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수처럼-91화 (91/287)

< [22장-2] 왕이 지켜보고 있다. >

“크아악!”

“뭐, 뭐야아?!”

“까까오…!”

“이건 반칙이, 컥?!”

뱀페스트는 뛰어난 운동신경으로 회피를 시도했지만, 절반 이상이 휩쓸렸다.

그래도 전부는 아니다.

회피에 성공한 이들은 양손의 무기를 사용했다.

하지만 그 악명 높은 ‘라스베리터 람부스’에서 쏘아진 무수한 탄환도 까까오의 등껍질에는 상처조차 주지 못했다.

그건 ‘카르세리안 레이소’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내려쳤을 뿐인데 330억 원이 허공으로 증발해버렸다!

그렇다고 아주 효과가 없던 건 아니었다.

까까오의 연약한 부위라고 할 수 있는 날개들이 우수수 찢기고 베어졌다. 하지만 그 ‘맹독이 묻은 칼날 날개’도 흡혈귀들을 갈기갈기 찢어놓긴 마찬가지였다.

날개를 벴다고?

까까오의 날개는 15쌍. 좌우 합쳐서 서른 개나 된다.

거의 동시에 10장 넘게 베지 않고는 추락시키는 것조차 무리다.

“노, 놈이 선회해서 다시 온다!”

“썩을! 여긴 도심인데 저딴 게 왜!”

“서울의 수호자 중에 까까오는 없거늘!”

“산개해! 민간인 틈으로 숨어!”

까까오는 잘린 날개를 수복하는 과정에서 덩치가 살짝 줄었지만, 집게처럼 단단한 턱과 유연한 더듬이를 이용해서 낚아챈 뱀페스트 하나를 꿀꺽 삼키더니 순식간에 회복했다.

이것이 ‘5종 괴수’의 위용!

물론, 까까오는 5종 수호자로는 아주 약하다는 평가를 받지만, 헬기보다 빠른 비행속도와 단단한 등껍질, 맹독을 품은 15쌍의 날개는 인간을 상대로 치명적이다.

사냥꾼들이 꺼리는 모든 요소를 다 갖고 있다.

맹독이 통하지 않는 ‘6종 수호자’를 상대로는 거의 먹잇감 수준으로 약한 까까오지만, 인간살상능력만은 6종보다 더 무시무시하다.

그 지네 괴수는 마음속으로 외쳤다.

『잘 봐둬! 나의 보물!』

까까오가 나선 이유는 별거 아니다. 저 ‘오라버니 원숭이’에게 계약자 금서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하지만 슬슬 퇴장할 때다.

원숭이들 틈으로 숨어든 거머리를 잡으려면 원숭이를 많이 죽여야 한다.

상관없다고 생각하지만….

기껏 올려놓은 점수를 잃으려고 이렇게 귀찮은 사냥에 나선 게 아니었다. 그리고 저기 붉은색으로 덮인 거머리는 강했다.

그 앞에 대치한 ‘오라버니 원숭이’만큼일지는 글쎄….

아무렴 어때.

간식으로 거머리 하나를 또 하나 낚아채서 꿀꺽 삼킨 지네는 공주님이 기다리는 고층건물 옥상으로 유유히 날아갔다.

금서희를 이런 땡볕 아래에 오래 놔둘 순 없다.

그건 정말 슬프고 괴로운 일이다.

“...이벤트 중간보스가 쓸고 갔지만, 괜찮지? 후작 양반.”

여의도 땅에 발을 내디딘 무일이 말했다.

까까오가 뱀페스트 무리를 휩쓸고 지나간 시간은 10초도 안 됐다.

그 짧은 시간에 벌어진 거라고는 믿기지 않는 일방적인 학살극이 벌어졌지만, 흡혈귀의 재생력은 무시 못 할 수준인 것 같았다.

맹독이 심장으로 스며든 녀석들은 발작을 일으키며 숨을 거뒀으나 그래도 상당히 많은 가면특공대가 살아남았다.

이 정도 소란이면 강습반이 오기까지 15분 내외.

사태를 파악하고 사건을 접수한 계약자가 자외선 차단 크림을 바르고 수호자를 설득해서 출동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다.

