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수처럼-86화 (86/287)

< [21장-1] 여동생이라는데요. >

파르나르 장편소설

괴수처럼 11

[21장] 여동생이라는데요.

학명: 까까오(까까 울지만 지네)

서식지: 절벽

특징: 징그럽게 많은 날개

위험도: 5종 보통

비고: 맹독을 품고 있습니다.

***

부산의 5종 계약자 금서희는 용산구의 어느 빌딩 꼭대기에 있었다.

윤기나는 검은 생머리, 시원시원한 이마, 야무지게 생긴 입술…. 끝으로 진한 속눈썹은 성형미인인지 의심토록 했다.

영국에서 직수입해온 군청색 방탄망토로 어깨부터 발목까지 덮고 있다. 망토 뒤에 달린 후드가 평소에는 머리까지 감추고 다님을 알 수 있게 해줬다.

중세의 떠돌이 여행자 같다. 하지만 그녀의 미모를 보게 된다면 왕궁에서 몰래 빠져나온 공주님일 거라고 단번에 수긍하게 될 것이다.

그녀의 수호자 ‘까까오’가 느긋하게 주위를 맴돌고 있다.

생김새는 영락없이 지네.

하지만 다리 대신 15쌍의 지느러미 같은 날개를 펄럭이며 둥둥 떠다니는 모습은 자기부상열차를 연상하게 했다.

곤충 특유의 윤택 있는 껍질이 태양광을 반사하며 아름답게(혐오스럽게) 빛나고 있다. 보는 사람의 오금이 저리도록.

“이 오빠를 무슨 수로 찾지….”

벌써 며칠째인지 모른다.

부산을 너무 오래 비워뒀다는 불안감이 슬금슬금 올라올 정도의 시간을 허투루 보냈다. 그녀가 기껏 모은 정보는 딱 하나.

여의도의 괴수대응본부에서 가장 가까운 휴대전화판매장에서 ‘어? 이 소년-, 젊은 남성분을 알아요! 3개월에 한 번씩은 와요.’라는 정도였다.

3개월? 하기야 너무 자주 방문하는 것도 우습다.

하지만 ‘카르 4세’를 하루라도 빨리 찾고 싶은 금서희에게는 그마저도 답답했다. 수도권을 배회하는 사냥꾼에게 물어도 마찬가지다.

호평, 찬양, 경애….

어디의 강아지냐고 묻는 것처럼 무심한 서울 시민하고는 그 반응이 딴판이다. 하지만 ‘어디 살아요?’라는 물음에는 다들 고개를 저었다.

그야 당연하다.

괴수대응본부 관계자의 신상정보는 본부에 물어보는 게 정석이다. 한국에서 태어난 위대한 프로사냥꾼을 존경한다고 해서 집까지 알고 있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카르 4세는 특공대 막사에 자주 들락날락합니다.

그야 특공대 소속이니 뻔한 대답이다.

‘들어갈 수 없다는 게 문제죠.’

금서희는 연지(臙脂)를 안 발랐음에도 붉디붉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녀는 괴수대응본부 소속이 아니다. 들키면 가입을 권유할 것이고 거절하면 쌀쌀맞은 대응이 올 것이다.

5종 계약자를 뭐로 보고!

서울 본부에서 파견 나온 6종 계약자가 가장 강한 부산에서나 통하는 얘기다.

금서희는 부산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강자지만, 서울의 우수한 계약자들이랑 비교하면 중상위권이다.

자리를 비운 8종 괴수 와이츠의 잔재가 남은 북한산이 부산보다 더 안전하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서울은 뛰어난 계약자가 많다.

소위 ‘마의 벽’이라고 불리는 6종 계약자부터 다수 존재한다.

저들 중 몇 명만 더 부산에 와준다면….

부르르릉!

스포츠카의 요란한 엔진음이 들렸다.

금서희도 허송세월만 한 게 아니었다. 특공대 막사에서 가장 가까운 본부 입구부터 가장 먼 입구까지 쭉 감시했다.

