴짜뿐이 없을 것이다.

스스로 이상하다고 표현하며 반역을 꾀한 후작.

나름 유익한 정보를 뿌리다가 막판에 헛소리와 실패로 막을 내린 오창민을 떠올리자 살짝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다.

녀석이 ‘후작 성’이라고 부른 이 정화시설에 있던 여성은 2백여 명.

지금도 몸에 매단 폭탄을 해제하고 본부 의무대로 수송하기 위한 신원조회 절차가 한창 진행되는 중이다.

그 흡혈귀가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면?

서울은 또 한 번, 큰 진통을 겪었을 것이다.

‘오창민은 결과에 만족했기 때문에 그녀들을 해방해줬어.’

그렇지 않다면 곱게 죽어줄 종자가 아니다.

여성을 가축으로 아는 뱀페스트도 그렇지만 오창민도 그리 선량한 족속은 못 됐다.

그런데 순순히, 깔끔히 죽어줬다.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의무대에 가서 진단 한 번 받아봐야 할 것 같다. 살인귀로 변하는 건 사양이니까.

그때,

선지혜가 무일의 등 뒤에서 살포시 껴안아왔다.

축복받은 일부 여성에게만 존재하는 ‘두 개의 묵직한 융기’가 좌우에서 머리를 감싼다. 이어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하지만 부드럽게 그녀의 양팔이 목을 휘감는다.

“선배.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피하지도 않던걸.”

“...웃지 말고 들어봐.”

“응. 언제부터 웃어도 되는지 말해줘.”

이 ‘똑똑한 공주님’은 뭔 말을 해도 웃을 생각인 모양이다.

그냥, 대화한다는 자체가 즐거운 게 아닐까.

무일은 상담할 기운이 안 났지만, 대한민국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조언자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선지혜라고 답할 것이다.

조국에 ‘등을 맡길 수 있는 인재’가 박멸했음을 한탄하며….

카르 4세는 ‘후작의 반역’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니까….”

< [23장-1] 그분이 돌아왔다. > 끝

ⓒ 파르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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