여의도는 본부 앞마당이니 10분 안쪽으로 당겨지지 않을까.

“힘 좀 얻었다고 기고만장해졌구나, 한무일.”

“...오창민?”

이름으로 불릴 줄은 몰랐던 무일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몸을 빼앗긴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을 터인 ‘전 수색대장’이 어째서?

뱀페스트가 숙주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하지만 이 말투는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과거의 원한을 잊지 못하는 목소리.

괴수에게 보기 힘든 ‘인간미’였다.

아! 이 일반화는 ‘판타이탄’에게 실례이려나.

“어떨까. 너에게 복수하기 위해 지옥 밑에서 기어 올라왔다고 하면 되려나.”

“정말로 오창민이라고?”

“그게 중요한가. 우리가 다시 만났다는 게 중요하지. 안 그래, 천민.”

이번에는 ‘흡혈귀 후작’다운 목소리.

둘이면서 하나다.

괴수와 인간의 ‘성향’이 비슷하면 그 반동도 적고 심지어 경계선마저 무너진다. 벌써 2번째 계약하고도 달라진 게 없는 조성미가 그 대표적인 증거.

그녀는 멀쩡하다.

겉보기야 어떻든 품고 있는 심성이 괴수랑 비슷해서 변할 게 없는 것이다. 외모는 그럭저럭 예쁘장한 수준인데 정신만은 최고의 계약자라고 할 수 있다.

누구에게 좋은 ‘최고의 계약자’인지는 모르지만.

오창민도 비슷하다.

비록, 계약자가 아닌 숙주지만, 상성이 뛰어나다.

뱀페스트가 몸을 지배하고 오창민이 여기에 저항하지 않고 순응을 넘어 적극적으로 가세하면서 시너지효과가 발생한 것이다.

그 결과로 단시간에 ‘후작’까지 올랐다.

신조선은 그의 수족이 됐고 수많은 노예와 가축을 거느리게 됐다.

“...어째서 나를 안 죽인 거지?”

“그렇군. 어째서 나는 카르세리안 레이소 하나만 믿고 날뛰던 약해 빠진 카르 4세를 죽이지 않았는가. 궁금하겠지.”

“......”

“안 죽인 게 아니라 못 죽인 거다, 한무일. 왕께서 네 몸을 원하시니 신하로서 따를 수밖에 달리 도리가 있나. 그 은혜를 영광으로 알아라.”

무일은 눈살을 찌푸렸다.

기분 나빠서가 아니라 오창민의 변명이 허점투성이였던 탓이다.

그 왕이란 놈이 자신을 숙주로 삼고 싶었으면 강력한 흡혈귀들을 동원해서 생포하면 그만이었다.

무일이 급성장한 건 최근이다.

그전까지의 ‘카르 4세’였다면 오창민 하나도 상대하기 벅찼을 것이다. 까까오의 공격을 회피하던 움직임은 주변의 흡혈귀랑 차원이 달랐다.

더구나 저 산탄총은 지금도 성가시다.

라스베리터 람부스를 근거리에서 맞으면 수백억 원을 쏟아부은 방탄복이 찢기는 건 당연하고 어쩌면 가더발트란 최후의 방어선마저 뚫릴 수 있다.

그럼 사망.

아무리 강해졌어도 무일은 사람이다.

탄알이 하나만 몸에 닿아도 쇼크사할 수 있다.

“...그렇군. 덕분에 잘 알았다.”

“무슨 허세냐.”

“왕이 빌빌거리고 있다는 정보, 고맙게 받아가마.”

“음!”

대화하는 동안, 충분히 아랫도리를 진정시킨 무일은 빠르게 재착용하고 선공을 취했다. 그러나 역시나 막히고 만다.

카르 4세의 주특기는 [반격]이지 [공습]이 아닌 탓이다. [공습] 같은 상급기술은 다른 프로사냥꾼들보다 많이 떨어지는 편이다.

어차피 별 기대 안 했다.

이건 오창민이 ‘공격’하도록 유도하기 위함이다.

공격을 받았으면 공격할 수밖에 없다.