조금씩 긁어모은 정보에 따르면 ‘나브랑모스 레비터’를 타고 다닌다는 모양이다. 하지만 여태 그 스포츠카를 보지 못했다.

그녀도 계약자인 까닭이다.

미모 관리를 해줘야 하기에 하루에 낼 수 있는 시간은 매우 한정적이다.

그렇다면 출퇴근 시간을 노리면 된다!

처음에는 그런 생각도 했지만, 카르 4세가 본부에 방문하는 시간은 매우 불규칙했다. 그리고 안 오는 날도 잦았다.

짜증이 확 나서 도시에서 직접 이 나브랑모스 레비터를 찾으러 다닌 적도 있었지만, 서울은 지나치게 넓었다.

하지만 마침내!

“찾았다!”

금서희는 기쁨의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이 또한 잠시, 본부로 쏙 들어가버리는 바람에 금세 시무룩해졌다.

그녀는 괴수대응본부, 청와대, 국회의사당 등의 주요건물 30m 안으로 ‘접근금지’ 처분을 받았다.

이걸 어기면 ‘한국인 계약자’라고 해도 자비 없다는 경고.

통제할 수 없는 ‘야생녀(野生女)’를 두고 볼 수 없다는 뜻이다. 서울에서 내쫓지 않은 것만 해도 감지덕지하게 여겨야 할까.

까까오가 계약자의 마음을 대변하듯 뒤죽박죽으로 하늘을 맴돈다.

‘곧 피부관리 시간인데….’

하루쯤 안 한다고 세상이 멸망하는 건 아니다.

계약자의 미모에 하자가 보이면 수호자가 어떤 식으로든 불쾌감을 표현하며 ‘노력’할 것을 경고한다.

그 불쾌감을 이해 못 하고 제멋대로 행동하다가 일생일대의 계약을 날려 먹은 계약자를 인류는 잘 알고 있다.

『미오 타미에』

9종 수호자 오니오프가 떨어져 나가며 일본은 국력 95%를 상실했다.

설상가상으로 계약이 파기된 줄도 모르고 8종 야생괴수에게 시비 걸었다가 우수한 계약자 다수를 잃는 비극도 겪어야만 했다.

괜히 미오 타미에가 ‘애 만드는 기계’를 자처한 게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후회하며 사는 사람을 꼽으라면 바로 그녀일 것이다.

금서희도 그 위험성을 안다.

아니, 더 크다.

그녀의 계약이 해지되면 가장 먼저 어머니가 다시 ‘애 만드는 기계’로 추락할 것이고, 본인도 비슷한 처지가 될 것이다.

어쩌면, 정말 상상하기 싫지만, 근친상간을 당할 수도 있다.

가장 혐오하는 남자에게.

“기회는 또 오겠지.”

그래서 금서희는 깔끔하게 포기했다. 이미 그녀는 상당히 무리하는 중인 탓이다.

부산에서처럼 규칙적인 몸매관리, 피부관리를 할 수 없다.

그건 효과 측면에서도 매우 비효율적이며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피로와 스트레스 등이 쌓이고 있다.

그때였다.

행운의 여신이 그녀를 외면하지 않은 걸까.

본부로 쏙 들어갔던 나브랑모스 레비터가 같은 출구로 다시 나왔다.

부우우웅!

교통법을 깡그리 무시한 그 스포츠카는 벌써 여의도를 빠져나가려 하고 있었다.

잠깐! 신호등 한두 개쯤은 지켜줘!

호주머니에서 ‘오이마사지 팩’을 꺼내 대충 얼굴에 탁! 붙인 금서희는 수호자 까까오의 등껍질 위에 매단 푹신한 안장에 올라탔다.

미녀의 엉덩이는 소중하니까!

거친 승마(?)로 처녀막이 찢어진다면 계약자를 지키는 수호자로서 실격이다.

“까아! 까아!”

까까오가 내는 포효가 15쌍의 날개가 내는 바람 소리를 파묻으며 스포츠카를 빠른 속도로 추적하기 시작했다.

따라잡은 건 정말 순식간이었다.

