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장-3] 너는 뭐하는 시민? >
식당 부엌에서 사용하던 뒷문 같았다.
곧바로 드러난 식량 창고는 구조대에서 싹 정리했는지 텅텅 비어있었다. 하지만 미처 치우지 못한 가재도구가 주위에 널려 있었다.
유통기한이 있는 식량을 제외하면 당장 급한 건 아니니 당연하다. 하지만 사고를 터진 직후의 상황을 떠올리면 누군가 이후에 정돈한 느낌이 강했다.
“...떠난 걸까요?”
“아니. 저쪽으로 가보자.”
이 건물은 주상복합이었다.
1층은 상가, 지하는 주차장 그리고 2층부터는 주거지다. 정문과 주차장 입구는 아무도 출입 못 하도록 헌병대에서 막아놨다.
카르세리안 레이소 앞에서 그런 차단막은 의미가 없지만, 민간인이 겁도 없이 들락날락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밖에서 보면 5층 위로는 무너지고 없었다. 그렇다면 괴수는 뚫린 천장과 무일이 들어온 골목 입구, 양쪽을 사용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
‘목적이 뭐지?’
너무나 당연한 이유다. 인간이 아니면 괴수가 도시에 올 이유는 없다.
다만, 그 자세한 목적이 궁금한 것이다.
순수한 먹이로서의 가치일 수도 있고 ‘장난감’일 가능성도 있다. 어쩌면 둘 다. 요즘처럼 실종사건이 끊이지 않는 때에는 이게 참 난감하다.
남성이 사라지면 보통 사냥꾼으로 위협 제거다. 그리고 여성이 실종되면 식량 겸 장난감일 경우가 많다.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괴수도 편식 같은 걸 한다.
근육 함량이 높아서 질긴 남성보다 부드러운 지방이 많은 여성을 더 선호한다. 계약자나 식량으로나 말이다.
덤으로 ‘계약하기에는 약간 못 미더운 미녀’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기도 한다. 평범한 원숭이보다는 낫다는 이유다.
그 ‘놀이’ 방식은 다양하고 일부는 잔인하다.
여기에 그런 일이 없었길 바랄 뿐이다.
“...여긴 공중목욕탕이네요.”
“창문이 없어서 사람 가두기에는 안성맞춤인 곳이지. 여길 감옥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없었겠지만.”
주상복합답게 상가마다 별개로 분리되어 있다. 하지만 창문을 깨고 침입하더라도 다른 방으로 침입 못 하게 벽으로 막아놓은 구조는 극히 드문 경우다.
그러니 괴수가 여길 택한 거겠지.
덤으로 헌병대가 분명 차단기를 내렸을 텐데 전기와 수도도 들어온다.
이걸로 무언가 있다는 건 확실해졌다.
이러고 노숙자들의 아지트라면 기가 막히겠지만, 출입이 어려웠을 테니 분명 아니다.
적은 남성 인구 탓에 그 규모도 작고 초라한 1층 남탕이랑 달리 지하에 자리한 여탕은 매우 크고 화려했다.
그곳에서 볼 수 있었다.
“선배님! 저기!”
“흠. 적당히 악취미인 괴수로군.”
온수로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탕 속에 팔다리가 기형적인 방향으로 꺾인 남자들의 시신이 퉁퉁 불어있었다.
죽이고 집어넣은 게 아니란 걸 증명하듯 탕에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 친 흔적이 적지 않게 내비쳤다.
비위는 둘째치고 시체 썩는 냄새가 코를 마비시킨다.
영 버티기 힘들었던 문세웅은 바지 주머니에서 꺼낸 산소마스크를 착용한 후에야 간신히 안정된 얼굴을 했다.
그동안 무일은 시체를 부검했다.
가장 최근에 죽었다고 짐작되는 남성과 그전 희생자의 상태를 비교해서 괴수의 사냥 간격과 시간대를 어림짐작해보는 것이다.
“뭘 좀 알아내셨습니까?”
“과감한걸. 낮과 밤을 가리지 않았어. 그리고 납치해온 숫자도 한 번에 여러 명. 괴수는 하나가 아니야.”