카르 4세는 오창민이 그 어떤 상위기술로 대응하든 [반격]으로 전부 씹어먹고 끝장낼 자신 있었다.

자신의 허술한 [공습]에 [반격]해주면 더욱 고맙고.

하지만 흡혈귀 후작은 그러지 않았다.

방어 또 방어, 계속 방어….

심지어 전 수색대장 오창민은 상급기술의 꽃이라고 불리는 [격발]까지 써서 전심전력으로 방어에만 몰두했다.

극히 짧은 시간 동안 생존본능을 수십 배로 올려주는 사기기술….

무일이 익히려다가 포기한 기술이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을 끄는 사이에 흡혈귀들이 가세하며 ‘카르세리안 레이소’와 ‘라스베리터 람부스’를 치켜든다. 아군이 다칠 수 있다는 망설임 없이.

‘이거, 좋지 않은데.’

오창민에게 발목이 잡힌 카르 4세는 숨을 들이켰다.

그 비싸디비싼 MID 산탄총이 사방에서 일제히 발포됐다.

후작과 카르발트는 불꽃에 휩싸였다.

그렇게 돼야 했을 터였다.

“크아아악!”

오창민의 비명이 여의도 변두리 일대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강력한 흡혈귀 후작인 그는 제법 가까운 거리에서 모든 탄환을 얻어맞고도 살아남았다. 2종 괴수를 즉사시킬 수 있는 공격을 동시다발적으로 수십 방을 얻어맞고도 말이다.

그는 포위망에서 떨어진 곳에 자빠져있었다.

어째서 저기 있는 걸까?

붉은색 가면특공대 복장은 난자되어 알몸이 됐고 단단해 보였던 헬멧도 사격이 끝난 직후에 부서지고 말았다.

헬멧 안쪽에는 탄환이 무수히 박힌 머리가 끔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후작각하!”

“노, 놈을 찾아! 당장 찾아내!”

피범벅이 된 얼굴로 오창민이 소리 질렀다.

이미 이 일대는 시민들의 시체로 아수라장이 됐다.

까까오를 공격한다고 사방에서 산탄총을 마구잡이로 쏘아댔으니 그 여파로부터 살아남은 사람이 있을 턱이 없었다.

하지만 여파도 아닌 정면에서 맞은 카르 4세가 안 보였다.

죽었다면 불에 그슬린 살덩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가 있던 자리는 깔끔했다.

‘괴, 괴물 같은 놈…!’

전략은 완벽했다.

까까오의 난동으로 죽은 몇 명의 빈자리 탓에 화력이 조금 부족해진 감이 없잖아 있지만 그래도 빈틈은 없었다.

하지만 동시다발적이라고 해도 미세한 시차로 먼저 발포된 라스베리터 람부스가 나오는 것까지 완벽히 통제하기란 무리다.

그런데 그게 문제였다.

먼저 도달한 탄환을 [반격]해서 견제 중인 자신을 공격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칼집으로 쳐낸 탄환은 정확히 오창민의 왼쪽 가슴을 때렸고, 그 틈에 카르 4세는 터무니없는 괴력으로 그를 밀쳤다.

오창민은 그 기세로 튕겨 날아갔고 0.01초 차이로 예상보다 일찍, 카르 4세보다 먼저 화약 폭우(暴雨)에 노출됐다.

분통 터지게도 ‘돌진용 방패’ 역할이 되고 만 것이다.

성인보다 작은 체구를 악용(!)한 카르 4세는 정신이 혼미한 오창민을 방패막이로 밀어붙이며 포위망을 뚫고 달아났다.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화약고에서 빠져나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전부 피하지는 못했으리라.

“찾아! 피를 쫓아라!”

라스베리터 람부스는 이런 요령으로 피할 수 있는 딱총이 아니다.

그렇다. 이 피가 그 증거다.

곱게 당해주지 않겠다는 듯이 그 짧은 사이에 비명조차 못 지르고 죽은 뱀페스트 둘이 있었다.

본인들이 언제, 왜 죽었는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그래. 저들은 왜 죽은 거지?

본체가 기생 중인 왼쪽 가슴의 심장은 멀쩡하다. 그저 팔과 머리가 대충 베인 정도.