교통법을 무시하고 달리는 나브랑모스 레비터라고 해도 도로마저 무시할 순 없는 탓이다. 그에 반해 하늘을 나는 괴수는 일직선.

하지만 그뿐이었다.

서울 시민들이 한가득한 땅으로 까까오가 내려갈 방도가 없다.

부산이라면 상관없겠지만, 여긴 서울. 소란을 일으키면 이번 기회는 물론이고 영영 못 만나는 수가 있다.

“어, 어쩌지?”

찾는 것만 생각하고 ‘어떻게 만날까?’는 전혀 계획해둔 바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일단은 무작정 쫓아가 보기로 했다. 목적지가 있다면 언젠가는 멈출 테니 말이다.

나브랑모스 레비터가 강남구로 진입했다.

그중에서도 지난 쿠데타로 많은 건물이 파괴된 지역으로 향했다.

무너진 63빌딩을 대신해서 서울의 새로운 명물로 자리 잡은 ‘용왕님 아이스크림’이라고 명명된 반란군 아지트 근처였다.

그곳은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도저히 기존 건물을 재활용할 수 없다고 판단되어 재건축 중이었다. 그동안 서울에서 찍어내다시피 했던 고층빌딩이 아닌 저층 빌라였다.

건물은 1층부터 차곡차곡 쌓는 방식이 아니었다.

MID 과학이 접목된 토목기술.

책장에 책을 채우듯 ‘세로로 자른 건물 단면’을 조립하는 것이었다. 커다란 가구도 완공 후에 하나씩 끼워 넣는 게 아니라 바로바로 해결한다.

부산에서는 볼 수 없었던 광경.

스포츠카의 추적을 수호자 까까오에게 맡긴 금서희는 그 공정과정을 신기하다는 얼굴로 멍하니 구경하며 ‘나중에 엄마랑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다.’ 같은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건 잠깐이었다.

아직 철거하지 않은 폐건물이 즐비한 곳으로 진입했다.

‘괴수를 토벌하러 가는 걸까요?’

빼곡했던 인적이 듬성듬성해지고 있었다.

공사장 인부들이 곧 철거예정인 멀쩡한 폐건물에서 나오기도 하고, 사냥꾼들이 좌우에 여자를 하나씩 끼고 시시덕거리는 모습도 보인다.

...쓰레기 아빠처럼 팔자 좋네.

금서희가 고운 아미(蛾眉)를 찡그리며 탐탁지 않게 볼 때였다.

“어…?”

멀쩡히 잘 달리고 있던 나브랑모스 레비터의 보조석이 활짝 열렸다. 그리고 사람의 형체를 한 무언가가 내리더니 뛰어올랐다.

정말 사람?

처음에는 지면을 밟고 다음에는 폐건물의 4층 난간을 찍고 재차 높게 뛰어오른다. 그리고 한 번 더.

시간으로 따지면 대략 1초쯤.

금서희가 어어, 하는 틈에 그 무언가는 하늘 위의 지네에 도달해있었다.

그녀의 수호자이자 5종 괴수인 까까오가 ‘움찔’했다고 느낀 그 짧은 사이에 더듬이를 잡고 괴수의 머리를 밟은 채 서 있었다.

그 무언가가 말했다.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얌전한 괴수네. 오늘만 이런 녀석을 2번째 보는군.”

“어…. 아…. 에…?”

영국의 로열기사와 왕족에게만 허락된 ‘제국코트’가 어깨에 대충 걸려 펄럭인다.

너무 무례한 태도 아닐까?

영국이랑 몇 번씩 거래해온 금서희는 저 ‘제국코트’의 의미를 잘 안다. 아니, 그건 둘째치고 저렇게 망토처럼 걸쳐 입는 건 예술품에 대한 모독이다.

하지만 말할 수 없었다.

그 알맹이는 더 호화판이었던 탓이다.

괴수가 밟아도 멀쩡하다고 전해지는 칠흑빛 일체형 신발인 ‘모리엔탈 크레쉬(생각 외로 안 아픈 발굽)’가 가장 싼 장비였으니 말 다했다.