“여럿…. 본부에 연락할까요?”
“아니. 기다려봐.”
“네.”
온도가 다 달랐을 탕은 펄펄 끓는 온탕뿐이었다.
그 안에 얼마나 많은 시신이 있는지는 현재로써는 전부 파악하기 무리였다. 공통점이라면 전부 남성이란 정도.
남자만 죽이는 괴수?
문세웅은 자신이 생각했지만 그건 좀 아닌 것 같았다.
정말로 남자만 죽이는 괴수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럴 거면 이런 도심보다는 수도권이 본거지로 더 적합하다.
남성의 과반수가 사냥꾼인 까닭이다.
“온몸에 심한 타박상이 있다. 아무래도 체력테스트를 했던 모양이야. 그래. 숙주로 쓸만한지 시험해본 거야.”
“뱀페스트?”
“남성을 숙주로 삼는 기생충들이지. 단정하기에는 이르지만 가장 유력하겠군.”
흡혈귀(吸血鬼)라고도 부른다.
마늘과 십자가에 약하다는 정보는 종교에서 신도를 끌어모으려고 만든 미신이고 실제로는 낮과 밤을 가리지 않으며 박쥐하고는 연관성이 아예 없다.
민담설화랑 일치하는 정보는 ‘피를 빤다.’는 것뿐.
애초에 뱀페스트는 인간처럼 생긴 ‘인간형 괴수’가 아니다.
인간 남성의 몸을 빼앗아 조종하고, 납치한 여성의 목덜미에 송곳니를 박아 피를 빨며 살아가는 거머리의 일종이다.
【뱀페스트 / 2종 특수】
가만 놔두면 전염병처럼 빠르게 번식해서 순식간에 인간의 도시를 ‘인간 사육장’으로 바꿔버리는 골치 아픈 괴수다.
하지만 여태 그런 참극이 벌어진 사례는 극히 드물다.
뱀페스트는 인간처럼 활동하고 생각하기에 목숨 귀한 줄도 아는 까닭이다. 실종사건이 연달아 벌어지면 금방 들켜 토벌될 거란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그래서 평소에는 번식과 활동을 최대한 자제한다.
꼭 흡혈을 안 하더라도 생활에는 지장 없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다.
그렇다면 피는 왜 빨까?
그건 여성의 피를 먹을수록 숙주로 삼은 남성의 몸에 쌓이는 ‘괴수의 피’ 농도가 짙어지기 때문이다.
약한 숙주를 인간에서 어엿한 괴수로 탈바꿈시키는 것이다.
“선배님. 이제 막 자리 잡으려는 녀석들 같은데요.”
“그렇겠지. 아직 사냥꾼을 노리지 못한 걸 보면 얼마 안 됐어.”
여성의 피를 빨수록 강해지는 건 맞다. 하지만 숙주로 삼은 남성의 육신은 그 이상으로 중요하다. 뭐든 기초가 튼튼해야 하는 법이니까.
게다가 외모도 까다롭게 고른다.
숙주를 한 번 정해서 키우기 시작하면 그 뒤로는 그동안 키운 게 아까워서라도 바꾸기가 어렵기에 신중을 기하는 것이다.
뱀페스트도 괴수이기에 ‘털 없는 원숭이’를 분간하지 못한다.
미남(美男)이 누군지 모른다는 뜻이다.
하지만 지능적이다. 많은 암컷을 줄줄이 달고 다니는 인기 많은 수컷이 대체로 잘생겼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무일은 끔찍한 욕탕을 나왔다.
문세웅이 잽싸게 그 뒤를 쫓으며 물었다.
“여자들은 어디 있을까요?”
“여기.”
“네? 어디예요?”
“하지만 너무 적군. 저 살인현장을 보여주고 고분고분해지면 여기보다 더 안전한 장소로 옮기는 방식인가.”
무일은 탈의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열쇠 5개 중 2개를 주워들며 중얼거렸다.
그 의미를 깨달은 문세웅이 서둘러 나머지 3개를 주워 ‘커다란 일인용 옷장’을 열었지만, 전부 비어있었다.
