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수처럼-87화 (87/287)

< [21장-2] 여동생이라는데요. >

‘정말 고분고분한 괴수네.’

신기한 녀석이다.

5종 괴수 까까오는 ‘맹독’을 품고 있는 무시무시한 ‘비행형 지네’다. 게다가 단단한 등껍질은 카르세리안 레이소로 베긴커녕 역으로 부러질 터였다.

물론, 연약한 날개를 베서 추락시킨 후에 뒤집어서 아랫배를 쑤셔준다는 정공법이 있긴 하지만 그 아랫배도 만만치 않다.

스콜레옹 포르소.

시가 4,950억 원의 이분이 오셔야 제대로 싸울 수 있을 것이다.

부자가 된 무일조차 구매를 망설일 정도로 비싼 녀석이라 섣불리 손이 가지 않았지만, 5종 하나 잡는데도 애먹지 않으려면 반드시 필요하다.

“까아! 까아!”

더듬이를 잡힌 까까오가 까마귀처럼 구슬프게 울었다.

녀석은 ‘5종 보통’이다 보니 그 얇은 더듬이조차 사람 팔뚝처럼 두꺼웠지만, 카르발트의 괴력을 이겨낼 정도는 아니었다.

날개마다 ‘독이 묻은 칼날’인 까까오도 계약자를 낀 상태에서는 움직임을 조심할 수밖에 없다.

설사, 쓰더라도 ‘위협’이 될 것 같지 않았다.

그것이 [예감]이 내린 판단이었다.

독가스, 세균, 박테리아 등의 공격으로부터 착용자를 보호해준다는 목걸이 ‘프로카브 오로레스(개구리 왕자의 선물)’가 있으니 말이다.

‘좀 이상하긴 하지만.’

이 목걸이는 4종 괴수 프로칸이 세균, 박테리아, 병균, 바이러스 등을 먹는다는 점에 초점을 둬서 제작된 것이다.

...라고 정비과 초식남이 말해줬다.

그 원리는 검사(劍士)인 카르 4세가 알 도리가 없지만, 5종 괴수 까까오가 15쌍의 날개에 독을 분비하지 않고 있는 것만 봐도 싸울 의사가 없음을 알 수 있었다.

5종 괴수의 독을 4종 괴수가 막는다?

물론, 위험도가 강력함의 척도는 아니지만, 대체로 들어맞는다. 게다가 이 ‘프로카브 오로레스’는 프로칸의 소화기관을 연구한 짝퉁이다.

그래서 정찬호는 ‘3종’까지만 ‘대충’ 방독(防毒)해줄 거라고 했다.

정말 이상한 일이군.

『또 이상한….』

어딘가에서 누군가 불만을 토로하는 것 같았지만 무시하고.

일단은 울고 있는 ‘옛 이복여동생’에게 말을 걸었다.

“이렇게 가까이 오기 전까지 못 알아볼 뻔했네. 너무 변했어. 볼살 통통했던 꼬마 아가씨가 이렇게 변할 줄은.”

“훌쩍. 그러는 오라버니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으셨네요.”

“그, 그러냐.”

무일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그가 가출한 시기는 13살.

안 그래도 아기 피부로 변하면서 ‘추정 나이 16살’에서 더 떨어지고 말았다. 그 부분을 여동생이 후벼 파니 다른 사람에게 들었을 때보다 참담했다.

금서희는 몸을 움츠렸다.

다 큰 처자가 소년 앞에서 그러는 것도 우스웠지만, 이건 본능이다.

그녀가 기억하는 ‘금…. 오라버니’는 거의 모든 이복동생에게 인기 많았으나 엄격한 형, 오빠이기도 했다.

물론, 그건 과거의 금서희가 품었던 어릴 적 추억의 단편이다. 다시 돌이켜보면 시기하고 질투했던 형제자매들도 많았던 것 같다.

그렇다면 그녀에게는 어땠을까?

다정한 오라버니보다는 든든한 아버지에 가까웠다.

그런데 이름이 기억 안 난다.

어째서 아무에게도 안 물어봤을까?