가장 비싼 장비?

당연하게도 ‘카르 4세’를 있게 한 여자친구 ‘카르세리안 레이소’였다.

하지만 거기에 살짝 못 미치는 MID 손목시계와 발찌, 목걸이가 유독 눈에 띄며 금서희의 시선을 빨아들였다.

‘다기능 손목시계, 전자기펄스 발찌, 방독의 목걸이….’

저것 중 하나만 갖고 있어도 부산에서는 ‘멋진 오빠야! 나랑 결혼해줘!’란 소리가 절로 나오는 최첨단 MID 산물이다.

금서희가 대충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알고 있는 이유는 별거 아니다.

부산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계약자인 그녀는 부산의 돈줄,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운송업(運送業)에 종사하는 까닭이다.

값비싼 MID 수입품, 수출품을 지키는 게 매일같이 하는 일이다.

하지만 그런 금서희도 상의와 하의만은 몰랐다.

특별제작한 모양이다.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고래 기업 ‘I ♡ Seoul’ 마크가 세로로 큼지막하게 들어간 흑색 긴소매 셔츠.

특공대 상의를 개조한 것 같았다.

...그런데 저 하의는 뭘까요.

눈썰미에 자신 있는 금서희가 아무리 고민해봐도 비슷한 수공품은 물론이고 국적과 기술도 알 수 없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잠옷 바지’일까요…?

활동하기 편하도록 얇고 펑퍼짐하며 무릎 아래까지 살짝 가려주고 있다. 하지만 바람에 날릴 때마다 허벅지까지 올라간다.

그러고 보니….

허벅지 좌우에 디자인(?)이라고 해놓은 게 있었다.

오른편에는 상의와 마찬가지로 ‘I ♡ Seoul’ 마크가 세로로 박혀있고, 왼편에는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묘령의 미인 사진이 붙어 있다.

보는 여성으로 하여금 짙은 패배감을 안겨주는 ‘음침한’ 가슴골 앞에 양손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고 있다.

...선지혜 회장?

확신은 금물이지만 정말이라면….

바지 재질은 속옷 없이 입어도 무척 부드러울 것 같다.

“너무 뚫어지게 보는 게 아닌가 싶은데.”

“아! 어…. 음…. 죄송해요.”

금서희는 엉덩이가 파묻힐 만큼 푹신한 인장 위에서 엉거주춤한 정자세를 취했다.

이래야 할 것만 같았다.

수호자 까까오가 이 ‘무단승차자’를 머리에 앉히고도 고분고분한 이유하고 비슷하면서도 조금 달랐다.

이건 어른 앞에 선 아이의 모습.

위축된 자신을 발견한 그녀는 그 이유도 금세 깨달았다.

스마트폰에 내장된 동영상의 카르 4세는 ‘조금 삭은 얼굴(?)’이라서 못 알아봤지만, 이렇게 실물로 보니 알 수 있었다.

이복동생들에게조차 인기 많았던 조숙한 오라버니랑 판박이다.

가문에서 13살이란 최연소 나이로 가출한 소년.

그동안 너무 많은 일을 겪으며 이름마저 까먹었지만, 본능은 기억하고 있었다.

허공의 괴수 위에 올라타는 묘기를 보여준 소년이 말했다.

“부산에까지 스토커 아가씨를 둘 능력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누군가 했더니 10시 땡 하면 울던 수희였네.”

“...수희가 아니라 서희예요.”

“그랬나? 미안. 벌써 15년 가까이 지나서 가물가물하네. 흠. 하지만 울보인 건 여전하군.”

“바보…. 여전히 바보 오라버니네요. 흑, 흐윽. 으아아앙!”

금서희는 어깨를 들썩이다가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카르 4세는 난감하다는 쓴웃음을 지으며 밟고 있는 까까오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리고 눈빛 대화를 시도했다.

너도 공감하지?

...하는 편이 신상에 좋을걸.

괴수도 흔쾌히 공감해주는 것 같다.

< [21장-1] 여동생이라는데요. > 끝

ⓒ 파르나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