하지만 완전히 비어있진 않았다.
사람의 배설물로 보이는 것들이 들어있다.
“하읏!”
하지만 프로사냥꾼이 고른 2개의 열쇠는 정답이었다.
한쪽 옷장 안에는 기절했는지 미동조차 안 하는 여성이 알몸으로 똥오줌 위에 무릎을 껴안은 채 앉아있다.
또 한쪽은 열어주기 무섭게 옷장 밖으로 고꾸라졌다.
마찬가지로 알몸인 그 여성은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어서 과거의 예쁜 얼굴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일단은 두 여성 모두 상당한 미인이다.
여전히 움직임이 없는 여성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허둥대는 문세웅을 대신해서 카르 4세가 어깨를 흔들어 깨웠다.
심지어 이름도 불렀다.
“조성미 양. 구하러 왔습니다. 이만 일어나십시오.”
대한민국에 등장한 2번째 프로칸 계약자가 될 뻔한 여성이다.
카르 4세가 데뷔전처럼 ‘가장 처음으로 토벌한 4종 괴수’가 그녀의 수호자라서 어쩌다 기억에 남게 된 것이다.
미계약자답게 최초의 표적이 된 모양이다.
임자 없는 ‘순결한 자연미인’을 뱀페스트가 노린 건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다.
이렇게 재회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지만.
“아…. 아…?”
“꿈이 아니니 빨리 그 안에서 나오십시오. 자초지종은 나중에 설명해줄 테니 일단은 제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선배의 눈짓을 받은 문세웅은 망설이지 않고 깨끗한 수건을 들고 욕탕으로 들어갔다.
이 정도는 굳이 지시받지 않아도 알 만큼 성장했다는 뜻이다.
미청년은 곧 물에 적신 수건을 들고 나왔다.
그 의도를 깨달은 조성미는 이 와중에도 얼굴을 사르르 붉히며 문세웅이 준 수건으로 중요부위를 닦아내기 시작했다.
항문이 헐어서 따가운지 울상을 짖는다.
저 정도로 표정이 다채롭다면 정신적으로 큰 타격은 없었던 걸로 봐도 될 것 같다.
“이쪽은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자, 장혜린이라고 합니다. 구, 구해주셔서 정말 가, 감사합니다.”
지린내 하나 없이 깨끗한(!) 옷장 안으로 봐서는 갇힌 지 얼마 안 된 것 같지만, 정신상태는 거짓말 조금 보태더라도 좋다고 할 수준이 아니었다.
여기서 조금만 더 충격을 준다면?
오늘내일 중으로 장혜린은 ‘말 잘 듣는 가축’이 됐을 것이다.
뱀페스트는 지능범이다.
피는 아무리 빨아도 부족하지만, 한 명에게 한 번에 뽑는 양을 조절한다. 그리하여 죽이지 않고 최대한 오랫동안 먹여 살리며 꾸준히 피를 공급받는 방식이다.
여자들이 반항하면 불편한 까닭이다.
굶어 죽지 않도록 입안에 음식물을 쑤셔 넣는 것도 ‘가축’ 숫자가 늘어나면 온종일이 돼버린다.
정신만큼이나 몸 상태도 두 여성은 달랐다.
똥구멍 문제만 빼면 멀쩡한 조성미랑 달리 장혜린은 구타와 강간의 흔적이 온몸 구석구석 남아있다.
그 쓰임새가 다른 결과다.
조성미는 ‘뱀페스트 계약자’고 장혜린은 ‘피를 공급해주는 가축’이었다.
“세웅아. 이쪽도.”
다른 건 몰라도 여성에게 중요한 국부는 청결이 중요하다.
하지만 문세웅은 살짝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말끝을 흐렸다.
“아, 네! 그런데….”
장혜린은 물에 젖은 수건을 들지 못하고 계속 떨어트렸다. 심지어 서 있는 것도 힘든지 벽에 등을 기대며 철퍼덕 주저앉아버렸다.
무일은 그 이유를 금세 눈치챘다.