흡혈귀에게는 그야말로 생체기나 다름없는 피해인데 죽었다.

“하지만 후작각하! 몸이….”

“몸?”

오창민은 위화감을 느꼈다.

어째서 통증이 계속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인간 오창민의 정신력이 뛰어난 덕분에 추태를 보이진 않았지만 안 아픈 건 아니다.

그저 높은 정신력으로 참고 있었던 것뿐이다.

하지만 왜 여태 참고 있어야 했을까?

진즉 다 나았어야 했고 지금쯤 언제 당했었냐는 듯이 멀쩡해졌어야 정상이다. 약간의 빈혈증세만 남고.

흡혈귀 후작은 몸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눈을 부릅떴다.

‘이, 이게 무슨 일인가!’

오창민은 수컷 원숭이의 몸이 어떻게 생겼든 관심 없다.

하지만 이건 심미안 문제가 아니었다.

탄환이 여전히 박혀있는 몸에서 피가 질질 흘러내리는 중이었고 피부는 끔찍했다. 그리고 카르세리안 레이소를 들고 있어야 할 오른손이 허전했다.

팔꿈치 아래로 잘렸다.

왕을 영접하기까지 한 후작쯤 되면 심장을 잃어도 한 번쯤 부활할 수 있는 강력한 생명력을 보유하게 된다. 힘이 약해지긴 해도.

하지만 심장은 멀쩡하고 이건 피해라고 할 것도 아닌데 회복이 안 되고 있었다.

여태 ‘인간의 피’라고 생각했던 향기는,

“한무일! 이 천민새끼가! 내게 무슨 짓을 한 거냐!!”

격분하며 악다구니를 쏟아붓던 오창민은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흡혈귀가 피를 토하다니?

날아가던 플라돈이 방귀 뀔 소리였다.

“후작각하를 모셔라.”

“이거 놔라! 놈을 잡아! 당장 놈을 잡아와!”

“외람되오나 후작각하. 이미 한 번, 지엄하신 왕명을 어긴 상태이옵니다. 그리고 공작에게서 전갈이 도착했습니다. 마녀가 움직였다고 합니다.”

“제기라알!!”

대한민국의 마녀(魔女).

세계에서 3번째로 강한 계약자.

박선영.

그건 중국뿐 아니라 흡혈귀에게도 공포의 이름이다.

자신들의 ‘불사의 왕’을 초주검으로 만들고 도주토록 만든 엘로엘 계약자는 정말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선유나와 선지혜 곁을 거의 떠나지 않는다.

특별한 경우.

그건 거머리가 모습을 드러낼 때뿐이다.

돌대가리 날치가 서울에서 볼링공처럼 날뛸 때도 그랬다. 그녀는 볼트윙보다 그 혼란을 틈타 모습을 살짝 드러낸 뱀페스트 후작 하나를 추적하는데 열을 올렸다.

그런 여자가 이 소식을 듣고 가만있을 리 없다.

걸리면 그걸로 끝이다.

심장을 잃어도 부활할 수 있는 후작이지만, 공중분해 되면 부질없다.

살점, 핏방울 단위로 나뉘고도 살아남을 수 있는 건 ‘왕’뿐이다. 그리고 그런 ‘왕’조차도 정말 숨통만 간신히 건졌다.

“모시겠습니다, 후작각하.”

“...목장으로 간다.”

“각하?”

“그곳에서 너희는 마음에 드는 가축 하나씩을 데리고 다른 귀족에게 붙어라. 나는 틀렸다. 알 수 있어. 나는 곧 죽는다.”

그 천민이 무슨 수를 썼는지 모르지만, 자신은 죽어가고 있다.

회복되지 않는 오른손이 그 증거.

출혈이 멈추지 않는 흡혈귀가 살 수 있을 리 없다.

“각하….”

“충성을 맹세한 왕께는 그저 죄송할 따름이지만, 죽기 전에 숙주의 들끓는 원한만은 들어주고 싶구나.”

“...마지막 명을 따릅니다.”

< [22장-2] 왕이 지켜보고 있다. > 끝

ⓒ 파르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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