아니, 처음에는 물어봤던 것 같다. 하지만 서울 시민은 그에 대해 전혀 모르고, 그나마 안다는 사냥꾼들조차 ‘카르 4세는 카르 4세입니다.’라는 식이다.

심지어 스마트폰에도 없었다.

미국에서는 아예 ‘마이티가이’라는 고유명사로 불리며 ‘카르 4세’라는 공식별명조차 쓰지 않았다.

혼나는 계집아이처럼 더욱 움츠러든 금서희가 말했다.

“동영상이랑 많이 다르시네요, 오라버니. 못 알아봤어요.”

“뭐…. 일단은 공무 중이니 나중에 얘기하자.”

무일은 망설이지 않고 까까오에서 뛰어내렸다.

너무 놀란 금서희가 비명을 질렀을 때쯤에는 이미 바닥에 사뿐히 도착한 후였다.

가더발트가 근육을 보강해주고 낙하 충격은 장갑 ‘앙그류 그랑모리’가 흡수해주니 별 이상 없는 것이다.

도로를 우회해서 되돌아온 ‘나브랑모스 레비터’가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카르 4세 앞에 멈춰 섰다.

데리러 왔다기보다는 목적지가 이곳이다.

뱀페스트와 조성미는 ‘강남구’라고 했고, 프로사냥꾼은 그 하나만을 근거로 추적해서 여기까지 온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예감]으로 찍었다.

“선배님. 어떻게든 찾아낸 것 같습니다.”

문세웅은 하늘 위를 배회 중인 까까오에 대해서는 별말 안 했다.

일일이 ‘평범한 사냥꾼’의 잣대로 이 선배를 풀이하려고 하면 정말 답이 없는 까닭이다. 적당히 그러려니 넘어가는 게 현명하다.

뒤따라 스포츠카에서 내리는 사냥꾼이 있었다.

딱 봐도 완제품으로는 차에 실을 수 없을 만큼 큰 대구경 라이플을 조립하느라 조금 늦게 나온 30대 초반의 사내, 이승필이 말했다.

“확실히 이곳 같습니다, 조장님.”

카르 4세를 부르는 그의 호칭은 ‘조장님’이었다.

사냥꾼 둘이서는 ‘조’가 아니지만, 셋부터는 ‘조’로 편성되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이승필은 ‘조장님’ 혹은 ‘팀장님’이라고 불렀을 것 같다.

문세웅이랑 달리 이승필은 프로사냥꾼.

아직도 그 실력이 녹슬지 않았다는 전제가 붙지만, 15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최고의 저격수로 손꼽히던 ‘타로 5세’치고는 매우 겸손한 태도였다.

수전증은 보이지 않았다.

이승필이 양손으로 떠받치듯 들고 있는 ‘타이타니 로니오(아파도 너무 아픈 가시)’는 미세한 흔들림도 없이 매우 안정되어 있었다.

물론, 모의전투가 아닌 실전으로 들어가 봐야 정말로 수전증이 나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카르 4세는 걱정하지 않았다.

이미 나았음을 [예측]했고 이승필이 오늘 역할은 ‘저격수’가 아닌 까닭이다.

“타로 씨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큼! 그 호칭은 아직 과분합니다, 조장님.”

연장자인 이승필이지만, 헛기침하며 무안함을 달랬다.

별명에 ‘몇 세’인지 안 붙었다고 해서 ‘타이타니 로니오’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무일이 처음 여자친구를 얻고 불린 명칭이 ‘카르 꼬마’였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아주 의미가 없는 건 아니다.

순위에서는 빠졌지만 ‘무기명’으로 불렸다는 것부터가 한 명의 어엿한 ‘무기사용자’로 인정해준다는 뜻인 까닭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세계 최강의 사냥꾼’이 허락한 별명이다.

무일은 그렇게 거창한 생각으로 한 말은 아니었지만, 이승필의 어깨가 당당하게 펴지기에는 충분했다.

“좋아. 일단은 내가 돌입한다. 세웅은 타로 씨를 호위한다. 인질극은 무시한다. 최우선 사항은 우리의 안전이다.”