목덜미에 생긴 송곳니 자국. 벌써 한 번 피가 빨린 것이다.
피가 부족해서 저혈압, 현기증 등이 한꺼번에 몰리며 몸을 겨누지 못하는 것이다.
“네가 씻겨드려.”
“제, 제가요?!”
“그럼 내가 하리? 나 대신 네가 흡혈귀랑 싸울래?”
“살려주십시오, 선배님! 잡일은 당연히 제 담당이죠! 하지만 이건 좀….”
어디까지나 공무니 성범죄는 아니지만, 벽이 높다.
하지만 사냥꾼답게 곧 실행에 옮겼다.
닦아주는 남성이 부끄럽다고 느낀다면 닦여지는 여성의 기분은 어떻겠는가? 그러니 외과의사처럼 부동심이 중요하다.
문세웅은 완전히 진지해져 있었다. 사심 한 점 찾아볼 수 없는 얼굴이다.
반대로 사심이라면 그의 선배에게 있었다.
‘여자는 친절한 남자에게 끌리는 법이지!’
카르 4세는 경험자로서 뼈저리게(?) 잘 안다.
미숙한 후배가 하루빨리 강해지려면 결혼해서 가정을 꾸려야 한다. 지켜야 할 소중한 가족이 있는 남자는 강해지는 법이니까.
죽은 친형의 ‘정의’를 계승한다는 식으로 뒤꽁무니만 쫓아서는 한계가 있다. 좀 더 뚜렷한 목적이 있어야 한다.
문세웅의 얼굴을 나무랄 곳 없는 미남.
장래와 집안도 매우 밝은 편이다.
‘뱀페스트가 보는 눈이 있군.’
객관적으로 조성미보다 장혜린 쪽이 더 예쁘다.
다만, 조성미는 미계약자였고 장혜린은 ‘순결하지 않은 자연미인’이라 탈락하여 모진 수모를 당한 것이다.
장혜린은 학창시절에 남자친구를 잘못 사귄 전형적인 피해자라고 할까.
바로 코앞에서 그녀의 몸을 닦아주는 문세웅은 모르고 있지만, 상당히 대단한 부잣집 아가씨가 분명하다.
미미하게 남아있는 샴푸 향기가 극상품이다.
어떻게 아느냐고?
선지혜가 똑같은 제품을 쓰고 있다.
또한, 장혜린은 어쩌면 계약자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상당히 엄격하게 자기관리 해온 모양이다.
이것도 선지혜의 군살 없는 ‘자연산’이랑 비교….
“일단은 두 분 다 목욕 가운이라도 걸치십시오.”
“네.”
“지금부터 1층 남탕으로 자리를 옮기겠습니다. 세웅. 너는 장혜린 양을 업고 천천히 뒤따라와라. 그리고 조성미 양. 당신의 수호자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괴수의 계약은 일방통행이다.
하지만 정신감응은 쌍방향교신이다.
감금해둔 계약자의 이변을 깨닫고 뱀페스트가 계약을 파기하지 않았다면 위치쯤은 알 수 있을 것이다.
수호자가 계약자를 소중히 아낀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일부 괴수는 그 ‘방식’이 이처럼 다르다.
거머리 괴수의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 있는 건 계약자뿐일 것이다. 조성미의 핼쑥한 얼굴을 보자면 공감대를 얻지 못한 모양이지만.
‘하지만 이 아가씨도 제법인걸?’
프로칸에 이어 뱀페스트랑 계약했다.
개구리와 거머리.
비슷한 부류도 아니다.
보통의 계약자는 1번만 정신교감 해도 괴수의 성향에 물들면서 대단히 폭력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성향을 띄게 된다.
그런데 조성미는 겉보기에는 조금도 미치지 않은 것 같다.
이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일 것이다.
“캄캄한 장소에서 여자들이랑 난잡한 스트립쇼를 즐기고 있는데…. 강남구의 어느 술집 같아요. 방금 계약이 파기돼서 이 이상은 모르겠어요.”
< [20장-3] 너는 뭐하는 시민?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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