“네.”

“타로 씨는-.”

“타로면 충분합니다, 조장님.”

“...그러지. 타로는 이 자리에서 나를 보조한다. 인질의 목숨을 걱정하며 방아쇠 당기길 망설이지 말도록. 안타깝지만…. 지금은 한 명의 무고한 시민보다 우수한 사냥꾼의 안전이 중요한 시기다.”

“예, 조장님.”

무일은 카르세리안 레이소를 뽑아들었다.

어떻게 진입하는 편이 좋을까, 잠깐 고민하다가 가더발트를 착용했다.

허리를 벨트처럼 감고 있던 장착형 괴수는 그 영역을 확장하여 순식간에 팬티가 되어 중심을 감쌌다.

어딜 봐도 ‘커플 잠옷’인 파자마는 멀쩡했다. 속옷으로 취급 안 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겉보기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세밀하게 관찰할 수 있다면 그렇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온몸을 괴수가 감싸고 있다.

여성이었다면 팬티뿐 아니라 브래지어로 가슴도 집중적으로 공략(?)했을 테지만, 남성인 그는 없는 관계로 그 여유분만큼 온몸의 피부 구석구석으로 퍼졌다.

근육과 뼈를 보강해준다.

심지어 피부마저 단단하게 해줬다.

방어력은 그야말로 ‘2종 괴수 가더발트’였다. 2종 괴수조차 두부처럼 썰어버리는 ‘카르세리안 레이소’ 같은 MID 무기가 아니면 피해조차 줄 수 없다.

수류탄을 맨손으로 잡는 배짱.

그건 뛰어난 장비와 괴수의 합작이었다.

“나는 위에서부터 쓸고 내려가지.”

“예?”

출입구로 진격할 것 같았던 카르 4세가 제자리에서 거의 수직에 가까운 각도로 높게 뛰어올랐다.

따로 발판도 없이 문제의 폐건물 5층 꼭대기까지 단숨에 도약한 프로사냥꾼은 옥상에서 밑을 감시 중이던 뱀페스트를 가차 없이 베며 착지했다.

경악에 찬 얼굴.

인간이 괴수를 실제로 처음 볼 때의 표정이랑 비슷했다.

그래도 도약하는 데 걸린 시간이 있어서 흡혈귀는 나름 회피랍시고 했던 모양이지만, 아주 ‘살짝’ 스치는 바람에 ‘쇼크사’했다.

...내 여자친구만 이런 걸까?

손톱으로 할퀴기만 해도 위험한 독기를 품은 여자 같다.

『도, 독기….』

계단을 보며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무일은 드디어 느낌이 오기 시작한 [예감]에 따라 천장을 뚜벅뚜벅 걸었다.

뱀페스트 ‘보스’는 이 아래에 있다.

천장 혹은 옥상이라고 불리는 콘크리트 덩어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무일에게는 망설일 이유가 없다.

다만,

‘그래도 나름 뱀페스트 백작이란 녀석인데 스쳤다고 죽진 않겠지?’

괴수를 생포해서 신문해야 한다는 문제가 생겼다. 무시무시한 ‘독기를 품은 여자친구’의 살상력이 너무 뛰어나서 생긴 고민.

원래는 팔다리 하나씩 자르며 ‘괴수의 재생력’을 악용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생채기 하나에 꼴깍할 것 같다.

이걸 어쩌면 좋을까?

괴수가 너무 잘 죽어서 문제가 될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던 카르 4세는 ‘위기’가 아니라서 별 힘을 못 쓰는 [예감]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럼 [예측]은?

이쪽은 아예 침묵시위 중이다.

“...어떻게든 되겠지. 타로 5세도 있고.”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백작이 죽으면 어딘가에 있을 후작, 공작, 왕이란 녀석들이 반응을 보일 것이다.

죽은 동료의 복수 같은 거에 신경 안 쓰거나 그대로 숨는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천천히 찾아가면 된다.

걱정되는 부분이라면 서울이 혼란에 빠지는 상황.

만약 ‘흡혈귀 왕’의 명령으로 모든 흡혈귀가 한꺼번에 시민과 사냥꾼을 기습하기 시작하면 어마어마한 희생자가 발생할 것이다.

물론, 질 거라고는 생각 안 한다.

대한민국에는 세계에서 3번째로 강한 계약자가 있기 때문이다.

『바람의 여왕, 박선영』

세계에는 수호자보다 야생괴수가 많고 그건 9종도 마찬가지다. 인류에게 허락된 9종 계약자는 단 한 명.

그럼에도 인류가 버틸 수 있었던 건 ‘9종 괴수’에게만 있는 지배권 대신 계약자란 연결고리가 수호자의 힘을 뭉치도록 한 덕분이다.

위험성이 아닌 순수한 전투력 측면에서는 8종과 9종은 종이 한 장 차이다. 그리고 엘로엘쯤 되면 9종보다 더 강하다.

물론, 이집트의 9종 수호자 이즈헬은 예외겠지만, 이 또한 싸워보지 않고는 확실히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일단 싸움이 벌어지면 서울은 공중분해 된다.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정말 공중으로 휙휙 날아가서 분해되고 말 것이다.

콰과광!

이처럼.

카르세리안 레이소로 휙휙 긋고 발로 쿵, 찍자마자 천장이 무너지며 카르 4세는 5층 한복판에 떨어졌다.

이어서 보지도 않고 휘둘렀다.

그래도 간부라고 침착하게 멀리서 총을 뽑아드는 자가 있었지만, 곧 건물 밖에서 벽을 관통하며 쏘아진 탄환에 심장을 잃고 쓰러졌다.

타로, 이승필이다.

엄호하라는 말을 확실하게 실천하고 있었다.

RPG 게임으로 치면 ‘던전 밖’에서 ‘유저’가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꼼수라고 할까. 이게 현대전 저격수의 무서움일 것이다.

투시경? 적외선 망원경?

그런 건 전혀 필요 없다.

마음이 가는 대로 조준하고 방아쇠를 당기면 된다.

물론, 초보 사냥꾼은 이 [예감]과 [예측]이 뚜렷하지 않아서 실패할 확률이 매우 높다. 마음속으로 ‘안 맞지 않을까?’라는 의심을 품는 순간 그걸로 끝이다.

하지만 이승필은 초보가 아니다.

15년 만에 복귀했으나 ‘타로 5세’라고 불렸던 프로저격수다.

덤으로 그의 ‘믿음’은 과거보다 더욱 견고해졌다.

이전까지 ‘그리스도교’였으나 최근에 ‘한 남자’로 바뀌었다. 그건 침묵 중인 신(神)보다 더욱 가까우며 물리적으로 만날 수도 있다.

그 남자가 자신을 인정했다.

실수할 리 없다는 확신은 뚜렷한 [예감]으로 보답 받았다.

“마, 말도 안 되는….”

물론, 이런 ‘믿음’은 ‘양날의 검’이다.

그 신앙의 대상이 신(神)이 아닌 인간이라면 ‘그 인간’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한계가 있고 신앙의 대상이 죽어버리면 끝장이다.

가령, 태양이 사라지면 프로사냥꾼 ‘카르 4세’는 평범한 시민 ‘한무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태양이 사라지면 지구도 남아날 리 없으니 논외.

카르 4세는 주변을 쓱 훑었다.

세 명의 아름다운 여인들을 각자 다른 체위로 집중하고 있던 세 뱀페스트는 머리를 잃은 채 미동 없이 가만히 있었다.

몸에서 떨어져 나간 머리는 경악으로 눈을 부릅떴으나 곧 사르르 눈을 감았다. 그 마지막에 그들은 말하고 있었다.

어째서 회복이 안 될까, 하고.

노크도 없이 침입한 사냥꾼에게 묻고 싶은 모양이지만, 당사자도 모른다.

검이 이상한 걸 어쩌라고.

< [21장-2] 여동생이라는데요. > 끝

ⓒ 파르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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